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폴 그린그래스
주연 : 맷 데이먼, 알리시아 비칸데르, 뱅상 카셀, 토미 리 존스
개봉 : 2016년 7월 27일
관람 : 2016년 7월 31일
등급 : 15세 관람가
'제이슨 본'이 9년 만에 돌아온 이유는?
일요일 밤, 주말동안의 모든 일정을 끝내고 월요일 출근을 위해 휴식을 취해야하는 시간이지만, 밤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한 폭염 때문에 휴식은 커녕 오히려 짜증만 밀려 올라옵니다. 짜증이 가득 섞인 표정으로 '더워 더워'를 연발하는 제게 구피가 묻습니다. "보고 싶은 영화 중에서 아직 못본 영화있어?" 당연히 저는 "아직 [제이슨 본]을 못 봤는데..."라고 대답했고, 구피는 "더운데 [제이슨 본]이나 보러 가자."라며 제 짜증을 잠재웠습니다.
지난 주말, 저희 동네 멀티플렉스에서는 수 많은 상영관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 세편의 영화만을 상영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그리고 [제이슨 본]입니다. [부산행]과 [인천상륙작전]은 이미 본 상태에서 [제이슨 본]만 보고나면 극장에서 영화를 더 보고 싶어도 볼 영화가 없는 상황이 됩니다. 뭐 흥행대작들이 몰리는 여름 극장가에서는 흔한 일이죠. 암튼 [제이슨 본] 덕분에 일요일 밤의 짜증나는 폭염을 극장에서 피할 구실이 생긴 셈입니다.
[제이슨 본]은 2002년 [본 아이덴티티]로부터 시작된 '본 시리즈'의 다섯번째 영화입니다. '본 시리즈'는 2편인 2004년작 [본 슈프리머시]에서부터 폴 그린그래스 감독을 영입해서 본격적인 흥행 시리즈가 되었고, 2007년 [본 얼티메이텀]으로 3부작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했었습니다. 하지만 '본 시리즈'의 흥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작사 유니버셜은 2012년 '제이슨 본'(맷 데이먼) 대신 애론 크로스(제레미 레너)라는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운 [본 레거시]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본 레거시]는 기대만큼의 흥행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만약 [본 레거시]가 흥행에 성공했다면 '본 시리즈'는 '제이슨 본'에서 애론 크로스로 자연스럽게 바통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애론 크로스가 아닌 '제이슨 본'을 원했고, 이에 유니버셜도 '제이슨 본'을 부활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제이슨 본'의 부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제이슨 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맷 데이먼을 캐스팅하는 것이 필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맷 데이먼은 유니버셜에 한가지 조건을 내겁니다. 그것은 바로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에서 맷 데이먼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복귀입니다. 이미 맷 데이먼과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본 시리즈' 외에도 이라크 전쟁을 소재로한 전쟁영화 [그린존]에서 함께 했었을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습니다. 그리고 유니버셜은 '제이슨 본'을 부활시키기 위해 맷 데이먼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제이슨 본'은 2007년 [본 얼티메이텀]이후 9년만에 부활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일요일 밤, 저와 구피를 극장의 에어컨 바람 속으로 안내해준 고마운 영화 [제이슨 본]입니다. 제목부터가 아예 주인공의 이름인 '제이슨 본'으로 정했을 만큼 '본 시리즈'에서는 더이상 대체불가 캐릭터가 된 '제이슨 본'. 과연 9년만에 부활한 '제이슨 본'은 예전처럼 저와 구피에게 액션영화의 쾌감을 안겨줄 수 있을까요?
'제이슨 본'도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본 시리즈'는 애초에 3부작으로 기획이 되었던 영화입니다. 그렇기에 [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은 각각의 독립된 영화가 아닌, 서서히 과거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가는 '제이슨 본'의 활약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본 얼티메이텀]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으니 엄밀하게 따진다면 '본 시리즈'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제이슨 본]은 무슨 할 이야기가 더 남아 있는 것일까요? 영화는 '제이슨 본'의 옛 동료였던 니키 파슨스(줄리아 스타일스)가 '제이슨 본'의 과거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니키는 이 사실을 '제이슨 본'에게 알리기 위해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하고, 이러한 움직임을 감지한 CIA는 이번 기회에 눈엣가시와 같은 '제이슨 본'을 제거하기 위해 저격수(뱅상 카셀)를 파견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합니다.
그렇다면 니키가 새롭게 밝혀낸 '제이슨 본'의 과거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제이슨 본'의 아버지에 대한 것입니다. 이전 '본 시리즈'에서 '제이슨 본'이 밝혀낸 것은 비밀요원이었던 자기 자신의 과거와 블랙브라이어라는 비밀요원을 양성해낸 극비조직 트레드스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이슨 본]은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비밀요원이기 이전의 '제이슨 본'의 과거를 파해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꽤 영리한 전략입니다. 지금까지의 '본 시리즈'를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제이슨 본'은 인간살인병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도 트레드스톤에 의해 인간살인병기로 훈련 받기 이전에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으며,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것입니다. [제이슨 본]이 인간살인병기 이전 '제이슨 본'의 과거를 건드린 이상 앞으로의 '본 시리즈'에서는 할 이야기가 다시 많아진 셈입니다.
'제이슨 본'은 아버지에 얽힌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또다시 CIA와 위험한 대결을 펼칩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관객들이 '제이슨 본'에게 열광하는 것들을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날것 그대로의 액션입니다. 저격수의 총구가 언제 어디에서 자신을 노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제이슨 본'은 자신의 동물적 감각 하나만으로 이 보이지 않는 적과 맞서 싸웁니다.
어쩌면 아버지에 얽힌 비밀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제이슨 본'을 다시 부활시키기 위한 하나의 미끼에 불과한 것이죠. 하지만 그것은 이전 3부작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제이슨 본'의 과거는 관객 스스로 어느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으니까요. '제이슨 본'의 과거를 빌미로 이루어지는 액션이 '본 시리즈'의 진정한 재미였습니다. [제이슨 본] 역시 아버지에 얽힌 비밀을 빌미로 돌아온 '제이슨 본'과 CIA의 대결이 영화의 진짜 재미이고, 그런 면에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기다린 보람을 느낄만한 액션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녀는 적군일까? 아군일까?
'본 시리즈'의 또 다른 재미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제이슨 본'의 상황입니다. 사실 '제이슨 본'에게도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본 아이덴티티]에서 쫓기던 와중에 우연히 만난 마리 헬레나 크류츠(프란카 프텐테)가 그 주인공이죠. [본 슈프리머시]에서 '제이슨 본'과 마리는 잠시동안이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는 CIA에 의해 살해됩니다. 그 이후부터 '제이슨 본'은 언제나 홀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도와주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에서부터 CIA의 고위 간부이면서 '제이슨 본'을 은근히 도와주는 파멜라 랜디(조안 알렌)을 시작으로 이번 영화에서 '제이슨 본'에게 그의 아버지에 얽힌 비밀이 담긴 파일을 건네준 후, 저격수에 의해 살해당하는 니키까지... 그리고 여기에 또 한명의 여성이 추가되어야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CIA요원인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입니다.
헤더 리는 '제이슨 본'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어떻게든 그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CIA 국장 로버트 드웨이(토미 리 존스)와는 달리 '제이슨 본'을 설득해서 CIA로 복귀시켜야한다고 주장하며 파멜라 랜디가 그랬던 것처럼 그를 은근히 도와줍니다. 하지만 그녀는 과연 '제이슨 본'의 진정한 아군일까요? 아니면 '제이슨 본'을 이용해서 CIA 내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야심녀에 불과할까요? 이러한 헤더 리의 존재는 [제이슨 본]의 또다른 재미입니다.
[제이슨 본]에서 헤더가 특별한 이유는 그녀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사실 '본 시리즈'는 남성 관객을 타깃으로한 액션영화입니다. 이러한 영화의 경우 여성 캐릭터는 대부분 주인공과의 러브 라인을 형성시키거나 눈요깃거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본 시리즈'는 마리를 제외하고는 여성 캐릭터와 '제이슨 본'과의 러브 라인을 철저하게 봉쇄해버립니다. 그리고 여성 캐릭터들은 눈요깃거리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캐릭터는 '본 시리즈'에서 항상 '제이슨 본' 다음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파멜라가 그랬고, 니키가 그랬고, 헤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중에서 헤더는 냉철한 CIA고위간부 파멜라, '제이슨 본'과 마찬가지로 트레드스톤에 의해서 양성된 암살자인 니키와는 달리 오히려 아무런 능력도 없는 평범한 여성 마리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바로 그것이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신의 한수입니다. [제이슨 본]을 보며 저는 자연스럽게 헤더와 '제이슨 본'의 러브 라인을 기대했습니다. [본 슈프리머시]에서 마리의 죽음 이후 사랑과는 담을 쌓고 지내던 '제이슨 본'이기에 나도 모르게 마음 속으로 헤더와의 새로운 사랑을 응원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과연 헤더는 '제이슨 본'의 편일까? 아니면 그를 이용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는 것이죠.
새로운 시리즈의 시작? 아니면 단 한번의 서비스로 끝?
[제이슨 본]에서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CIA국장 로버트 드웨이는 쓸쓸한 퇴장을 맞이합니다. 그는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는 미명아래 포털 사이트를 이용해서 전세계 모든 이들을 감시하려했고, 자신의 방식을 거역하는 이라면 누구든 죽이려했습니다. 그의 이러한 방식은 너무 위험했고, 구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로버트 드웨이는 퇴장하고 헤더가 CIA의 새로운 실세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제이슨 본'이 헤더가 원하는대로 CIA에 복귀해서 조직의 지원을 받으며 정의를 수호하는 제도권내 영웅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이슨 본'이 CIA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CIA는 여전히 그를 위험인물로 지목하고 어떻게든 없애려할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아낸 '제이슨 본' 역시 자신의 남은 다른 가족들을 찾으려할지도 모릅니다. '본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 모든 요건이 완비된 셈입니다.
그러나 맷 데이먼은 [제이슨 본]이 '본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 선언했다고 합니다. 애써 '본 시리즈'를 되살려낸 유니버셜 입장에서는 청천병력같은 소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본 시리즈'가 계속 이어질 여지는 있습니다. 이미 [본 얼티메이텀]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했던 '본 시리즈'가 9년 만에 [제이슨 본]으로 부활했었으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본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이어질지, 아니면 [제이슨 본]으로 영원히 끝이 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9년 만에 돌아온 '제이슨 본'이 너무나도 반가웠습니다. 무표정한 얼굴로 날것 그대로의 액션을 선보이는 맷 데이먼의 연기가 좋았고, 러닝타임 2시간 내내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 없도록 꽉 찬 연출력을 선보인 폴 그린그래스 감독의 연출력도 반가웠습니다. 물량공세로 액션영화의 재미를 대신하는 요즘 [제이슨 본]은 진정한 액션의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이슨 본'과 헤더의 앞으로의 관계 및 대결이 너무 궁금합니다. 가녀린 여인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야심이 가득한 헤더는 어쩌면 '제이슨 본'의 진정한 적수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이슨 본'은 자신과 같은 인간살인병기와의 대결에 익숙하지만, 헤더와 같은 일반인에 가까운 여성과의 대결은 서투르기에 그녀의 존재는 '제이슨 본'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제이슨 본'을 완벽하게 부활시켜 놓고, 그것도 모자라 새로운 재미까지 제시했으면서 [제이슨 본] 한편으로 시리즈를 완결짓는 것은 너무 아쉬운 결정이 아닐까요? 지금까지의 '본 시리즈'를 재미있게 봤고, [제이슨 본]도 만족스러웠던 제 입장에서는 '본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이어지길 원할 뿐입니다.
'제이슨 본'의 아버지에 대한 비밀은 밝혀졌다.
그렇다면 어머니에 대한 비밀, 혹은 형, 누나, 동생에 대한 비밀은 없을까?
혹시 그에게도 약혼녀, 혹은 아내와 아들, 딸이 있지 않을까?
이대로 '제이슨 본'을 추억으로 묻기엔 아직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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