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성수
주연 :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 정만식, 윤지혜
개봉 : 2016년 9월 28일
관람 : 2016년 10월 12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모두가 보지 말라고 말리니 더 보고 싶어지더라.
솔직히 저는 애초에 [아수라]를 극장에서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물론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으로 이어지는 호화 캐스팅이 흥미롭긴 했지만, 동심가득한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요즘 지옥같은 세상에서 악인들이 벌이는 살기위한 사투를 보고 싶은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9월 28일 개봉작 중에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과 [피터와 드래곤]만 챙겨본 후 [아수라]는 관람을 무기한으로 미뤄뒀습니다.
[아수라]가 개봉 첫째주에 1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을 때에도 약간 더 흥미가 생기긴 했지만 역시나 '나중에 시간되면 봐야지.'라며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이변이 생겼습니다. 당분간 경쟁작없이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할 것처럼 보였던 [아수라]는 개봉 첫째주가 지나자 '재미없다'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개봉 둘째주에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 이후부터 [아수라]의 추락은 날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저는 드디어 [아수라]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지금 이 추세대로라면 금방 극장 상영은 종료될 것이고, 몇주후면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저는 무리를 해서라도 빨리 [아수라]를 보러 가기 위해 안달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 모두 보지 말라고 말리니 오히려 더욱 보고 싶어지는 이 청개구리같은 심보. 그 덕분에 지난 수요일 저녁 6시 칼퇴근을 시도한 끝에 결국 [아수라]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저는 [아수라]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끔 정우성의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기도 했지만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곽도원은 물론 정만식, 김원해 등 배우들의 연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영화 속의 지옥도도 꽤 흥미진진했고, 영화의 후반부 장례식장에서 펼쳐지는 '아수라'같은 피바다는 한국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었기에 신선했습니다. 김성수 감독이 악인들의 지옥도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연출변을 남겼는데, 과연 그대로였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많은 분들이 [아수라]를 최악의 영화라고 했는지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그렇지 않아도 팍팍한 삶을 살아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 영화에서까지 악인의 지옥도를 봐야한다는 것에 피곤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 평하였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만약 이 영화의 소재 때문이라면 [신세계]와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역시 관객의 외면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의 전성시대]는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형 느와르의 새 지평을 열였다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신세계],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관객의 열화와 같은 호응을 얻었는데 [아수라]는 그 반대였을까요? 저는 지금부터 그에 대한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보려합니다. [아수라]를 재미있게 봤으면서도 영화가 끝나고나서 느껴지는 답답함. 과연 그 답답함은 [아수라]의 그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신세계]에는 있는데 [아수라]에는 없는 것.
저는 [아수라]를 보며 2013년에 개봉했던 [신세계]가 떠올랐습니다. [신세계]는 국내 최대 범죄 조직인 골드문를 와해시키기 위해 8년동안 골드문에 잠입수사를 벌인 신입경찰 이자성(이정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골드문의 실세인 정청(황정민)의 오른팔이 되어 골드문의 2인자가 되기에 이르지만, 경찰청 수사 기획과 강과장(최민식)은 정청을 잡기 위한 작전을 시작하고, 이 와중에서 이자성은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신세계]와 [아수라]가 비슷한 것은 착한 편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악인들의 지옥도가 영화의 소재입니다. 정청은 물론 경찰인 강과장마저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된 이자성은 지옥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더 지독한 악인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인이 된 이자성의 모습은 그렇기에 여운이 꽤 짙었습니다.
[아수라]도 비슷합니다. [아수라]의 주인공은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입니다. 그는 안남시의 시장인 박성배(황정민)를 위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다닙니다. 하지만 박성배를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김차인(곽도원) 검사의 덫에 걸리며 한도경은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는 미끼가 됩니다. [아수라]는 경찰은 물론 정치인과 검사까지 모두 악인 뿐입니다. 주인공인 한도경 역시 엄밀하게 따진다면 결코 착한 편은 아닙니다.
분명 [신세계]와 [아수라]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주인공 설정에서 두 영화는 차이점이 발생합니다. [신세계]는 처음엔 착한 편이었던 이자성이 살아남기 위해 악인이 되어가는 상황을 그립니다. 그렇기에 관객은 처음에 이자성을 응원하다가도 그가 악인이 되어버린 마지막 장면에서 당혹감을 맛봅니다. 하지만 관객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악인이 되는 것만이 이자성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바로 그것이 [신세계]의 영화적 묘미입니다.
그와는 달리 [아수라]의 한도경은 처음부터 악인입니다. 그는 경찰이지만 부정부패 덩어리인 박성배 시장을 위해 온갖 더러운 짓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한도경을 처음부터 응원하는 것이 애매합니다. 그저 멀찌감치에서 살아남기위해 발버둥치는 악인 한도경을 바라만볼 뿐입니다. 물론 김성수 감독이 그러한 것을 몰랐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김성수 감독은 다른 악인들의 개인적 사정은 모두 생략하면서도 한도경의 개인적 사정만큼은 시간을 내서 잡아냅니다.
한도경에게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아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의 병원비와 수술비를 위해서 박성배의 돈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한도경의 사정을 관객에게 어필하려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박성배를 위한 더러운 해결사가 되었다는 것을 관객에게 어필하려면 아내에 대한 한도경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줬어야 했지만, [아수라]에게는 그러한 시간적 여유 따위는 없습니다. 결국 한도경은 관객의 응원을 받는데 실패하고, 그것은 영화에 대한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영화는 카타르시스를 먹고 산다.
[아수라]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냥 악인입니다. 이유도 필요없습니다. 박성배는 안남시의 재개발 이권을 둘러싼 돈과 권력를 위해 악인이 되기를 자처하고, 김차인은 검사 조직 내에서의 성공을 위해 악착같은 악인이 됩니다. 문선모(주지훈), 도창학(정만식) 등은 그저 위에서 시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됩니다. 별거없습니다. 그렇게 악인으로 살아왔고, 악인으로 사는 법 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그냥 악인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도경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물론 그에게는 아내의 병원비 때문이라는 핑계거리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그가 악인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절대적인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한도경의 아내는 '당신이 저지른 나쁜 짓 때문에 내가 대신 벌 받는 거야.'라며 한도경이 처음부터 나쁜 경찰이었음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그는 아내의 병이 아니라도 박성배에게 빌붙는 악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수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도경의 편에 섭니다. 그는 나쁜 놈들이 득실대는 안남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조금 불쌍한 나쁜 놈입니다. 그렇기에 100% 그를 응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도경이 자신보다 더 나쁜 놈인 박성배, 김차인에게 영화의 마지막에는 멋지게 한 방을 먹일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카타르시스의 문제입니다. 카타르시스는 그리스어로 정화 또는 배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인공이 모든 역경을 딛고 마침내 모든 갈등이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만족스러운 엔딩을 맞이할때 관객들은 감정이 순화되고 정서적인 불순물을 밖으로 배설하는 듯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신세계]가 좋은 예입니다. 이자성이 악인이 되어서라도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마지막 장면은 그를 응원했던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수라]는 어떤 가요? 비록 이자성과는 달리 한도경에게는 감정을 이입하며 몰입할만큼의 캐릭터적 완성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기에 조금 덜 나쁜 놈인 그를 응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에는 한도경이 이 모든 악인들을 물리치고 끝까지 살아남음으로써 제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길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수라]에는 카타르시스 따위는 없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피바다 풍경은 그저 김성수 감독의 연출변처럼 처절한 지옥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 안에서 아무리 한도경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쳐도 살아남을 길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영화 내내 박성배에게 얻어맞고, 김차인에게 얻어맞은 한도경이 반격을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지옥도로 시작해서 지옥도로 영화는 끝나버립니다. 그래서 [아수라]는 보고나면 찜찜한 기분만 남아버립니다.
이건 영화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닌 영화적 재미의 문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수라]는 꽤 흥미로운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이 영화처럼 완벽한 지옥도를 보여준 영화는 없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경우는 악인의 세계를 담았으면서도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 비리가 판을 치는 대한민국 풍경을 풍자하는 의미가 더 깊었습니다. [신세계]의 경우는 이자성의 지옥도를 담아 냈지만, 영화 마지막 장면의 카타르시스가 더욱 강했던 영화입니다. 그와는 달리 [아수라]는 온전히 지옥도에만 집중합니다.
이건 영화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닌 영화적 재미의 문제입니다. 김성수 감독이 [아수라]를 통해 완벽한 지옥도를 담아내려 했다면 저는 그러한 시도가 분명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역시 지옥에 갇힌 듯 답답한 기분을 느꼈을 정도니까요. 특히 김차인의 지시로 도창학에게 죽도록 맞던 한도경을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차승미(윤지혜)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죽음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김성수 감독이 아주 독하게 마음 먹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로인하여 관객 입장에서는 영화를 즐길 수 있는 아주 조금의 여유 공간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신세계]처럼 지옥도를 보여주면서도 관객으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낄 여유 공간도 배려했다면 [아수라]는 보고나서 이렇게 찜찜하지는 않았을텐데, 김성수 감독은 완벽한 지옥도를 위해서 영화적 재미를 모두 포기한 셈입니다.
만약 누가 제게 [아수라]를 한번 더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NO'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김성수 감독이 이뤄놓은 완벽한 지옥도는 한번 본 것으로 충분합니다. 완벽한 지옥도를 위해 영화적 재미를 포기한 이 영화를 두번 볼 자신이 제겐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만약 한번 더 볼 결심을 한다면 그것은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일 것입니다. 특히 저는 이미 연기력만큼은 정평이 나있는 주연 배우들보다는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영화 초반 저를 사로 잡은 것은 작대기를 연기한 김원해입니다. 원래부터 연기를 잘하는 씬스틸러임은 알고 있었지만 [아수라]에서는 그야말로 미친 연기력을 선보입니다. 영화의 중반 이후에는 주지훈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깐죽거리는 철부지 막내의 모습에서 점점 악인이 되어가는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고, 한대 때려주고 싶을만큼 짜증나기도 했습니다. 정우성의 옆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였습니다.
황정민의 연기는 뭐 두말하면 잔소리이고, 곽도원의 경우는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악질검사 조범석과 너무 많이 겹쳐졌습니다. 그 대신 악인 열전 속에서 그나마 제 숨통을 트이게 해준 홍일점 윤지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렇듯 제게 [아수라]는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그래도 김성수 감독의 영화의 마지막에 관객이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만 타협을 해줬다면 인상적이며 재미있는 영화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지옥도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돈과 권력, 비리와 범죄가 판을 치는...
가끔 뉴스를 보다보면 '아수라'가 영화에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이야기 > 2016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스터 캣] -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하다. (0) | 2016.10.25 |
---|---|
[럭키] - 행운이라 부르고 행복이라 답한다. (0) | 2016.10.20 |
[피터와 드래곤] - 아이들을 위한 영화? 아니, 어른들도 위한 영화! (0) | 2016.10.07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 팀 버튼식 판타지의 진수 (0) | 2016.10.05 |
[매그니피센트 7] - 서부극에 대한 내 사랑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0) | 2016.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