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스콧 데릭슨
주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레이첼 맥아담스, 틸다 스윈튼, 매즈 미켈슨, 치웨텔 예지오프
개봉 : 2016년 10월 26일
관람 : 2016년 10월 30일
등급 : 12세 관람가
너무나도 완벽했던 주말
지난 금요일, 주말을 앞둔 제 마음이 설렜습니다. 다가올 주말을 위해 알찬 계획을 세워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말을 앞둔 제 관심사는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습니다. 첫번째는 2016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개막이었고, 두번째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개봉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시리즈의 경우는 잠실 야구장에서 열리는 1, 2차전 예매에 실패했지만, 제가 응원하는 두산 베어스의 통합우승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토요일에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한국 시리즈 1차전 대신 어머니를 모시고 동구릉으로 가을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어린시절 남양주시(예전에는 남양주군이었답니다.)에 살았던 저는 초등학교 소풍은 항상 동구릉이나 금곡릉(지금은 홍릉과 유릉으로 이름이 바뀐 듯한...)으로 갔었습니다. 그때의 추억을 회상하며 어머니와 함께 동구릉을 거닐기로 한 것입니다.
오랜만에 가을 나들이를 나오신 어머니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왕릉군인 동구릉으로 문화유산탐사를 하게된 웅이도 짧은 가을여행을 즐거워했습니다. 이렇게 동구릉으로의 나들이를 마치고 어머니께서는 구리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킹크랩을 사셔서 제게 건네주셨습니다. 구피가 킹크랩을 좋아하더라며,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출근해야해서 동구릉 나들이에 참가하지 못한 구피를 챙겨주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는 수많은 안타를 치고도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고, 결국 연장 승부 끝에 1대0으로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입니다. 동구릉으로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한국시리즈 1차전 9회가 진행중이었고, 결국 저는 두산 베어스가 연장전에서 승리하는 감격스러운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가 있었습니다. 동구릉으로 가을 나들이도 가고, 한국시리즈 1차전의 극적인 승리로 보고, 온가족이 함께 킹크랩도 먹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토요일이었습니다.
그 다음날인 일요일도 완벽했습니다. 저희 가족은 아침 일찍 일어나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러 갔습니다. 조조할인으로 영화를 보니 영화관람비도 아낄 수가 있었고, 일요일 아침에 늦잠을 자지 않고 일찍 일어나니 일요일이 훨씬 길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TV를 껴니 한국시리즈 2차전이 곧바로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가 기대했던 두가지를 한꺼번에 연달아 즐긴 셈입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도 두산 베어스는 NC 다이노스와의 접전 끝에 8회말 대거 4득점을 하며 5대1의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후라이드 치킨과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2차전 승리를 만끽했으니 그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던 일요일이었던 셈입니다. 이렇게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은 제게 완벽하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행복했던 주말이었습니다.
역시 마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머니와 동구릉으로의 가을 나들이도 좋았고, 어머니가 사주신 킹크랩도 너무 맛있었으며, 한국시리즈 1, 2차전 두산 베어스의 승리도 기분좋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너무나도 재미있었습니다. 워낙 기대를 많이 했기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너무 높아진 제 눈높이를 총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지만 그러한 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역시 마블'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닥터 스트레인지]는 완벽에 가까운 영화적 재미를 제게 안겨줬습니다.
사실 [닥터 스트레인지]는 영화화되기 까다로운 소재입니다. 물론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을 특수효과 기술로 손쉽게 만들어내는 할리우드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 속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는 [토르 : 천둥의 신]으로 세계관을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장시켰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통해 우주라는 공간을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서 친숙하게 만드는데까지 성공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닥터 스트레인지]는 우주를 넘어 아예 영적인 세계관에까지 손을 뻗칩니다. 유령, 사후세계, 악마 등 지금까지의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소재들이 [닥터 스트레인지]에는 가독합니다. 그렇기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성공 여부는 앞으로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의 확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것을 마블이 또 해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시작은 평범합니다. 천재 외과의사인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외과의사로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습니다. 절망에 빠진 그는 마지막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네팔 카투만두에 있는 카마르 타지를 찾아 나서고, 스승인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을 만나 수련을 통해 강력한 마법사가 되어 인류를 구한다는 것이 간략한 내용입니다.
솔직히 외계인의 존재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이 영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우주라는 상상초월의 드넓은 공간에서 지적인 생명체가 인류 뿐이라는 생각은 오만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에 우주 그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하고 외계인과의 조우는 어쩌면 조만간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제게도 유령, 악마, 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는 종교에서만 가능할뿐, 현실에서는 멀고도 먼 이야기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는 저처럼 영적인 존재와 세계를 믿지 않는 스티븐 스트레인지를 내세워 그가 영적인 세계를 믿는 과정을 현란한 시각효과를 통해 펼쳐보여줍니다. 영화 초반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장면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지금까지 단 한번도 영적인 세계관을 펼쳐 보인 적이 없는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 익숙한 제게 [닥터 스트레인지]는 아주 자연스럽게 영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이도록 이끕니다.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서 멀티버스가 의미하는 것
마블 영화 사상 가장 현란한 시각효과와 영화의 분위기를 결코 무겁지않게 조율하는 탁월한 유머까지... [닥터 스트레인지]는 1시간 5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만 느껴질 정도로 볼거리와 재미를 꽉 채운 오락영화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의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가 영적인 차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새롭게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 합류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들이 많이 늘어났는데 악마와 계약을 한 '고스트 라이더'가 대표적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영적인 차원으로 확장한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어쩌면 마블이 [닥터 스트레인지]를 통해 진정 얻고자 했던 것은 멀티버스라는 새로운 개념일 것입니다. 멀티버스는 여러개의 타임라인과 스토리 라인이 동시에 존재하는 다차원의 평행우주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멀티버스를 이용한다면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는 인기있는 슈퍼 히어로를 새로운 모습으로 끊임없이 재생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아이언맨'의 경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마블의 계약이 거의 종료 직전까지 도달했습니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평생 '아이언맨'만 연기할 수 없을 것이며, 마블도 점점 늙어가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평생 '아이언맨'으로 내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아이언맨'을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서 제외시킨다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그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멀티버스입니다.
멀티버스에 의한 다차원의 평행우주에서는 '아이언맨'이 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젊은 배우가 '아이언맨'이 될 수도 있고, 흑인 또는 여성이 '아이언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최근 발매된 마블 코믹스에서 15세의 흑인 소녀를 새로운 '아이언맨'이라 할 수 있는 '아이언하트'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킴으로써 마블의 선택이 다양해진 것입니다.
물론 아직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 페이지3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멀티버스를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에서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마블 시네마틱유니버스가 선택할 수 있는 사양이 굉장히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것이 [닥터 스트레인지] 덕분에 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이렇게 중요한 영화인만큼 이 영화에 들어간 마블의 세심한 노력이 영화에서도 보입니다. 특히 TV 시리즈 <셜록>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음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닥터 스트레인지'로 캐스팅한 것은 굉장히 탁월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천재성에서 묻어나는 오만함과 의외의 순간에 터져나오는 유머감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이미 <셜록>에서 선보인 것으로 <셜록>에 열광했던 팬이라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닥터 스트레인지'도 자연스럽게 열광할 수 있도록 치밀한 계산아래 이뤄진 캐스팅으로 보입니다.
그는 왜 '닥터'임을 포기하지 않았는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우리가 한가지 눈여겨볼 것은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자신을 '닥터 스트레인지'라고 강조하는 장면입니다. 그의 스승인 에인션트 원은 오랜 세월을 살아가면서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적들로부터 인류를 보호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조차 모릅니다. 그녀는 세속적인 삶을 철저하게 배제한 것입니다. 그와는 달리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소서러 슈프림이 된 이후에도 인간 사회에서의 직업이었던 의사에 집착합니다.
이는 이후 '닥터 스트레인지'가 영적인 적들 뿐만 아니라 '어벤져스'와 함께 인류의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는 소서러 슈프림이면서도 에인션트 원과는 달리 인간 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을 했고, 이는 영화가 끝난 후 첫번째 쿠킹영상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리고 '닥터 스트레인지'가 앞으로 '어벤져스'와의 협업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한가지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적이 한때는 동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케실리우스(매즈 미켈슨)이 대표적입니다. 케실리우스는 스티븐 스트레인지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고 절박한 상황에서 에인션트 원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에인션트 원의 가르침을 받고 강력한 마법사가 됩니다. 하지만 그는 영원한 삶을 약속하는 도르마무의 꾐에 넘어가 스승을 배신하고 빌런이 됩니다.
두번째 쿠킹영상에 등장하는 모르도(치웨텔 예지오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동료로 그를 도와 도르마무의 힘을 빌려 영원한 삶을 살려고 했던 케실리우스를 막아냅니다. 하지만 그는 지나친 원칙주의자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자연의 법칙을 깨면 안된다고 신봉했고, 케실리우스를 막기 위해 도르마무와 거래를 하고 시간을 되돌린 스티븐 스트레인지에 실망해 그를 떠납니다. 그리고 결국 자연의 법칙을 지키기 위해 마법사 사냥에 나서고 '닥터 스트레인지'를 위협할 빌런이 됩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적이 한때 동료들이었던 마법사라는 것은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영적인 힘의 얼마나 불안전한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닥터 스트레인지'가 겪어야할 갈등이 될 것입니다. 비록 소서러 슈프림이 되었지만 세속적인 삶을 포기하지 못하는 '닥터 스트레인지', 그가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는 어떠한 면모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 대목입니다.
영화가 끝나고나서 저희 가족은 집으로 향하며 '거래를 하러 왔다' 놀이에 푹 빠졌습니다. 도르마무와 거래를 하기 위해 시간을 끊임없이 되풀이시키는 '닥터 스트레인지'의 모습에서 본딴 '거래를 하러 왔다' 놀이는 저희 가족의 얼굴에 함박 웃음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렇듯 [닥터 스트레인지]는 완벽한 주말에 어울리는 완벽한 영화였습니다.
이토록 현란한 시각효과 속에서
이토록 유쾌하게 웃으며, 영화를 즐길 수가 있다니...
[닥터 스트레인지] 덕분에 나의 완벽했던 주말이 더욱 완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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