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폴 페이그
주연 : 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 크리스 헴스워스
개봉 : 2016년 8월 25일
관람 : 2016년 8월 28일
등급 : 12세 관람가
추억은 어떻게 현실로 소환되는가?
아무리 기나긴 시간이 흘러도 재미있게 본 영화는 기억에 오래 남기 마련입니다. 중학생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의 세계에 푹 빠졌던 저는 80, 90년대 영화에 대한 애착이 상당히 강한 편인데, 그것은 당시 봤던 영화들이 저를 영화의 세계에 푹 빠지게 할만한 엄청나게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당시 봤던 영화들을 생각하면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나도 모르게 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에 푹 빠지게 됩니다.
[고스트버스터즈]도 그 중 한편입니다. 조금은 엉뚱한 네명의 괴짜 유령사냥꾼의 활약을 담은 [고스트버스터즈]는 유령이라는 공포스러운 소재를 재미있는 코미디 영화로 포장해낸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기발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본지 벌써 몇십년이 흘렀지만 영화의 경쾌한 배경음악과 모든 것을 개걸스럽게 먹는 먹깨비 유령, 그리고 커다란 마시멜로맨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추억의 영화 [고스트버스터즈]가 리부트되었습니다. 비록 이반 라이트만 감독 대신 폴 페이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이제는 늙어버린 원년 멤버 대신 새로운 여성 멤버들로 '고스트버스터즈'를 구성했지만, 새롭게 리부트된 [고스트버스터즈]는 저와 같은 올드팬의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원작을 회상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움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무장했으니 이쯤되면 꽤 만족스러운 리부트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옛 기억을 더듬으며 새롭게 리부트된 영화를 본다고해서 추억이 현실로 소환되는 것은 아닙니다. 추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을 해야합니다. 일단 저는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1984년작 [고스트버스터즈]와 1989년작 [고스트버스터즈 2]를 미리 복습했습니다. 사실 [고스트버스터즈]에 비해 [고스트버스터즈 2]에 대한 기억에 흐릿했었는데, 수십년만에 이렇게 다시 보니 그제서야 [고스트버스터즈 2]에 대한 기억도 새록 새록 났습니다.
그리고 혼자 추억을 현실로 소환하는 것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소환하면 더욱 좋습니다. 제 경우는 [고스트버스터즈]는 웅이의 여름방학 기간에 웅이와 단 둘이 봤지만, [고스트버스터즈 2]는 구피, 웅이와 함께 오손도손 앉아 추억의 영화 관람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덕분에 새롭게 리부트된 [고스트버스터즈]를 보고나서 저녁식사를 하며 예전 [고스트버스터즈]와 새롭게 리부트된 [고스트버스터즈]를 비교하면서 재미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자! 그렇다면 저희 가족 앞으로 소환된 추억의 영화 [고스트버스터즈]는 2016년에 어떻게 다시 태어났을까요? 이제부터는 지난 주말 저희 가족을 행복하게 했던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제는 여성시대다.
우선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는 원작과 비교해서 모든 것이 새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영화입니다. 사실 이 영화의 새로움은 폴 페이그 감독에게서 비롯됩니다. 그는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을 흥행 성공시킨 이후 [히트], [스파이]를 연달아 흥행시켰으며, 평범한 외모로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멜리사 맥카시를 할리우드의 가장 핫한 여배우로 만들어놓은 일등공신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폴 페이그 영화의 키워드는 바로 여성입니다.
취향도 코드도 맞지 않는 신부 들러리들의 해프닝을 담은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은 여성 관객의 마음을 단번에 저격하면서 그해 최고의 코미디 영화로 우뚝 섰습니다. [히트]의 경우는 남성의 전유물이라 할 수있는 수사 버디 영화에 산드라 블록과 멜리사 맥카시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여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신선함을 안겨줬습니다. 폴 페이그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백미는 [스파이]입니다. 주드로와 제이슨 스타뎀이라는 전형적인 남성적 매력의 스파이를 조연을 돌려 세운 멜리사 맥카시의 매력이 굉장했던 영화입니다.
이렇게 폴 페이그 감독은 남성 취향의 장르 영화에 여성을 내세워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장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멜리사 맥카시가 있습니다.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에서는 조연을, [히트]에서는 산드라 블록과 공동 주연을 맡았던 그녀는 [스파이]에서 단독 주연을 맡으며 자신의 핫한 매력을 맘껏 뽐냈습니다.
어쩌면 폴 페이그 감독이 새롭게 리부트된 [고스트버스터즈]의 감독을 맡게된 이유도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고스트버스터즈'를 남성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했지만, 폴 페이그 감독만큼은 그러한 편견을 깨고 '고스트버스터즈'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과감하게 바꿀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고스트버스터즈'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뀐 것 하나만으로도 [고스트버스터즈]는 모든 것이 새로운 리부트 영화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스트버스터즈'의 성별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면서 [고스트버스터즈]는 혁신적인 리부트 영화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백치미가 돋보이는 금발 섹시 비서 케빈(리암 헴스워스)을 내세워 남녀의 역할을 완벽하게 뒤집어버립니다. 그 동안 이러한 역할은 여성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원작에서도 그랬고, 수 많은 영화에서 섹시한 여배우가 남성 관객의 눈요기가 되기를 자처하고 나섰었습니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은 그러한 고정 관념도 멋지게 부숴버립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리암 헴스워스가 해냈습니다.
우리에겐 [토르 : 천둥의 신]으로 익숙한 이 남성미가 넘치는 배우는 [고스트버스터즈]에서 할줄 아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지만, 타고난 섹시미로 비서 취직에 성공하는 케빈 역을 천연덕스럽게 해냅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배우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캐릭터를 너무나도 잘 연기할 때 느끼게 되는 재미. 그 어려운 것을 리암 헴스워스가 해냅니다.
정교해진 캐릭터 구축, 세밀해진 특수효과
폴 페이그 감독은 [고스트버스터즈]를 리부트하면서 '고스트버스터즈'의 성별만 바꾼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각각의 캐릭터를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었고, 몇 단계는 진보된 특수효과 기술로 영화를 무장시켰습니다. 사실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에서 피터(빌 머레이)와 레이몬드(댄 애크로이드)의 관계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았습니다. 단지 레이몬드가 너무 순진해서 뺀질이 피터에게 맨날 당하는 것으로 그려졌을 뿐입니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은 애비(멜리사 맥카시)와 에린(크리스틴 위그)의 관계를 좀 더 세밀하게 그려넣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유령이라는 초자연적 현상에 매료되었다는 공통점으로 단짝이된 애비와 에린.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에린은 성공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버렸고, 그로인하여 애비와 앙숙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나 티격태격하던 에린과 애비는 함께 유령의 존재와 마주하면서 다시금 예전의 우정을 되찾게 됩니다.
특히 제가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에서 좋았던 것은 무기 담당자인 홀츠먼(케이트 맥키넌)과 4번째 신입 '고스트버스터즈'인 패티(레슬리 존스)의 캐릭터가 원작에 비해 잘 그려져있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는 이곤(해롤드 래미스)과 윈스톤(어니 허드슨)의 캐릭터가 거의 생략되다시피 했거든요. 오죽했으면 NAVER에서 [고스트버스터즈]의 줄거리를 소개하며 4번째 '고스트버스터즈'를 윈스톤이 아닌 루이스(릭 모라니스)로 소개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은 똘끼 충만한 홀츠먼과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지하철 안내원이라는 직원을 버리고 '고스트버스터즈'의 길로 접어든 패티의 캐릭터를 정성껏 그려넣었고, 그 덕분에 홀츠먼과 패티는 애비와 에린이 중심이된 [고스트버스터즈]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홀츠먼이 기상천외한 유령잡는 새로운 무기를 내놓을 때, 패티가 자신을 '고스트버스터즈'에 끼워주면 자동차를 제공해주겠다며 딜을 하는 장면 등은 새로운 캐릭터에 의한 새로운 영화적 재미였습니다.
오래된 영화를 리부트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작업입니다. 많은 팬을 거느린 원작의 경우 원작팬의 마음과 새로운 관객의 마음을 동시에 사로잡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원작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전략적으로 채워넣을 수 있다는 것은 리부트 영화의 크나큰 장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폴 페이그 감독은 원작에서 부족했던 캐릭터 구축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고, 그와 동시에 원작과 비교해서 진일보한 특수효과를 선보였습니다.
그 중에서 유령 출몰 장면은 섬뜩했습니다. 구피의 경우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앨드리지 맨션의 거트루드 유령 사건에서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고합니다. 저도 영화의 오프닝에서 앨드리지 맨션의 안내원이 유령소동을 겪는 장면에서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원작은 그저 웃고 즐길 수 있었는데, 리부트된 [고스트버스터즈]는 웃음과 더불어 섬뜩함마저 안겨준 셈입니다.
추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리부트 영화는 새로워야합니다. 원작과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면 결코 원작을 넘어설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원작의 향수를 느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원작을 사랑했던 수 많은 팬들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는 남녀 성별을 뒤바꿈으로써 아주 간단하게 새로움이라는 무기를 획득합니다. 그리고 원작에서 부족했던 캐릭터 구축에 신경을 쓴 것도 신의 한수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고스트버스터즈]에서도 영화는 원작의 향수를 느낄 수 있을까요? 일단 저는 OK 라고 대답을 하고 싶습니다. 우선 영화 오프닝의 거트루드 유령은 [고스트버스터즈 2]의 악명높은 마법사 비고를 떠올립니다. 둘 다 섬뜩한 초상화에서 그 힘이 발휘된다는 설정이 그러합니다. 그 외에도 원작의 대표적인 유령이라 할 수 있는 먹깨비 유령과 마시멜로맨도 깜짝 출연합니다. 특히 마시멜로맨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어찌나 반갑던지...
원작의 멤버들도 카메오 출연을 하면서 저를 즐겁게 했습니다. 빌 머레이는 유령의 존재를 믿지 않는 과학자로 출연해서 원작 배우 중 가장 비중이 높았고, 댄 애크로이드는 택시운전기사로, 어니 허드슨은 패티의 삼촌으로, 시고니 위버는 홀츠먼의 은사로 출연합니다. 단, 2014년 세상을 떠난 해롤드 래미스가 출연하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으니 해롤드 래미스는 흉상으로 출연했다는데, 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ㅠㅠ)
그 중에서도 백미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간 다음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서둘러 퇴장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저희 가족은 쿠키영상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엔딩 크레딧이 끝나기를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패티가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는 쿠키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소리의 정체는 '주울'입니다. 그 순간 저는 소름이 쫙 돋았답니다. '주울'은 1편에 고대의 악마 고저를 수호하던 괴물의 이름으로 시고니 위버에게 빙의되어 소동을 벌였었습니다.
원작을 미리 복습하지 않은 관객들은 "주울이 뭐야?"라며 수근댔지만, 저와 웅이는 1편을 봤기에(구피는 2편만 봤습니다.) 쿠키영상의 진정한 재미를 느끼며 극장 밖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이래서 무엇이든 복습이 중요한가봅니다. ^^
구피는 [고스트버스터즈 2]가 더 재미있었다고 하고, 웅이도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가 더 재미있었다는 군요. 확실이 원작에는 아기자기한 재미와 웃음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고스트버스터즈]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 없어서 원작이 더 재미있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원작만큼 저는 리부트된 폴 페이그 감독의 [고스트버스터즈]도 좋았습니다. 원작과 너무나도 다르면서, 원작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리부트 영화라니... 비록 이 영화의 북미 흥행이 미지근해서 속편 제작이 미지수이지만, 저는 제 기억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고스트버스터즈]의 추억을 소환한 것만으로도 이번 영화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웅이가 성인이 된 후 또다시 [고스트버스터즈]가 리부트된다면
웅이도 나처럼 자식들과 함께 [고스트버스터즈]의 추억을 소환하겠지?
영화는 추억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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