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고산자, 대동여지도] -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과정이 아닌, 보호하는 과정을 담다.

쭈니-1 2016. 9. 21. 11:23

 

 

감독 : 강우석

주연 : 차승원, 유준상, 김인권, 남지현

개봉 : 2016년 9월 7일

관람 : 2016년 9월 18일

등급 : 전체 관람가

 

 

기나긴 연휴의 마지막날

 

지난 화요일 저녁에만해도 5일간의 추석 연휴가 굉장히 길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바쁘게 추석 명절을 보내다보니 어느덧 추석 연휴가 끝나 버렸네요. 이번 추석 연휴는 유난히 긴만큼 저는 영화보기 계획을 꽤 많이 세웠습니다. 추석 연휴 첫날 제사 음식을 만든 후 어머니를 모시고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러 갈 예정이었고, 주말에는 웅이와 함께 [벤허]를, 그리고 저 혼자 [매그니피센트 7]도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모든 계획 중에서 이뤄진 것은 아무 것도 없네요.

연휴 첫날 어머니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러 가지 못한 이유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어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첫번째 계획이 어긋나니 웅이와 함께 [벤허]를 보는 것은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는 것으로 대체되었고, 토요일 구피가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혼자 외출을 하는 바람에 웅이를 내버려두고 혼자 [매그니피센트 7]를 보는 계획 역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와중에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봤으니 완전 실망스러운 추석 연휴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어머니와 함께 보지는 못했지만...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박범신의 <고산자>를 원작으로 조선후기 대동여지도를 완성한 김정호(차승원)의 삶을 담은 영화입니다. 사실 김정호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라는 뛰어난 작품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기록이 별로 남지 않은 것은 그가 평민이었기 때문으로 추정됩니다. 그러한 까닭에 박범신의 <고산자>도, <고산자>를 원작으로한 [고산자, 대동여지도]도 김정호의 삶에 상상력을 동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김정호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에 부득이 영화적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장점이자 단점이 됩니다. 강우석 감독은 조선 후기의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김정호의 삶에 접목시킴으로써 영화적 긴장감을 완성합니다. 사실 김정호의 아버지가 홍경래의 난 당시 잘못된 관군의 지도로 산 속에서 얼어 죽었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면 덕분에 김정호가 지도에 집착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간단히 설명됩니다.

조선 후기에 벌어진 천주교 박해 사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느 기록에서도 김정호의 딸인 순실(남지현)이 천주교도라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천주교 박해 사건과 김정호와 순실의 이야기를 접목시켜 조선 후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평민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담아냅니다. 지도를 둘러싼 안동 김씨 가문과 흥선대원군(유준상)의 권력 다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홍경래의 난, 천주교 박해, 안동 김씨와 흥선대원군의 권력 다툼, 모두 김정호와의 연관성이 기록되지 않았을 뿐 김정호가 살았던 시대에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이러한 극적인 사건들을 김정호와 함께 엮어서 그의 삶을 더욱 극적으로 포장하는 것, 그것이 영화적 상상력의 힘이며, 강우석 감독이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연출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적 상상력은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대한 역사왜곡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왜곡한 김정호의 삶

 

사실 김정호를 세상에 가장 먼저 널리 알린 사람은 최남선이라고 합니다. 최남선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동아일보에 '김정호를 회함'이란 글을 통해 김정호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직접 측량하여 대동여지도를 완성했고, 백두산을 일곱번이나 올랐으며, 관에 의해 대동여지도 판목을 몰수당했다고 썼습니다. 이러한 '김정호를 회함'에서 최남선이 의도한 것은 김정호와 대동여지도를 통해 민족적 우수성을 되짚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김정호가 국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대동여지도를 완성했다는 것은 1800년 초반 에도막부의 도움으로 전국을 답사하며 일본을 측량하여 지도를 제작한 이도 다다타카보다 김정호가 더 뛰어나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이며, 관에 의한 판목 몰수설은 조선의 멸망이 백성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 집권층의 무능력 탓으로 돌리려 했다는 것이 '김정호를 회함'에 대한 전문가들의 해석입니다.  

하지만 일제는 이를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조선총독부가 1934년 발행한 '조선어독본'에서 김정호가 어린시절 보았던 조선의 지도가 엉터리였기에 직접 지도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내어 김정호 이전 조선의 지도 능력을 폄하하고, 흥선대원군이 김정호 부녀를 핍박하였고, 그로인하여 김정호 부녀는 옥사하였다는 이야기를 추가함으로써 조선정부의 무능력을 더욱 부각시켜 조선 침략을 정당화하였습니다. 

 

사실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그러했듯이 최남선도, 조선총독부도 잘 알려지지 않은 김정호의 삶에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해서 자신이 의도했던대로 각색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영화적 재미를 위해, 최남선은 민족적 자긍심을 위해, 그리고 조선총독부는 조선 침략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각자의 의도는 달랐지만, 이렇게 김정호의 삶은 의도에 맞게 각색될 여지가 많았던 것입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인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본 후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영화 리뷰를 읽어보니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조선 비하를 위한 일제의 날조한 역사를 그대로 베꼈다며 비난하는 글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실제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는 김정호가 어린시절 엉터리 조선 지도 때문에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는 '조선어독본'에 실린 김정호의 어린시절과 비슷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지도는 나라의 것이라며 김정호를 압박하는 것과 순실이 옥사하는 장면 또한 '조선어독본'에 나온 김정호의 이야기를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정말 조선총독부가 날조한 역사를 그대로 베낀 영화일까요? 저는 자신있게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조선총독부의 김정호가 아닌, 최남선의 김정호와 오히려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라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제에 의한 역사날조에 대한 영화의 대처

 

우선 김정호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김정호가 왜 그렇게 지도에 집착했는지에 대한 것을 먼저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김정호가 어린 순실을 홀로 내버려두고 지도를 그리겠다며 전국 방방곡곡 떠돌아다녔고, 순실의 목숨값으로 대동여지도의 판목을 원하는 김성일(태인호)의 요구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민하는 장면을 관객에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결국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잘못된 지도 때문에 김정호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설정을 통해 잘못된 지도에 대한 김정호의 트라우마, 그리고 지도에 대한 집착을 그려 넣었고, 이것은 영화적인 재미를 위해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정호가 실제로 조선 지리학의 성과를 집대성한 저서를 완성했다고 하니, 김정호 이전의 조선 지도가 조선총독부의 주장대로 부정확하고 형편없지는 않더라도 체계적으로 정리되지는 않았던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순실의 옥사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총독부는 대동여지도 때문에 김정호 부녀가 옥사했다고 기술하지만, 영화에서는 천주교도 순실이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옥사한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 흥선대원군은  천주교에 관대한 안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 더욱 강하게 천주교를 박해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흥선대원군과 안동 김씨의 권력 다툼에 의한 민중의 고통을 표현하는 장치로 순실의 옥사가 표현되었을뿐, 순실의 옥사는 대동여지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건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흥선대원군은 김정호를 은밀하게 지원해주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흥선대원군의 측근인 신원(공형진)이 김정호를 지원해주는 것을 눈감아 줬고, 흥선대원군이 대동여지도의 판목을 요구하는 장면에서 김정호가 이를 완강히 거절해도 호탕하게 웃어넘겼으며, 대동여지도의 판목을 빼앗기 위한 안동 김씨 세력을 음모에서 김정호를 보호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물론 흥선대원군은 지도를 나라에서 관리해야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지만, 김정호의 의지도 꺾지는 않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여정으로 독도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최남선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려합니다. 사실 대동여지도에는 독도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고 합니다. 이는 독도의 정확한 축척 위치를 표기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추정도 있지만,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영화에서 김정호는 부푼 가슴을 안고 독도로 향하지만 일본 해적을 만나는 바람에 결국 독도에 가는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일본 해적이 조선의 바다인 독도까지 와서 강치를 마구잡이로 잡아가는 장면을 통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해적에게 빼앗긴 김정호의 지도를 일본 관료들이 가지고 와서 조선의 지도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청하는 장면을 통해 조선의 우수성을 강조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영화적 상상력일 뿐이지만, 그 의도는 최남선과 같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뜬금없는 코미디만 없었더라면...

 

제가 이렇게 [고산자, 대동여지도]의 영화 이야기에서 이 영화에 대한 변명부터 시작한 것은 영화의 예고편만 보고는 이 영화가 일제에 의한 역사왜곡을 고스란히 따랐다고 비난하시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이 직접 영화를 보셨다면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으실텐데... 개인적으로 안타까웠습니다. 하지만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킨 영화라고 해도 영화에 대한 완성도와 재미는 따로 평가받아야 할 것입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저는 [고산자, 대동여지도]가 기대만큼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영화 초반의 뜬금없는 코미디입니다. 차승원이 출연했던 케이블 TV 예능프로인 <삼시세끼>가 난데없이 언급되는 것도 어색했고, 바우가 미래의 지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의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극의 흐름과 맞지 않았습니다. 초창기 강우석 감독은 코미디에 능숙한 감독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의 코미디는 개인적으로 없는 것이 나아보였습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기 전, 어느 분이 대한민국의 사계절을 담은 화면이 굉장히 예쁘고 멋있다고 하셔서 저는 그 부분도 기대하였습니다. 김정호가 조선 팔도를 다니며 지도를 완성하는 장면을 기대한 것이죠. 하지만 제가 기대한 장면들은 영화 초반에 잠시 나올 뿐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두산 천지 장면은 인상적이었지만,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드는 과정이 아닌 지키는 과정만 보여줘서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고산자, 대동여지도]에 대해서 저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는 웅이와 함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본 것은 잘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이 영화는 천주교도의 처형 장면이 나오는 등 12세 관람가 등급이 어울리는 영화이지만, 예상외로 전체관람가 등급으로 극장 상영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전체 관람가 등급의 영화가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임을 감안한다면 조금 의외입니다. 

그만큼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교육적입니다. 실제로 웅이는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본 후 제게 서점에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서점에서 웅이는 김정호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이 영화의 원작인 박범신의 <고산자>를 읽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조만간 저희 집에는 박범신의 <고산자> 독서회가 열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김정호 위인전을 다시한번 들춰보더군요. 그러면서 백두산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합니다. 아! 내년 휴가비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고 점심식사를 하며 저와 웅이는 김정호의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의 삶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들이 거의 대부분 영화적 상상력에 의한 것이라는 이야기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대동여지도가 바우에 의해 펼쳐지는 장면의 경이로움, 그리고 결국 김정호는 독도에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까지... [고산자, 대동여지도] 덕분에 지난 추석 연휴, 웅이와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이유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게 소중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영화 초반 김정호가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장면과

영화 후반 바우가 대동여지도를 도성 거리에서 펼쳐보이는 장면이다.

백두산 천지와 대동여지도 압도적인 경이로움.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그러한 우리 것의 경이로움에 대한 영화이고,

우리 것의 경이로움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숙제를 안겨준 영화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