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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 팀 버튼식 판타지의 진수

쭈니-1 2016. 10. 5. 16:40

 

 

감독 : 팀 버튼

주연 : 아사 버터필드, 에바 그린, 사무엘 L. 잭슨

개봉 : 2016년 9월 28일

관람 : 2016년 10월 2일

등급 : 12세 관람가

 

 

강화도로 가족여행을 다녀온 후...

 

지난 추석, 오랜만에 가족들과 모여 앉아 술한잔 걸치며 어머니를 모시고 1박2일 여행을 다녀오자며 굳은 결의를 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결혼 후 어머니를 모시고 제대로된 여행을 간 적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멀리는 못가더라도 가까운 곳에 다녀오자고 약속을 했었습니다. 그렇게 추석이 지나고 저희 회사의 이번 가을 야유회 장소로 내정된 강화도 펜션에 예약을 함으로써 지난 주말, 속전속결로 강화도로의 가족여행이 결정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여동생 부부와 함께 토요일 오후에 강화도로 출발을 하셨고, 저는 구피, 웅이와 함께 토요일 아침 일찍 강화도에 도착해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등 강화도의 유적지를 둘러봤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구피, 웅이와 폴라로이드로 사진도 찍고, 개화기때 최신무기로 무장한 서양 군대를 구식무기로 맞서 싸운 우리의 선조들의 용감한 이야기에 숙연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 부부가 펜션에 도착하고 나서는 저녁에 돼지고기, 갯벌장어, 그리고 대하로 바비큐 파티를 했습니다. 비록 술이 약한 저는 머루주 몇잔에 취해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지만, 구피는 밤 늦게까지 여동생 부부와 와인을 마시며 즐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네요.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다음 날인 일요일에 비가 오는 바람에 전등사와 강화 풍물시장에서 여유로운 관광을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강화도에 다시한번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만큼 이번 강화도 여행은 만족스러웠습니다.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저와 구피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누웠습니다. 하지만 그날의 일정은 한가지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보러 가는 것입니다. 원래 다음날인 10월 3일 월요일 개천절에 영화를 보러 가려고 했지만 구피가 기왕이면 일요일에 모든 일정을 소화하고 월요일에는 집에서 푹 쉬고 싶다고해서 일요일 저녁 8시 30분에 예매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러 가야할 시간이 다가오니 너무 피곤해서 후회가 밀려오더군요.

암튼 스태미나가 넘쳐나는 웅이만 신이 났습니다. 강화도로 1박 2일 여행도 가고, 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TV 예능인 <런닝맨>도 보고, <런닝맨>이 끝나자마자 아빠, 엄마와 함께 영화도 보러가니, 지칠줄 모르는 웅이에게는 최고의 주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비록 구피는 거의 쓰러지기 일보직전의 자세로 극장 나들이에 나섰지만, 일요일 밤에 영화를 예매하자고한 것은 자기 자신이었으니 구피 입장에서는 불만을 터트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보다가 구피가 졸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전날 일찍 잠자리에 든 저와는 달리, 밤 늦게까지 와인 파티를 즐긴 구피. 게다가 시댁식구와의 여행이었기에 피로도가 몇배는 증가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시 팀 버튼 감독이네요. 독특한 상상력과 괴기스러운 영상 덕분에 구피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다고 합니다. 

 

 

평범한 소년의 특별한 여행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전형적인 판타지의 공식을 따르는 방식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여기에서 전형적인 판타지 공식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혹은 왕따에 가까운 소년, 소녀가 주인공이고, 그들이 어떤 계기로 현실공간과는 동떨어진 아주 특별한 공간에서 모험을 하며 자신도 미처 몰랐던 특별한 능력을 깨닫게 된다는 설정입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비롯한 대부분의 판타지가 이러한 설정으로 전개됩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인 제이크(아사 버터필드)는 해리 포터(다니엘 래드클리프)를 연상하게하는 평범한 소년입니다. 비록 해리 포터와는 달리 부모가 있지만, 책을 쓴다는 핑계로 반 백수 생활을 하는 무능력한 아버지를 둔 탓에 어린 나이에 마트에서 일을 해야하는 신세입니다. 마트에 온 또래 여학생에게 인사를 했다가 봉변을 당하는 장면을 통해 그가 학교에서 왕따임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심부름 때문에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에이브(테렌스 스탬프)의 집을 찾은 제이크는 눈알이 파헤쳐진채 처참하게 살해된 할아버지의 시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은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제이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제이크가 판타지 공식에 따르는 평범한 주인공이라면 아일랜드의 작은 섬마을에 위치한 '미스 페레그린'(에바 그린)의 보육원은 판타지의 특별한 공간입니다. 할아버지의 끔찍한 죽음에 대한 충격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던 제이크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가 유년시절을 보낸 보육원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보육원은 2차 세계대전 중던 1943년 독일군의 폭격으로 이미 폐허가 된 상태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판타지의 전형적인 공식이 나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특별한 판타지의 공간인 호그와트 마법학교는 런던 킹스크로스 역에 있는 9와 3/4 승강장에 위치해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기차역이지만, 그 안에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숨겨져 있는 셈입니다.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오래전 폐허가 된 건물 잔해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이 함께 생활하는 마법의 공간인 것입니다.

사연인즉 이러합니다. '미스 페레그린'에게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에 '미스 페레그린'의 보호 아래 있는 아이들은 독일군의 폭격이 있기 바로 직전 24시간을 무한 반복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밖은 2016년이지만,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은 1943년인 셈입니다.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과 만나며 제이크 역시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자각하게 됩니다.

 

 

다채로운 특별한 능력

 

자! 이쯤되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일반적인 판타지 공식을 무작정 따라하는 개성없는 판타지 영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중반으로 흐르면서 그러한 생각은 오판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능력이 모두 다르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찌보면 마블의 [엑스맨]과도 같은 설정입니다. 하지만 [엑스맨]과는 달리 이 영화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것은 대부분 어린 아이들입니다.

엠마(엘라 퍼넬)는 공기를 자유자재로 다룹니다. 덕분에 몸이 항상 공중에 뜨는데 이를 막기 위해 늘 납으로 된 무거운 신발을 신고 다닙니다. 에녹(핀레이 맥밀란)은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어 마음대로 조정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올리브(로렌 매크로스티)는 손끝에서 불을 뿜어냅니다. 그 외에도 가장 어리지만 괴력을 소유한 브로닌, 식물의 성장을 조종하는 피오나, 예지몽을 꾸는 호레이스, 투명인간 밀라드, 뱃속에 벌을 키우는 소년 휴, 뒤통수에 입이 달린 소녀 클레어 등 캐릭터마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각자의 개성이 다르다는 것은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내는데 유용합니다. 실제 '미스 페레그린'과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을 위협하는 할로게스트와의 전투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전투를 벌이고, 그러한 장면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서 가장 큰 볼거리가 됩니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소년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제이크는 '미스 페레그린'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자신의 능력이 친구들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할로게스트가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을 침략하기 전까지만해도 그들에게 자신의 능력은 그저 특별한 장난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스 페레그린'이 바론(사무엘 L. 잭슨)에게 잡혀가자 그들의 능력은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한 특별함이 됩니다.

'미스 페레그린'이 잡혀 갔음에도 불구하고 제이크를 중심으로 '미스 페레그린'을 구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졌습니다. 사실 특별한 능력을 지닌 아이들은 비록 몸은 어린 아이들에 불과하지만, 제이크의 할아버지와 동년배의 나이인 셈입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았기에 자신이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서 그들은 성인으로써의 용기를 발휘합니다. 

이러한 아이러니한 설정이 있었기에 제이크와 엠마의 사랑 또한 묘한 여운을 남깁니다. 에이브를 사랑했던 엠마. 하지만 에이브는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 버렸고 엠마는 사랑의 상처만 안은채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에이브와 닮은 제이크가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 안에 들어온 것이죠. 하지만 엠마는 압니다. 그 역시 자신과 함께 할 수 없음을... 이렇게 어린 아이의 감성으로 그린 성인의 슬픈 사랑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에 담겨있습니다. 

 

 

무서움 주의보 발령

 

영화가 끝나고 웅이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무서웠어요."입니다. 하긴 웅이가 저를 닮아 겁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꽤 무섭고 괴기스러운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영화 초반 눈알에 파헤쳐진채 죽은 에이브의 시체 장면부터 섬뜩하더니 영화 후반 할로게스트가 등장하면서부터는 판타지가 아닌 괴기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감독이 팀 버튼임을 감안한다면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요즘은 조금 순화되었지만 초창기 팀 버튼 감독의 영화들은 괴기스로움으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포영화의 소재를 코믹하게 다룬 [프랑켄위니], [비틀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 [유령신부]등은 다시봐도 정말 그로테스크합니다. 2005년 극장에서 [유령신부]를 볼때 제 앞자리에 어린 여자아이가 아빠한테 '무서워'라며 울먹이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선합니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교롭게도 제 앞자리에는 [유령신부]를 볼 때와 마찬가지로 어린 여자아이가 아빠와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아빠한테 꼭 안겨있더군요. 아마 앞자리의 아빠도 영화를 보며 어린 딸과 함께 보기에는 예상외로 무서워서 당황했을 것입니다.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가 이렇게 무서울 수가 있다니...

 

어쩌면 이것이 팀 버튼식 판타지의 진수일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섬뜩한 판타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와 비견될만하다고 생각됩니다. 판타지 장르의 특징을 잘 살려내면서도 낯선 공간에서 만난 낯선 존재에 대한 섬뜩함을 관객에게 선보임으로써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할로게스트 뿐만 아니라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에서 만난 아이들도 섬뜩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괴기스러운 인형에 생명을 불어넣어 서로 싸우게 만들며 제이크에게 겁을 주는 에녹. 그는 영화 후반에 해골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할로게스트와 싸우게 만들기도 합니다. 입 안에서 벌이 쏟아져나오는 휴와 이상한 가면을 쓴 쌍둥이가 영화 후반 가면을 벗었을 때의 충격적 모습까지... 팀 버튼 감독이 최대한 자제한 것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팀버튼 감독의 영화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강화도 가족여행과 더불어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으로 저희 가족의 10월 첫째주 주말은 완벽했습니다. 물론 그 다음날 집에서 푹 쉰 구피와는 달리 저는 웅이와 [피터와 드래곤]을 보며 연휴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여행을 가고, 재미있는 영화도 관람했으니 어찌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겠습니까? 올 가을이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겐 누구나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미스 페레그린'의 보육원 아이들처럼...

남들과 다름을 특별함으로 인식할때 우리의 능력도 깨어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