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럭키] - 행운이라 부르고 행복이라 답한다.

쭈니-1 2016. 10. 20. 16:00

 

 

감독 : 이계벽

주연 : 유해진, 이준, 조윤희, 임지연

개봉 : 2016년 10월 13일

관람 : 2016년 10월 18일

등급 : 15세 관람가

 

 

나는 지금 '가을남자 증후군'에 허덕이고 있다.

 

계절 때문인가요? 요즘 저는 매사에 의욕이 없고, 이유없이 힘이 듭니다. 그리고 기분도 너무 우울하고요. 그러한 가운데 회사에서도 골치아픈 사건들이 자꾸 터져서 저를 더욱 짜증나게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매년 가을만 되면 저는 위와 같은 증상을 보이는 '가을남자 증후군'에 곧잘 빠지곤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가을을 탄다'라고 표현을 하죠. 암튼 올해는 이러한 '가을남자 증후군'이 예년에 비해 조금 더 심한 편이긴 합니다.

이렇게 '가을남자 증후군'에 빠지면 영화를 보는 것조차 귀찮아집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옷을 갈아입고 쇼파에 축 처진채 앉아 멍하니 TV를 보거나, 아무 의미없는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하는 것이 요즘의 제 일상입니다. 그래도 주말마다 가족여행, 쭈꾸미 낚시, 회사 야유회를 다녀오면서 '가을남자 증후군'에서 조금씩 빠져 나오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화요일, 외근을 나갔다가 회사 업무가 일찍 끝이 났습니다. 사실 집에 일찍 들어가 한 손에 맥주캔을 들고 쇼파에 축 처진채 앉아 TV를 보면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무기력한 '가을남자 증후군'에서 조금은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고 극장을 들러 영화를 보고, 구피에게 전화를 해서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록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고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겠다고 결심을 하긴했지만, 특별히 보고 싶은 영화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제 블로그 이웃이 추천해주신 [어카운턴트]를 봐야 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어카운턴트]는 교차상영으로 아침과 밤에만 상영을 하더군요. 결국 저는 계획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유해진 주연의 코미디 영화 [럭키]입니다. 

[럭키]는 성공률 100%의 완벽한 킬러 형욱(유해진)이 어느날 목욕탕에서 비누를 밟고 넘어지면서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자신이 무명배우 재성(이준)이라고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은 영화입니다. 솔직히 저는 [럭키]를 극장에서 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유해진이 주연을 맡은 영화인 만큼 웃기기는 할테지만, 극장에서 청승맞게 혼자 앉아 키득거리느니 나중에 다운로드로 구피와 함께 보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럭키]를 보는 순간만큼은 '가을남자 증후군'을 느끼지 못할만큼 즐거웠습니다. 그저 별 생각없이 1시간 50분동안 웃고나니 뭔가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저는 그냥 웃고 싶었나봅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그다지 웃을 일이 없었기에 제 '가을남자 증후군'이 더욱 깊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저 웃고 싶었나보다.

 

[럭키]가 상영하는 극장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날 하필 고등학교 단체 관람이 있었기도 했지만 일반 관객들도 꽤 많았습니다. 이렇게 꽉 찬 극장을 보며 일주일 전 텅빈 극장에서 봤던 [아수라]가 생각났습니다. 정우성, 황정민, 주지훈 등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며 가을 극장가의 흥행을 장악할 것이라 예상되었던 [아수라]. 하지만 지금 [아수라]의 처지는 개봉 첫주만 반짝한채 박스오피스 순위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와는 달리 [럭키]는 꽤 단촐한 캐스팅을 선보인 영화입니다. 유해진은 주연보다는 조연이 더 잘 어울리는 배우이고, 이준, 조윤희, 임지연 역시 티켓파워가 있는 스타급 배우라고 하기엔 아직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럭키]는 개봉 첫주 압도적인 성적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더니 꾸준히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현재 [럭키]의 누적관객은 이미 [아수라]를 넘어선 상황입니다.

분명 주연 배우의 이름값만 놓고본다면 [아수라]와 [럭키]의 상황은 뒤바뀌었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아수라]와 [럭키]의 상황을 바뀌 놓았을까요? 저는 그것이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제게 두 영화의 완성도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라고 한다면 저는 [아수라]의 손을 들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적 재미는 [럭키]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아수라]는 관객이 원하는 카타르시스를 주지 못했지만, [럭키]는 관객이 원하는 웃음을 아낌없이 줬기 때문입니다.

 

분명 [럭키]는 잘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스토리상 허점이 너무나도 많이 눈에 띕니다. 하지만 코미디 영화를 그렇게 깐깐한 눈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어차피 코미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웃음이니까요. 아무리 잘 만들어진 코미디 영화라고해도 관객을 웃기지 못한다면 존재가치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럭키]는 성공적인 코미디 영화임에 분명합니다. 유해진은 그 명성 그대로 [럭키]에서 원맨쇼를 펼치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합니다.

이준, 조윤희, 임지연 등 조연 배우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유해진의 원맨쇼를 지원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선택하며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훈훈함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코미디 영화의 힘이며, 많은 관객들이 [럭키]를 보며 열광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며 [럭키]는 과연 유해진의 원맨쇼만으로 웃기는 코미디 영화일까요? 아닙니다.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영화적 상황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번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해보신 적이 없으신가요?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고, 죄를 짓고 사는 사람은 착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고... [럭키]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욕구를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뒤바뀐 인생, 누가 더 행운일까?

 

[럭키]는 냉혹한 킬러 형욱과 가난한 무명배우 재성의 인생이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형욱은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킬러입니다. 그는 럭셔리한 집에서 고급 외제차를 끌고, 거액의 돈을 집 안에 감춰둔채 생활하지만, 그의 직업은 사람을 죽이는 일. 그런 그가 옥탑방에서 구질구질하게 사는 재성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재성의 인생을 살면서 소방요원 리나(조윤희)를 만나 사랑에 빠지며, 혼자가 아닌 여럿인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단돈 2천원이 전부인 재성은 자살 직전에 형욱을 만나게 됩니다. 죽기 전에 부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형욱이 되기로 결심한 재성.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형욱의 럭셔리 하우스에서 외제차를 끌고 돈도 펑펑 쓰며 부자의 삶을 만끽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와중에 형욱이 감시중이던 은주(임지연)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럭키]는 서로 뒤바뀐 처지에서 형욱과 재성이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예전 그대로 킬러의 삶을 살았다면 절대 알수 없었을 소소한 행복들. 형욱은 나중에 기억을 되찾은 이후에도 그러한 행복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무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재성이 형욱의 삶을 살면서 은주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다는 의무감을 깨달으며 남자로써, 성인으로써 한단계 성장하는 것입니다.

 

과연 누가 더 행운인 것일까요? 부유한 킬러에서 가난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게된 형욱일까요? 아니면 찌질한 삶에서 부유한 킬러의 삶을 살게된 재성일까요? 분명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재성이 더 행운일테지만, 위험천만한 범죄의 세계에서 언제 죽음을 당할지도 모르는 불안한 킬러의 삶을 재성이 알게되면서 재성보다는 형욱이 더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욱은 아무 것도 없는 재성의 삶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배우로써의 성공도 이루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형욱과 재성 둘 다에게 뒤바뀐 인생은 행운이 됩니다. 만약 인생이 뒤바뀌지 않았다면 형욱은 평생 곁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킬러의 삶을 살았을테고, 재성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며 배우라는 허망한 꿈을 뒤쫓기만 했을테니까요. 다른 사람의 삶을 산다는 것의 행운은 결국 다른 사람의 삶을 온전하게 사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저도 가끔 과거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해서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삶을 살게되면 지금 제 곁에 있는 구피와 웅이가 제 곁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끔 다른 인생을 꿈꾸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형욱과 재성처럼 내 인생에서의 변화를 통한 행복찾기가 아닐까요?

 

 

가끔 짜증날 때도 있지만 결국엔 행복하게 웃는다.

 

사실 [럭키]를 보다가 짜증나는 장면이 몇 잇었습니다. 그 중에서 재성은 초반 모습은 정말 짜증이 나더군요. 옥탑방에서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고 구질구질하게 살았던 것까지는 뭐 인생에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형욱의 집에 가서도 옥탑방에서처럼 마구 어질러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재성이 왜 그따위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주와 사랑을 빠지기 전까지는 재성을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후반 눈치없이 난동을 피우는 리나에게도 짜증이 났습니다. 특히 컨테이너에서 리나가 큰 소리로 말하는 장면에서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관객들조차 '도대체 왜 저래?'라며 짜증을 내는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영화 후반 악덕 기업주들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보여주지 않은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들은 이 영화의 유일한 악역인데, 그들이 최소한 법의 심판을 받는 장면이 짧게라도 나왔다면 속이 시원했을테지만, [럭키]는 영화의 엔딩 코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그러한 속시원한 장면을 생략해버립니다.

뭐 이렇게 약간의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저는 전반적으로 [럭키]를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조윤희는 정말 귀여웠고, 임지연도 제게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킬만큼 매력적이었습니다. 맛깔스러운 조역으로써의 조한철도 인상적이었으며, 형욱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는 후반 반전도 깔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의 제목이 '럭키'가 아닌 '해피'라고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는 것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내 삶의 진정한 행복을 되찾는 것이

진정한 '럭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