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경미
주연 : 손예진, 김주혁, 신지훈, 김소희, 최유화
개봉 : 2016년 6월 23일
관람 : 2016년 8월 5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매력적인 스릴러처럼 보였다.
제가 이런 저런 이유로 한참동안 영화 슬럼프에 빠져 있었던 지난 6월은 극장에서 놓친 영화가 참 많습니다. 그 중에서 [레전드 오브 타잔]과 더불어서 극장에서 못봐 너무 아쉬웠던 영화가 바로 [비밀은 없다]입니다. [비밀은 없다]는 우리나라 여배우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손예진이 주연을 맡았고, 영화의 장르 역시 제가 좋아하는 스릴러입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내용은 국회입성을 노리는 정치 신예 김종찬(김주혁)과 그의 아내 김연홍(손예진)을 중심으로, 선거를 보름 앞둔 어느날 그들의 고등학생 딸 김민진(신지훈)이 실종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연홍은 민진을 찾기 위해 여념이 없지만, 그러한 와중에도 종찬은 선거에만 신경을 씁니다. 결국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연홍은 스스로 딸의 흔적을 쫓으며 충격적이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쯤되면 제가 개봉과 동시에 극장으로 달려가 볼만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는 흥행에 실패하며 빠르게 극장 개봉이 마감되었고, 결국 저는 이렇게 이 영화가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되기만을 기다려야했습니다. 그리고 제 여름휴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금요일 밤, 드디어 [비밀은 없다]를 관람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평범한 스릴러는 아니다. (스포 있습니다.)
일단 [비밀은 없다]의 시작은 제가 예상했던대입니다. 야망이 있는 종찬과 연홍 부부. 그런데 두 사람의 야망을 펼치기 시작하자 사건이 발생합니다. 미진이 사라진 것이죠. 이미 가출 이력있기에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려하지 않고, 종찬 역시 미진의 실종이 오히려 선거에 영향을 끼칠까봐 걱정하는 눈치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홍은 스스로 미진을 찾아 나섭니다.
하지만 이후부터 [비밀은 없다]는 제가 전혀 예상하지 하지 못한 전개로 흐릅니다. 영화의 초중반에 미진이 살해된채 발견된 것입니다. 저는 결국에 연홍이 미진의 납치범의 정체를 밝히고, 미진을 되찾으며 영화가 끝날 것이라 지레 짐작했었는데, [비밀은 없다]는 미진의 죽음이라는 강한 충격파를 통해 그러한 평범한 전개를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미진의 죽음과 함께 [비밀은 없다]는 더욱 평범하지 않은 전개를 보여주는데, 저는 이 영화가 흥행을 위해 만들어진 상업영화가 아닌, 감독의 독특한 연출세계가 강조된 저예산 독립영화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밀은 없다]의 감독은 [미쓰 홍당무]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이경미 감독입니다.
정치 스릴러가 이 영화의 독특함에 끼친 영향
제가 [비밀은 없다]가 결코 평범하지 않은 스릴러 영화라는 생각을 한 이유를 지금부터 하나씩 되짚어 보겠습니다. 우선 이 영화는 정치 스릴러 영화입니다. 강우석 감독이 1991년 연출한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를 통해 우리나라의 정치 스릴러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25년이 흘렀어도 정치 스릴러 영화는 여전히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제도권 밖의 장르입니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강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정치 스릴러는 결코 관객이 좋아할만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밀은 없다]는 정치 스릴러를 효과적으로 영화의 독특함에 접목시킵니다. 딸이 실종되었지만 선거에만 신경을 쓰는 종찬, 연홍은 어쩌면 종찬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미진을 납치하고 살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 하게 됩니다. 결국 정치 스릴러라는 이 영화의 장르는 연홍을 남편조차 믿을 수 없는 고립상태로 빠뜨립니다.
게다가 종찬이 출마한 지역은 경상도이지만, 연홍의 출신지역은 전라도입니다.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지역감정을 [비밀은 없다]는 스릴러의 장치로써 완벽하게 활용하는데, 연홍이 전라도 사투리로 종찬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을땐 나도 모르게 묘한 긴장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나는 내 자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정치 스릴러라는 장르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독특하게 했다면, 연홍이 미진의 실종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은 [비밀은 없다]의 전개를 독특하게 만듭니다. 영화 초반 미진의 모습은 그저 밝고 명량한 여고생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지만 연홍이 미진의 실종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그녀의 주변인물들을 만나면서 연홍은 자신이 미진의 엄마이면서 미진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미진이 학교에서 왕따였다는 사실, 그리고 미진이 작사 작곡했다는 독특한 분위기의 음악들, 그리고 미진의 성적이 갑자기 오른 진짜 이유까지... 미진에게 있어서 유일한 단짝 친구인 최미옥(김소희), 그리고 미진에게 학교 시험 문제를 이메일로 보내준 학교 선생님 손소라(최유화) 등은 연홍에게 미진에 대한 서로 다른 증언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족, 자식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요? 만약 연홍이 미진의 시험 성적이 갑자기 오른 것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의심을 했다면, 종찬의 정계 진출만큼이나 미진에게 신경을 썼더라면, 어쩌면 미진의 비극은 막아낼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미진과 미옥이 함께 만들었다는 독특한 음악과 함께 연홍의 혼란, 후회,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는 이 영화가 평범한 스릴러가 되는 것을 막아냅니다.
내가 손예진을 좋아하는 이유
솔직히 저는 [비밀은 없다]의 마지막 반전을 어렵지 않게 맞혔습니다. 소라의 섹스 비디오를 갖고 있었던 미진. 저는 소라의 섹스 상대가 종찬이라는 것과 미진의 청부살해를 의뢰한 것 또한 종찬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챘습니다.(물론 종찬은 섹스 비디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의 딸인줄은 몰랐지만...)
대개 마지막 반전을 들킨 스릴러 영화는 영화를 보고나서 '싱겁다'라는 느낌을 받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비밀은 없다]를 보고나서는 마지막 반전을 맞혔음에도 불구하고 '싱겁다'라는 생각보다는 '독특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종찬에 대한 연홍의 마지막 복수까지 [비밀은 없다]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까지 결코 독특함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독특함에는 역시 손예진이 있습니다. 제가 손예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코 에쁜척하지 않고 파격적인 캐릭터도 주저없이 연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불륜에 빠진 평범한 주부(외출), 소매치기녀(무방비 도시), 일처다부제를 실현하는 당찬 여성(아내가 결혼했다), 남자를 이용하는 팜므파탈(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아버지의 유괴살인을 눈감아주는 딸(공범), 여자 해적(해적 : 바다로 간 산적) 등등... 이번 [비밀은 없다] 역시 딸의 실종사건을 파헤치며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되는 연홍을 연기하며 손예진 특유의 파격적인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습니다. 이경미 감독의 독특한 연출력과 손예진의 파격적인 연기만으로도 [비밀은 없다]를 싫어할래야 할 수가 없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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