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의석
주연 : 김상경, 박용우, 한보배
개봉 : 2006년 12월 13일
관람 : 2006년 12월 15일
첫 만남은 언제나 설렌다.
CGV 서포터즈가 된 후 처음으로 CGV 서포터즈 중 서부지역 멤버들과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갖던 날. 아침부터 마음이 설렘으로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드디어 퇴근 시간, 가방을 챙기고 컴퓨터를 끄고 회사를 나오려는데 동료가 저녁 사주겠다고 꼬드깁니다.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다며 뿌리치고 약속 장소인 CGV 용산으로 향했습니다.
CGV 용산은 언제나 절 헤매게 만듭니다. 원래 심각한 길치인데다가 큰 건물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툭하면 건물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어버립니다. CGV 용산에 처음 왔던 날도 그랬습니다. 여기저기 혼자 헤매다가 건물 계단에 갇혀버렸었죠. 그래도 몇 번 왔다고 이번엔 많이 헤매지는 않고 조금만 헤맨(?) 끝에 다행스럽게 제시간에 약속 시간에 도착하여 반가운 멤버들과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예상대로 저까지 포함해서 5명. 원래 많은 분들이 나오질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실망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많은 분들이 나오셔서 오프 모임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명의 CGV 서포터즈들이 황금빛 카드를 들고 영화표를 끊으니 CGV 직원분이 잠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더군요. 왠지 으쓱하는 기분이... ^^ 워낙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끼리의 만남이다보니 왠만한 영화는 모두들 봤다고 해서 결국 선택한 영화는 [조용한 세상]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스릴러로써는 실패작이다'라는 평을 많이 들었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좋은 분위기에서 영화를 봐서인지 의외로 영화는 재미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간단히 저녁식사하자고 들린 감자탕 집에서 결국 소주로 달리는 바람에 필름이 끊기는 불상사를 맞기도 했지만 그날의 모임은 정말 좋았답니다. 요즘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했는데 그날의 모임 덕분에 스트레스가 확 풀려 버렸다는... 다음에는 좀 더 많은 분들이 모이기를 바라며 새해에는 술을 줄여보겠다는 결심을 하게끔 만들었던 날이었습니다.
과연 스릴러로써는 실패작이더라.
처음 [조용한 세상]이라는 영화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꽤 기대했었습니다. 왠지 신뢰가 가는 김상경과 [달콤, 살벌한 연인]으로 절 완전히 매료시켰던 박용우가 주연을 맡았으며, 겨울 방학 시즌으로는 드물게 스릴러 장르를 표방했기에 로맨틱 코미디가 넘쳐나는 요즘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몇몇 영화평들은 이 영화에 호의적이지 못하더군요. 그 중에서 가장 제 눈에 띈 것은 '드라마로써는 성공적이지만 스릴러로써는 실패작이다'라는 평이었습니다. 스릴러 장르를 표방한 영화가 스릴러로써는 실패작이라는 것은 이 영화가 재미없다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워낙에 실망스러운 스릴러 영화를 많이 접해본 저로써는 일찌감치 [조용한 세상]에 대한 기대를 포기했습니다.
그래도 인연이 닿는 영화는 따로 있다고 어쩌다보니 다른 쟁쟁한 영화들 대신 [조용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보고나서의 소감은 과연 스릴러 영화로써는 그리 성공적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영화라는 것입니다. 일단 이 영화는 스릴러다운 스릴을 영화 속에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소녀들의 납치 살인 사건. 피해자들의 공통점은 위탁아동이라는 것과 마약성분이 함유된 독버섯을 먹었으며, 모두 익사했다는 것. 이 사건을 담당한 김형사(박용우)는 다음 희생자로 수연(한보배)을 지목하고, 그녀의 위탁 보호자인 사진작가 류정호(김상경)와 함께 수연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하지만 철통같은 감시 속에서도 수연은 결국 납치되고 수연을 지키기 위한 김형사와 류정호의 몸부림은 시작됩니다.
결국 이 영화의 스릴은 엽기적인 소녀 납치 살해사건 속에서 수연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범인은 누구이고,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은 바로 관객의 몫입니다. 하지만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너무나도 쉽게 관객 앞에 노출됩니다. 전 처음부터 설마 하다가 장갑을 낀 범인의 장면에서 결국 확신하게 되었답니다. 결국 남은 것은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가?'인데... 이 부분은 스릴러보다는 드라마에 가깝게 표현됩니다.
내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확실히 이 영화는 스릴러로써는 실패작입니다. 워낙에 스릴러 영화를 좋아해서 스릴러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지만 이 영화만큼 범인을 초반부터 쉽게 관객 앞에 노출시킨 영화는 처음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스릴러 영화가 아닌 드라마로 본다면 꽤 감동적인 드라마가 될법합니다.
이 영화는 추잡한 세상 속에서 희생당하는 어리고 힘없는 아이들을 보여줍니다. 어린 류정호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힘이 없었던 까닭에 사랑했던 여자 아이의 자살을 막지 못합니다. 추잡하고 더러운 세상이 눈에 보이지만 그 세상을 바꿀 힘이 없었던 류정호. 그는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립니다.
하지만 세상은 아직도 그에게 손길을 내뻗습니다. 도와달라고. 지하철에서 아들의 치료비를 지닌 아주머니의 가방을 훔치려는 소매치기 일당, 아들은 쓰레기를 먹으며 연명하지만 도와주려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절규하는 무능력한 아빠. 류정호는 결코 자신에게 도와달라는 그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상처받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수연. 그녀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점차 희망을 잃고 마음을 닫아가며 힘들어하는 류정호에게 해맑은 미소를 보여줍니다. 그녀 역시 힘들고 지쳤을 텐데, 오히려 어린 그녀는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지키지 못했던 첫사랑의 그녀, 이제 어른이 된 그는 수연을 지키려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한 아이의 아버지의 입장에서 영화 속에서 비정한 어른들에게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특히 어린 아이가 음식 쓰레기를 먹는 장면에선 고개를 돌리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 어린 애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우리 어른 들이 만들어낸 이 추잡한 세상 위에서 그들은 그렇게 희생당하고 있는 겁니다. 범행의 동기도 어렸을 때 당한 어른들의 폭력 때문이라는 설명에 이르면 한 사람의 어른으로써 저 역시도 창피함을 느낍니다.
이 영화는 그렇게 관객에게 아프게 말합니다. 그런 이 영화의 아픈 이야기들이 스릴러로써는 실패작이지만 드라마로써는 성공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믿음직한 상경씨, 정겨운 용우씨.
스릴러 영화로써 스릴러다운 영화적 재미는 실패한 이 영화는 그래도 다른 관객들이게 추천할만한 영화입니다. 물론 눈가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 감동적인 드라마 장치로써의 완성도 그 이유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김상경과 박용우의 연기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상경은 여전히 믿음직스럽습니다. 대사가 거의 없지만(그 이유는 영화의 마지막에 밝혀집니다.) 그의 눈빛 하나만으로도 정말 이 남자 믿어도 되겠구나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깁니다. 어찌도 저렇게 심려 깊은 눈빛을 가졌는지.
박용우는 여전히 정겹습니다. 지저분하고 자기 몸 사릴 줄 모르는 우리 영화의 전형적인 열혈 형사로 등장하는 그는 마치 맞춘 옷을 입은 듯한 연기를 펼칩니다. 도대체 그 어떤 역활을 맡겨도 그는 어쩜 저렇게 정겹게 연기를 하는 것일까요.
아역 연기자인 박보배의 연기도 김상경, 박용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잘 해냅니다. 영화를 보며 '지키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조의석 감독. 스릴러로써의 재능은 없지만 드라마적 소질은 충분히 있어 보이며, 결정적으로 배우를 고를 줄 아는 안목이 특별한 감독이더군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전 조의석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다음 영화는 부디 스릴러 영화는 아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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