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대니쉬 걸] - 그의 용기와 그녀의 사랑은 위대했다.

쭈니-1 2016. 6. 2. 14:39

 

 

감독 : 톰 후퍼

주연 : 에디 레드메인, 알리시아 비칸데르

개봉 : 2016년 2월 17일

관람 : 2016년 6월 1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봐야할 영화들을 체크하다.

 

지난 2월 28일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스포트라이트]가 작품상을 수상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벌써 3개월 전의 일이네요. 저는 재방송으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제가 아직 보지 못한 영화들을 체크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나니 이제 남은 영화는 [브루클린], [룸], [대니쉬 걸], [조이], [크리드], [스티브 잡스]가 아직도 남아 있네요. 그리고 그 중 제가 가장 기대했던 [대니쉬 걸]을 어제 드디어 봤습니다.

[대니쉬 걸]은 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 여우조연상을 안겼고,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와 마지막 순간까지 남우주연상 경합을 벌인 영화입니다. 솔직히 저는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며 오랫동안 아카데미와 인연이 없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응원했었는데, 막상 [대니쉬 걸]을 보고나니 에디 레드메인이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에디 레드메인은 전년도에 [사랑에 대한 모든 것]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움켜쥐었는데, 제 개인적으로는 [사랑에 대한 모든 것]보다 [대니쉬 걸]의 연기가 훨씬 좋았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알리시아 비칸데르가 여우주연상이 아닌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는 점입니다. 아직 브리 라슨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룸]을 아직 보지않았지만, [대니쉬 걸]에서 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연기는 정말 눈부시게 아름답고 가슴시리게 슬펐습니다.

 

 

 

그 남자, 내 안의 여자를 발견하다.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은 여자라고 생각해서 성전환 수술을 받는 사람들은 지금도 보통 사람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90년 전에는 오죽 더했을까요? 풍경화 화가로 명성을 얻고 있던 덴마크의 화가 에이나르 베게너(에디 레드메인)는 우연히 초상화 화가인 아내 게르다(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요청으로 드레스를 입고 대역 모델이 됩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에이나르는 자신의 안에 숨어 있던 여성성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게르다의 단순한 장난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풍경화 화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에이나르에 비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상화 화가에 불과한 게르다는 남편에게 여자 옷을 입혀 모델 대역이라는 굴욕을 줌으로써 에이나르데 대한 시기어린 장난스러운 복수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단 한순간의 장난은 에이나르에게도, 그리고 게르다에게도 겉잡을 수 없는 인생의 소용돌이가 되고 맙니다.

장난으로 에이나르는 여장을 한채 릴리라는 이름으로 파티에 참가하고, 그 이후부터 에이나르의 내면에는 점점 릴리가 자리가 잡아갑니다. 에이나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는 병원에 다니며 의사의 도움을 받으려하지만 의사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병원에 가두려고만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할수록 여성에 대한 에이나르의 집착은 강해집니다.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보내줬다.

 

만약 그 누구도 에이나르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에이나르는 정신병원에 갇혀 비참한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겐 그 누구보다 에이나르를 사랑한 아네 게르다가 있었습니다. 게르다는 처음엔 에이나르에게 내 남편을 돌려달라고 울부짖기도 했지만 나중엔 릴리로써의 에이나르를 인정하고, 그를 보호해줍니다.

아마도 처음엔 죄책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에이나르에게 처음으로 여성의 옷을 입힌 것도 게르다였고, 에이나르에게 여장을 하고 릴리가 되어 파티에 참석하자고 부추긴 것도 게르다였기 때문입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에이나르의 내면에는 릴리가 있었다고 하지만, 에이나르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릴리를 끄집어낸 것은 게르다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게르다는 릴리의 초상을 그리고 그동안 가질 수 없었던 명성을 갖게 됩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게르다는 에이나르가 릴리가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고, 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에이나르를 이해하고, 지원하고, 보호해줍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죄책감으로 시작했다고해도 에이나르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에이나르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에이나르를 위해 에이나르를 죽이고 릴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도울 수 밖에 없었던 게르다의 모습은 아름답고 슬펐습니다.

 

 

 

그의 용기와 그녀의 사랑은 위대했다.

 

[대니쉬 걸]은 분명 제겐 이해가 되지 않는 낯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에디 레드메인의 섬세한 연기 덕분에 여자가 되고 싶었던 에이나르의 간절함이 느껴졌고, 알리시아 바킨데르의 아름답고 슬픈 연기 덕분에 게르다가 느꼈을 아픔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맺혀 있었습니다.

에이나르가 지금까지 한번도 실행되어 본 적이 없는 성전환 수술을 받는 장면에서 저는 마음 속으로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부디 수술에 성공해서 에이나르가 그토록 원했던 릴리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기를... 하지만 그렇게 속으로 기도하면서도 에이나르를 바라보는 게르다의 눈빛에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그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러나 그녀는 오히려 에이나르에게 용기를 주며 자신의 마음을 감춥니다. 

아마도 에이나르, 아니 릴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행복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여성이 될 수 있었고, 그러한 자신을 이해해주고 변함없는 사랑을 준 아내 게르다가 곁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니쉬 걸]은 분명 슬픈 러브 스토리였지만, 눈물대신 그들의 위대한 용기와 사랑에 맘껏 박수를 쳐주고 싶은 그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