[쿠보와 전설의 악기] - 추억보다 강력한 힘은 없다.

 

 

감독 : 트래비스 나이트

더빙 : 아트 파킨슨, 샤를리즈 테른, 매튜 맥커너히, 루니 마라, 랄프 파인즈

개봉 : 2016년 10월 26일

관람 : 2016년 11월 13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아직 이 영화가 상영하고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2016년 들어서 저는 유난히 극장 출입을 자주 못하고 있습니다. 2011년 이후 매년 100여편 이상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지만, 2015년에는 87편으로 떨어졌고, 2016년이 두달도 채 남지 않은 현시점에서 아직 70편에도 못미치는 영화를 극장에서 봤습니다. 제가 매일같이 극장에 가지 않은 이상 올해는 작년보다 더 적은 편수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극장 나들이가 뜸해지다보니 예년에 비해 극장에서 놓친 영화들이 꽤 많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한편이 바로 [쿠보와 전설의 악기]입니다. 아니, 최소한 지난 금요일까지만해도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명가 라이카 스튜디오의 신작입니다. 라이카 스튜디오는 팀 버튼 감독의 [유령신부]를 시작으로 [코렐라인 : 비밀의 문], [파라노만], [박스트롤] 등 개성강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주목을 받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입니다. [유령신부]와 [코렐라인 : 비밀의 문]은 극장에서 봤지만 [파라노만]과 [박스트롤]은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저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만큼은 극장에서 보려고 벼르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개봉 일자였습니다. 저는 [쿠보의 전설의 악기]를 웅이와 꼭 함께 보고 싶었는데 하필 이 영화가 2016년 최고의 기대작 중 한편인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날에 국내 개봉을 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닥터 스트레인지]를 먼저 극장에서 본후, 다음주에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보려고 계획을 세웠지만 역시나 성질급한 극장은 저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지나고나니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상영하는 극장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저는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볼 수 있었겠지만, 이 영화만큼은 웅이와 함께 보고 싶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되면 웅이와 함께 거실 쇼파에 나란히 앉아 보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금요일 외근이 일찍 끝나는 바람에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 아쉬워 집 근처 멀티플렉스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쿠보와 전설의 악기]가 상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오전에는 더빙버전이, 오후에는 자막버전으로 하루 2회 상영뿐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저와 웅이는 일요일 오후를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감탄사를 내뱉었습니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는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답게 새로웠고, 또한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놓쳤다면 아마도 저는 [파라노만]과 [박스트롤]을 보며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던 마음보다 더 큰 아쉬움을 가슴에 묻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웅이도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재미있어 했습니다. 하긴 웅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2013년에 [파라노만]과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15년에는 [박스트롤]을 저와 함께 보며 라이카 스튜디오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재미에 흠뻑 빠졌으니까요. 이렇게 뜻밖의 행운으로 저는 또 한편의 영화와 함께 웅이와 추억을 쌓아올렸습니다.

 

 

제발 혼자 어린 아이들을 극장에 들여보내지 말자!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 대한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들께 한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린 자녀들을 혼자 극장에 들여보내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는 전체관람가 등급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극장에 어린 아이들이 많은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일부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만 극장에 들여 보내고 자신들은 극장 밖으로 나가버립니다. 영화 관람비를 아끼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어린 자녀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극장 밖에서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일까요?  

[쿠보와 전설의 악기]를 볼때도 제 뒤로 기껏해봐야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아이와 미취학 여자아이 둘이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두 분의 여성분들은 아이들에게 '영화를 볼때 조용히 해야해.'라고 주위를 주곤 서둘러 극장 밖으로 나가버리더군요. 하지만 어머니들이 나가자 두 아이는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 뒤에서 의자를 발로 차는 것은 예사이고,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 같아 어쩔수 없이 저와 웅이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라이카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이 예전에도 그랬고,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서도 조금은 으시시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두 아이는 '무서워'라며 울음을 터트렸는데, 정말 영화보며 저와 웅이는 그 아이들의 울음에 어이없는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볼보는 것은 부모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공장소인 극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관람비를 아끼기 위해, 잠시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보호자도 없이 극장에 어린 아이들을 방치해버리는 것은 부모로써의 의무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극장에서 다른 관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극장예절을 가르치는 것도 부모가 해야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아이들이 다 그렇지'라며 예절 가르치기를 외면한다면 그 아이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웅이가 어렸을 적부터 극장에 데리고 다녔지만, 웅이에게 극장에서는 항상 조용히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남을 위해서가 아닌 나와 내 아이를 위해 꼭 필요한 교육입니다.

제가 웅이와 애니메이션을 보러 극장에 갈때 더빙버전이 아닌 자막버전을 고집하는 것은 영화 본연의 재미를 만끽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자막버전의 애니메이션보다 더빙버전의 애니메이션에 나이가 어린 관객들이 많고, 그들로 인하여 제 영화 관람이 방해된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쿠보와 전설의 악기]도 굳이 자막버전을 선택한 것인데, 두 아이를 극장에 방치하고 나가버린 무개념 어머니들 때문에 역시나 저와 웅이의 영화관람은 또다시 방해받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두 여자아이들에 의한 소동 때문에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 대한 저와 웅이의 영화관람이 방해받았지만, 다행히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무서워'라며 울음을 터트린 두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지만 진정하고 [쿠보와 전설의 악기]에 대한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쿠보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쿠보와 전설의 악기]는 기본적으로 쿠보(아트 파킨슨)의 성장담입니다. 쿠보는 기억을 잃은 어머니와 함께 절벽 끝 동굴에서 단둘이 생활합니다. 그는 날이 밝으면 마을로 내려가 악기로 사물을 움직이는 재주와 현란한 말솜씨로 마을 사람들에게 전설의 이야기를 둘려주고 돈을 받아 생활합니다. 그런 쿠보에게 어머니는 해가 지기 전에 반드시 돌아오라는 말합니다. 사실 쿠보의 어머니는 달왕(랄프 파인즈)의 딸이지만, 인간세상의 사무라이 한조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쿠보를 낳았습니다. 이에 대한 분노로 달왕은 한조를 죽이고, 쿠보의 한쪽 눈을 빼앗아가버립니다. 그러한 달왕을 피해 쿠보의 어머니는 어린 쿠보와 둥굴에 숨어 생활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에 불과한 쿠보는 어머니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가 져서도 마을에 머물게 되고, 이로인하여 달왕에게 들키고 맙니다. 달왕의 딸이자 쿠보의 이모인 쌍둥이 자매(루니 마라)의 공격을 받게된 쿠보. 그리고 쿠보를 구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마력을 모두 소진하고 쓰러지는 쿠보의 어머니. 이렇게 쿠보는 혼자가 됩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쿠보가 달왕에게 부모를 잃었지만 결코 그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쿠보의 어머니는 쿠보가 지니고 다녔던 원숭이 조각상에 생명을 불어넣어 쿠보를 지키게 합니다. 이렇게 쿠보는 어머니 대신 잔소리꾼 원숭이(샤를리즈 테른)와 함께 합니다. 그리고 여행 도중 기억을 잃은 딱정벌레(매튜 맥커너히)를 만나게 됩니다. 그렇게 원숭이는 쿠보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딱정벌레는 쿠보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쿠보가 달왕을 무찌르기 위해서는 절대 부러지지 않는 마법의 칼과 절대 부숴지지 않는 갑옷, 그리고 투구를 찾아야합니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는 어린 쿠보가 전설의 무기를 찾는 모험을 통해 점차 어른으로 성장하고, 결국 달왕을 무찌른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원숭이, 딱정벌레와 진정한 가족이 되고, 원숭이와 딱정벌레를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쿠보가 원숭이와 딱정벌레 없이 홀로 달왕과 맞서는 영화 후반부 장면은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처럼 보였던 쿠보가 달왕에 맞서 위풍당당한 표정으로 싸우는 장면은 어느덧 훌쩍 커서 이젠 제게 의지가 되는 웅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쿠보가 달왕에 맞서 싸우는 무기는 추억에 의한 힘입니다.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차디찬 심장을 가진 달왕. 그가 인간을 위협이로 여기는 것은 그들의 변덕스러운 감정입니다. 달왕은 쿠보에게 한쪽 눈을 자신에게 마저주고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하늘나라에서 자신과 함께 영원히 살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쿠보는 달왕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쿠보는 어머니, 원숭이, 딱정벌레, 그리고 마을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달왕은 왜 쿠보의 눈을 원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무엇인가를 봄으로써 그것은 기억 속에 저장하고, 그렇게 저장된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러한 이유 때문에 저는 '본다'라는 행위를 가진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를 통해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추억은 강력한 힘이다.

 

몇달전 저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구입했습니다. 요즘은 스마트폰에서도 고화질의 디지털 카메라 기능이 있지만,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만큼 그렇게해서 찍은 사진의 소중함은 쉽게 잊혀집니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으면 사진관에서 인화를 하고, 앨범에 소중하게 간직을 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디지털 사진들은 그저 스마트폰 메모리안에, 그리고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안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어느날 스마트폰을 바꾸고, 컴퓨터를 바꾸면서 웅이와 함께 찍은 사진들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음을 알게된 저는 디지털 사진이 아닌, 아날로그 사진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았고, 곧바로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구입하게 된 것입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구입한 이후 저와 웅이의 주말은 바뀌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주말마다 여행을 떠난 것입니다. 굳이 먼 곳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처음엔 집 근처의 공원에서 사진을 찍었고, 그 다음에는 서울의 명소, 그리고 서울 근교를 찾아다니며 한장씩 한장씩 소중한 추억을 남기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찍혀진 사진들은 스크랩북에 소중하게 보관됩니다. 저와 웅이가 번갈아 그림을 그리고, 그날의 추억을 사진 옆에 쓰기도 하면서 한장 한장 소중하게 완성하고 있는 중입니다. 언젠가 웅이가 크면 이 스크랩북은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완성된 추억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수 없는 강력한 힘이 될 것입니다.

[쿠보와 전설의 악기]는 바로 그러한 추억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즐거운 기억들. 그것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차디찬 영원한 삶과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강력한 힘입니다. 그것이 바로 쿠보가 달왕을 이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며, [쿠보와 전설의 악기]가 제게 또 한편의 소중한 추억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소중한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나가다보면

내 인생은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유령신부] - 팀 버튼을 향한 짝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코렐라인 : 비밀의 문] - 주류 애니메이션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짜릿함.

 

[파라노만] -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이 무서워질 수 있는 최대한의 한도

 

[박스트롤] - '박스트롤'이 아닌 권력에 집착하는 인간이 괴물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