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윤기
주연 : 공유, 전도연
개봉 : 2016년 2월 25일
관람 : 2016년 5월 3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윤기 감독의 영화임을 명심할 것.
지난 2월 25일에는 제 기대작이 두편이었습니다. 한편은 할리우드 SF영화 [제 5침공]이었고, 또 다른 한편은 우리나라의 멜로영화 [남과 여]입니다. [제 5침공]의 경우는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남과 여]의 경우는 구피와 함께 극장에서 관람하고 싶었지만 저는 선뜻 구피에게 이 영화를 보러 가자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윤기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입니다.
이윤기 감독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상업영화적 재미는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의 감독 데뷔작인 [여자, 정혜]만 봐도 그렇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는 우체국 직원 정혜(김지수)가 어린 시절을 상처를 극복하고 남자(황정민)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여자, 정혜]는 세계 영화제 수상으로 작품성은 인정받았지만, 영화 자체는 굉장히 답답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전도연과 하정우가 주연을 맡은 [멋진 하루], 임수정과 현빈이 주연을 맡은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역시 [여자, 정혜]와 엇비슷합니다. 이윤기 감독은 주로 남녀간의 사랑을 영화에 그려내지만 다른 상업적 멜로영화처럼 달달하지는 않습니다. 조용하고, 잔잔하고, 가끔은 답답할 정도입니다. 제가 공유, 전도연 주연의 [남과 여]를 구피에게 극장에서 함께 보러 가자고 하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윤기 영화의 모든 특징이 담겨져있다.
만약 제가 [남과 여]에 대한 영화 정보를 전혀 모른채 영화를 봤다면, 영화 중간에 "이 영화 혹시 이윤기 감독의 영화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남과 여]는 이윤기 감독의 전작들과 분위기가 굉장히 많이 비슷합니다. 우선 이 영화는 이윤기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러하듯 멜로영화입니다. 핀란드에서 처음만난 상민(전도연)과 기홍(공유)이 한국에서도 사랑을 이어나간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입니다.
하지만 잔잔합니다. 상민과 기홍은 이미 각각의 배우자가 있기에, 어찌보면 두 사람의 사랑은 불륜입니다. 대부분 불륜을 소재로한 영화들은 자극적이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마치 십대의 순수한 사랑을 그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냥 잔잔합니다. 그리고 답답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기홍을 선택한 상민도, 상민을 사랑하지만 가족 곁을 떠나지 못하는 기홍도 답답하기만합니다. 결국 [남과 여]는 기본의 이윤기 감독 영화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영화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의외로 저는 이 영화의 후반부에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이윤기 감독의 영화에 그다지 영화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보통의 관객인 제가 [남과 여]를 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는 것은 제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상민의 사랑과 기홍의 사랑이 공감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외로움과 비슷한 아픔을 지닌 그들
상민과 기홍이 처음 만난 곳은 핀란드입니다. 자폐아 아들을 둔 상민과 우울증에 걸린 딸을 둔 기홍은 핀란드의 국제학교에서 첫 만남을 가집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짧지만 강렬한 사랑을 나눕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 핀란드라는 낯선 나라라는 점입니다. 만약 두 사람이 한국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면 결코 사랑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낯선 나라에서 아는 사람없이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서로에게 이끌린 것이죠.
상민과 기홍의 자녀가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도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이유입니다. 결혼한 기혼남녀에게는 자녀가 세상의 모든 것일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민의 아들은 자폐아입니다. 상민은 지극정성으로 아들을 돌보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지쳐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은 기홍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참 애교가 많은 어린 나이이지만, 기홍의 딸은 무표정으로 기홍을 대합니다. 기홍은 아버지이기에 당연히 딸을 사랑할 수 밖에 없지만, 우울증에 걸린 딸의 무표정에 자신도 모르게 상처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상민과 기홍은 낯선 나라에서의 외로움과 자녀에 대한 아픔이 같기에 운명적으로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이죠.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 더 적극적일 수 밖에 없다.
핀란드는 상민과 기홍에게는 판타지같은 공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한국은 그들에게 현실의 공간이죠. 그렇기에 핀란드에서의 꿈같은 짧은 사랑을 뒤로 하고 상민과 기홍은 한국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냅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상민 앞에 기홍이 나타난 것이죠. 그리고 기홍은 적극적으로 상민에게 대쉬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기홍의 상황입니다. 우울증에 걸린 딸은 기홍에게 따스한 미소 한번 지어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조울증과 의부증에 걸린 아내는 시도 때도 없이 자살을 시도합니다. 기홍은 그들에게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상민과의 만남이 그에겐 유일한 돌파구일지도 모릅니다. 숨막히도록 답답한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와는 달리 상민의 가정은 자폐아인 아들을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비록 남편이 무뚝뚝하긴 하지만 그도 가정에 최선을 다하고, 상민 입장에서는 자폐아 아들도 너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인 기홍과는 달리 상민은 기홍에게 거리를 둡니다. 그리고 결국 상민에게 그만 만나자고 선언합니다. 잃을 것이 없는 기홍과는 달리 상민은 기홍과의 사랑을 선택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 분명했기에...
뒤바뀐 처지, 그리고 남과 여의 선택
하지만 기홍과의 만남이 계속되면 될수록 상민은 기홍에게 점차 마음의 문을 열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기홍에게 깊숙히 빠져들고 말죠. 지금까지 지켜온 가정과 사랑하는 아들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기홍과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런데 기홍의 상황이 바뀝니다. 더이상 회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아내와의 관계가 개선되고, 우울증에 걸린 딸이 처음으로 기홍에게 안깁니다. 잃을 것이 없었던 기홍은 상민에게 적극적이었지만, 잃을 것이 생기자 더이상 상민에게 다가갈 수가 없게된 것이죠.
그렇게 두 사람의 비극은 시작됩니다. 가정을 포기하고 사랑을 선택한 상민과 사랑을 포기하고 가정을 선택한 기홍.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았던 것일까요?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상민도 기홍도 불행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된 판타지같은 공간인 핀란드에서 다시 만난 상민과 기홍. 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지나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로 사랑했지만, 서로 다른 것을 선택했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것을 포기했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현실의 공간은 물론 판타지의 공간에서조차 이뤄질 수가 없었던 것이죠.
전도연과 공유의 연기에 몰입하다.
영화 후반 핀란드의 택시 안에서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상민의 모습에서 저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사랑에 빠지게 해놓고 정작 사랑이 아닌 가정을 선택한 기홍에 대한 원망이 상민의 눈물 속에는 담겨져 있습니다. 상민의 뒷모습을 봤지만 그녀의 뒤를 쫓아가지 못한 기홍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가족을 외면할 수 없었던 기홍. 그 역시 남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과연 누가 더 불행했을까요?
[남과 여]는 전도연과 공유의 연기가 정말 좋았던 영화입니다. 전도연의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있습니다. 특히 이윤기 감독과는 [멋진 하루]를 통해 만난 적이 있기에 [남과 여]에서 전도연의 연기는 마치 맞춤옷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공유의 연기는 의외였습니다. [여자, 정혜]의 황정민, [멋진 하루]의 하정우,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현빈과 마찬가지로 [남과 여]의 공유는 내면 깊숙한 곳의 울림을 연기를 통해 전해줬습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냥 불륜 영화입니다.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전도연과 공유의 연기가 덧붙여지고, 이윤기 감독의 조용하고 담담한 연출력이 가미되면서 [남과 여]는 사랑에 대한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로 완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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