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주연 :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개봉 : 2015년 10월 29일
관람 : 2016년 7월 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괴상한 세계관을 가진 그리스 영화
가까운 미래, 모든 사람들은 서로에게 완벽한 짝을 찾아야만합니다. 짝을 찾지 못한 이들은 커플 메이킹 호텔에 머무르며 45일간 완벽한 커플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데, 만약 45일 동안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하게 됩니다. 근시란 이유로 아내에게 버림을 받고 호텔에 오게된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커플이 되지 못하면 변하고 싶은 동물을 고르라는 호텔 매니저의 말에 '랍스터'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위의 내용은 어느 개그 프로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거장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더 랍스터]의 실제 내용입니다. [더 랍스터]는 2015년 제68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칸 영화제 수상작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습니다. 한때 스스로 영화광이라며 자뻑에 빠져 있었을 때는 졸음을 참아가며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을 챙겨보기도 했지만, 요즘은 보고 싶은 영화도 시간이 없어 못보는 마당에 제 취향이 아닌 영화까지 챙겨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애초에 [더 랍스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내용을 읽고나니 호기심이 안생길래야 안생길 수가 없더군요. 결국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루륵 흐르는 금요일 밤에 호기심 가득찬 얼굴로 [더 랍스터]를 관람했습니다.
기이하고도 기이하다.
[더 랍스터]의 미덕은 앞서 설명한대로 기이하고도 기이한 내용입니다. 완벽한 커플이 되지 못하면 동물로 변한다는 설정도 기이하고, 완벽한 커플이 되기 위해 45일간 머무르게 되는 호텔에서의 풍경도 기이합니다. 호텔에서는 커플이 되면 좋은 점을 교육하기도 하는데, 무슨 어린이를 위한 상황극도 아니고 너무 엉성헤서 실웃음만 납니다. 하지만 호텔 사람들은 굉장히 심각한 표정으로 이 엉성한 교육을 열심히 듣습니다.
호텔 사람들은 가끔 사냥도 나서는데, 그들이 잡아야 하는 대상은 솔로이면서 호텔에 머물지 않고 숲으로 도망친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도망자를 잡을 때마다 호텔에 머물 수 있는 기한이 한명당 하루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참 잔인하기도 합니다.
결국 데이비드는 호텔을 도망치는데, 숲에서 숨어살면서 커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삶을 선택한 사람들의 집단에 합류합니다. 그런데 이 집단은 호텔과는 반대로 사랑에 빠지면 가혹한 형벌을 안깁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데이비드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근시를 가진 완벽한 짝(레이첼 와이즈)와 만납니다. 도대체 데이비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기이하지만 어렵지는 않다.
제가 어느 순간부터 칸 영화제 수상작을 안보기 시작한 것은 칸 영화제 수상작에게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토리 전개는 지루하고, 너무 어려워서 영화를 보는 것 자체가 하기 싫은 숙제를 억지로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더 랍스터]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이 영화는 전체적인 내용이 굉장히 기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어렵거나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가끔은 웃기기도 하고, 가끔은 섬뜩하기도 하며, 가끔은 애잔하기도 합니다. 상업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영화적 재미들을 [더 랍스터]는 골고루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한 짝을 만나기 위해 호텔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들은 웃깁니다. 특히 상대방과 공통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발버둥은 쓴 웃음을 안겨줍니다. 툭하면 코피를 흘리는 여성과 커플이 되기 위해 일부러 벽에 부딪혀 코피를 흘리는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 데이비드도 마찬가지인데 감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비정한 여인과 커플이 되기 위해 일부러 자신도 비정한 척 하는 데이비드의 모습이 우스꽝스럽습니다.
하지만 커플이 되지 못해 개가 되어버린 데이비드의 형을 그녀가 잔인하게 죽이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낸 데이비드는 호텔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커플이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이 우스꽝스럽다가도 이렇게 섬뜩하기도 합니다.
솔로 지옥 호텔과 바를바 없는 커플 지옥 숲속
'랍스터'로 변하기 전 겨우 겨우 호텔을 탈출한 데이비드. 하지만 그가 도망친 숲속 또한 호텔과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강압적으로 사랑을 강요하는 호텔과 강압적으로 사랑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숲속 사람들. 특히 솔로들의 리더(레아 에이두)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커플이 되려는 사람들을 응징합니다.
[더 랍스터]에서 가장 섬뜩한 장면은 데이비드와 근시여인의 관계를 눈치챈 외톨이 리더의 응징입니다. 그녀는 근시 여인의 눈을 멀게 해버린 것입니다. 데이비드와 근시여인의 공통점은 근시입니다. 두 사람 모두 근시이기에 완벽한 짝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시여인은 더이상 근시가 아닌 장님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가 근시여인과 완벽한 짝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렇습니다. 데이비드도 장님이 되면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구피는 제게 묻습니다. '과연 데이비드는 근시여인에게 돌아갔을까?' 만약 데이비드가 근시여인에게 돌아갔다면 그는 스스로 스테이크용 칼로 자신의 눈을 찔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근시여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면 근시여인은 솔로가 되어 도시 한가운데에서 버려질 것이고, 데이비드는 또다시 자신과 같은 근시를 가진 여성을 찾기 위해 우스꽝스러운 여정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 어떤 결말이라 할지라도 데이비드와 근시여인의 운명이 참 애잔합니다.
우리네 사랑은 어떨까?
분명 [더 랍스터]는 말도 안되는 기이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고 있으면 우리가 사는 곳을 은근히 풍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커플을 강요하는 호텔의 풍경이 그러합니다. 제 사촌 누나중에서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노처녀가 한명있습니다. 명절때 오랜만에 모이면 친척들은 사촌 누나에게 "왜 결혼 안하냐?", "애인 없냐?" 등 곤란한 질문들을 쏟아냅니다.
우리 사회 역시 솔로들에게 어서 빨리 커플이 되라고 장려합니다. 사실 솔로로 살건, 커플로 살건, 그것은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주변에 솔로가 있으면 우리는 동정의 눈으로 쳐다보고, 솔로들에게 커플을 찾아주기 위해 괜한 오지랖을 떨곤합니다.
억지로 커플이 된 [더 랍스터]의 사람들은 행복했을까요? 절름발이 남자는 매일같이 코피를 쏟아내기 위해 고통을 참아야 하고, 데이비드는 유일한 가족인 형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솔로로 살면 그것 또한 행복할까요? 솔로 그룹의 리더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지만 영화 내내 그녀의 웃음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커플이 되건, 솔로가 되건, 내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어야만 행복한 것이죠. [더 랍스터]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그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더 랍스터]를 보며 커플을 권장하는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가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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