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범죄의 여왕] - 사소한 과정을 거쳐 거대한 결론에 도달하다.

쭈니-1 2016. 10. 18. 11:03

 

 

감독 : 이요섭

주연 : 박지영, 조복래, 김대현, 허정도

개봉 : 2016년 8월 25일

관람 : 2016년 10월 1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시작은 수도요금 120만원 때문이었다.

 

가끔 저예산 독립영화 스타일의 영화에서 엉뚱한 재미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저예산 영화이다보니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업영화가 흥행성의 이유로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까지 과감하게 도전하는 패기도 있습니다. [범죄의 여왕]이 바로 그러한 영화입니다.

[범죄의 여왕]은 시골 작은 도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경(박지영)의 이야기입니다. 그녀의 희망은 사법 고시생인 아들 익수(김대현) 뿐입니다. 그런데 사법고시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익수가 사는 고시원의 수도요금이 무려 120만원이나 나오는 어마어마한(?) 일이 발생합니다. 익수는 그냥 돈이나 부치라고 하지만, 불의를 보고 그냥 넘길 수가 없는 미경은 서울로 상경해서 수도요금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분명 소시민에게 120만원의 수도요금은 큰 돈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120만원의 수도요금이 영화화될 정도로 큰 사건은 아닙니다. 간단한 줄거리를 읽고 영화를 선택해야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이렇게 미약하게 시작하는 영화를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저예산 독립영화의 힘입니다. 이요섭 감독은 고작 120만원의 수도요금 사건이 점점 커져서 살인사건으로까지 발전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도대체 물을 얼마나 쓰면 수도요금이 120만원이나 나올까?

 

 

수도요금 사건의 용의자들.

 

미경이 익수의 수도요금 120만원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면서 [범죄의 여왕]은 스릴러의 모양새를 가집니다. 스릴러라함은 역시 용의자가 관객에게 제시되어야 겠죠? 그래서 미경은 첫번째 용의자로 수상해도 너무 수상한 관리소장 박세주(오창경)와 관리소 직원 이태길(이성욱), 개태(조복래)를 지목합니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를 자주 보는 분들이라면 그들은 범인이 아님을 쉽게 눈치챌 것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수상한 기운을 잔뜩 표출하는 그들이 범인이라면 [범죄의 여왕]은 스릴러로써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수상했던 그들은 고시생들에게 불법 식음료를 제작 판매한 일당이었음이 밝혀집니다. 수도요금 사건이 불법 식음료 제작으로 발전한 셈입니다. 그러나 미경은 멈추지 않습니다. 아직 가장 중요한 수도요금 120만원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기에...

두번째 용의자는 익수의 옆집인 403로 강하준(허정도)입니다. 404호에 사는 익수의 수도계량기는 403호와 함께 쓰는 것이기에 익수가 수돗물을 쓰지 않았다면 범인은 403호에 사는 하준일 수 밖에 없는 것이죠. 미경이 하준을 의심하기 시작하자 하준에 대한 제보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402호에 사는 진숙(이솜)은 결정적인 제보를 미경에게 합니다.

 

아줌마, 아무리 생각해도 403호 아저씨가 수상해요.

 

 

그렇다면 403호는 왜 수돗물을 많이 쓴 것일까?

 

사실 수도요금 120만원의 용의자는 한정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수도계량기를 조작할 수 있는 관리사무소 직원과 수도계량기를 같이 쓰는 403호 강하준, 둘 중 하나인 셈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도요금 120만원의 진실은 범인이 누구냐로 끝나는 것이 아닌 '왜?' 라는 또 다른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범죄의 여왕]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엔 단순히 수도요금 120만원이었지만, 미경이 진실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사건은 점점 커져만갑니다. 그러면서 사법고시라는 성공을 위해 고시원이라는 지옥에 갇혀 사는 인간군상들의 민낯이 까발려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민낯은 영화 후반 살인사건으로 표현됩니다.

저는 그러한 [범죄의 여왕]의 영화적 화법이 꽤 신선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오지랖 넓은 전형적인 아줌마 미경을 내세워 시종일관 가벼운 분위기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영화 후반 살인사건이라는 다소 무거운 소재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미경과 개태는 끝까지 영화의 분위기를 굳건하게 붙잡은 것입니다. 그 덕분에 저예산 독립영화의 뚝심과 참신함이 돋보였습니다.

 

개태야! 이 영화의 분위기는 우리 둘이 굳건하게 지켜야한단다.  

 

 

당신은 왜 사법고시를 보려 하는가?

 

자! 여기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합니다. 왜 수 많은 사람들이 사법고시에 합격을 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일까요? 사법고시는 대한민국의 법을 집행하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되기 위한 관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법을 집행하기 위해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것이 아닌, 성공을 위해, 돈을 위해, 명예를 위해 사법고시에 매달립니다.

익수는 미경에게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대형로펌의 변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합니다. 왜 판사가 되겠다는 꿈이 바뀌었냐는 미경의 물음에 익수는 돈 많이 버는 것이 최고라고 답변합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사법고시가 아니더라도 다른 손 쉬운 방법이 많을텐데... 결국 오랜 시간 사법고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다보니 익수는 자신이 사법고시에 합격하려 했던 애초의 목표를 잃은 것입니다. 과정의 고단함이 결론을 잡아먹어버린 셈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범죄의 여왕] 역시 과정과는 다른 결론을 이야기합니다. 애초에 미경의 목표는 수도요금 120만원입니다. 하지만 영화 후반에 하준이 자신 때문에 수도요금이 많이 나온 것을 인정함으로써 수도요금 120만원 사건은 해결됩니다. 하지만 미경은 멈추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장보다 커다란 결론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범죄의 여왕]은 사소한 과정을 통해 거대한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그러면서 거대한 과정을 거쳤으면서도 익수처럼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빠지곤하는 우리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립니다. 그것이 바로 저예산 독립영화인 [범죄의 여왕]의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