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임스 보빈
주연 : 미아 와시코브스카, 조니 뎁, 앤 해서웨이, 헬레나 본햄 카터, 사챠 바론 코헨
개봉 : 2016년 9월 7일
관람 : 2016년 9월 1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명절을 대하는 쭈니의 자세
내일이면 추석 연휴입니다. 이번 추석 연휴는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끼어서 무려 5일이나 됩니다. 하지만 다른 연휴와는 달리 추석 연휴(설 연휴도 마찬가지)는 아무리 길어도 여유롭게 쉬거나 신나게 놀러갈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요즘은 명절 연휴를 이용해서 해외 여행을 가시는 분들도 많아졌지만, 제겐 그저 남의 일에 불과합니다. 차례 준비도 해야하고, 차례도 지내야 하고, 집안 어른들께 인사하기 위해 여기저기 들르다보면 어느덧 길게만 느껴졌던 연휴가 끝나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몇년 전까지만해도 저는 차례 준비는 어머니와 구피에게 맡기고 친구들과 만나 술 한잔 하기에 바빴습니다. 명절 당일에도 오랜만에 만난 사촌 동생들과 술을 마시느라 처갓집에 인사를 가야하는 것도 잊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구피를 힘들게 했고, 화나게 했으며, 결국 명절 연휴 막바지에는 어김없이 구피와 다툼을 벌였었습니다. 그땐 제가 정말 철이 없었죠. ^^
하지만 요즘은 명절 전날 웅이와 함께 거실에 앉아 구피와 어머니를 도와 명절 준비도 하고,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고 나서는 처갓집에 인사를 가기위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만나자고 연락이 와도 명절이 지나고 만나자고 약속을 미룹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구피에게 수고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잊지 않죠. 그랬더니 더이상 구피와의 다툼도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명절 연휴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은 구피와의 결혼 생활동안 얻은 교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얻는 즐거움은 아주 잠시 뿐이지만, 구피와의 다툼으로 겪게 되는 괴로움을 최소 몇주간 지속됩니다. 결국 아주 잠깐의 즐거움을 포기함으로써 기나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결혼 생활동안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은 영화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저는 2010년에 개봉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실망했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팀 버튼 감독의 영화였고, 팀 버튼 감독의 연출 스타일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너무나도 잘 어울릴 것이라 생각했기에 영화에 대한 제 기대감은 하늘 높은줄 모르고 높아만 갔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는 팀 버튼 감독의 색깔보다는 디즈니의 색깔이 너무 강해서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그렇기에 6년 만에 개봉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 개봉을 기다리는데 있어서 너무 과도한 기대감을 안갖으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팀 버튼 감독이 제작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머펫 대소동]의 제임스 보빈이 감독을 맡으며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낮아졌습니다. 게다가 북미 흥행 성적도 미지근했으니... 그래서일까요? 지난 주말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한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저는 대만족하며 영화를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가능에 대한 믿음이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이제 어엿한 '원더랜드'호의 선장이된 앨리스(미와 와시코브스카)가 중국이라는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하고 해적의 위험을 물리치며 무사히 영국으로 귀환하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여성이라는 굴레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했던 해미쉬가 앨리스의 그에 대한 보복으로 집을 담보로 빼앗은 뒤, 집을 되찾고 싶으면 '원더랜드'호를 넘기라고 협박합니다. 그리고는 앨리스에게 말단 사무직을 제안합니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앨리스는 해미쉬와의 결혼을 강요당하지만, '원더랜드'에서의 모험을 겪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후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신여성이 됩니다.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그런 당찬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친구이자 동업자였던 로드 애스콧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로드 애스콧은 세상을 떠났고, 로드의 아들인 해미쉬가 회사를 물려 받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앨리스의 어머니마저 앨리스에게 이제 그만 여자답게 살기를 원합니다. '원더랜드'에서 붉은여왕(헬레나 본햄 카터)에 맞서 용감히 싸웠던 앨리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가장 믿고 사랑하는 가족마저 자신의 편이 아닌 상황과 마주하게 됩니다. 결국 앨리스는 더이상 싸울 의지를 잃고 맙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황은 '원더랜드'에서도 재현됩니다. 압솔렘(앨런 릭먼)에게서 모자 장수(조니 뎁)가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앨리스는 거울을 통해 '원더랜드'에 가게 됩니다. 모자 장수는 우연히 자신이 어린시절 만들었던 최초의 모자를 발견하고 어쩌면 붉은여왕의 침략 당시 희생되었던 가족들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무도 모자 장수의 희망을 믿지 않습니다. 앨리스마저... 앨리스는 모자 장수의 가족이 살아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해버립니다.
불가능... 이것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관개에게 말하고자 주제입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사람들은 여성의 행복은 신랑을 잘 만나 내조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성이 위험한 모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죠. 하지만 앨리스는 '원더랜드'에서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믿었던 붉은 여왕의 거대한 용, 제버웍을 물리치면서 스스로를 믿는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의 어머니조차 앨리스의 모험이 더이상 불가능하다고 믿는 상황. 앨리스는 그러한 어머니를 원망하면서도 '원더랜드'에서 모자 장수에게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게됩니다. 현실 세계에서 앨리스가 어머니에게 실망했듯이, '원더랜드'에서 모자 장수는 앨리스에게 실망합니다.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입니다. 옛날에는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누구도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납니다. 이처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상상력과 모험심만 있다면 결코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관객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간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는 여행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죽어가는 모자 장수. 결국 앨리스는 크로노스피어를 이용한 시간여행을 통해 모자 장수의 가족이 죽음을 당했던 과거로 돌아가 그들을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원더랜드'의 모든 시간을 관리하는 시간(사챠 바론 코헨)은 과거는 결코 바꿀 수 없다고 앨리스에게 경고합니다. 문제는 앨리스가 그러한 시간의 경고를 무시하고 크로노스피어를 훔쳐 시간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집니다. 그리고 크로노스피어를 노리는 붉은 여왕까지 가세하며 앨리스의 시간여행은 위험천만해집니다.
여기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앨리스와 붉은 여왕이 닮았다는 점입니다. 시간은 분명하게 과거는 바꿀 수 없다고 경고하지만, 앨리스도 붉은 여왕도 그러한 시간의 경고를 무시한 것입니다. 앨리스는 제버웍으로부터 모자 장수의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붉은 여왕은 자신의 동생인 하얀 여왕(앤 해서웨이)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썼던 것을 밝히기 위해 시간의 간절한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바꾸고 싶은 과거가 하나쯤은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고, 그러한 실수를 바로 잡고 싶은 기본적인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 대해 후회를 하며 시간을 낭비하곤합니다. 하지만 한번 일어났던 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물론 가끔 SF, 판타지 영화에서 과거를 되돌리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결국 우리는 과거의 실수에 대한 대가를 치루며 살아야하는 것이죠.
이렇게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돌릴 수 없지만, 과거의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시는 그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앨리스가 크로노스피어로 '원더랜드'에서 시간여행을 하며 깨달은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붉은 여왕은 하얀 여왕이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결국 자신의 왕좌까지 빼앗을 수 있었던 것은 하얀 여왕의 거짓말에 의한 어린시절의 한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그러한 과거를 원망하며 점점 삐뚤어진 것이죠.
만약 그때 하얀 여왕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니, 나중이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붉은 여왕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다면 어땠을까요? 하지만 하얀 여왕은 과거의 잘못을 외면하고 모른척합니다. 그것이 '원더랜드'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극의 시작입니다. 앨리스는 그러한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의 과거를 목격하며 과거의 교훈을 깨닫습니다. 이제 그녀는 시간여행으로 뒤죽박죽이 된 '원더랜드'를 다시 되돌리려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의 모험을 통해 소녀에서 어엿한 신여성으로 성장하는 앨리스의 성장담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가 맞딱뜨려야할 사회적 벽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벽에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언제든지 다시 우리의 곁으로 올 것입니다. 비록 집은 해미쉬에게 빼앗겼지만 아버지의 꿈과 희망을 담은 '원더랜드'호를 어머니와 함께 지켜낸 앨리스처럼...
디즈니 영화다운 교훈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디즈니 영화답게 가족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자 장수와 죽은줄 알았던 모자 장수 가족의 감동적인 만남, 자매지간인 붉은 여왕과 하얀 여왕의 화해, 그리고 어머니의 소중함을 깨달은 앨리스의 모습까지... 특히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가슴에 안고 '원더랜드'로 떠났던 앨리스가 현실 세계로 돌아온 이후 아버지의 유산인 '원더랜드'호를 포기하고 어머니의 집을 지키려는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앨리스가 '원더랜드'호를 포기할 결심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소중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앨리스는 유일하게 자기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과거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대한 원망으로 삐뚤어진 붉은 여왕을 보며 결국 중요한 것은 지난 과거가 아닌 현재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죠. 과거는 그저 현재를 사는데 교훈을 안겨주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보러 가기 전날 밤,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습니다. 저는 이미 2010년 개봉 첫날 혼자 3D로 관람한 후 실망했었지만, 이렇게 다시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TV로 보니 오히려 재미있더군요. 이렇게 극장에서 그것도 값비싼 3D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본 것보다, 거실에서 TV로 단촐하게 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오히려 더 재미있었다는 것은 참 묘한 아이러니입니다. 과거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재미없었지만, 현재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재미있었던... 그리고 그 덕분에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더욱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답니다. 이것 역시 과거의 교훈이라고 해야할까요? ^^;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재미있게 봤던 그 순간들도 이제 과거가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과거.
그러한 과거를 통해 오늘도 나는 교훈을 얻는다.
언제까지나 나의 가족들과 재미있는 영화로 행복을 만끽하고 싶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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