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근식
주연 : 차태현, 빅토리아, 배성우, 후지이 미나
개봉 : 2016년 5월 12일
관람 : 2016년 8월 8일
등급 : 15세 관람가
이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한다.
저는 영화를 볼 때 주변 환경을 중요시합니다. 제가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 조성이 되어야만합니다. 그래서 될수있지만 영화를 극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고(가끔 극장에서도 극장 에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몰지각한 인간들 때문에 제 집중력은 흐터지긴 하지만...) 집에서 영화를 볼때는 모두가 잠든 한 밤중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 2]를 볼땐 그러한 환경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친구들과 술한잔 하기로 약속한 저는 약속장소로 가기 위한 시끌벅적한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끼고 [엽기적인 그녀 2]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요일 오후에 지하철에서 절반정도 본 [엽기적인 그녀]는 월요일 오전, 웅이의 봉사활동을 위해 간 강서구민회관에서 웅이를 기다리며 영화의 남은 잘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엽기적인 그녀 2]를 볼 당시의 제 주변환경은 영화에 전혀 집중을 할 수 없는 최악의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만큼 [엽기적인 그녀 2]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없었고, 막상 영화를 보고나서도 제가 우려했던 것보다 영화가 훨씬 더 엉망이어서 이렇게 짜투리 시간에 영화를 후다닥 보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 따위로 영화를 만들다니... 일단 한대 맞고 시작하자!!!
처음부터 이 영화에 기대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저는 2001년 개봉해서 당시 흥행 대성공을 거둔 [엽기적인 그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곽재용 감독의 엉뚱한 연출력은 분명 제 취향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원작은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당시 저는 인터넷이 서툰 컴맹이었지만, 그래도 <엽기적인 그녀>만큼은 열심히 읽으며 혼자 낄낄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엽기적인 그녀]의 흥행 성공 이후 곽재용 감독은 원작과는 상관없는 프리퀼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2004년에 연출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리메이크된 할리우드판 '엽기적인 그녀' [마이 쎄시 걸]이 2008년에 국내에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는 물론, [마이 쎄시 걸]또한 흥행에 실패하고 맙니다. 이에 굴하지 않고 이번엔 아예 '엽기적인 그녀'의 정식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엽기적인 그녀 2]가 제작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부터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차태현이 [엽기적인 그녀]에 이어 또다시 주연을 맡았다고해도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이 출연하지 않는 [엽기적인 그녀 2]라니... 그래도 저는 15년만에 제작된 속편 [엽기적인 그녀 2]를 극장에서 볼 계획을 세워뒀었습니다. 하지만 개봉일이 다가오며 예고편, TV 영화소개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엽기적인 그녀 2]의 장면들이 조금씩 공개되며 오히려 영화에 대한 제 기대감은 점점 땅으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차태현 없이 전지현 혼자 버틴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전지현 없이 차태현 혼자 버틴 [엽기적인 그녀 2]
결국 차태현과 전지현의 완전체는 이뤄질 수가 없단 말인가?
견우가 '엽기적인 그녀'와 결혼을 한다면?
[엽기적인 그녀]는 순진한 청년 견우(차태현)와 '엽기적인 그녀'(전지현)의 연애담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와 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2]는 견우와 그녀의 결혼 생활로 꾸며져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사이 전지현이 너무 거물급 배우가 되어버렸다는 점입니다. 결국 전지현을 캐스팅하지 못한 [엽기적인 그녀 2]는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빅토리아를 캐스팅한 후 견우와 억지 결혼을 시키며 [엽기적인 그녀 2]를 이끌어 나갑니다.
전문 배우가 아닌 중국 국적의 걸그룹 멤버 빅토리아를 캐스팅한것은 [엽기적인 그녀 2]가 한국 시장 뿐만 아니라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실제 [엽기적인 그녀]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그렇기에 15년이 지난 후에도 이렇게 속편이 만들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빅토리아를 캐스팅함으써 중국시장을 노리고, 조연으로 일본 배우인 후지이 미나를 캐스팅함으로써 일본 시장까지 노린 [엽기적인 그녀 2]는 그러나 캐스팅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영화의 재미는 방치해둬버렸습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엽기적인 그녀 2]에 '엽기적인 그녀'가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엽기적인 그녀'를 꼭 전지현이 해야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지현을 대신해 제2의 '엽기적인 그녀'가 된 빅토리아는 전혀 엽기적이지 않는 그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빅토리아... 귀엽다... 하지만 엽기적이지는 않다.
전혀 엽기적이지 않은 그녀를 가지고 이 영화를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가?
[엽기적인 그녀 2]의 문제점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어린시절 결혼약속만 믿고 성인이된 후 난데없이 나타나 견우에게 결혼을 하자고 들이대는 그녀, 그녀가 결혼하자고하자 '네 감사합니다.'라는 정신으로 넙죽 결혼을 해버리는 견우. 이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전지현을 캐스팅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는 무리수라고 이해하며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견우와 그녀의 결혼 이후에도 문제는 전혀 호전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엽기적인 그녀'의 살벌한 내조가 시작된다며 영화의 포스터에 광고카피를 적어냈지만, 그 어디에 살벌한 내조가 있다는 것인지... 오히려 견우과 그녀의 결혼생활은 너무 평범해서 어리둥절할 뿐이었습니다. 하긴 그녀 자체가 엽기적이지 않은데 그녀의 내조가 엽기적일리가 없죠.
오히려 저는 지방대 출신을 신입사원으로 뽑으라는 정부의 압력 덕분에 대기업에 취업한 견우가 회사에서 겪게되는 일들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회사 생활이 힘들면 집에 와서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이죠. 견우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굴욕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버티지만, 그것이 오히려 견우의 가정을 파탄에 빠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견우의 아내인 '엽기적인 그녀'보다
견우의 회사동료인 유코가 훨씬 매력적이었다.
도대체 왜 속편을 만든 것일까?
[엽기적인 그녀 2]를 보며 계속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왜 만든 것일까? 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전혀 엽기적이지 않고, 도대체 영화를 보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갈피도 잡을 수 없을만큼 영화는 일관성도 없고, 엉망진창입니다. 갑자기 결혼하고, 갑자기 취직하고, 갑자기 직장 상사에게 갑질을 당하고, 갑자기 그녀는 떠나고, 갑자기 견우는 그녀를 찾아 용서를 빕니다. 그냥 이 영화엔 전개 따위는 없습니다. 그저 갑자기 벌어지는 사건의 나열만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흥행에 성공한 전편의 후광을 등에 업었다고해도 영화가 재미없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셀수도 없을만큼 수 많은 실패한 속편 영화들을 봐왔습니다. 이제 [엽기적인 그녀 2]가 그러한 실패한 속편의 한자리를 차지해야할 것 같네요.
그리고 중국배우, 일본배우를 캐스팅한다고해서 한류 영화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영화는 재미있어야하고, 그러한 재미가 담보되지 않는다면 관객의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2]를 보며 도대체 이 영화는 무엇을 영화적 재미로 내민 것인지 궁금해지더군요. 과연 제작사는,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는 이러한 내용이 진정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일까요? [엽기적인 그녀 2]를 보고나서 저는 그것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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