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연상호
더빙 : 심은경, 류승룡, 이준
개봉 : 2016년 8월 17일
관람 : 2016년 8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웅이와 본 영화중 가장 높은 수위의 영화
지난 7월 23일, 저희 가족은 무더운 토요일 밤, 극장에서 [부산행]을 보며 보냈습니다. 그날 [부산행]의 관람이 특별했던 이유는 영화의 등급이 15세 관람가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웅이에겐 15세 관람가 영화를 보여줘선 안된다고 주장하는 구피. 웅이는 물론 저 역시도 그러한 구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부산행]은 15세 관람가 영화이지만 구피가 먼저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보자고 제안을 한 것입니다.
사실 [부산행]은 좀비와 이기적인 인간에 의한 잔인함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잔인함보다는 가족애와 희생이 더욱 두드러졌고, 그 덕분에 저희 가족은 등골이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부산행] 관람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부산행]을 보고나니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보고 싶어졌습니다. [서울역] 또한 [부산행]과 마찬가지로 15세 관람가 등급이 유력한 상황. 그런데 이번에도 구피는 웅이가 [부산행]을 봤으니 [서울역]을 봐도 된다고 일찌감치 허락해줬습니다.
[부산행]을 본지 한달 정도가 흐르고 드디어 [서울역]이 개봉했습니다. 15세 관람가 등급의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인지 극장 상영시간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더군요. 그래서 저는 어쩔 수 없이 [서울역]의 관람을 금요일 밤으로 정했습니다. 문제는 하필 금요일에 구피가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구피는 자신은 보고 싶지 않으니 저와 웅이만 [서울역]을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해서 금요일밤, 저와 웅이의 [서울역] 관람이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웅이와 [서울역]을 보고나니 구피와 함께였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역]의 수위는 [부산행]보다 훨씬 높았기 때문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직장 동료들에게 [서울역]의 수위가 높다는 이야기를 들은 구피는 제게 "어떻게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영화를 어린 아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아빠도 아냐!!!"라며 화를 냈습니다. 자기가 먼저 웅이와 [서울역]을 봐도 된다고 허락해놓고...
[서울역]의 높은 수위는 [부산행]처럼 잔인함에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여관비를 마련하기 위해 혜선(심은경)에게 원조교제를 강요하는 기웅(이준)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혜선이 창녀촌에서 도망쳐나왔다는 대사도 나오는데,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가 창녀촌이 뭐냐고 물을까봐 조마조마했었습니다. 게다가 혜선은 시종일관 짧은 원피스를 입고 좀비를 피해 도망다는데, 의도적으로 혜선의 팬티가 계속 노출되어서 웅이와 함께 보기 민망했습니다.
하지만 대박 사건은 영화의 마지막 반전에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영화를 보다말고 웅이의 눈을 가려야만 했는데, 이 정도 수위면 차라리 청소년 관람불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부산행]과 비슷한 수위를 예상했다가 [부산행]을 훨씬 뛰어 넘는 높은 수위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던 [서울역]. 더 큰 문제는 영화를 보고나서 저도, 웅이도 [서울역]에 만족을 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좀비 바이러스는 어쩌다가 노출 되었는가?
제가 [서울역]에 만족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프리퀄의 사전적 의미는 전편보다 시간상으로 앞선 이야기를 보여주는 속편으로, 전편의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는지 설명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부산행]에 남겨진 두가지 의문을 제대로 풀어줬어야 했습니다.
첫번째 의문은 '좀비 바이러스는 어쩌다가 노출되었는가?'라는 것이고, 두번째 의문은 부산행 KTX의 최초 좀비 바이러스 감염자인 젊은 여성과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던 노숙자에 대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 의문점만 제대로 해소되었다면 [서울역]은 [부산행]의 프리퀄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좀비 바이러스는 어쩌다가 노출되었는가?'라는 의문부터 살펴보죠. 사실 이 의문점은 [부산행]에서 석우(공우)와 석우의 직장 후배의 전화 대화를 통해 살짝 노출이 되었습니다. 펀드 매니저인 석우가 회사의 지시로 살려낸 바이오 회사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최초로 유출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의문점은 단 하나입니다. '유출된 바이러스가 어떻게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퍼져 나갔는가?' 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서울역]은 그러한 궁금증에 대답을 해주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채 도심을 걷고 있는 노령의 노숙자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노숙자에서부터 좀비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됩니다. 그러나 이 노숙자가 어쩌다가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었는지는 결코 보여주지 않습니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에게 물린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서울역]은 관객의 상상력에 맡깁니다.
사실 좀비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도 위기에 몰렸던 회사를 살려내기 위해 무리한 실험을 하는 바이오 회사, 그리고 우연한 사고로 바이러스가 유출되고, 바이오 회사의 실험에 동원된 동물들이 감염되고, 바이오 회사의 실험실을 탈출한 개에게 노숙자가 물리는 장면만 보여줬어도 쉽게 해결될 문제인 셈입니다.
뭐 좋습니다. 좀비 바이러스 확산은 [부산행]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했기 때문에 [서울역]에서 생략되었다고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습니다. 노숙자가 바이오 회사의 실험실에서 탈출한 개에게 물린 것인지, 아니면 노숙자 본인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 바이오 회사의 실험에 동원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부분은 그래도 상상력으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니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혜선과 노숙자는 어떻게 부산행 KTX에 오르게 되었는가?
두번째 의문점은 '부산행 KTX의 좀비 바이러스 최초 감염자인 젊은 여성과 처음부터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서 알고 있던 노숙자가 어떻게 부산행 KTX에 타게 되었는가?' 라는 점입니다. 이 의문점이 중요한 것은 [서울역]과 [부산행]의 연결점이기 때문입니다. 부산행 KTX의 좀비 바이러스 최초 감염자를 연기한 것은 심은경이었고, [서울역]에서 혜선의 더빙을 맡은 것도 심은경입니다.
게다가 [서울역]에서 기웅과 다툰 후, 거리를 헤매던 혜선이 좀비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노숙자와 함께 동행하는 장면이 연출됩니다. 이제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헤선과 노숙자가 부산행 KTX에 올라타는 것으로 마무리되면 [서울역]과 [부산행]은 완벽하게 연결됩니다. 하지만 이 쉬운 의문점 해결도 [서울역]은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서울역]은 애초부터 [부산행]의 프리퀄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만약 [서울역]이 [부산행]의 프리퀼이 될 의지가 없었다면 이것은 영화 홍보사의 책임입니다. [서울역]을 [부산행]의 프리퀄이라 홍보해서는 안되었습니다. 관객 동원이 어려운 15세 관람가 등급의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을 홍보하기 위해 2016년 첫 천만영화인 [부산행]을 적극 활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부산행]의 프리퀄로 [서울역]을 기대하게 만든 것은 분명 크나큰 실수입니다. 관객은 기대한 것이 채워질 때 영화의 재미를 느낍니다. 그런데 애초부터 [서울역]에는 관객이 기대했던 것이 없었으니 영화에 실망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클로버필드]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2008년에 개봉해서 깜짝 흥행을 했던 이 영화는 뉴욕 시내에 갑자기 나타난 거대괴물에 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클로버필드]는 이 거대괴물이 어디에서 나타났 것인지, 그리고 거대괴물에 의해 인류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은채 영화를 끝내 버립니다. 당연히 속편 소문이 무성했고, 아니나 다를까 2016년 [클로버필드 10번지]가 개봉됩니다.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클로버필드]의 속편도 아닐 뿐더러, 프리퀄 또한 아닙니다. 단지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한 전혀 다른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리고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개봉 전부터 그러한 사항을 확실하게 밝혔습니다. [서울행]역시 [부산행]의 속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리퀄도 아닙니다. 단지 대한민국에 창궐한 좀비 바이러스라는 커다란 소재를 공유한 영화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서울행]은 [클로버필드 10번지]처럼 그러한 사항을 관객들에게 확실하게 밝혔을까요?
며칠전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를 읽다보니 [서울역]은 [부산행]의 프리퀄이 아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 영화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미 제가 [부산행]의 프리퀄로써 [서울역]을 기대하고, 극장에서 본 이후였습니다. 잘못된 기대로 인한 [서울역]을 실망한 이후인 셈입니다. 영화 홍보사는 관객이 영화를 보게 하는 것만이 아닌, 영화를 본 관객이 만족할 수 있도록 제대로된 정보를 제공해야만합니다. 하지만 [서울역]은 그러한 제대로된 정보 제공에 실패한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연상호 감독이 [서울역]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영화의 반전 언급합니다.)
다시한번 이야기하지만 [서울역]은 [부산행]의 프리퀄이 아닙니다. 아예 처음부터 [부산행]의 프리퀄이 될 의지조차 없는 영화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을 왜 만들었을까요? 그것에 대한 정답은 헤선을 찾아나선 아버지 석규(류승룡)에게 있습니다. 기웅과 함께 좀비로 인하여 아수라장이 된 서울 시내에서 혜선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석규. 그에게 해답이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석규는 [부산행]의 석우와 상화(마동석)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캐릭터입니다. 혜선을 향한 석규의 애타는 부성애는 석우와 닮았고, 좀비를 무서워하기 보다는 좀비와 맞서 싸우는 모습은 좀비를 맨주먹을 때려 잡던 상화를 연상시킵니다. [부산행]이 가족애와 희생을 담은 영화였기에 [서울역] 역시 헤선을 향한 석규의 가족애와 희생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서울역]은 영화 후반에 충격적인 반전을 준비합니다. 석규는 헤선의 아버지가 아닌 포주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돈을 떼어먹고 도망친 혜선을 붙잡기 위해 아버지 행세를 하며 헤선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 충격적인 반전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기웅을 살해하고 혜선을 강간하려는 석규의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이를 통해 연상호 감독은 인간이 좀비보다 훨씬 무서운 괴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연상호 감독은 항상 그랬었습니다. 그가 연출한 애니메이션인 [돼지의 왕], [창], [사이비]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부조리를 충격적인 사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한 영화입니다. [부산행]에서 잠시 상업영화로 외도를 했을 뿐, [서울역]에서 다시 본연의 연출 스타일로 돌아간 것입니다. 결국 연상호 감독의 팬이라면 의외의 영화는 [서울역]이 아닌 [부산행]인 셈입니다.
좀비를 피해 도망다니는 사람들을 불법 시위자라며 가둬놓고 물대포를 쏘아대는 전투 경찰들, 툭하면 이 모든 소행이 북한 간첩의 짓이라며 울부짖는 어리석은 시민들, 그리고 그깟 돈에 눈이 멀어서 좀비가 우글거리는 곳에서도 혜선을 찾아나서는 석규의 모습까지... [서울역]은 좀비보다 더 어이없고 잔인하기까지한 인간들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돼지의 왕]을 본 이후 [창]과 [사이비]는 차마 볼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연상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산행]이 너무 재미있어서 잠시 그의 연출 스타일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서울역]에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셈입니다. 그의 연출 스타일을 선호하지 않지만, 존중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영화 홍보로 인하여 속아서 영화를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이렇듯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의 기존 연출 스타일대로라면 분명 나름 의미있는 영화이지만, [부산행]의 프리퀄을 기대한 저와 같은 관객에겐 기분상하는 영화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서울역]은 개봉 6일 만에 12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는 연상호 감독 애니메이션중 최고 기록이다.
하지만 관람객의 별점은 naver 기준 [부산행] 8.58에서 [서울역]은 5.28으로 하락했다.
과연 [서울역]의 홍보사는 흥행기록에 의한 박수를 받아야할까?
잘못된 정보때문에 이루어진 별점 하락에 의한 비난을 받아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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