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인천상륙작전] - 피는 이념보다 진하다.

쭈니-1 2016. 8. 2. 14:22

 

 

감독 : 이재한

주연 :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 진세연

개봉 : 2016년 7월 27일

관람 : 2016년 7월 31일

등급 : 12세 관람가

 

 

전쟁영화는 싫다. 하지만 우리의 아픈 현대사는 잊지 말아야한다.

 

저는 공포영화와 전쟁영화를 싫어합니다. 사실 공포영화를 싫어하게된 것은 10여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결혼 전까지만해도 여름만되면 공포영화를 꼬박꼬박 챙겨봤을 정도로 특별하게 좋아하는 장르는 아니지만, 그래도 공포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영화를 다릅니다. 처음 영화를 좋아했을 때부터 전쟁영화는 항상 제게 거부감, 불편함을 안겨줬었습니다.

그 이유는 전쟁영화에서 드러나는 살인의 정당화합니다. 살인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이유를 막론하고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입니다. 하지만 전쟁에서는 아닙니다. 단지 나와 다른 편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고, 누가 더 많은 적을 죽이느냐에 따라 영웅이 가려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영웅주의가 가득한 전쟁영화를 보면 영화적 재미보다는 찜찜한 기분 뿐입니다.

한국전쟁을 소재로한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또래의 대한민국 국민이 그러하듯 저 역시 어렸을 적부터 반공교육을 철저하게 받으며 자랐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재미있게 봤던 어린이 애니메이션 <똘이장군>에서는 북한의 공산당을 사람이 아닌 짐승으로 표현했고, 저 역시 그런줄 알며 자랐으니까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북한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공산당도 결국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전쟁을 소재로한 영화들은 <똘이장군>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군을 사람대접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죽여야만하는 적일 뿐입니다. 분명 북한은 기습남침을 통해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지만, 한국전쟁에 동원된 북한군 대다수는 그저 북한 지도부의 날조된 선동에 현혹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들을 아무런 죄책감없이 죽이고, 환호합니다. 그러한 장면들이 저는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한국전쟁을 소재로한 영화에 거부감이 있는 제게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영화로는 처음으로 제게 감동을 안겨줬습니다. 이 영화는 남한과 북한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고 가족이라는 프라임 안에서 모두가 한국전쟁에 의한 피해자임을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저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며 눈물을 흘렸고, 감동을 느꼈으며, 다시는 전쟁이 이 땅에서 일어나면 안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전쟁영화는 이래야합니다. 영웅주의에 의한 쾌감이 아닌, 인류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범죄인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관객에게 안겨줘야합니다.

제가 7월의 마지막날 가족들과 [인천상륙작전]을 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웅이에게 우리나라의 아픈 근현대사를 알려주고, 전쟁에 대한 경각심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웅이 또래 아이들은 잔혹한 게임에 익숙하다보니 전쟁 또한 적을 물리치고 스테이지를 클레어하는 게임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군요. 그렇기에 저는 웅이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는 영웅주의 전쟁영화일까?

 

사실 [인천상륙작전]을 보는데 있어서 불안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의 메가폰을 잡은 이재한 감독이 과거 [포화 속으로]를 연출했던 감독이기 때문입니다.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전쟁에 동원된 학도병 이야기를 다룬 전쟁영화입니다. 총 한번 제대로 잡아본 적이 없는 71명의 학도병들은 피난민도, 군인들도 모두 떠난 텅빈 포항에서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정예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입니다. 

[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평범한 학생이었을 학도병들이 전쟁에 동원되면서 희생되는 비극을 담아냅니다. 하지만 이재한 감독은 학도병들의 비극에 멈추지 않고 그들을 영웅으로 포장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물론 그들은 영웅입니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러한 점은 [포화 속으로]가 온갖 영화적 기법으로 멋있게 포장하지 않아도 영화를 보는 관객들 모두 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학도병들은 영웅이기 이전에 전쟁의 희생자입니다. 그들을 희생시킨 것은 북한군 진격대장 박무랑 뿐만 아니라, 그들이 몰살될 것을 알면서 포항을 맡기고 낙동강으로 이동한 한국군 대위 강석대(김승우)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다시말해 적군과 아군 그리고 전쟁 그 자체가 순진한 학도병들을 희생시킨 주범인 것입니다. 이재한 감독은 학도병을 영웅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러한 점을 애써 외면합니다.

 

그렇다면 [인천상륙작전]은 어떨까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포화 속으로]와 비교해서 별로 나아진 것은 없어보입니다. 이 영화는 '인천상륙적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인천에 투입된 해군첩보부대원들의 활약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포화 속으로]가 그랬던 것처럼 [인천상륙작전]도 해군첩보부대원들을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맹목적인 영웅담이 영화의 전부라는 점입니다.

연합군 최고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리암 니슨) 장군은 성공확률이 5000:1이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인천상륙작전'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작전의 성공을 위해 해군첩보부대를 북한의 인천방어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의 부대로 침투시킵니다. 해군첩보부대 대위 장학수(이정재)를 비롯한 8인의 해군첩보부대원들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인천 앞바다에 북한군이 설치한 기뢰 현황을 알아내야하지만, 림계진 또한 만만치가 않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은 장학수를 비롯한 해군첩보부대의 활약에 영화의 모든 초점을 맞춥니다.  이 영화의 관심사는 한국전쟁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끈 '인천상륙작전'보다는 '인천상륙적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초석을 깔아준 해군첩보부대원들의 희생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안타까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최대한 멋있게 표현하려 애씁니다. 물론 그들은 [포화 속으로]의 학도병과 마찬가지로 영웅입니다. 그것은 바뀌지 않는 진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왜 인천이어야만 했나?

 

해군첩보부대원들의 영웅적인 희생을 위해 [인천상륙작전]은 많은 것들을 생략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제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왜 하필 인천이어야 했는가? 라는 점입니다. 영화에서도 설명했듯이 '인천상륙작전'은 성공확률이 5000:1에 불과합니다. 다시말해 '미션 임파서블'인 셈입니다. 백악관에서 파견된 이들도 맥아더 장군에게 묻습니다. 왜 그렇게 인천에 집착하냐고? 왜 인천이어야 하냐고?

솔직히 제가 [인천상륙작전]을 보기 전 가장 관심있게 생각한 부분도 바로 그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은 상륙작전을 펼치기에 최악의 조건인 인천을 선택했고, '인천상륙적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8명의 해군첩보부대원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이들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인천이어야 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인천상륙작전' 덕분에 한국전쟁에서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배웠지만 어떻게 승리했는지는 자세히 몰랐기에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에는 그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에게 왜 인천이어야 하냐는 질문을 해도 맥아더 장군은 전쟁에서 만난 소년 이야기, 장학수 대위와 처음 만난 날의 이야기 등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맥아더 장군는 승리를 위해 '인천상륙작전'을 선택했다고 하지만, 인천이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영화 그 어디에도 설명이 없습니다.

 

물론 맥아더 장군이 직접 대답하지 않아도 인천이어야 하는 이유를 예상할 수는 있습니다.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의 불가능함을 눈치채고 인천의 방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북한군의 예상을 깨고 기습공격을 하기 위해서는 인천이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영화의 긴장감을 위해 인천방위사령관인 림계진의 치밀함을 강조했고, 그로인해 장학수 대위 일행은 끝내 인천 앞바다의 기뢰 현황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림계진의 부관 납치 사건으로 인하여 림계진은 이미 '인천상륙작전'을 눈치챕니다. 그렇다면 '인천상륙작전'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기습공격은 실패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도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강행하고, 이를 위해 장학수 대위 등 해군첩보부대원들은 결국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게 됩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 그래서 왜 인천이어야만 했던건가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결국 영화가 아닌 설민석의 역사강의영상에서 얻었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 림계진은 최악의 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림계진이 철두철미한 최악의 적일수록 영화는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영화적 재미에 치중될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인천상륙작전]은 영화적 재미를 위해 무리수를 띄우기도 하는데, 림계진은 첩자인 최석중(김병옥)의 조카 한채선(진세연)을 살려주는 지금까지의 캐릭터와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을 하고, 림계진 부관 납치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게 만듭니다. 

 

 

피는 이념보다 진하다.

 

분명한 것은 [인천상륙작전]은 저희 가족이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쟁의 잔인함과 그로인한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를 웅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지만, [인천상륙작전]은 해군첩보부대의 영웅적인 활약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장학수 대위가 멀리서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 해군첩보부대의 부대원인 남기성(박철민)이 아내와 만나는 장면 등 마지막 감동을 위해 포장된 장면들만 나열될 뿐입니다.

구피와 웅이가 기대한 것은 제목 그대로 '인천상륙작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엄밀하게 말한다면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영화가 아닌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한 X-RAY라는 이름의 첩보임무에 관한 영화입니다. 다시말해 이 영화의 제목은 '인천상륙작전'이 아닌 'X-RAY'가 더 적합합니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시작과 동시에 영화가 끝나버립니다. 그러니 당연히 영화가 끝나고 구피와 웅이가 이구동성으로 기대했던 영화가 아니라고 아쉬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인천상륙작전]을 전쟁영화가 아닌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과 같은 전쟁액션스릴러적 측면에서 본다면 나름 재미는 있었습니다. X-RAY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한 해군첩보부대의 아슬아슬한 활약은 전쟁영화보다는 첩보영화에 가까웠고, 가끔 장학수와 한채선의 어울리지 않는 러브라인 등 불필요한 장면들도 있지만 최소한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이 영화가 한국전쟁이라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소재로한 전쟁영화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전쟁은 왜 일어난 것일까요? 기본적으로 한국전쟁은 이념전쟁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는 당시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고 있던 이념에 의한 냉전시대의 희생국이 되고 맙니다. 결국 소련이 중심이된 북한은 공산주의 국가가, 미국이 중심이된 남한은 자본주의 국가가 됩니다. 그리고 한국전쟁을 통해 이 두 이념은 충돌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념이라는 것은 좀 더 인간이 살기 좋은 세상을 꿈꿨던 이상주의자가 만든 것입니다. 결국 이념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영화에서 장학수가 공산주의를 버리고 남한으로 간 것도 이념은 피보다 진하다는 공산주의자들의 허황된 착각 때문입니다.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사상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이념도 인간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념이 피보다 진한 것이 아닌, 피가 이념보다 진합니다.

비록 [인천상륙작전]은 저희 가족이 기대했던 영화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이 영화를 본 웅이가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하고 허황된 것인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쟁영화를 보고 "나도 주인공처럼 멋진 군인이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저렇게 참혹한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하게끔 초석을 놓아준 해군첩보부대원들은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 영웅이다.

하지만 내가 영화에서 기대한 것은 영웅으로써의 그들이 아닌

전쟁의 희생자로써의 그들이다.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