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스타트렉 비욘드] - 우주에서 잠시 길을 잃다.

쭈니-1 2016. 8. 24. 15:03

 

 

감독 : 저스틴 린

주연 : 크리스 파인, 재커리 퀸토, 이드리스 엘바

개봉 : 2016년 8월 17일

관람 : 2016년 8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여름에 사람들이 대형쇼핑몰로 몰려드는 이유

 

여름철 폭염이 꺾인다는 기상 예보만 믿고 한주, 한주 버텼더니 어느덧 한달이 훌쩍 지나갔네요. 뉴스를 보니 올해가 1994년 이후 최악의 폭염이라고 합니다.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1994년 여름에 저는 신교대에서 4주 훈련을 받았었습니다. 제대로 씻지 못해서 신교대에서는 눈병이 창궐하고, 설상가상으로 저는 장염까지 걸려서 죽을 고생을 했던 그 해 여름. 그런데, 올해가 1994년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회사에서는 에어컨이라도 빵빵하게 틀어놓을 수 있으니 버틸만합니다. 하지만 에어컨이 없는 집에 오는 순간부터 너무 더워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축 늘어져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선풍기를 틀어놓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루륵 흐르고, 땀을 닦아내기위해 샤워기를 틀면 미지근한 물이 나오며,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는 사이 다시 땀이 온 몸을 적십니다. 이건 뭐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폭염이 한풀 꺾인다고 하는데 믿어도 될런지...

지난 주말에는 회사일에, 경조사까지 겹쳐서 바쁜 이틀을 보냈습니다. 특히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후 구피, 웅이오하 함께 저희 회사 경비원의 따님 결혼식에 참가했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이후에는 찜통같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대형 쇼핑몰을 방황하며 구경도 하고, 영화도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남자가 그러하듯이 저 역시 쇼핑을 상당히 싫어합니다. 하지만 대형 쇼핑몰에 나오니 최소한 덥지는 않더군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이리 저리 어슬렁거리니 시간도 금방 갔습니다. 그날 저희 가족은 대형 쇼핑몰에 자리잡은 멀티플렉스 극장에서 [스타트렉 비욘드]를 관람했습니다. 8월 내내 웅이에게 영화만 보여주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래도 돈 없는 가장이 가족과 함께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공간은 영화관밖에 없네요.

대형 쇼핑몰에서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대형 서점에서 책도 읽으며 일요일을 보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할 시간. 집에 가기 위해 대형 쇼핑몰을 나와 버스 정류장에 선 순간, 다시 폭염이 저희 가족을 엄습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며 땀을 한바가지 흘리고, 집에 돌아와 또다시 축 늘어져 시간을 보내며 진심으로 이 지긋지긋한 여름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스타트렉 비욘드]의 관람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엇습니다. 이 영화가 시리즈 영화이고, 이미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앞서 개봉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웅이가 이전 영화들부터 보기 위해 [스타트렉 비욘드]의 관람을 미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에 극장에서 볼 영화가 [스타트렉 비욘드]뿐이라서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먼저 본 후 [스타트렉 비욘드]를 보겠다는 웅이의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캐릭터를 알지 못하고 이 영화를 본다면...

 

분명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보지 않아도 [스타트렉 비욘드]를 관람하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영화는 커크(크리스 파인) 함장이 이끄는 엔터프라이즈호와 고대의 생화학 무기를 통해 우주 연합을 공격하려는 크롬(이드리스 엘바)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선악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편을 통해 주요 캐릭터를 숙지하지 못하고 영화를 본다면 킬링타임용 오락영화의 재미 그 이상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 '스타워즈'를 벤치마킹하며 시작된 B급 SF영화 '스타트렉 시리즈'가 북미 관객들에게 오랜 세월동안 사랑을 받았었고, 급기야 J.J. 에이브럼스 감독에 의해 SF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들 때문입니다. J.J. 에이브럼스 감독도 그러한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그 결과 2009년 [스타트렉 : 더 비기닝]으로 '스타트렉 시리즈'를 리부트했을때 가장 중점을 뒀던 것이 캐릭터 구축이었습니다.

이러한 캐릭터 구축은 [스타트렉 다크니스]까지 이어졌는데, 처음엔 너무 다른 성격 때문에 앙숙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커크와 스팍(재커리 퀸토)이 결국엔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최고의 파트너가 되는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줬습니다. 이러한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 구축이 SF 블록버스터로써 '스타트렉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통해 J.J. 에이브럼스 감독이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축을 한 만큼 [스타트렉 비욘드]의 감독을 맡은 저스틴 린 감독은 더이상 캐릭터 구축으로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는 캐릭터에 대한 시시콜콜한 설명은 최대한 생략하고 곧바로 엔터프라이즈호의 대원들과 크롬의 대결로 넘어가 버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스틴 린 감독의 선택은 [스타트렉 비욘드]의 최대 장점이자 최악의 단점이 되고 맙니다.

만약 여러분이 짜증나는 무더운 여름을 피해 아무 생각없이 단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찾는다면 [스타트렉 비욘드]는 탁월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적당한 긴장감과 적당한 유머, 그리고 때리고 부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특유의 스케일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타트렉 : 더 비기닝]과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재미있게 봤고, 그 연장선상의 [스타트렉 비욘드]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스타트렉 비욘드]에 실망했습니다.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을 통해 '스타트렉'의 세계에 입문한 저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엔터프라이즈호의 전설적인 함장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커크의 성장담을 기대했지만, [스타트렉 비욘드]는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캐릭터 구축을 잠시 멈추고 그냥 오락영화적 재미에 올인하고 맙니다.  

 

 

성장이 멈춰버린 커크 선장

 

저와 구피는 전편을 미리 봤기 때문에 [스타트렉 비욘드]의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편을 보지 못한 웅이는 [스타트렉 비욘드]가 끝나고 나서도 별 감흥이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웅이에게 커크와 스팍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줘야만 했습니다. 결국 전편을 본 후 [스타트렉 비욘드]를 보겠다는 웅이의 선택이 옳았던 셈입니다. 변명하자면 저스틴 린 감독이 이렇게 캐릭터 구축을 뭉탱이로 생략할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스타트렉 비욘드]에 커크와 스팍의 캐릭터 구축이 아예 생략된 것은 아닙니다. 저스틴 린 감독은 최소한의 시늉을 하긴 했습니다. 영화의 초반, 오랜 우주 생활에 지친 커크의 고뇌를 나래이션을 통해 아주 잠깐 노출시키면서 말입니다. 그는 엔터프라이즈호의 함장 자리를 스팍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지구에서의 내근직을 신청하려합니다.

그런데 엔터프라이즈호에서의 생활을 멈추려고 하는 것은 커크뿐만이 아닙니다. 벌칸족 재건에 힘을 쏟던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들은 스팍은 아버지가 했던 벌칸족 재건의 일을 대신 하기 위해 엔터프라이즈호에서의 생활을 멈추려합니다. 그리고 우후라(조 샐다나)와의 관계에도 금이 갑니다. 결국 커크도, 스팍도 우주에서 길을 잃은 셈입니다.

 

문제는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커크와 스팍의 이러한 심적 변화에 대해서 [스타트렉 비욘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제 겨우 시리즈 3편이고, [스타트렉 다크니스]에서 커크와 스팍의 캐릭터를 겨우 구축했는데, 벌써부터 커크는 우주 생활에 지쳤고, 스팍은 벌칸족 재건 때문에 갈등합니다. 스팍의 캐릭터 구축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우후라의 연인 관계 위기 또한 스코티(사이먼 페그)와의 몇마디 대화로 대충 넘어가버립니다.

[스타트렉 비욘드]가 오랜 우주 생활에 지친 커크의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려 했다면 최소한 영화의 오프닝에서 그러한 커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에피소드를 배치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벌칸족의 재건이라는 또 다른 임무 때문에 스팍이 갈등하는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려 했다면 스팍과 스팍의 아버지의 이야기가 좀 더 설명되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스틴 린 감독은 이 모든 것을 대충 생략해버립니다. 그리고는 엔터프라이즈호의 부수는 충격요법을 통한 크롬과의 대결에 올인합니다. 어쩌면 저스틴 린 김독은 크롬과의 대결을 통해 커크와 스팍이 한 단계 더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캐릭터 구축을 대충 생략하고 단순하게 크롬과의 대결로 커크와 스팍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려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잠시 길을 잃었다고해서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니다.

 

[스타트렉 비욘드]는 모든 것이 그런 식입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고대의 생화학 무기가 어떻게 엔터프라이즈호에 오게 되었는지도 제대로된 설명이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라 할 수 있는 크롬의 정체는 더 어이가 없습니다. 아무리 SF 영화라고 할지라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는 설정을 제시해야합니다. 만약 이 영화가 B급 SF영화라면 이해가 되지만 블록버스터 SF영화라면 이런 식으로 대충 넘어가는 식은 안됩니다.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은 2억5천7백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고, [스타트렉 다크니스]는 2억2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다. 월드와이드 성적은 [스타트렉 다크니스]가 4억달러를 훌쩍 넘겼고, [스타트렉 : 더 비기닝]은 4억 달러에 육박했습니다. 하지만 [스타트렉 비욘드]는 지금 현재 북미 1억4천7백만 달러, 월드와이드 2억3천1백만 달러에 그치며 전편에 비해 상당히 부진한 흥행 성적을 내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J.J. 에이브럼스가 연출에서 제작으로 물러나자마자 '스타트렉 시리즈'는 위기를 맞습니다. 우주에서 길을 잃은 커크 함장처럼 말이죠. 하지만 잠시 길을 잃었다고해서 완전히 끝장난 것은 아닙니다. 커크와 스팍이 크롬을 물리치고 다시 엔터프라이즈호를 선택했듯이 4편에서 제대로된 길을 되찾는다면 SF 블록버스터로써의 '스타트렉'은 다시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시리즈가 진행되다보면 잠시 길을 잃기도 한다.

[스타트렉 비욘드]의 실망은 잊을테니 부디 어서 빨리 길을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