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마이크 트메이어
더빙 : 존 레귀자모, 레이 로마노, 데니스 리어리, 사이먼 페그
개봉 : 2016년 7월 20일
관람 : 2016년 7월 24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아이스 에이지'의 추억
일찌감치 웅이와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을 보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벌써 중학생이 되어버린 웅이가 보기엔 너무 초등학교 저학년 눈높이에 맞춰진 애니메이션이긴 합니다. 2002년 [아이스 에이지]가 개봉했을 때는 그래도 빙하 시대 동물들의 모험이라는 특색이 있었고, 2006년에 개봉한 [아이스 에이지 2]도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전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에 개봉한 [아이스 에이지 3 : 공룡시대]에서는 빙하기에 난데없이 공룡을 등장시키더니, 2012년에 개봉한 [아이스 에이지 4 : 대륙 이동설]에서는 아예 대륙 이동을 소재로 꾸며 놓았습니다. 다시말해 1, 2편만해도 빙하기를 무대로한 애니메이션이었지만, 3, 4편에서부터는 빙하기라는 무대보다는 판타지적 설정만 난무하는 애니메이션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괜찮았었습니다. [아이스 에이지 4 : 대륙 이동설]이 개봉할 때만해도 웅이가 아직 어렸기 때문에 이 영화의 판타지적 소재가 웅이에게 무한한 상상력과 재미를 안겨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리즈의 5편인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은 대륙 이동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예 무대를 우주로 옮겼습니다. 이제 빙하기 동물들은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을 막아야한다는 임파서블한 미션을 부여받게 됩니다. 아무래 애니메이션이라지만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소재의 무리수가 점점 커지고 있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을 웅이와 보기 위해 자막 버전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헤맬 정도로 열의를 보인 이유는 이 시리즈가 저와 웅이에겐 특별한 추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스 에이지'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이야기하자면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합니다. 당시 웅이의 나이는 네살. 저는 웅이와 극장에서 함께 영화를 보는 것을 꿈꿨고, 때마침 개봉한 [아이스 에이지 2]는 최적의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실수였습니다. 영화에서 동물들이 녹아버린 빙하를 피해 도망가는 장면에서 웅이는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얼음이 녹기 전에 빨리 나가자며 보채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저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도중에 웅이를 안고 극장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저와 웅이의 첫번째 극장 데이트였고, 그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당시 겁에 질린 웅이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너무 어렸고, 너무 순수했고, 너무 겁이 많았던 네살 꼬맹이 웅이를 추억하게 된답니다.
어쩌면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이 저와 웅이의 마지막 '아이스 에이지'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이 시리즈의 최종편이라고 하네요. 만약 그렇지 않고 6편이 제작된다고해도 그때쯤이면 고등학생이 되어있을 웅이와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보러갈 수는 없으니, 이래저래 저와 웅이의 '아이스 에이지'에 대한 추억이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로 막을 내릴 것 같습니다.
모든 말썽은 스크랫에게서 시작된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주인공은 맘모스 매니(레이 로마노)와 검치 호랑이 디에고(데니스 리어리), 그리고 나무늘보인 시드(존 레귀자모)입니다. 이들 삼인방은 시리즈 1편부터 영화를 이끌어 나갔고,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새로운 캐릭터가 하나씩 추가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에서 매니, 디에고, 시드 외에도 시리즈 처음부터 꼬박 꼬박 출연한 캐릭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도토리에 목숨을 거는 다람쥐 스크랫입니다.
'아이스 에이지'의 마스코트라고해도 과언이 아닌 스크랫은 도토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언제나 큰 사고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스 에이지 4 : 대륙 이동설]에서 대륙이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스캐릿이 도토리를 땅에 파묻으려다가 땅에 균열을 가져왔기 때문이라는 식입니다. 물론 말이 안됩니다. 하지만 주인공도 아닌 스크랫의 사소한 행동이 거대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설정은 어느덧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대표적인 영화적 재미가 되었습니다.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에도 사건의 시작은 스크랫입니다. 도토리를 쫓던 스크랫은 빙하에 숨겨졌던 외계 우주선에 우연히 탑승하게 되고, 우주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스크랫을 태운 우주선 때문에 태양계가 형성되고, 거대한 운석이 지구로 향해 날아오게 됩니다. 물론 말도 안됩니다. 하지만 스크랫이기에 이런 말도 안되는 설정이 가능한 것입니다.
스크랫을 태운 외계 우주선 때문에 거대한 운석이 지구로 향한다는 설정은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특성상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미 스크랫은 도토리 유토피아를 경험하는 등, 상식선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수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수 많은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주가 아닌 지구에 있습니다. 이번에는 스크랫 뿐만 아니라 모험 자체가 전부 상식선을 넘어버립니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를 다시한번 되짚어 보겠습니다. 1편인 [아이스 에이지]는 우연히 인간 아기를 맡게된 매니와 시드의 모험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단지 인간 아기를 다시 인간의 품에 데려가는 것 뿐입니다. [아이스 에이지 2]는 빙하기 녹자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는 매니 일행의 모험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이스 에이지 3 : 공룡시대]는 시드를 구하기 위해 지하속 공룡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매니 일행 이야기이고, [아이스 에이지 4 : 대륙이동설]은 갑작스로운 대륙 이동으로 가족과 떨어지게된 매니 일행이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설정입니다.
이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특징은 1편을 제외하고 사고는 스크랫이 일으켰고, 매니 일행은 그저 스크랫이 일으킨 사고로 원치 않는 모험을 하게 됩니다.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도 마찬가지처럼 보입니다. 사고는 역시 스크랫이 일으켰고, 매니 일행은 지구로 향하는 운석을 막기 위해 원치 않는 모험을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번 모험은 이전 모험과 조금 다릅니다.
너무 키운 스케일이 너무 과한 무리수로 돌아왔다.
사실 이번에 스크랫이 저지른 사고는 아무리 매니 일행이라고해도 감당이 되지 않는 수준입니다. 지구로 향하는 운석을 막는 것은 현재 인간의 과학 문명으로도 불가능하고, 무엇보다 매니 일행이 운석에 의한 위협을 알아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매니 일행은 어떻게 운석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바로 이 부분에서부터 영화는 무리수의 연속입니다.
[아이스 에이지 3 : 공룡시대]에서 작은 몸으로 커다란 공룡들을 간단하게 제압하며 인기를 끌었던 족제비 벅(사이먼 페그)이 우연히 공룡 세계에 숨겨져 있던 예언을 발견하게 되고, 매니 일행과 함께 예언에 적혀 있는대로 지구로 향하는 운석을 막아낸다는 설정입니다. 이 예언에 의하면 1억년 주기로 운석이 지구에 떨어진다는 것인데, 스크랫의 말썽으로 운석이 지구로 향한다는 초반 설정을 완전히 무시한 설정입니다.
뭐 좋습니다. 예언 덕분에 운석에 의한 위협을 알아냈다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운석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매니 일행은 무작정 운석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곳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자석의 힘으로 운석을 막아냅니다. 아무리 어린이 애니메이션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합니다.
이전 '아이스 에이지'에서 스크랫이 저지른 사고는 말이 안되지만, 그로인하여 매니 일행이 겪게되는 모험은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볼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은 매니 일행이 겪게되는 모험은 스크랫이 저지른 사고만큼이나 말이 안됩니다. 물론 압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라는 사실을요. 하지만 과한 무리수는 저처럼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에 추억이 있는 성인 관객에게는 실망감만 안겨줄 뿐입니다.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의 무리수는 수정의 힘으로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지오토피아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빙하기에 갑자기 공룡들을 등장시킨 적도 있기에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지오토피아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제가 보기에 지오토피아는 그저 매니 일행이 운석을 막기 위해 급조된 세상처럼 보일 뿐입니다.
'아이스 에이지'는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속편의 법칙이라 할 수 있는 스케일을 키울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1, 2편까지만해도 빙하기라는 소재를 적절하게 이용했지만 3편부터는 좀 더 큰 스케일에 집착했고, 결국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에서 우주로까지 진출하며 시리즈 사상 최고의 스케일을 이뤄냅니다. 하지만 너무 키운 스케일은 너무 과한 무리수로 돌아올 수 밖에 없음을 제작진은 알았어야 했습니다.
짝도 다 찾았으니 이제 그만하자.
1편은 서로 다른 동물인 매니, 디에고, 시드가 서로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2편에서는 매니가 엘리(퀸 라티파)와 만나 짝을 이루었고, 3편에서는 매니와 엘리 사이에 딸이 태어났으며, 4편에서는 디에고가 쉬라(제니퍼 로페즈)를 만나 짝을 이룹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시드 뿐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은 시드에게 한눈에 반해버린 독특한 취향이 나무늘보 브룩(제시 제이)을 안겨줍니다.
매니와 엘라의 딸 피치(케케 파머)도 짝을 이뤘고, 모태솔로인 시드 마저도 브룩을 만났으니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는 5편의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캐릭터들의 짝을 찾아준 셈입니다. 이쯤되면 할만큼 했습니다. 우주로 진출했으니 더이상 스케일을 키울 수도 없습니다. 이제 아쉽지만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가 추억 속으로 퇴장해야할 때가 된 것입니다. 더이상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 무리수를 남발한다면 실망감만 더 커질 것 같습니다.
북미 관객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의 북미 성적은 개봉첫주 2천1백만 달러로 북미 박스오피스 4위에 그치는 부진을 기록했고 이는 시리즈 사상 최악의 오프닝 성적이라고 합니다. 기존 최악의 성적은 [아이스 에이지 3 : 공룡시대]가 기록한 4천1백만 달러이지만 [아이스 에이지 3 : 공룡시대]는 해외 시장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하며 오히려 월드와이드 성적으로는 시리즈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만약 [아이스 에이지 6]이 만들어진다면... 이라는 주제로 웅이와 대화를 나눴습니다. 이미 우주로 진출했고, 빙하기 동물들이 운석이라는 대재앙까지 막아냈으니 더이상 진행될 이야기는 없어 보이지만, 또 모르죠.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이 흥행에 성공한다면 6편이 만들어질지도...
만약 그렇다면 어쩌면 빙하기 동물들이 우연히 타임머신이나 시간의 틈새를 발견해서 현재의 인간 세상에 오게 되지는 않을까요? 인간 문명과 빙하기 동물들의 대격돌. 만약 그렇게된다면 매니 일행으로써는 운석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재앙이 펼쳐질 것입니다. 물론 이건 제 상상일 뿐이지만...
어찌되었건 이렇게 저와 웅이의 추억이 담겨 있는 또 한편의 시리즈 영화가 막을 내렸습니다. 아! 물론 6편이 만들어질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저와 웅이가 손을 잡고 극장에서 관람할 일은 이제 없겠죠. 아쉽지만 저는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을 마지막으로 '아이스 에이지'의 추억을 고이 간직할 생각입니다. 비록 [아이스 에이지 : 지구 대충돌]이 조금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러한 실망 또한 추억이 될것이기에... 이렇게 추억을 만들어준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가 고마울 뿐입니다.
언젠가 성인이 된 웅이와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를 다시 보게 된다면
이 영화에 대한 추억으로 한보따리 이야기 꽃을 피울 것이다.
내게 있어서 영화가 소중한 이유는 이렇게 추억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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