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45년 후] - 결혼이란, 오랜 세월을 함께 쌓아도 작은 파도에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

쭈니-1 2016. 7. 19. 13:08

 

 

감독 : 앤드류 헤이

주연 : 샬롯 램플링, 톰 커트니

개봉 : 2016년 5월 5일

관람 : 2016년 7월 17일

등급 : 15세 관람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라고?

 

[45년 후]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샬롯 램플링이 지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던 영화이며,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톰 커트니와 샬롯 램플링가 나란히 남, 여 연기상을 수상한 영화로 이미 영화에서 두 주연 배우의 연기만큼은 충분히 인정받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 영화에 그다지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결혼 45주년 파티를 준비하는 노부부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젊은이들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었어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유효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젊은 사랑에 매료되고, 늙은 사랑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젊은 것은 아름답고, 늙은 것은 추하다는 무의식 중의 선입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나 젊고 아름다운 사랑을 꿈꾸지, 늙고 추한 사랑을 꿈꾸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영화를 선택하는데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늙습니다. 그리고 늙었다고해서 젊은 시절의 사랑을 회상하며 살지는 않습니다. 결국 늙은 사랑, 그것은 바로 제가 맞이해야할 미래의 사랑인 셈입니다. [45년 후]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비록 저는 뒤늦게 이 영화를 선택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저와 구피의 30년 후의 모습을 떠올리며 잔잔하기만한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45년을 함께 한 그들이 맞이한 작은 분열

 

제프(톰 커트니)와 케이트(샬롯 램플링)은 45년을 함께한 부부입니다. 이제 그들은 결혼 45주년 파티를 준비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프 앞으로 한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것은 제프의 첫사랑인 카티야의 시신이 알프스에서 발견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예기치않은 첫사랑 소식에 옛 추억에 잠기는 제프. 케이트는 겉으로 괜찮다고하지만 제프의 그러한 모습이 영 불편하기만합니다.

[45년 후]는 첫사랑 소식에 흔들리는 제프와 그러한 제프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는 케이트의 5일간의 행적을 뒤쫓습니다. 사실 얼핏 보면 이게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합니다. 카티야는 결혼 전에 만났던 오래된 추억일 뿐입니다. 게다가 죽기까지 했습니다. 케이트가 카티야를 질투한다면 죽은 이를 질투하는 것이 것이죠.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케이트 입장에서는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카티야는 제프에게 젊고 아름다운 청춘의 사랑이고, 자신은 늙고 추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밤에 몰래 다락방에 올라가 첫사랑의 사진을 보는 제프의 낯선 모습에 케이트는 불안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렇게 두 사람의 작은 분열은 점점 커져만갑니다.

 

 

 

케이트의 불안한 시선이 큰 울림을 준다.

 

처음에 케이트는 제프에게 괜찮다고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케이트는 자신이 전혀 괜찮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만약 카티야가 죽지 않았다면 그녀와 결혼 했을 것이라는 제프의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제프가 다락방에서 몰래 보던 카티야의 젊고 아름다운 사진 속 모습에 질투를 합니다. 급기야 시내에 나가 스위스행 비행기표를 알아보기까지한 제프의 행동을 알고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입니다.  

결혼 45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케이트는 결국 제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당신이 내일 파티에 와줬으면 할 뿐이야." 그녀의 이 한마디는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케이트와 제프의 45년 간의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 하지만 케이트는 제프가 그 파티에 올 것이라는 확신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45년을 함께 했건만, 편지 한통으로 인하여 그들의 결혼 생활은 위태로워진 것입니다.

물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카티야는 그저 추억일 뿐입니다. 그 추억 때문에 45년 간의 결혼 생활을 청산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프의 흔들림, 그리고 케이트의 불안은 이후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작은 변화를 안겨줄 것입니다.

 

 

 

만약 내게 저런 일이 생긴다면?

 

[45년 후]를 보기 전, 구피에게 이 영화의 설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물었습니다. 만약 내게 저런 일이 생긴다면 넌 어떻게 하겠냐고... 구피는 태연스럽게 말합니다. "그게 뭐? 어차피 결혼 전에 있었던 일이고, 무엇보다도 그 상대가 죽었다며... 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하긴 저도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케이트도 처음엔 자신은 괜찮다고 자신있게 말했지만, 결국엔 인정합니다. 전혀 괜찮지 않다고... 그녀는 어쩌면 카티야가 아닌 그들의 추억 속 젊음을 질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젊었을 적의 사랑을 회상하는 제프를 붙잡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죠. 그녀는 늙었기에...

결혼이란, 제프와 케이트처럼 45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함께 했어도 즉은 균열 때문에 위태로운 것인가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위태로운 모래상을 지키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겠죠. 젊었어도, 늙었어도... [45년 후]는 어떻게 보면 너무 잔잔해서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지만, 삶에 대한, 결혼에 대한 깊은 성찰에 담겨 있는 울림이 있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