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셀 : 인류 최후의 날] -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은 없다.

쭈니-1 2016. 8. 10. 23:31



감독 : 토드 윌리엄스

주연 : 존 쿠삭, 사무엘 L. 잭슨, 이사벨 퍼만

개봉 : 2016년 6월 29일

관람 : 2016년 8월 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내 나름대로의 여름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8월 8일 월요일부터 8월 11일 목요일까지가 제 여름휴가입니다. 하지만 장인이 입원하셨기에 휴가여행은 애초부터 불가능했고, 구피와 여름휴가 일정도 엇갈려 버렸습니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간 웅이는 봉사활동을 해야했기 때문에 웅이와 함께 하루종일 영화를 보려던 계획도 어긋나버렸습니다. 결국 3일간 저는 웅이의 봉사활동에 쫓아가 웅이가 끝나기를 하염없이 기다다니며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8월 8일 월요일, 강서구민회관에서 오전에 봉사활동을 하는 웅이를 기다리며 할일이 없어서 뙤약볕아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우장근린공원을 배회하고, 전날 보다가 중단한 [엽기적인 그녀 2]도 억지로 봤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차피 이렇게된거 기왕이면 내 나름대로 여름휴가를 즐기자고...

그래서 8월 9일 화요일에는 웅이를 기다리며 공포영화 [셀 : 인류 최후의 날]로 무더위를 날렸고, 웅이가 봉사활동을 끝낸 후에는 우장근린공원에서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으며 웅이와의 데이트를 즐겼습니다. 분명 2016년 제 여름휴가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영화와 웅이, 그리고 여유로운 시간이 있기에 저는 여전히 행복합니다.


여름휴가 여행을 가려고 공항에 갔다가 봉변당하지 말고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위에 맞서 싸우자!!! (여행을 가지 못하는 자의 자기최면)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 좀비가 되어버렸다.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만화가인 클레이 리델(존 쿠삭)이 공항에서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관계가 소원해진 아내와 어떻게든 새롭게 시작해서 아내와 아들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은 클레이.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서 전화가 끊겨집니다. 급하게 공중전화로 못다한 말을 전하려는 클레이 앞에 공항 내에 있는 사람들이 미치광이처럼 날뛰기 시작합니다.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정체 모를 전파가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셀 : 인류 최후의 날]의 시작은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제는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휴대폰. 단 한순간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으려하지 않는 휴대폰 중독자들이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요즘 (그래도 극장에서 만큼은 휴대폰을 손에서 놓았으면...)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휴대폰의 전자파로 인류는 최후의 날을 맞이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클레이는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미처버린 세상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괴짜 무신론자 톰 맥코이(사무엘 L. 잭슨)와 휴대폰 좀비가 되어버린 엄마를 죽인 소녀 앨리스(이사벨 퍼만)가 함께합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끔찍한 사건과 마주하게 될까요? 일단 시작이 좋으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톰 맥코이와 앨리스가 왜 아내와 아들을 찾는 클레이 리델의 모험에 동행하는지 이해안되지만

어찌되었건 꽤 그럴싸한 팀이 완성되었다.



중반 전개가 너무 얼렁뚱땅이다.


하지만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인상적인 시작을 중반 이후까지 끌고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휴대폰 좀비에 대한 사람들의 대응이 너무 얼렁뚱땅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와 비슷한 소재를 가진 [부산행]을 예로 들겠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좀비로 변하는 상황과 맞딱뜨리게되면 일단 사람들은 이게 뭔일인지 우왕좌왕하게 되고, 공포에 질리게 되며, 살고자하는 본능으로 무조건 도망을 치게 됩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상황을 인식하고 이성을 찾게되면 그제서야 대비책을 마련하고 상황을 해결하려합니다.

그런데 [셀 : 인류 최후의 날]에는 그러한 과정이 없습니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클레이는 처음에 우왕좌왕하고, 공포에 질립니다. 그러다가 아내와 딸을 구하겠다는 목표가 생기면서 무작정 길을 나섭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겪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행동합니다.

휴대폰 좀비들이 밤만되면 마치 휴대폰을 충전하듯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사실을 클레이 일행에게 알려주는 교장만해도 마치 이러한 일을 몇년동안 겪었다는 듯 너무나도 여유롭습니다. 클레이가 아내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 사건 발생 후 하루, 이틀 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감안한다면 교장이 휴대폰 점비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저 영화의 러닝타임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어떻게 그들은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일까?



점점 초자연적 공포영화가 되어간다.


어쩌면 이러한 얼렁뚱땅 전개는 방대한 원작을 2시간 남짓하는 영화로 옮기는데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점점 이상해집니다. 이 영화는 일단 공포영화입니다. 사람들이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모를 전파로 인하여 좀비가 된다는 설정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설정에 공포심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후반부가 되면서 뭔가 그 이상의 것을 원했나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클레이의 만화속 캐릭터가 클레이, 톰, 앨리스의 꿈에 똑같이 등장한다는 설정입니다. 만약 정체불명의 빨간 후드티를 입은 캐릭터가 클레이의 꿈에만 나왔다면 어느정도 말이 됩니다.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클레이는 자신이 그린 만화 속 세계관을 떠올렸고, 그렇게 현실과 만화속 세계를 혼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톰과 앨리스는 물론, 숲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빨간 후드티를 입은 자가 꿈에 나왔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는 이 영화의 장르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감독의 연출력 부족에 의한 의도되지 않은 억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간 후드티를 입은 자가 나타나며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점점 알 수 없는 전개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구냐, 넌???



결과만 있을 뿐, 과정은 없다. (이후 영화의 결말이 언급됩니다.)


[셀 : 인류 최후의 날]은 결국 어린 아들을 찾아 떠난 클레이의 모험담입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클레이는 결국 아들과 만납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해피엔딩은 아닙니다. 물론 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클레이의 목적이 휴대폰 좀비가 되지 않고 아들을 구하는 것이라면 결국 클레이는 실패합니다. 클레이도 그의 아들도 이미 휴대폰 좀비가 되어 버리니까요.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누군가 일부러 송신탑에서 이상한 전파를 흘러 보낸 것일까요? 아니면 영화 속 교장의 말처럼 모든 인간이 하나의 거대한 군체가 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진화인 것일까요? 문제는 [셀 : 인류 최후의 날]이 영화에 대한 당연한 질문에 아무런 답변이 없다는점입니다. 분명 모든 사람들이 휴대폰 좀비가 되어버리는 결과는 이는데, 왜 그들이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없습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나서도 뭔가 찝찝한 기분이 남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영화 속 휴대폰 좀비가 인류의 진화라면 저는 그러한 진화를 거부하겠습니다. 사람들 하나 하나가 거대한 군체가 되어 행동을 한다면 전쟁도, 싸움도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겠죠. 하지만 각자의 개성없이, 각자의 생각없이 그저 숨만 쉬면서 사는 삶을 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과 만났지만 결국 휴대폰 좀비가된 클레이의 모습은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영 개운치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