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피터와 드래곤] - 아이들을 위한 영화? 아니, 어른들도 위한 영화!

쭈니-1 2016. 10. 7. 11:08

 

 

감독 : 데이빗 로워리

주연 : 오크스 페글리,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웨스 벤틀리, 칼 어번, 로버트 레드포드

개봉 : 2016년 9월 28일

관람 : 2016년 10월 3일

등급 : 전체 관람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강화도에서 맞이한 지난주 일요일은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어머니와 함께 전등사도 거닐고, 강화 풍물시장도 구경하려했는데, 하루종일 비가 내려서 이 모든 계획이 어긋나버렸습니다. 특히 그날 제 보물1호인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웅이의 실수로 고장이 나는 바람에 제 속은 더욱 쓰라렸습니다. (수리비가 무려 4만6천원이나 들었습니다. ㅜㅜ)

하지만 강화도 여행을 마친 월요일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방에서 뒹굴거리며 강화도에서 찍은 사진들을 정리하려 했지만 너무 날씨가 좋아서 집에만 처박혀 있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웅이와 함께 가까운 극장 나들이 계획을 세웠습니다. 저는 웅이에게 [피터와 드래곤],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벤허] 중 한편을 선택하라했고, 웅이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피터와 드래곤]을 선택했습니다.

문제는 [피터와 드래곤]을 상영하는 극장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지난 8월에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마이 리틀 자이언트]를 상영하는 극장이 별로 없어서 고생했었는데, [피터와 드래곤]도 비슷한 처지인 셈입니다. 왜일까요? [피터와 드래곤]은 1977년에 제작된 [피터의 용]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를 진행중인 디즈니의 야심작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지난 8월 12일 북미에 개봉해서 7천4백만 달러라는 미지근한 흥행성적을 냈고, 뒤늦게 개봉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철저하게 외면을 당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저는 [피터와 드래곤]을 보기 위해 웅이와 버스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원래는 집 근처 가까운 멀티플렉스에서의 가벼운 극장 나들이를 계획했지만 [피터와 드래곤]을 철저하게 외면한 국내 배급사의 횡포 때문에 웅이와 인파가 북적되는 김포공항 롯데몰로 예상하지 못한 나들이를 한 셈입니다. 뭐 그 덕분에 롯데몰에서 화창했던 개천절을 즐겼습니다.

각설하고... [피터와 드래곤]은 딱 제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재미를 갖춘 영화입니다. 12세 관람가임에도 불구하고 괴기스럽고 공포스럽기까지 했던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과는 달리 [피터와 드래곤]은 전체 관람가 등급의 영화답게 어린 아이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특히 강아지를 닮은 털이 복실거리는 드래곤이 정말 귀여웠답니다.

그러고보니 같은 어린이용 판타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과 [피터와 드래곤]은 분위기가 정반대의 영화였습니다. 만약 어린 자녀와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을 보러 갔다가 너무 괴기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당혹스러웠던 분들이라면 [피터와 드래곤]으로 놀란 어린 자녀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모글리, 타잔, 그리고 피터

 

[피터와 드래곤]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비밀로 가득한 숲에 혼자 남겨진 피터(오크스 페글리)의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늑대에 쫓기던 피터는 전설 속 드래곤과 만나게 되고, 둘은 친구가 됩니다. 피터는 드래곤에게 엘리엇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이후 피터와 엘리엇은 가족이자 친구가 됩니다. 하지만 6년후 숲이 개발되면서 피터는 인간 세상에 노출되고, 엘리엇마저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를 잃은 소년이 정글 혹은 숲에서 동물과 함께 생활한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너무 흔한 이야기입니다. 가깝게는 지난 6월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했던 [정글북]를 떠올리게 합니다. [정글북]의 모글리(닐 세티)는 정글의 무법자 쉬어칸(이드리스 엘바)에게 부모를 잃고 정글에서 늑대에게 키워집니다. [정글북]과 [피터와 드래곤]의 도입부가 다른 점이라고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주인공의 새가족이 늑대에서 드래곤으로 바뀌었다는 것 뿐입니다. 물론 [정글북]은 쉬어칸을 상대로하는 모글리의 정글 모험이 주요 내용이기에 중반부터는 [피터와 드래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입니다.  

[피터와 드래곤]은 여러차례 영화화된 '타잔'과도 비슷합니다. '타잔'은 사고로 부모를 잃은 어린 소년이 아프리카 밀림에서 고릴라의 손에 키워진 후 밀림의 왕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피터와 드래곤]과는 드래곤이 고릴라로 바뀌었을 뿐 거의 비슷하고, '타잔'이 제인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중반 전개 역시 [피터와 드래곤]에서 피터가 또래 여자아이인 나탈리(우나 로렌스)와 우정을 나누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렇다면 [피터와 드래곤]은 [정글북] 혹은 '타잔'과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그것이 이 영화의 키포인트입니다. 우선 [피터와 드래곤]은 판타지적 분위기를 강화시켰습니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피터의 새로운 가족이 고릴라, 늑대와 같은 동물이 아닌 드래곤이라는 전설속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서 드래곤은 몸을 투명하기 바꾸는 재주가 있는 등 판타지적 요소를 강조합니다.

이렇게 강조된 판타지적 요소는 [정글북]과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영화 초반 어린 피터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정글북]에서 모글리를 키웠던 늑대 무리고, 강가에서 피터와 대치 상황을 벌이는 곰의 경우는 [정글북]에서 모글리의 친구 중 하나였습니다. 의도적인 것인지 모르지만, [정글북]의 주요 동물 캐릭터들이 [피터와 드래곤]에서는 드래곤 엘리엇에게 겁을 먹고 도망치는 수모를 당합니다. 아마 비슷한 소재를 가진 [정글북]에 대한 [피터와 드래곤] 식 견제가 아니었을까요?

이렇게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과 확실한 차별점이 되는 드래곤의 존재는 [피터와 드래곤]의 영화적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됩니다. 사실 [피터와 드래곤]은 영화 중반 피터가 사람들에게 발견되고나서부터 이야기가 너무 뻔하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드래곤이라는 존재 덕분에 후반부가 더욱 다이나믹해졌고, 예측불허가 되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피터와 드래곤]만의 장점입니다.

 

 

당신은 드래곤을 믿는가? 믿지 않는가?

 

그러면 여기에서 잠깐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드래곤은 전설 속의 동물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존재입니다. 사실 저는 어쩌면 드래곤이 실제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동양과 서양에서 서로 비슷한 드래곤 혹은 용에 대한 전설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물론 드래곤의 존재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피터와 드래곤]에서는 두부류의 사람들로 나뉩니다. 드래곤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드래곤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드래곤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은 직접 드래곤을 마주쳤던 사람들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피터이고, 그레이스의 아버지인 미챔(로버트 레드포드) 역시 젊은 시절 숲에서 드래곤과 마주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래곤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특히 숲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그레이스는 드래곤에 대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그저 지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숲을 몇번이고 갔었지만 드래곤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드래곤은 없다고 단정짓습니다. 그러한 그레이스에게 미챔은 보이지 않는다고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조언을 해줍니다.

 

바로 그러한 메시지가 드래곤이라는 판타지적 소재를 통해 이끌어낸 [피터와 드래곤]의 장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곧잘 믿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믿고, 요정, 유령, 괴물, 외계인 등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아주 쉽게 믿어버립니다. 그것은 그들이 순수하기 때문입니다. 순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나면 순수의 눈은 사라집니다. 그리고는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들만 믿으려합니다. 보지 못한 것들은 이 세상에 없다고 단정짓습니다. 그레이스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게 믿지 않았던 것들을 막상 눈으로 보게되면 어떻게 될까요? 그에 대한 해답은 벌목업자인 개빈(칼 어번)이 보여줍니다. 처음에 드래곤과 마주한 개빈은 혼비백산하며 도망칩니다. 하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어 드래곤을 생포해서 돈벌이에 이용하려합니다. 참 한심하죠?

드래곤과 처음 마주친 피터와 개빈의 모습은 순수한 어린아이와 사회의 때가 묻은 어른들의 모습을 극명하게 대조시킵니다. 보이는 것만 믿고, 처음 보는 것에 대해 무조건 두려워하는 경계심과 모든 것을 돈과 연관시키는 모습까지... 결국 드래곤을 믿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드래곤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멋지게 한방 먹이는 영화 후반부의 장면은 그래서 더욱 통쾌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영화? 아니, 어른들도 위한 영화!

 

[피터와 드래곤]은 전형적인 디즈니표 착한 영화입니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를 그저 어린아이들을 위한 영화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그러기엔 영화의 완성도가 너무 아깝습니다. 비록 드래곤의 모습을 귀여운 강아지처럼 표현해서 어린아이들이 '귀여워'를 연발하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터와 드래곤]에는 어른들을 위한 교훈도 충분히 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그레이스의 변화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그는 전형적인 착한 어른입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피터에게도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줍니다. 하지만 드래곤을 목격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을 정도로 사회의 때도 어느정도 묻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처음엔 피터를 복지국에 넘기려 합니다. 그랬던 그레이스가 어른이 아닌 순수한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된 것은 피터가 그린 그림 한장 덕분입니다. 엘리엇을 그린 피터의 그림은 보이는 것만 믿었던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만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비록 어른이지만,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가진 미챔의 모습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딸마저도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상황에서도 드래곤을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는 미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로 불렸던 로버트 레드포드가 연기했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만약 누군가 제게 '드래곤을 봤어.'라고 이야기한다면 과연 저는 그 말을 믿을까요? 어쩌면 드래곤이 실존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까지 드래곤이 실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저로써는 아마도 드래곤을 목격했다는 개빈의 말을 웃어 넘긴 잭(웨스 벤틀리)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저 역시 보이는 것만 믿는 어른이기에...

하지만 [피터와 드래곤]을 보고나니 누군가 제게 '드래곤을 봤어.'라고 이야기하면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한번 믿어보고 싶어집니다. 물론 나중에 '속았지? 이 멍청아!'라는 놀림을 받더라도 그것은 제가 창피한 것이 아닌 거짓말을 한 상대방이 창피해야하는 일이니까요. 이렇게 웅이와 함께 어린이 영화를 보고나면 저는 수십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동심의 세계에 푹 빠져 버립니다. 팍팍한 어른들의 세계에 서 아둥바둥 살고 있는 제겐 잠시나마 동심의 세게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휴식이자 행복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웅이가 [피터와 드래곤]을 보고나서 한 첫마디는 "아빠, 드래곤이 개처럼 생겼어요."입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닌데 어감 때문에 얼마나 웃었는지... 이렇게 너무 행복했던 10월의 3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습니다. 3일간의 연휴가 너무 행복했고, 그 추억을 안고 생활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자꾸 순수를 잊어버린다.

왜냐하면 사회 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피터와 드래곤]을 봤던 지난 월요일에는 내 마음에 순수로 가득찼었는데...

이 글을 쓰는 금요일에는 순수가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속 순수를 채워줄 영화를 찾아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