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브루클린] - 그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내 자신을 위한 삶의 선택

쭈니-1 2016. 9. 30. 16:47

 

 

감독 : 존 크로올리

주연 : 시얼샤 로넌, 에모리 코헨, 돔놀 글리슨

개봉 : 2016년 4월 21일

관람 : 2016년 9월 2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시얼샤 로넌이 숙녀가 되어 돌아왔다. 

 

oksusu 포인트 만기일자가 다가오는 바람에 9월 30일까지 두편의 영화를 서둘러 골라야 했던 저는 제가 아직 안본 영화 리스트를 쭈욱 흝어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내가 이 영화를 아직도 안봤나?'라며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개봉 당시만해도 기대작 1순위에 올려놓고 극장에서 보려고 했던 영화들 중에서 극장에서 놓친 이후 제 기억 속에서 조용히 사라진 영화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영화가 [브루클린]입니다.

[브루클린]은 지난 2016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각색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입니다.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작품성은 인정받은 셈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제 이목을 끄는 것은 [브루클린]으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된 시얼샤 로넌의 성숙한 연기입니다. 제게 있어서 시얼샤 로넌은 [어톤먼트]에서 언니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와 사랑에 빠진 로비(제임스 맥어보이)에 대한 질투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던 철없는 꼬마 여자아이 브라오니였기 때문입니다. [어톤먼트]에서 시얼샤 로넌의 연기는 너무나도 인상작이었기에 저는 시얼샤 로넌를 보기 위해서라도 [브루클린]을 개봉 전부터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브루클린]은 국내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며 제가 극장으로 달려가기도 전에 금방 상영이 종료되었고, 이렇게 제 기억 속에서 잊혀진 것입니다. 지난 목요일, 혼자 [브루클린]을 보며 "내가 어쩌다가 이 영화를 이제서야 봤나?"라며 내 자신을 힐책했습니다.  

 

난 더이상 철없는 질투쟁이 브라오니가 아니다.

 

 

아일랜드의 그녀, 꿈을 찾아 '브루클린'으로 떠나다.

 

[브루클린]은 1950년대 아일랜드에서 시작됩니다. 조그만 점포에서 보잘것없는 점원으로 일하는 에일리스(시얼샤 로넌). 그녀는 언니 로즈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꿈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로즈가 보기에 에일리스는 누구보다 총명했기에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아일랜드에 있기에 아까운 인재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에일리스는 어머니와 로즈를 아일랜드에 남겨두고 홀로 미국행 배에 올라탑니다.

영화의 초반은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에서의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미국행 배에서 멀미와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루고, 하숙집에서도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녀는 고급 백화점 점원으로써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향수병에 걸려 울음을 터트립니다. 하지만 프루드 신부(짐 브로드밴트)의 도움으로 야간대학에서 회계를 배우고, 댄스 파티에서 이탈리아계 청년 토니(에모리 코헨)을 만나며 에일리스는 점차 미국에서의 삶을 적응해나가기 시작합니다.

토니와의 사랑이 깊어지고, 대학에서도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하는 에일리스. 이제 그녀는 촌스럽기만하던 어리버리한 아일랜드 여성이 아닌 세련된 미국인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뜻밖의 비보가 그녀에게 전달됩니다. 언니 로즈의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에일리스, 선글라스도 잘 어울리는 세련된 미국인으로 거듭나다.

 

 

미국의 그녀, 어머니를 위해 아일랜드로 돌아가다.

 

토니와의 사랑과 '브루클린'에서의 삶에 익숙해진 에일리스에게 전해진 언니의 죽음 소식, 그리고 아일랜드에 혼자 남겨진 어머니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결국 에일리스는 아일랜드행 배에 올라탑니다. 토니에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하지만 에일리스가 다시 '브루클린'으로 돌아가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는 안해도 에일리스가 아일랜드에 남아주길 바라고 때마침 그녀 앞에 아일랜드 청년 짐(돔놀 글리슨)이 나타납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토니와의 사랑을 이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가 원하는대로 짐과 결혼하여 고향에 눌러앉을 것인지, 에일리스는 고민에 빠집니다.

어찌보면 [브루클린]은 토니와 짐을 저울질하는 양다리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자 문제는 에일리스의 고민에 대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진짜 문제는 에일리스가 자신의 꿈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족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기로에 서있다는 점입니다. '브루클린'을 선택한다면 그녀는 회계사라는 자신의 꿈과 토니와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며, 아일랜드를 선택한다면 어머니를 모시며 작은 회사에 경리로 일하던 언니의 뒤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가 바라는 것이죠. 에일리스의 고민은 토니와 짐에 대한 선택이 아닌, '브루클린'과 아일랜드에 대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실히 기럭지는 토니보다는 짐이 훨씬 낫다. 

 

 

그녀를 일깨운 것은 악의적인 협박이었다.

 

사실 모든 면에서 토니보다는 짐이 에일리스의 짝으로 어울립니다. 배관공인 토니와는 달리 짐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넓은 집과 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짐을 선택한다면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에일리스는 흔들입니다. 토니에게 돌아오겠다고 굳은 약속을 했건만, 어머니에 대한 그녀의 의무감은 사랑보다 컸습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에일리스는 붙잡아준 것은 의외의 시건에서 비롯됩니다.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으로 가기전에 일했던 점포의 심술궂은 사장인 미스 켈리가 에일리스와 토니의 관계를 알아내고 그녀를 협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에일리스는 깨닫습니다. 그녀가 미스 켈리에게 던진 마지막 한마디는 정말 통쾌했습니다. "잊었어요.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어요." 그렇게 그녀는 방황을 끝냅니다.

분명 에일리스의 선택에 그녀의 어머니는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즈가 에일리스에서 충고를 했듯이 가족이 에일리스의 인생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그녀 스스로가 선택해야할 문제입니다. 어머니를 위해 사랑과 꿈을 포기하면 결국 평생 어머니를 원망하며 살아가겠죠. 그렇기에 아일랜드를 떠나 다시 미국행 배에 올라탄 에일리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당차고 아름다워보였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고 있었습니다.

 

방황을 끝내고 다시 사랑하는 토니의 곁으로...

 

 

시얼샤 로넌을 위한 영화

 

제가 멜로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감성에 흠뻑 젖어 [브루클린]을 감성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는 순백처럼 순수했던 에일리스의 모습에 흐뭇했고, 그녀가 '브루클린'에서의 삶에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했으며, 로즈의 죽음 소식을 듣는 장면에서는 저도 에일리스와 함께 한줄기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영화 중반에 에일리스가 짐에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는 에일리스는 믿었습니다. 그녀라면 자신의 꿈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렇기에 에일리스가 미스 켈리에게 던진 한마디는 통쾌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토니의 품에 안기는 에일리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찡한 감동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브루클린]은 이렇게 완벽하게 시얼샤 로넌의 영화입니다. 그녀는 순수했고, 당찼고, 아름다웠습니다. 한편의 영화에서 이 모든 모습을 보여주다니...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미국으로 가는 아일랜드 여성에게 충고를 하는 에일리스의 모습은 정말 인상깊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더이상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얼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어린 여성이 아닌,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할줄 아는 여성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브루클린]은 에일리스의 성장과 함께 배우 시얼샤 로넌의 성장도 돋보였던 영화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태양이 뜰 거예요.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희미하게 다가와요. 그러다 당신의 과거랑 아무 관련도 없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 거예요. 오로지 당신만의 사람을... 그럼 깨닫게 되겠죠. 거기가 당신의 인생이 있는 곳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