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클레이 케이티스, 퍼갈 레일리
더빙 : 제이슨 서디키스, 조시 게드, 대니 맥브라이드, 피터 딘클리지
개봉 : 2016년 5월 19일
관람 : 2016년 5월 22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웅이와 나의 추억이 담긴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
구피는 웅이가 너무 스마트폰 게임에 집착한다고 걱정하지만 저는 그와 반대로 웅이가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너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억제한다고 생각합니다. 웅이는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를 사달라고 땡깡부리며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구피가 '안돼!'라고 하면 금방 포기하곤 했습니다.
스마트폰 게임도 그러합니다. 웅이 또래 아이들을 보면 스마트폰을 손에 놓지 않고 쉴새없이 무언가를 합니다. 길을 걸을 때도, 친구들과 놀 때도, 심지어 밥을 먹을 때도 말이죠. 하지만 웅이는 다릅니다. 구피와 주말에만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로 약속을 한 이후 주중에는 스스로 게임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게임이 허락된 주말에도 신나게 게임을 하다가 구피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멈춤 버튼을 누르고는 합니다.
다른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조를 때, 웅이는 "난 스마트폰, 필요없어요."라며 오히려 스마트폰을 거부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갖게된 이후에도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꺼놓고, 가끔은 게임 유혹에 빠질까봐 스마트폰을 일부러 집에 두고 다니기도 할 정도입니다. 이러한 웅이의 모습을 보면 웅이가 자신의 감정을 너무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래서 주말이 되면 저는 일부러 웅이와 함께 신나게 게임을 합니다. 구피는 그런 저게 뭐라하지만 웅이가 스마트폰 게임을 얼마나 하고 싶어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주말만큼은 주중에 참았던 게임을 저와 실컷 하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요즘 저와 웅이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마블 퓨처 파이트> 게임에 푹 빠져 있는데 웅이와 함께 집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하며 <마블 퓨처 파이트>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앵그리버드>도 한때 웅이와 제가 함께 즐겼던 스마트폰 게임입니다. 저는 워낙 게임을 못해서 <앵그리버드>처럼 고난도(?) 게임은 잘 하지 못하지만, 웅이는 새총의 각도를 잘 맞춰가며 <앵그리버드>의 각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곤 했습니다. 저는 새로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좋아하는 웅이의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핀란드의 작은 게임회사에서 개발했다는 <앵그리버드>는 스마트폰 게임 시장의 흐름을 바꾸었을 정도로 히트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앵그리버드 스페이스>, <앵그리버드 스타워즈>, <앵그리버드 트랜스포머>등 여러 버전으로 출시되며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영화화된 것이죠. 이제 중학생이 된 웅이에게 [앵그리버드 더 무비]는 너무 유치할지도 모른다는 구피의 우려가 있었지만, 웅이와 게임을 함께 즐겼던 추억을 회상하며 주말에 웅이와 함께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평화로운 버드 아일랜드의 말썽꾼 레드
[앵그리버드 더 무비]는 평화로운 버드 아일랜드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너무 평화로워서 나는 법조차 잊은 버드 아일랜드의 새들. 그들에게 유일한 골칫거리가 있다면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는 레드(제이슨 서디키스) 뿐입니다. 가족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 레드는 다른 새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툭하면 화를 내며 말썽을 일으킵니다.
대부분 이런 류의 영화는 뻔한 전개를 보여줍니다. 왕따인 주인공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맹활약을 하며 영웅으로 거듭나는 것이죠. [앵그리버드 더 무비]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드는 전형적인 왕따 캐릭터입니다. 그리고 그가 판사 페킨파의 판결로 심리치료를 위해 만난 친구들 역시 이런 류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조연 캐릭터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수다쟁이 척(조시 게드)과 조금 멍청하지만 듬직한 밤(대니 맥브라이드)까지... 그들은 레드와 짝을 이뤄 예상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영화의 전개를 이끕니다.
그리고 예상했던대로 평화로운 버드 아일랜드에는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웃섬인 피그 아일랜드의 욕심 꾸러기 돼지들이 뭔가 음흉한 음모를 꾸미고 버드 아일랜드에 온 것입니다. 버드 아일랜드의 다른 새들은 초록 돼지들을 믿지만, 레드 만큼은 그들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레드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다 결국 초록 돼지들이 새들의 알을 훔쳐가면서 그제서야 레드의 말이 맞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솔직히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만 놓고본다면 [앵그리버드 더 무비]에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너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이 영화의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의 설정 자체가 새들의 알을 훔쳐간 초록 돼지를 향한 새들의 분노이고, 영화 역시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초반은 너무 뻔한 캐릭터들과 너무 뻔한 스토리 전개로 인하여 살짝 지루함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레드가 척, 밤과 함께 버드 아일랜드의 수호신 마이티 이글(피터 딘클리지)을 찾아가며 이야기는 의외성을 띄기 시작합니다. 특히 마이티 이글의 첫 등장 장면은 매우 강력했는데, 그 장면에서 저와 웅이는 배꼽을 잡고 한참 웃었더랬습니다.
마이티 이글의 등장과 함께 [앵그리버드 더 무비]는 초반의 지루함에서 벗어나며 본격적인 클라이막스에 돌입합니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레드를 필두로 피그 아일랜드에 반격을 가하는 새들의 멋진 한방입니다. 이러한 클라이막스는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를 재미있게 즐겼던 관객에겐 더욱 강력한 영화적 재미를 안겨줍니다. 생각해보세요. 조그마한 스마트폰 게임에서 펼쳐졌던 장면들이 커다란 극장 화면에서 재현되는 광경을... 아마도 <앵그리버드>를 재미있게 했던 플레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영화적 재미일 것입니다.
심각할 필요있나? 그냥 신나게 즐기면 되지.
[앵그리버드 더 무비]는 그야말로 아무 생각없이 신나게 즐기기에 딱 알맞은 애니메이션입니다. 긴장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감동 때문에 남몰래 눈가의 눈물을 닦아낼 필요도 없습니다. 귀여운 새들이 맹활약을 하고, 악당인 초록 돼지들도 역시 귀엽습니다. 게다가 어린이 애니메이션에선 필수라 할 수 있는 그 흔한 교훈도 없습니다.
하지만 [앵그리버드 더 무비]에는 추억이 있습니다. 저와 웅이가 열심히 했던 스마트폰 게임 <앵그리버드>가 영화에서 고스란히 재현되는 장면을 보는 것은 분명 색달랐습니다. 대부분 게임을 원작으로한 영화들은 게임 속 캐릭터만 차용할 뿐, 내용은 새롭게 창작되기 일쑤인데, [앵그리버드 더 무비]는 새총을 이용해서 초록 돼지들의 집을 부수고 알을 구하는 게임의 기본적인 설정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되었습니다.
덕분에 영화를 보고나서 집으로 가며 웅이와 많은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습니다. 웅이는 게임 속 캐릭터 중에서 초록색 부메랑 새인 할을 가장 많이 좋아하지만 영화에서는 너무 짧게 등장해서 아쉬웠다고 합니다. 특히 할은 <앵그리버드>의 원년 멤버이지만 새로운 버전의 <앵그리버드>가 출시되면서 점점 잊혀진 캐릭터가 되었었다고 하네요.
영화가 끝난 후 저는 일부러 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걸어서 왔습니다. 걷는 동안 웅이와 더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30분간 걸으면서 너무 짧게 등장한 할에 대한 아쉬움과 <앵그리버드> 초창기 과금 캐릭터인 마이티 이글의 엽기적인 등장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앵그리버드 더 무비]에서 등장한 영화 패러디 맞추기 게임에 돌입했습니다.
먼저 저는 영화 후반 빛보다 빠른 척의 활약을 통해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패러디를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초록 돼지들의 배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한 장면도 숨어 있습니다. 이에 맞서 웅이는 영화 후반 페킨파의 활약 장면을 통해 [토르 : 천둥의 신]의 패러디를 맞춰냈습니다. 이렇게 영화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있더군요.
[앵그리버드 더 무비]에 대한 추억의 마지막 피날레는 맥도날드에서 포장해온 <앵그리버드 상하이버거>였습니다. 구피는 웅이에게 인스턴트 음식을, 그것도 속 아픈 매운 햄버거를 사왔다고 투덜거렸지만 가끔은 이런 몸에 안좋은 인스턴트 음식으로 하루 끼니를 떼우는 것도 좋은 추억이라 생각합니다. 미각 포기 각서를 쓰고 핫소스 두개를 뿌린 <앵그리버드 상하이버거> 4단계를 먹으며 언젠가는 [앵그리버드 더 무비]를 보고, <앵그리버드 상하이버거>를 먹었던 오늘을 웃으며 추억할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가끔은 화를 내도 괜찮아.
맞벌이를 하는 저와 구피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웅이. 그래서인지 어린 아이답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떼쓰지 않았고, 몸에 안좋은 인스턴트 음식 대신 외할머니가 해주신 건강 음식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 웅이를 볼 때마다 기특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미안하기도합니다. 그렇기에 어쩌면 저는 웅이와 놀때마다 웅이보다 더 어린아이가 되나봅니다.
화가 나면 화를 내고,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떼도 써보고, 몸에 좋은 건강 음식 대신 몸에 안좋은 인스턴트 음식을 먹겠다고 고집도 부려보고... 이러한 것들을 어린 시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겟습니까? 화낼 필요가 없는 버드 아일랜드에서 혼자 화가 잔뜩난 레드의 모습을 보며 저는 웅이에게 조용히 속삭이고 싶었습니다. "그래, 가끔 화가 나면 참지말고 화를 내도 괜찮아. 넌 아직 어리잖아."
어른이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법부터 배운다.
싫어도 싫다고 거절할 수 없고, 좋아도 좋다고 웃을 수 없는...
그래서 가끔은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어린 아이들이 부럽다.
화가 나면 화를 낼 수 있는 그런 어린 아이들이...
'영화이야기 > 2016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가씨] - 극적 반전보다 그녀들의 사랑에 집중하다. (0) | 2016.06.03 |
---|---|
[엑스맨 : 아포칼립스] -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 (0) | 2016.05.30 |
[곡성] - 우리 사회에 만연한 끔찍한 사건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0) | 2016.05.20 |
[다이버전트 시리즈 : 얼리전트] - 평범해보이는 이야기안에 숨겨진 인간다움에 대한 통찰 (0) | 2016.05.19 |
[탐정 홍길동 : 사라진 마을] - 나무가 아닌 숲을 보라! (0) | 2016.05.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