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안톤 후쿠아
주연 :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 이병헌, 빈센트 도노프리오, 헤일리 베넷
개봉 : 2016년 9월 14일
관람 : 2016년 9월 20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는 어쩌다가 서부극에 푹 빠졌는가?
추석 연휴에 봐야할 영화 중에서 유일하게 가족과 함께가 아닌, 저 혼자 보려고 계획했던 영화가 바로 [매그니피센트 7]입니다. 이 영화의 관람등급이 15세 관람가인 탓에 웅이와 함께 볼 수 없었고, 서부극이라는 장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구피와 함께 보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매그니피센트 7]을 결코 극장에서 놓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고 결국 지난 화요일, [매그니피센트 7]을 보고 왔습니다.
제가 그토록 [매그니피센트 7]을 기대한 것은 덴젤 워싱턴,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 그리고 우리나라 배우인 이병헌이 출연하는 화려한 캐스팅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트레이닝 데이], [더블 타겟], [백악관 최후의 날], [더 이퀄러이저], [사우스포] 등 남성미 물씬 풍기는 영화를 주로 연출했던 안톤 후쿠아 감독에 대한 기대감은 더더욱 아닙니다. 저는 안톤 후쿠아 감독의 최신작인 [더 이퀄라이저]와 [사우스포]도 아직 못본 상태인걸요. 제가 [매그니피센트 7]을 기대한 진짜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가 서부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언제부터 서부극을 좋아하게된 것일까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린 시절 TV에서 봤던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오래된 서부영화들에 대한 아련한 향수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1996년 비디오로 본 샘 레이미 감독의 [퀵 앤 데드]가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퀵 앤 데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의 복수극이 주요 내용으로 당시 [원초적 본능]의 섹시스타 샤론 스톤과 연기파 배우 진 핵크만,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러셀 크로우의 젊은 시절도 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퀵 앤 데드]에 매료된 것은 서부극 특유의 긴장감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엘런(샤론 스톤). 그곳은 이미 아버지의 원수 존 헤롯(진 핵크만)이 지배하는 무법천지가 되어 있습니다. 엘런이 존 헤롯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결투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는 것 뿐. 서로 마주보고 먼저 상대방을 총으로 쏴서 죽이는 자가 승리하는 이 잔인한 결투에 출전한 엘런은 존 헤롯의 철부지 아들 키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비롯한 경쟁자들을 죽이고 우승의 문턱까지 가게 됩니다.
하지만 엘런의 마지막 상대는 한때 존 헤롯의 부하였지만 지금은 성직자로 새로운 삶을 살던 코트(러셀 크로우)입니다. 그는 존 헤롯에 의해 강제로 시합에 출전하게 되고, 엘런과는 연인관계로 발전합니다. 죽음의 결투 우승 문턱에서 코트와 대결을 해야하는 엘런. 그녀는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갈등하게 됩니다.
이러한 [퀵 앤 데드]의 영향 때문인지 저는 서부극하면 죽음의 결투를 먼저 떠올립니다. 두 명의 총잡이가 서로 마주보고 섭니다. 한쪽 손은 허리에 찬 권총을 향해있고, 순간 주위는 고요함에 빠져듭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권총을 뽑아들고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쏩니다. 한발의 총성, 누군가는 쓰러지고, 누군가는 유유히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넣습니다. 저는 이 짧은 순간의 긴장감에 매료된 것입니다.
너무나도 반가운 서부극의 부활
사실 젊은 시절 저를 매료시켰던 서부극은 [퀵 앤 데드]뿐입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아카데미를 휩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비롯하여 당시 꽤 많은 서부극이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저를 매료시킨 영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서부극은 제게 잊혀져갔고, 서부극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에서도 더이상 돈이 되지 않는 서부극을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이대로 서부극은 제게도 그리고 할리우드에서도 추억의 영화 장르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서부극이 부활했습니다. 다른 장르의 영화처럼 많은 편수가 제작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매년 꾸준히 관객을 사로 잡는 서부극들이 개봉되었고,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그 시작은 코엔 형제의 2010년작 [더 브레이브]입니다. 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무법자 톰 채니(조쉬 브롤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젊은 시절 악명 높았던 연방보안관 카그번(제프 브리지스)을 고용하는 당찬 14세 소녀 매티(헤일리 스타인펠드)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도 1억7천만 달러가 넘는 어마어마한 흥행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코엔 형제에게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입니다. 그는 2012년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 이어 2015년에는 [헤이트풀 8]를 연출하였고, 두 영화 모두 관객과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어냈습니다. 그 사이 SF 서부극 [카우보이 & 에이리언], 서부극과 성인 코미디가 뒤섞은 [밀리언 웨이즈], 무협과 서부극의 독특한 만남 [워리어스 웨이], 애니메이션 서부극 [랭고] 등, 퓨전 서부극이 꾸준히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요즘 심심치않게 서부극이 개봉하니 저는 즐겁기만합니다. 게다가 요즘 개봉하는 서부극들은 기존 틀에 박혀 있던 서부극에서 벗어나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구성되었는데, [매그니피센트 7]도 바로 그러한 서부극중 하나입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매그니피센트 7]은 1960년에 제작된 서부극의 걸작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영화입니다. [황야의 7인]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있는 가난한 마을이 배경으로 무법자와 맞서 싸우는 7인의 총잡이의 활약상을 담은 영화입니다.
매년 수확철이 되면 나타나 곡식을 빼앗는 무법자 칼베라가 이끄는 도적떼와 맞서 싸우기 위해 총잡이를 고용하는 마을 사람들. 승산이 없는 싸움인줄 알면서도 마을 사람들을 딱하게 여긴 크리스(율 브리너)를 비롯한 일곱명의 총잡이가 마을을 위해 칼베라 일당과 맞서 싸웁니다. 그리고 치열한 총격전 끝에 7인의 총잡이 중 셋만 살아남는다는 내용입니다.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매그니피센트 7]은 우선 7인의 총잡이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정통적인 서부극의 법칙을 하나씩 깹니다. 그 첫번째가 주인공인 샘 치좀(덴젤 워싱턴)이 백인이 아닌 흑인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가 [장고 : 분노의 추적자]에서 주인공인 장고(제이미 폭스)를 흑인으로 설정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서부극의 주인공하면 백인 카우보이를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매그니피센트 7]은 이러한 선입견을 과감하게 깨버린 것입니다.
다양한 인종의 총잡이들
7인의 총잡이중 리더는 흑인이고, 그 외에도 프랑스인 동양인, 멕시코인, 인디언 등 다양한 인종이 샘 치좀의 팀에 합류합니다. 그런데 이들 조합이 흥미로운 것은 단지 인종이 다양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프랑스인 총잡이 굿나잇 로비쇼(에단 호크)는 남북전쟁 당시 샘 치좀과 각각 남군과 북군으로 서로 싸웠고, 조슈아 패러데이(크리스 프랫)와 멕시코 출신의 바스케스(마누엘 가르시아 룰포)는 미국과 멕시코간의 영토전쟁인 알라모 전투으로 가벼운 신경전을 벌입니다.
인디언 사냥꾼인 잭 혼(빈센트 도노프리오)과 인디언 전사(마틴 센스마이어)의 관계 역시 심상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조합은 굿나잇 로비쇼와 동양인 총잡이 빌리 락스(이병헌)입니다. 총잡이이면서도 전쟁 후유증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굿나잇 로비쇼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미국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는 빌리 락스는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주는 관계입니다. 그렇기에 영화 후반 두 사람의 케미는 더욱 돋보입니다.
서부극이 백인 남성 위주의 영화 장르임은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하지만 [매그니피센트 7]은 흑인, 동양인, 멕시코인, 인디언까지 아우르는 7인의 총잡이를 구성함으로써 서부극에 대한 선입견을 깨버립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강인한 여성을 등장시켜 남성 중심의 서부극에도 일침을 가합니다.
[매그니피센트 7]에서 남성 중심의 서부극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주인공은 엠마(헤일리 베넷)입니다. 그녀는 마을을 장악한 바르톨로뮤 보그(피터 사스가드)에 의해 남편을 잃은 후, 복수를 위해 자신의 전재산을 걸고 샘 치좀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마을에서 자신보다 용감한 사람이 없기에 직접 나섰다고 선언을 하기도 합니다. 보그 일당과의 최후 결전에서 샘 치좀은 엠마에게 마을 어린아이들의 보호를 맡기려 하지만 엠마는 직접 총을 들고 보그 일당과 용감하게 맞서 싸웁니다.
사실 엠마의 첫등장에서 저는 [더 브레이브]의 매티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엠마는 매티보다 좀 더 업그레이드된 서부극의 여성 전사이고, 헤일리 베넷은 그러한 엠마를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이렇게 [매그니피센트 7]은 7인의 총잡이와 엠마 등 수 많은 캐릭터들을 내세우지만, 이들 중에서 의미없이 단순 소모되는 캐릭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영화를 잘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엠마와 조슈아 패러데이의 서로에 대한 감정, 굿나잇 로비쇼와 빌리 락스의 우정 등 각각의 캐릭터들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하지는 못합니다. [매그니피센트 7]은 2시간 1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관객에게 들려주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샘 치좀이 왜 목숨을 걸고 바르톨로뮤 보그와 맞서 싸웠는지에 대한 사연이 공개됨으로써 촉박한 시간내에서도 이야기할건 다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차별 총격씬, 이토록 많이 죽이는 영화라니...
[매그니피센트 7]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뭐니뭐니해도 7인의 총잡이와 보그 일당의 마지막 혈전입니다. 7인의 총잡이들은 일당백의 능력으로 보그 일당을 쓰러뜨립니다. 선량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던 악당들이 7인의 총잡이들의 날렵한 솜씨에 반항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총에 맞아 쓰러지는 장면은 서부극 특유의 쾌감을 관객에게 안겨주기에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캐틀링건이 공개되면서 부터입니다.
근접전에서는 이길 가망이 없다고 판단한 바르톨로뮤 보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서부극과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캐틀링건을 꺼내듭니다. 캐틀링건은 분당 350발에서 400발의 총알을 발사할 수 있는 기관총의 시초라고 하네요. 서부극의 재미라면 서로 마주보고 권총을 쏘며 대결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제게 캐틀링건에 의해 쓰러지는 7인의 총잡이의 최후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바르톨로뮤의 비겁한 반칙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 더 극한의 쾌감을 안겨줍니다.
[매그니피센트 7]을 보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 영화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전쟁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전쟁영화보다 [매그니피센트 7]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쓰러지는 악당의 모습에 그다지 거부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전쟁영화를 싫어하는 이유가 아무런 죄책감없이 사람을 죽여서인데, [매그니피센트 7]은 전쟁영화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데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더군요.
아마 그것은 그 당시 서부시대의 법이 그러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서부시대에는 결투에 의한 살인을 정당화합니다. 그렇기에 서부극을 보면 보안관들조차도 결투에 의해 상대방을 죽이는 것은 묵인합니다. 하지만 무기가 없는 이를 총으로 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것이 7인의 총잡이와 보그 일당의 차이입니다. 애초에 바르톨로뮤 보그가 악당인 이유는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7인의 총잡이들은 총으로 위협하는 상대방만 죽입니다. 그것이 선과 악을 갈라놓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매그니피센트 7]의 하이라이트를 별다른 거부감없이 재미있게 감상했고, 보그 일당에 의해 쓰러지는 7인의 총잡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이 영화는 [황야의 7인]과 마찬가지로 7인의 총잡이 중 세명만 살아남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보그 일당과 싸우다 죽은 네명의 총잡이들의 무덤 장면에서는 왜 그렇게 마음이 찡하던지...
오랜만에 악당이 아닌 영웅으로써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 이병헌의 연기도 좋았고, 덴젤 워싱턴은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크리스 프랫, 에단 호크, 빈센트 도노프리오, 헤일리 베넷 등 모두들 인상깊은 연기를 펼쳐 보였습니다. 최근 보았던 서부극에 이어 [매그니피센트 7]도 너무 만족스러워 당분간 서부극에 대한 제 사랑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는 전통 서부극을 극장에서 즐기던 세대는 아니다.
하지만 조금 변형된 서부극에는 푹 빠져든다.
권총을 허리에 차고 말을 타며 황무지를 내달리던 강한 총잡이들
석양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에 난 묘한 쾌감을 느낀다.
'영화이야기 > 2016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터와 드래곤] - 아이들을 위한 영화? 아니, 어른들도 위한 영화! (0) | 2016.10.07 |
---|---|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 - 팀 버튼식 판타지의 진수 (0) | 2016.10.05 |
[고산자, 대동여지도] -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과정이 아닌, 보호하는 과정을 담다. (0) | 2016.09.21 |
[거울나라의 앨리스] - 교훈을 얻기 위한 과거로의 시간여행 (0) | 2016.09.13 |
[밀정] - 한 남자의 심리변화라는 작은 그림에 올인하다. (0) | 2016.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