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트릭] - 보고 듣는 것만 믿는 사람들에게...

쭈니-1 2016. 8. 26. 14:59

 

 

감독 : 이창열

주연 : 이정진, 강예원, 김태훈

개봉 : 2016년 7월 13일

관람 : 2016년 8월 25일

등급 : 15세 관람가

 

 

우리는 언론을 믿어도 되는가?

 

저는 가끔 신문기사를 읽거나, TV 뉴스를 볼때마다 '과연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진정한 언론이라함은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려주는 기능을 해야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는 우리나라의 언론을 믿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 4년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를 경험하고나서 부터였습니다.

당시 저는 IMF세대의 현재 모습을 취재한다는 중앙일보 기자의 연락을 받았고, 단순한 호기심에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에서 처음 IMF를 겪었을 때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러한 어려움을 잘 넘겼기에 지금은 희망이 보인다는 취지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중앙일보에 실린 제 인터뷰 기사는 불행과 불운만 가득 담겨져 있었습니다.

저를 취재했던 기자는 제게 전화를 해서 기사의 기획의도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했습니다. 기사의 기획의도에 맞추기 위해 제 인터뷰를 조작한 셈입니다. 실제 그런 일을 겪고보니 다른 기사들 역시 사실 관계와 상관없는 기획의도에 맞춰 조작된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순진한 아저씨야...

언론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거야...

 

 

TV 다큐멘터리는 과연 사실 그대로일까?

 

[트릭]은 '병상일기'라는 TV 다큐멘터리 프로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병상일기'는 폐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도준(김태훈)과 그러한 도준을 정성껏 돌보는 아내, 영애(강예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TV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실제 있었던  어떤 사건을 극적인 허구성 없이 사실적으로 그린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병상일기'의 PD인 석진(이정진)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도준과 영애의 이야기를 조작해나가고, 석진이 제시한 20억이라는 돈에 눈이 먼 영애는 그러한 석진의 조작을 묵인합니다. 도준 입장에서는 자신의 죽음이 사람들의 흥미거리로 전락하는 것이 싫어 촬영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이미 멈추기엔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습니다.

급기야 시청률 35%를 넘기면 보도국으로 복귀시켜준다는 방송국 사장(송영규)의 제안을 받은 석진은 '병상일기'의 마지막 회에 도준의 죽음을 담기 위한 위험한 계획을 세웁니다. 석진의 위험한 계획을 눈치챈 '병상일기'의 스탭들은 물론 거액의 찬조금을 제시받은 영애조차 눈과 입을 닫아버린 상태. 그렇게 '병상일기'는 최고의 시청율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립니다.

 

자! 이제 도준씨가 죽기만 하면 되요.

어차피 며칠 더 산다고 나아질 것도 없잖아요. 살사람은 살아야죠.

 

 

언론의 역기능에 대한 신인감독의 당찬 출사표

 

[트릭]은 언론의 역기능을 적나라하게 고발한 신인 이창열 감독의 패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죽음을 앞둔 도준을 시청률의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석진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기 위해서 온갖 치사한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그는 죄책감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그저 보고 듣는 것만 믿는 어리석은 시청자들을 비웃을 뿐입니다.

석진은 이미 쓰레기 만두 파동의 오보 때문에 만두 제조업체 사장을 자살로 몰고간 전력이 있습니다. 사실 그대로를 방송해야 하는 보도국의 PD이지만 시청자들을 충격에 몰아넣을 자극적인 고발을 위해 사실 관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쓰레기 만두 파동을 보도한 석진. 하지만 그는 역시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단지 방송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잇는 것 아니냐고 항변할 뿐입니다.

[트릭]에서 인용된 쓰레기 만두 파동은 실제 2004년에 일어났던 불량 만두소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언론은 쓰레기 만두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대서특필했고, 우리의 먹거리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분노했습니다. 결국 비난 여론과 경찰의 무리한 과잉단속에 만두업체 비전푸드 사장이 한강에 투신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대한민국을 분노로 몰고간 만두 제조업체 대표들에게 결국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비운의 주인공도 얼굴이 예뻐야 시청률을 올릴 수 있다.

 

 

신인감독의 패기는 끝까지 가지 못했다. (영화의 반전을 언급합니다.)

 

영화의 중반까지 [트릭]은 언론의 조작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인 쓰레기 만두 파동을 적절하게 인용했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그 어떤 짓도 서슴치 않는 석진과 점점 방송에 중독되어 촬영하기전 화장을 하고 옷에 신경을 쓰는 영애의 모습을 통해 영화의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해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저예산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영화입니다. 석진이 시청율을 올리기 위해 방송을 조작하듯이 이창열 감독은 [트릭]을 반전이 돋보이는 상업 스릴러 영화로 만들기 위해 무리한 반전을 영화의 후반부에 억지로 끼워 넣습니다. 사실 저는 도준이 아버지를 회상하며 우는 장면에서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여준 자살한 식품업체 대표가 도준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눈치챘습니다.

도준의 아버지가 석진의 과거 오보 때문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나면 이 모든 것이 석진에 대한 도준과 영애의 복수극이라는 것은 굳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지 않더라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창열 감독이 신인 감독이다보니 마지막 반전을 효과적으로 숨기는 것에 미흡했고, 그것은 [트릭]을 결국 김빠진 맥주같은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버립니다. 

 

무슨 아마추어도 아니고 반전을 이렇게밖에 못 숨겨요?

 

 

차라리 마지막 반전이 없었더라면...

 

[트릭]을 보고나니 지난 7월에 본 [날, 보러와요]라는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날, 보러와요]는 [트릭]과 마찬가지로 강예원이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정신병원 강제입원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직설적으로 담아낸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날, 보러와요] 역시 상업영화일 수 밖에 없다보니 영화 후반부에 무리한 반전을 끼워 넣었고, 이는 곧바로 영화의 헐거운 완성도로 이어졌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창열 감독은 석진을 속이는데 성공한 영애의 모습을 슬로우모션으로 잡아내며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시시콜콜하게 설명합니다. 사실 그 장면에서 헛웃음이 났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슬로우모션도 헛웃음이 났지만,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뻔히 보이는 반전을 온갖 폼을 잡으며 설명하는 꼴이라니...

만약 [트릭]에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반전이 없었다면 오히려 언론, 방송의 조작이라는 소재를 통한 사회성 짙은 드라마가 완성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언론을 통해, 방송을 통해, 보고 들은 것만 믿는 사람들... 어쩌면 그러한 우리들 역시 언론과 방송을 조작하는 이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는 반성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트릭]은 신인감독의 뚝심을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했고, 결국 실망스러운 스릴러 영화로 막을 내려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