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하네스 홀름
주연 : 롤프 라스가드, 바하르 파르스
개봉 : 2016년 5월 25일
관람 : 2016년 7월 9일
등급 : 12세 관람가
어쩌다보니 요즘 유럽영화를 많이 보고 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제 영화적 취향은 한국영화 또는 미국영화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일본, 중국영화도 보긴 합니만 그 외의 영화들, 특히 유럽영화들은 거의 보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아주 가끔 재미있다고 소문난 영화가 국내 개봉했을 경우에만 봅니다. 그런데 7월 들어서는 그러한 아주 가끔이 너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7월 3일에 본 [하이-라이즈]는 영국영화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벨기에 영화인 [이웃집에 신이 산다]를 봤고, 7월 8일에는 스웨덴 영화인 [오베라는 남자]를 봤습니다. 이렇게 일주일 사이에 무려 세편의 유럽영화를 보게 될 줄이야...
사실 [하이-라이즈]와 [이웃집에 신이 산다]의 경우는 워낙 독특한 설정의 영화라서 예전부터 보려고 벼르던 영화입니다. 하지만 [오베라는 남자]는 아닙니다. 이 영화는 고집불통 까칠남 '오베'(롤프 라스가드)가 죽은 아내를 따라 자살을 결심하지만 오지랖넓은 이웃들에 의해 좌절된다는 내용의 영화로 내용 자체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구피와 웅이가 워낙에 이 영화를 기대하고 있어서 결국 토요일 오후에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앉아 [오베라는 남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 독서목록 1호 <오베라는 남자>
갑자기 구피와 웅이가 [오베라는 남자]를 기대하게된 이유는 며칠전 구피가 프레드릭 베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구입하면서부터입니다. 먼저 구피가 <오베라는 남자>를 열심히 읽더니, 구피에 이어 웅이가 읽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제게 책이 전해졌습니다. 저는 아직 읽지 않았지만 구피와 웅이의 강압 비슷한 추천에 의해 조만간 읽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암튼 이렇게 <오베라는 남자>를 읽은 구피와 웅이는 영화 [오베라는 남자]도 보고 싶다며 이구동성으로 기대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유럽영화는 국내에 개봉을 하더라도 개봉관을 많이 잡지 못하죠. 결국 [오베라는 남자]가 상영하는 개봉관을 없어서 이렇게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될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일찍 다운로드 시장에 출시된 [오베라는 남자]를 지난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보게 된 것이죠.
예상대로 [오베라는 남자]는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요며칠 제가 봤던 유럽영화들이 워낙에 기이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오베라는 남자]는 너무 평범한 영화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내용이라고해서 무조건 영화가 재미없는 것은 아닙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평범함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의 웃음과 감동을 제게 안겨줬습니다.
고집불통 까칠남 '오베'
[오베라는 남자]는 고집불통에 까칠한 중년남자 '오베'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평생을 바친 직장에서 갑자기 정리해고를 당했고, 6개월 전에는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아내 소냐가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은 '오베'는 결국 자살을 결심합니다. 하지만 죽는 것도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웃집에 새로 이사온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 가족이 문제였습니다.
[오베라는 남자]는 '오베'가 자살을 하려는 순간마다 교묘하게 '오베'를 방해하는 '오베'의 이웃사람들과의 이야기가 유쾌하게 펼쳐집니다.솔직히 '오베'는 내 실제 이웃이라면 굉장히 짜증이 났을 캐릭터입니다. 융통성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원리원칙주의자에 남을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오베'를 파르바네는 마치 '당신을 이해합니다.'라는 표정으로 따스하게 대해줍니다.
영화는 '오베'와 파르바네의 이야기와 더불어 그의 과거가 중간중간 플래쉬백으로 펼쳐집니다. 아버지와의 관계, 그리고 소냐와의 첫만남 등등 그러면서 어쩌다가 '오베'가 지금의 고집불통 까칠남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오베'라는 캐릭터가 짜증났었지만 '오베'의 사연을 듣고나니 그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자연스럽게 이해되었습니다.
원칙없는 세상에 대한 '오베'의 한방
사건의 발단은 소냐가 임신을 하면서부터입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행복한 남자가 된 '오베'.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 불행이 불현듯 다가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행에 맞서 '오베'는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오베'는 하반신 불구가된 소냐를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는 동안 공무원에 대한 불신과 원칙을 지키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키우게 됩니다. 그저 학교 계단을 장애인이 올라갈 수 있게 조금만 바꿔주면 될텐데, 게으른 양복쟁이들은 무조건 안된다며 손사래를 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 맞서 싸우기 위해 '오베'는 고집불통에 까칠남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조리를 날카롭게 비난합니다. 비록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그러한 부조리에 속시원한 한방을 날리는 장면이 너무 싱겁게 표현되어서 아쉬웠지만 '오베'의 고군분투는 영화를 보는 제게도 행복감을 안겨줬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저는 한국, 미국영화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기이한 유럽영화들을 무려 3편이나 연달아 봤습니다. 하지만 [오베라는 남자]는 그들 영화와 같은 유럽영화이면서 기이함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영화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평범함이 오히려 이 영화를 재미있게, 그리고 감동적이게 만들었습니다. 기이한 상상력의 유럽영화와 평범한 유럽영화, 이러한 유럽영화들과 함께 지난 일주일은 행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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