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배리 소넨필드
주연 : 케빈 스페이시, 제니퍼 가너, 크리스토퍼 월켄, 말리나 와이즈먼
개봉 : 2016년 10월 19일
관람 : 2016년 10월 22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이건 내 선택이 아닌, 웅이의 선택이다.
10월 극장가는 전통적인 비수기이기도 하지만 흥행 기대작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개봉하기 전까지 폭풍전야입니다. 저 역시 주말마다 약속이 잡혀 있어서 굳이 무리하면서 영화보러 극장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10월 비수기 최강자로 기대를 모았던 [아수라]가 흥행에 실패하고, [럭키]가 기대이상의 흥행을 기록하는 이변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이 역시도 예전처럼 제 마음을 흥분시킬 빅뉴스는 아니었습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개봉이 일주일 남은 지난 주말, 저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인페르노]를 보며 이번 주말을 보내려 했습니다. 다행히도 [인페르노]는 구피도 보고 싶다고 선언해줘서 [아수라], [럭키]와는 달리 나홀로 영화관람 신세는 모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의외의 복병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미스터 캣]입니다.
사실 [미스터 캣]은 극장에서 볼만한 기대작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맨 인 블랙] 시리즈의 흥행감독 배리 소넨필드가 연출을 맡은 코미디 영화이지만, 지난 8월 5일에 북미에서 개봉하여 개봉 첫주 6위에 그치는 등 흥행 실패의 쓴맛을 맛본 영화입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상영하는 극장도 별로 없어서 조만간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될 것이 분명해보였으니 굳이 극장에서 안봐도 조금만 기다리면 편안하게 거실 TV로 볼 수 있는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지난 10월 3일 [피터와 드래곤]을 본 후 거의 한달동안 극장 나들이를 하지 못한 웅이의 생각은 달랐나봅니다. 웅이가 [미스터 캣]을 콕 찝어서 "이 영화, 보고 싶어요."라며 제게 간절한 눈빛을 보낸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은 장인의 생신으로 인한 가족모임이 있었고, 일요일은 지난 추석에 가지 못했던 아버지의 성묘를 가기로 이미 약속이 잡혀 있는 상황이라 도저히 [미스터 캣]을 보러 극장에 갈 시간이 나질 않았지만 그래도 웅이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토요일 가족모임 이후 웅이와 함께 [미스터 캣]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제가 선택해준 영화만 보던 웅이. 이젠 컸다고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를 제게 어필하기도 하네요. 비록 없는 시간을 겨우 짜내 [미스터 캣]을 봐야 했지만, 그래도 이제 스스로 영화를 선택하기 시작한 웅이의 모습이 뿌듯했습니다.
[미스터 캣]은 가족보다 일이 우선인 백만장자 톰 브랜드(케빈 스페이시)가 어느날 갑자기 고양이가 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의 영화입니다. 사실 일벌레가 어떠한 계기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는 너무 흔합니다. 그래도 [미스터 캣]만의 차별점이라면 고양이를 내세웠다는 점입니다. 왜 하필 개도 아니고 고양이일까요?
개와 고양이에 대한 편견
예전에 [캣츠 앤 독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2001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겉보기엔 평범한 애완 동물들인 개와 고양이가 사실은 인간들이 없는 공간에서 최첨단 무기로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 인간을 지키는 것이 임무인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악당으로 표현됩니다. 이 영화는 2010년 속편이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두편 모두 흥행성적은 부진했습니다.
[캣츠 앤 독스]의 설정은 일반적인 개와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드러냅니다. 사실 개와 고양이에 대한 편견 그대로 개는 인간을 잘 따릅니다. 그래서 수많은 가족 영화에서 개는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와는 달리 고양이는 인간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개는 인간을 주인으로써 받아들이지만, 고양이는 인간을 자신과 동등한 친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와는 분명 다른 고양이의 행동을 보면 일리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스터 캣]은 바로 그러한 고양이에 대한 편견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톰의 귀여운 막내딸 레베카(말리나 와이즈먼)는 생일선물로 고양이를 원합니다. 하지만 톰은 고양이라면 아주 질색입니다. 더럽고, 제멋대로이기 때문입니다. 톰은 고양이를 원하는 레베카에게 고양이 대신 무엇을 선물해줘야할지 중역회의까지 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를 대신할 그 무엇을 찾지 못하죠.
결국 톰은 대충 아무 고양이나 사자는 심정으로 심상치않는 분위기의 펫샵에서 늙은 고양이 한마리를 구매합니다. 하지만 그는 곧 사고를 당하고, 그의 영혼은 고양이의 몸 안에 갇힙니다. 고양이가 된 톰. 바로 이 지점에서 고양이의 진가가 발휘됩니다. 고양이가 된 톰은 그야말로 제멋대로 행동합니다. 고양이 신세를 한탄하며 값비싼 양주를 모조리 마셔버리고, 고양이 사료대신 시리얼을 먹기 위해 부엌을 엉만진창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주인에게 충직한 개가 그러한 행동을 했다면 문제견으로 찍히기 딱 알맞지만, 고양이이기 때문에 톰의 행동은 웃음을 안겨줍니다. 고양이가 된 톰은 부인인 라라(제니퍼 가너)의 외도를 의심해서 차에 몰래 올라타서 훼방을 놓기도 하고, 밉상인 전부인의 가방에 소변을 싸는 등, 자신이 고양이를 싫어했던 더럽고, 제멋대로인 행동을 유감없이 해댑니다.
[미스터 캣]은 일벌레 주인공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흔한 내용에, 가족영화에서는 흔한 개를 대입시키지 않고 고양이를 등장시킴으로써 색다른 재미를 안겨줍니다. 주인의 명령에 구속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고양이의 날렵함. 이러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은 오히려 [미스터 캣]에서 영화적 재미가 됩니다.
아홉개의 목숨을 가진 고양이
고양이에게는 목숨이 아홉개라는 속설이 있습니다. 펫샵의 주인인 펠릭스 퍼킨스(크리스토퍼 월켄)는 톰이 선택한 고양이가 문제가 많은 영혼에게 강하게 끌리는 고양이라며 이미 일곱개의 목숨을 마쳐 문제가 많은 인간들을 고쳤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는 고양이의 신비로움을 잘 대변하는 설정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비로움 덕분에 판타지스러운 이 영화의 분위기가 제대로 녹아납니다.
DC 코믹스의 영웅인 '배트맨'에서 가장 유명한 빌런은 누가 뭐래도 조커입니다. 그렇기에 팀 버튼 감독의 [배트맨]도 조커(잭 니콜슨)로 시리즈를 시작했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걸작 [다크나이트 3부작]에서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다크 나이트]의 빌런도 조커(히스 레저)입니다. 하지만 조커를 제외한다면 역시 가장 유명한 빌런은 캣우먼입니다.
팀 버튼의 [배트맨 2],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조커가 퇴장한 이후 나란히 캣우먼이 등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조커의 빈자리를 메꿀 빌러으로 캣우먼만큼 안성맞춤인 빌런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캣우먼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고양이에게서 비롯된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입니다. [미스터 캣] 역시 고양이를 통해 그러한 신비로운 분위기를 무리없이 영화 속에 그려놓습니다.
사실 [미스터 캣]은 논리적으로 말도 안되는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단 톰의 영혼이 고양이의 몸 안에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쩌다가 톰은 펠릭스의 펩샵에 오게 되었는지, 고양이는 어떻게 톰이 문제많은 영혼임을 알고 있는지, 그리고 펠릭스는 전화를 받으면 사고가 날 것임은 어떻게 알았는지, 영화는 전혀 설명을 해주지 않습니다. [미스터 캣]을 본 이후 집으로 돌아오며 웅이와 이 문제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는 목숨을 아홉개가 가진 신비로운 고양이라는 설명 하나로 해결됩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고양이는 신비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됩니다. 이것이 [미스터 캣]이 개가 아닌 고양이를 선택한 또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미스터 캣]은 고양이를 소재로 끌어들임으로써 많은 것을 얻어냅니다. 만약 애초부터 톰이 고양이가 아닌 개의 몸 안에 들어갔다면 영화는 너무 평범해졌을 것이며, 판타지스러운 영화의 분위기도 많이 어색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 역시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개와는 달리 고양이는 괜히 무섭습니다.) [미스터 캣]의 선택만큼은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분명 [미스터 캣]은 고양이가 영화 재미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화의 주제를 무시할 수는 없겠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가족의 소중함입니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일이 인생의 전부인 일벌레 톰 브랜드가 고양이의 몸 안에 들어가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내용이 [미스터 캣]이 관객에게 전해주고 싶은 궁극적인 메시지인 셈입니다.
영화 초반 톰은 자신이 짓고 있는 건물이 북미 최고층인지 아닌지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이렇게 한가지 일에 집착하다보니 사랑스러운 막내딸 레베카의 생일을 챙겨주는 것조차 잊기 일쑤입니다. 아빠가 너무나도 보고 싶은 레베카는 톰이 등장하는 뉴스 화면을 반복해서 봐야만하는 실정입니다. 라라가 톰과의 이혼을 결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그런데 그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톰은 이미 이혼을 경험했고, 전처와 낳은 첫째 아들 데이비드(로비 아멜)는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하는 상황입니다. 일 때문에 가족을 챙기지 못하는 톰의 습관이 평생 반복되고 있는 셈입니다. 펠릭스는 톰에게 충고를 합니다.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고... 펠릭스의 충고처럼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톰은 고양이가 되고나서야 그러한 희생을 깨닫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자기 자신을 일정 부분 희생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나면 대부분의 시간이 자신이 아닌 자식을 위해 보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고, 희생입니다. 톰은 데이비드를 위해, 그리고 레베카를 위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합니다. 그럼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웅이의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사실 저는 웅이를 위해 제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웅이도 함께 좋아해주니 오히려 웅이 덕분에 영화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는 어쩌면 행운아일지도 모릅니다. 웅이와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으니...
이렇게 착한 영화를 보면 마음도 훈훈해지고, 행복해집니다. 특히 [미스터 캣]처럼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끝날때엔 영화를 보고나서 느끼는 행복이 더욱 커집니다. [미스터 캣]은 그런 영화입니다. 너무 흔한 주제를 가졌지만, 고양이라는 소재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확보하고, 영화를 보고나면 행복해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그렇기에 저는 [미스터 캣]이 좋았습니다.
나를 되돌아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디 체인지 영화가 꾸준히 인기를 얻나보다.
나는 과연 내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 무엇이 되어야할까?
제발 고양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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