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6년 영화이야기

[007 카지노 로얄] - 초심으로 돌아가다.

쭈니-1 2009. 12. 8. 19:16


 


감독 : 마틴 캠벨
주연 : 다니엘 크레이그, 에바 그린
개봉 : 2006년 12월 20일
관람 : 2006년 12월 23일
등급 : 15세 이상

황금의 크리스마스 연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3일 금요일은 하루가 정말 길었답니다. 오늘만 지나면 황금의 크리스마스 3일 연휴라는 사실을 알기에 어서 빨리 하루가 지나가길 바랬지만 그런 제 바램과는 달리 하루는 아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구피는 회사에서 회식이 있다며 늦는다고 제게 통보해놓은 상황. 같이 영화 보며 연휴의 시작을 즐기려 했지만 처음부터 그러한 계획은 수포가 되어 버린 셈이죠.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미 전날 [박물관이 살아있다], [중천]을 연달아 혼자 보며 혼자 영화 보기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떨쳐냈으니까요.
퇴근길에 극장에 들려 이번 주 기대작중 하나인 [007 카지노 로얄]을 예매하고, 웅이와 아주 잠시 동안 아빠노릇 충실히 한 후 서둘러 극장으로 되돌아가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마음 같아선 아직 보지 못한 [로맨틱 홀리데이], [미녀는 괴로워]까지 밤새워 보고 싶었지만 [007 카지노 로얄] 한 편으로 연휴의 시작을 마무리 짓기로 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니 새벽 3시까지 술 마시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구피가 벌써 들어와 있더군요.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감기몸살로 벌써 2일째 끙끙 앓고 있었던 겁니다. 혼자 영화 보느라 매일 집에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구피가 아픈지도 몰랐던 저는 갑자기 죄책감에 휩싸이고 말았습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보며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던 저는 막상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구피에겐 지금까지 소홀했던 겁니다. 밤새 끙끙 앓으며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는 구피를 말없이 바라보며 고작 '많이 아파?'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제 자신이 초라했습니다.
이제 곧 결혼 만 4년에 접어드는 저도 어느새 구피에게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 끝나는 그 순간까지 구피만을 사랑하고 아껴주겠다고 다짐했건만 구피가 아픈 것도 모르고 극장에서 혼자 영화를 즐겼던 제 자신을 생각하니 제가 구피에게 가진 사랑이 겨우 이것밖에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처음 구피를 사랑했던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구피는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제겐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이기에...
그리고 여기 저처럼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007 카지노 로얄]입니다.


 

 


제임스 본드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007 제임스 본드는 어떤 캐릭터일까요? 수십 번이나 인류의 평화를 지킨 영국 최고의 스파이이며, 살인 면허가 있는 위험한 남자이고, 양복이 잘 어울리는 멋쟁이 신사이며, 본드걸이라 일컬어지는 미녀들과 밀회를 즐기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입니다.
하지만 과연 제임스 본드는 처음부터 최고의 스파이였으며, 타고난 바람둥이였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다면 [007 카지노 로얄]이 그 해답을 제시할 것입니다. [007 카지노 로얄]은 이안 플래밍이 제임스 본드를 탄생시킨 첫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처음으로 살인면허와 007이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은 제임스 본드가 어떻게 오늘날의 영웅에 이르렀는지 그 캐릭터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이쯤 되면 영화 한편이 떠오르실 지도 모르겠네요. 그것은 작년 여름에 개봉한 [배트맨 비긴스]입니다. 하지만 이 두 영화는 여실히 다릅니다. 똑같이 영웅의 시작을 탐구한 영화이지만 [배트맨 비긴스]는 최악으로 추락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처음으로 돌려놓으려는 시도를 한 영화이고, [007 카지노 로얄]은 최절정에 오른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를 처음부터 살펴보려는 시도를 한 영화입니다.
[007 카지노 로얄]은 [007 시리즈]에 대한 마틴 캠벨 감독의 오마쥬와도 같은 영화입니다. 마틴 캠벨 감독은 처음으로 피어스 브로스넌을 제임스 본드로 캐스팅한 [007 골든아이]를 통해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마스크 오브 조로], [버티칼 리미트] 등을 통해 흥행 감독으로 자리매김을 한 인물입니다.
마틴 캠벨 감독은 자신을 지금의 위치까지 오르게 해준 은인과도 같은 영화를 위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니엘 크레이그를 새로운 제임스 본드로 기용하여 기존의 제임스 본드의 이미지와는 상반된 거친 야생마 같은 제임스 본드를 완성해냅니다. 그는 관객에게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007 시리즈]가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영화로 자리매김하며 제임스 본드가 점점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영웅이 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가 처음부터 멋쟁이 바람둥이는 아니었으며 그도 지금의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말할 수 없는 아픔과 사랑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초보 시절 제임스 본드는 이랬다.

이 영화는 다른 [007 시리즈]와는 달리 상당히 평범한 오프닝으로 시작합니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조국을 배신한 지국장을 암살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제임스 본드는 아주 냉철하게 그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것이 그의 첫 임무였으며 그로인해 그는 더블오의 암호명을 받게 됩니다.
암호명 007이 된 제임스 본드. [007 카지노 로얄]은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하지만 제임스 본드에게 007이라는 암호명이 주어지는 그 순간부터 갑자기 무한 속도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마다가스카에서 벌어지는 세바스찬 푸캉과 펼치는 거침없는 질주 액션은 이 영화의 액션이 이전의 [007 시리즈]와 어떻게 다른지 여실히 보여주는 명장면입니다. 떨어지고, 맞고, 피를 흘리며 어렵게 임무를 수행하는 제임스 본드의 모습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것은 비단 저만은 아닐 겁니다.
치외 지역인 대사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도 여유만만하게 상관인 M의 집에 몰래 침입해 그녀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 야생마 같은 사내는 상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혼자 임무를 수행하며 표적을 향해 거침없이 다가섭니다.
하지만 도저히 제어가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제임스 본드에게 베스퍼 린드(에바 그린)라는 여인이 다가서며 분위기는 급반전됩니다. 영국 재무국 직원으로 제임스 본드의 자금 관리를 위해 특별 파견된 베스퍼 린드는 어느새 이전의 본드걸이 그랬듯이 제임스 본드와의 러브 분위기로 영화를 이끕니다.
이제 제임스 본드는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으로부터 지구를 지키고 베스퍼 린드와 여유로운 밀회를 즐기면 영화는 '만사오케이'라고 생각했건만 마틴 캠벨 감독은 그렇게 쉽게 제임스 본드의 성장통을 가볍게 넘길 생각이 없었나봅니다. 모든 임무가 끝나고 악당의 음모를 저지했다고 생각되는 바로 그 시점에서 [007 카지노 로얄]의 진정한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그를 변화시켰다.

만약 베스퍼 린드를 이전 [007 시리즈]에서 어김없이 등장했던 본드걸로 치부한다면 여러분들은 영화의 마지막 순간 예상치 못한 장면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본드걸이 인류의 평화를 지킨 제임스 본드에게 상으로 주어지는 한순간의 쾌락과도 같은 가벼운 존재라면, 베스퍼 린드는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바람둥이 제임스 본드를 존재시킨 원류와도 같은 여인입니다.
베스퍼 린드는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었던 야생마 같은 그를 사랑에 빠진 부드러운 남자로 변화시켰으며, 조국을 위해, 그리고 인류를 위해 거침없는 살인을 저지르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올바른 일을 찾겠다는 생각을 가지게끔 만든 여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소중한 여인이었기에 그로인한 상처는 너무나도 컸으며, 결국 제임스 본드는 지금의 냉소적이며, 냉철한,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스파이가 되어 버린 셈이죠. 고아였던(것으로 추정되는) 그에게 베스퍼 린드와의 사랑과 상처는 충분히 그 자신을 바꾸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니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던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가 갑자기 애착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액션 영화를 좋아하지만 [007 시리즈]는 킬링타임 그 이상의 값어치를 느끼지 못했던 저로써는 그러한 제임스 본드의 재발견은 분명 대단한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007 시리즈]를 볼 때마다 멋진 척, 젠틀한 척, 사랑 따위는 믿지 않는 척하는 그의 내면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베스퍼 린드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될 것만 같습니다.


 

 

 



IP Address : 211.211.31.237 
규허니
불법으로 다운받아서 볼려고 벼르고 곰플실행시켰는데...
자막이..아놔..ㅜㅜ 역시 비디오나오면 보는게 나을까요?
 2007/01/02   
쭈니 이런 액션 영화의 경우는 다운받아보시면 거의 대부분 실망스러울듯...
차라리 비디오가 나을듯 하네요. ^^
 2007/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