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6년 영화이야기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 현실의 세계에 들어 온 판타지.

쭈니-1 2009. 12. 8. 19:12

 



감독 : 길레르모 델 토로
주연 : 이바나 바퀘로, 더그 존스, 세르지 로페즈
개봉 : 2006년 11월 30일
관람 : 2006년 12월 2일
등급 : 15세 이상

매주 목요일은 영화를 보기로 드디어 구피와 극적인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회사일과 가정일로 인하여 일주일에 한 편의 영화 보기도 힘이 들어진 요즘, 구피와의 합의는 제겐 꽤 커다란 기쁨입니다.
이젠 일주일에 최소 한 편의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무슨 영화를 볼지 사전에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하는 것이 중요해 졌습니다. 기왕 보게 될 영화라면 재미있는 영화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지난주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디파티드]를 선택했었고, 이번 주 역시 조금의 망설임 없이 [판의 미로]를 선택했습니다. [반지의 제왕], [해리 포터], [나니아 연대기] 등 해마다 개봉하는 이 판타지 영화 시리즈들을 통해 어느새 판타지 영화의 팬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판타지 영화인 [판의 미로]에 기대를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불안요소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를 미리 본 많은 분들이 실망을 나타내셨으며, 그 실망의 이유가 판타지의 탈을 쓴 전쟁 영화라는 이유에서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전쟁 영화를 싫어합니다. 요즘 공포 영화도 안보는 편이지만 전쟁 영화는 공포 영화보다 더욱더 싫어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장르인 판타지와 싫어하는 장르인 전쟁. 이 두 가지의 결합이라는 미묘한 문제는 절 혼란에 빠뜨렸지만 언제나처럼 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판단하겠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구피는 물론 처남 부부까지 대동하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확실히 [판의 미로]는 이전의 판타지 영화와 많이 달랐습니다. 현실과 판타지의 세계에 대한 경계가 확실했던 이전 판타지 영화들에 비해 [판의 미로]는 그 경계가 확실치 않으며 오히려 판타지의 세계보다 현실이 영화의 주를 이루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는 그런 이유로 이 영화가 맘에 들었습니다. 현실의 세계에 발을 내딛은 판타지라니...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전 판타지 영화들은 현실과 판타지 세계와의 경계가 확실했습니다. [반지의 제왕]과 [게드 전기]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아예 새로운 세계를 창조했으며, [해리 포터]와 [나니아 연대기]는 현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러한 현실은 단지 판타지 세계를 가기 위한 전초에 불과하며 그 경계도 확실히 구분되었습니다.  
하지만 [판의 미로]는 아닙니다.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인간의 상상 속의 새로운 공간인 판타지 세계가 현실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힘든 현실에 대한 도피의 도구로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 새롭게 창조된 판타지의 세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현실과 맞닿은 세계임을 그는 인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한 현실과 판타지 세계와의 상관성은 오필리아(이바나 바퀘르)의 캐릭터에서 자세히 나타납니다. 동화 읽기를 좋아하는 꿈 많은 소녀 오필리아. 양복쟁이였던 아버지는 전쟁 중 죽었으며, 어머니는 무시무시한 파시스트인 군인 아저씨(세르지 로페즈)와 재혼하여 아기를 가졌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 의붓아버지가 게릴라군과 대치중인 낯선 시골 마을로 이사를 오게 된 오필리아에게 유일한 벗은 그녀가 좋아하는 동화책뿐입니다.
어머니는 나날이 나약해져만 가고, 의붓아버지의 폭정은 어린 오필리아가 감당하기엔 너무 힘이 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나라에서 인간 세계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요정 세계의 공주가 되고 다시 요정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선 요정 판(더그 존스)이 제시한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합니다. 현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오필리아는 요정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한 집착에 시달리고, 결국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그러한 집착은 극에 달합니다.
이 영화는 1944년 스페인 내전이 프랑코 장군에게 진압된 후 스페인 전역이 파시즘 열풍에 휩싸였던 암흑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필리아라는 캐릭터는 인간의 목숨이 파리보다도 못하던 암흑기의 시대 속에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상상의 세계로 숨으려한 나약한 인간의 표본인 셈입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분명 제 생각일 뿐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오필리아가 겪는 모험이 진짜 그녀가 요정의 세계로 가기 위한 미션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필리아는 단지 상상력이 풍부한 평범한 소녀일수도, 아니면 진짜 기억을 잃어버린 요정 공주일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몫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판타지의 세계보다는 현실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판타지 영화인지, 아니면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과 게릴라군의 처참한 전투를 어린 소녀의 입장에서 바라본 전쟁 영화인지, 헷갈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이 영화가 다른 판타지 영화와 차별되는 것이며, 수많은 관객들에게 '속았다'며 지탄을 받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이 영화의 방식이 판타지 영화를 한 단계 진화시켰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이 막을 내린 후 판타지 영화가 자꾸 어린 관객들을 위한 디즈니적 모험담으로 변해가고 있는 실정에서 판타지가 현실을 기초로 두고 있다는 어쩌면 아주 당연한 사실을 새롭게 인지시켜주고 있는 이 영화는 감히 할리우드 영화라면 할 수 없었을 새로운 시도를 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판타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새로운 세계이기를 바라는 것은 영화를 보며 잠시 힘든 현실의 세계를 잊으려하는 관객들의 욕구와 맞아 떨어집니다. 하지만 오필리아처럼 현실을 부정하고 상상의 세계로 숨으려 한다면 그것은 상상의 세계에 있는 그 순간만 행복할 뿐입니다. 현실을 적극적으로 바꾸려하는 영화 속 게릴라군의 행보가 그렇기에 저는 매우 신선해 보였습니다.
판타지도 이렇게 현실적일 수 있음을,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새로운 시선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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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
단순히 판타지적 요소의 재미를 없애서 욕을 먹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시도 때문이었다면.. 욕심이 납니다. 시간도 많겠다. 하하;  2006/12/03   
쭈니 하지만 저와 함께본 구피는 실망스럽다던데...
확실한건 이전의 판타지 영화를 기대하고 이 영화를 봐선 절대로 안된다는... ^^
 2006/12/04   
손님
제가 자주가는 동호회사이트에선 어느분이 혹평을 해놨길래 처음에 볼때 많이 망설였습니다.제가 본 판의미로는 그분과는 확실히 달랐지만요.현실은 어쩐지 오필리아의 망상속 세계의 연속선상인것처럼 닮아서 마지막이 더욱더 비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더군요 칭찬할만합니다,,개인적으로 이런 어두운 분위기 좋아합니다ㅎ그렇지만 어른이 봐야지 영화가 더 빛을 발할것같네요..^^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겐 아직 받아들이기도 어렵고,아직은 세상에 부딪혀보길 권하고싶으니까요  2006/12/05   
쭈니 저도 어두운 분위기의 판타지가 좋다는...
그래서 [반지의 제왕]도 좋아하는 것일지도... ^^
 2006/12/05   
조광만
저도 재미있게 봤었습니다.^^* 마지막에 오필리아가 지하세계로 다시 가던데.. 솔직히 그것이 오필리아의 죽기전 마지막 상상인지.. 실제인지는 아직도 애매한...^-^;; 너무 재미있게 봤었어요.^^*  2006/12/05   
쭈니 글쎄요. 이 영화는 열린 결말인듯...
관객 스스로 판단해야할것 같습니다. ^^
 2006/12/05   
준냉이
으와~ 역시 영화좀 볼줄아시는분이면
대부분 이영화가 맘에 들엇데요 (아닌경우도잇겟지만)
역시 쭈니님도 예상대로~~
다른사람들은 아마 해리포터 반지의제왕등등 그런
판타지에대한 기대를 너무많이해서 실망감도잇겟지만ㅎ
 2006/12/07   
쭈니 앗! 순식간에 영화볼줄 아는 사람이 되어 버렸군요. ^^
이 영화에 대한 실망감은 아마 마케팅의 실수탓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의 광고 자체가 너무 판타지쪽으로 치우친 것이 관객들에게 왜곡된 기대감을 안겨준거죠.
암튼 영화 광고계 사람들... 반성좀 해야합니다. ^^
 2006/12/07   
이브
쭈니님 오랜만입니다 ^^
거의 7개월만에 극장을 찾고 본 영화가 판의 미로였지요. 저역시 판타지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7개월만에 극장을 찾는 발걸음은 즐거웠어요. 하지만...보는동안 얼마나 놀랬던지 -_-;; 아직도 생각하면 두근두근 합니다. 저도 전쟁, 공포 절대로 보지 않는 사람이거든요. 해서 못본영화도 많아요. 예를들면 라이언일병구하기 라던가...-_-;;
근데 이 영화를 봤으니.. 판타지라고 해서 보러 갔다가 뒤통수 맞았지요..하하하.. 보는동안 손으로 눈가린적도 몇번이나 됩니다 T_T 도대체 판타지는 언제 나오는건지.. '비밀의 문이 열리는순간 판타지의 전설이 깨어난다' 하하하...orz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망스럽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정말 독특한 판타지영화(?)였지요. 다 보고나서 오필리아가 얼마나 안스럽던지.. 제가 내린 결론은 오필리아의 환상세계라고 밖에 결론이 안나더라구요..흑흑.. 마지막 왕비님이 절 그렇게 만들었답니다 -_-;;; 왕비님만 아니더라도;;; 하하하..
여튼.. 이 영화를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건 광고탓; -0-;;
오랜만에 와서는 주절주절 떠들고 가네요~ ^^*
새로 이사하신 집에서도 행복하게 사세요~
 2006/12/07   
쭈니 오랜만이네요. 이브님...
7개월만의 극장 나들이라니...
저라면 벌써 금단현상으로 병원에 입원했을지도... ^^
이 영화... 분명 기대햇던대로의 영화는 아니었지만 저 역시도 좋았답니다.
현실의 세계를 도망치고 싶었던 한 소녀의 비극적 판타지라고나 할까...
하긴 저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도망치고 싶었을지도... ^^
 2006/12/07   
wephy
이영화..보고 솔직히 좀 놀랬습니다...아무런 정보없이 보러 간 저도 문제가 좀 있지만...요정과 여러가지 제목을 봤을때
아동영화 즉 순수한 그런영화인줄 알고 봤습니다..결국 보는 내내 쇼크의 연속.....이 영화를 보면서 뭔가 아이의 상상을 너무 강조해서 결과적으로 보는사람에게 난해함을 안겨주는 그런영화라고 느꼇습니다 저도 물론 엔딩을 보면서 뭔 내용인지 끝끝내 몰랐습니다...저게 환상이었는지 아님 실제였는지...ㅎㅎ
아직도 이해를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만 그런진 몰라도
이영화를 보고 난해함을 느끼면서...정말 짜증이 났습니다..
뭔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하루종일 안고 있는듯한 느낌이랄까요...보고 실망과 쇼크 두가지 모두 경험한 영화였습니다..
 2007/01/11   
쭈니 실망과 쇼크... ^^
이 영화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보러가신다면 정말 그렇겠네요.
전 다행히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미리 습득해서 쇼코는 받지 않았답니다. ^^
 2007/01/12   
바이올렛
이 영화를 보고 정말 충격이 컸지요..ㅎㅎ
그래도 좋았는데..
일단 표현의 방식이 좀 특별하잖아요.
우리가 인생에 갖고 있는 판타지를 '판타지'를 가지고 깨주었던 영화. 그 환상적인 영상은 너무도 냉정한 시선이었죠.
관객들에게 가장 잔인했던 영화가 아닐지...

전 그 영화 중에서도 그... '눈알 귀신' 인가요? 아이들 잡아먹는... 그 캐릭터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궁금해요. 유럽 어느 나라 신화 같은데서 가져온 것인지 아님...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인지.. 아주 흥미로운 캐릭터였어요.
 2007/07/10   
쭈니 아마도 유럽의 민담에서 나온 캐릭터가 아닐까요?
이 영화에 나오는 판이라는 요정 역시 유럽의 만담에 나오는 캐릭터더군요.
그것에 비춰본다면 그 역시도...
그냥 제 생각입니다. ^^;
 2007/07/10   
길가던행자
잔혹동화;;;결말은 아직도 오리무중.....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오필리아가 요정세계로 돌아간거라고 보고싶네요..  2007/08/11   
쭈니 뭐... 그 편이 해피엔딩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괜찮을듯...
개인적으로 비극을 좋아하는 저는 그 반대로 생각하는 편이... ^^;
 2007/08/11   
오필리아가 지독한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꿈꾼건지도 모르죠 ^^
뭐.. 무당들의 빙의나 신내림이 서양의 관점에서는 정신분열증의 일환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요..

분란을 일으킬 잡담을 하자면 이런거지만
판타지 물인거죠.. 아.. 참 재미있는 판타지 물요 ^^
 2009/01/08   
쭈니 뭐 개개인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해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쭌님의 해석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
 2009/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