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아가씨] - 극적 반전보다 그녀들의 사랑에 집중하다.

쭈니-1 2016. 6. 3. 14:19

 

 

감독 : 박찬욱

주연 :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조진웅

개봉 : 2016년 6월 1일

관람 : 2016년 6월 2일

등급 : 청소년관람불가

 

 

* 이 글에는 [아가씨]는 물론 <핑거스미스>의 반전도 모두 언급됩니다.

 

<핑거스미스>를 보고나니 커져버린 기대감

 

6월의 제 첫번째 기대작은 [아가씨]였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아가씨]를 보기 전에도 저는 어떻게하면 [아가씨]를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까 고민했고, 제가 내린 결론은 [아가씨]와 같은 원작을 가진 영국 BBC 미니시리즈 <핑거스미스>를 미리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해서 지난 화요일 저녁, 3시간을 할애해서 3부작으로 이루어진 미니시리즈 <핑거스미스>를 구피와 함께 봤답니다.

2005년 제작된 <핑거스미스>는 18세기말 영국을 배경으로 거액의 재산을 상속받게된 귀족 아가씨 모드 릴리(일레인 캐시디)와 그녀의 재산을 노리는 사기꾼, 그리고 사기꾼에게 고용된 소녀 수 트린더(샐리 호킨스)의 이야기입니다. <핑거스미스>는 국내 영화팬 사이에서도 반전이 기가 막히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저 역시 <핑거스미스>를 보며 두번의 반전에 놀랬습니다.

첫번째 반전은 사기꾼에게 속아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것은 아가씨 모드가 아닌 사기꾼에게 고용된 수였다는 반전이고, 두번째 반전은 모드와 수는 갓 태어나자마자 운명이 서로 뒤바뀌었으며, 귀족 아가씨인줄 알았던 모드는 사실 뒷골목 소매치기 집단의 우두머리인 썩스비(이멜다 스턴톤) 부인의 딸이었다는 반전입니다. 이 두 반전의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과연 [아가씨]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핑거스미스>의 효과는 [아가씨]에 대한 제 기대감을 커지게 만드는 것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난 [아가씨]는 안볼거야."라고 선언했던 구피가 <핑거스미스>를 본 이후 목요일 밤, 저와 함께 [아가씨]를 극장으로 보러 갔다는 것은 제게 있어서 엄청난 <핑거스미스>의 효과였습니다. 사실 [아가씨]는 김민희와 김태리의 파격적인 노출씬이 있다고해서 혼자 보러가기 민망했는데, 구피가 같이 보러 가줬으니 제 입장에서는 <핑거스미스>에게 감사해야할 듯합니다.

[아가씨]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어릴적 부모를 잃고 후견인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엄격한 보호 아래 살아가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와 그녀의 돈을 노리는 사기꾼 백작(하정우), 그리고 백작에게 고용된 하녀 숙희(김태리)의 이야기입니다. 일단 영화의 초반 부분은 <핑거스미스>와 비슷합니다. 제1막은 숙희의 나래이션으로 영화를 진행시켰다가, 제2막에서는 히데코의 나래이션으로 영화를 진행시키는 것도 <핑거스미스>와 같았고, 히데코가 아닌 숙희가 정신병원에 감금된다는 첫번째 반전까지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두번째 반전에서부터 <핑거스미스>와의 차별화를 꾀합니다.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히데코와 숙희에 얽힌 출생의 비밀 대신, 히데코와 숙희의 동성애적 사랑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핑거스미스>와는 전혀 다른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가씨]의 장점이 됩니다.

 

 

실망스러웠던 제1막

 

저는 개인적으로 <핑거스미스>와 비교해서 [아가씨]의 제1막이 실망스러웠습니다. <핑거스미스>는 1시간 동안 모드와 수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고, 그렇게 완벽하게 구축된 모드와 수 덕분에 제2막에서 펼쳐진 반전의 충격은 더욱 커졌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러닝타임이 3시간이었던 <핑거스미스>와는 달리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에 불과했고, 줄어든 러닝타임 때문에 제1막에서 첫번째 반전까지 스토리를 진행시켜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히데코와 숙희의 캐릭터 구축은 물론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것이 히데코가 아닌 숙희라는 첫번째 반전까지 제1막에서 모두 진행시켜야 했던 만큼 [아가씨]의 스토리 전개는 빠르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빠른 스토리 전개는 히데코와 숙희의 캐릭터가 그리 완벽하게 구축되지 못했다는 문제점을 안겨줬습니다. 히데코와 숙희의 캐릭터가 완벽하게 구축되지 못했으니 제1막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 할 수 있는 히데코와 숙희가 처음 동성애를 나누는 장면이 뜬금없게 느껴졌습니다.

게다가 <핑거스미스>보다 서둘러 공개된 첫번째 반전 부분도 <핑거스미스>와 비교해서 조금 밋밋한 감이 있었습니다. <핑거스미스>에서 모드 대신 정신병원에 갇히게되는 수의 장면은 반전의 충격도 충격이지만, 순식간에 변한 모드의 표정과 자신이 당한 것을 뒤늦게 깨달은 수의 울부짖음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임팩트도 강했습니다.

 

<핑거스미스>와 비교해서 [아가씨]의 제1막이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첫번째로 러닝타임의 제약 때문입니다. [아가씨]는 영화로써는 결코 짧다고 할 수 없는 2시간 20분의 러닝타임을 가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TV 3부작 미니시리즈인 <핑거스미스>의 전체 러닝타임보다 40분이나 짧았고, 그렇기 때문에 <핑거스미스>에서 보여줬던 모드와 수의 미세한 감정 변화들을 상당부분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은 <핑거스미스>에서는 거의 생략되다시피했던 모드의 외삼촌 캐릭터를 [아가씨]에서는 오히려 강화시켰습니다. [아가씨]에서 히데코와 코우즈키의 관계는 외삼촌이 아닌 이모부로 설정되었고, 그로인하여 코우즈키가 히데코를 탐한다는 설정이 추가됨으로써 캐릭터 자체가 강화되었습니다. 결국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러닝타임에 코우즈키 캐릭터까지 강화되고나니 히데코와 숙희의 캐릭터 구축이 모자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다른 이유는 김태리에게 있습니다. 숙희는 히데코와 더불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게다가 기존의 베테랑 배우들도 하기 까다로운 캐릭터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연기력이 미숙한 신인 배우가 숙희를 연기하다보니 영화의 초반엔 숙희에게 감정이입이 어려웠습니다. 물론 김태리는 신인 배우답지 않게 연기를 잘했습니다. 하지만 제1막의 마지막 장면인 숙희가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장면에서는 신인 배우의 미숙함을 노출되었고, 그것은 그 장면의 밋밋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제2막이 되어서야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이 지금의 명성을 괜히 얻은 것이 아닙니다. 분명 [아가씨]의 제1막은 <핑거스미스>와 비교해서 실망스러웠지만, 제2막으로 넘어가면서 박찬욱 감독의 연출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아가씨]의 제2막은 히데코의 나래이션으로 진행되는데, <핑거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코우즈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작과 손을 잡고, 자기 대신 정신병원에 감금시킬 희생양으로 숙희를 선택하는 것으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여기까지는 <핑거스미스>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히데코와 숙희의 파격적인 동성애 장면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 바로 제2막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핑거스미스>에서 최대한 절제되어 보여줬던 모드와 수의 동성애 장면을 [아가씨]의 제2막에서 파격적이고 노골적으로 선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들은 [아가씨]가 <핑거스미스>와 차별화되는 계기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핑거스미스>가 가지고 있는 반전을 포기한 대신 히데코와 숙희의 동성애적 사랑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러닝타임의 제약으로 인하여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히데코와 숙희의 감정선은 파격적인 동성애 장면으로 커버합니다. 사실 제1막에서도 히데코와 숙희의 동성애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제2막을 위해서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고, 제2막이 되어서야 작정한 듯 히데코와 숙희의 동성애 장면을 풀어 놓습니다.

 

사실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은 전개상 자연스럽습니다. 히데코 입장에서는 코우즈키의 변태적 행위로 인하여 남성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번듯한 백작의 외모보다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숙희에게 더 끌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히데코는 숙희를 유혹했고, 결국엔 돈이 아닌 숙희와의 진정한 사랑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히데코가 숙희와의 사랑을 선택하는 순간 [아가씨]의 모든 것은 바뀝니다.

우선 <핑거스미스>의 두번째 반전이었던 출생의 비밀은 싸그리 생략됩니다. 사실 히데코에게 출생의 비밀을 안기는 것은 [아가씨]에서는 조금 어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히데코는 일본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외지인이고, 숙희가 자란 사기꾼 집단 장면들도 초반에 거의 생략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출생의 비밀이 반전이라고 할 수도 없죠. 워낙 드라마에서 자주 써먹었으니...

이러한 상황에서 박찬욱 감독은 두번째 반전을 포기하고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에 집중함으로써 남성에 대한 여성의 복수극을 완성해냅니다. <핑거스미스>를 미리 보고 [아가씨]를 봤기에 [아가씨]와 <핑거스미스>를 서로 비교하며 볼 수 밖에 없었던 저는, 히데코가 숙희와의 사랑을 선택함과 동시에 더이상은 <핑거스미스>와의 비교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핑거스미스>와의 비교가 아닌 [아가씨] 본연의 재미에 집중할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박찬욱스러웠던 제3막

 

제1막은 원작을 그대로 쫓아갔고, 제2막에서는 파격적인 동성애 장면과 히데코와 숙희의 사랑으로 원작과의 차별화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제3막부터는 박찬욱 감독의 개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연출력을 선보입니다. 히데코와 숙희가 함께 백작을 속이고 남성들에 대한 복수를 선보이는 장면에서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은 박찬욱 감독의 2005년작인 [친절한 금자씨]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에 이은 복수3부작의 마지막 영화인 [친절한 금자씨]는 스무살에 죄를 짓고 13년 동안 교도소에 복역한 금자(이영애)가 출소후 자신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감옥에 보낸 백선생(최민식)에게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를 실행에 옮긴다는 내용입니다. 기존의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가 남성 중심의 복수극이고 여성은 둘러리에 불과했다면, [친절한 금자씨]는 남성을 향한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아가씨]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히데코와 숙희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는 직접적인 복수보다는 백작과 코우즈키가 서로 죽고 죽이게끔 이끄는 간접적인 복수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백작과 코우즈키가 서로 죽고 죽이는 동안 히데코와 숙희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비웃으며 서로의 육체를 탐닉합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히데코와 숙희의 복수는 금자보다 한단계 높은 수준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친절한 금자씨]와 [아가씨]가 비슷한 점은 여성의 복수라는 점 외에도 독특함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볼 당시 저는 이 영화의 독특함에 적응하지 못했었습니다. 복수의 대상인 백선생의 얼굴에 개의 몸을 합성시킨 엽기적인 장면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결국 [올드보이]과 같은 잘 빠진 장르 영화를 기대했던 제게 [친절한 금자씨]는 너무 낯선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박쥐] 등을 통해 박찬욱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익숙해졌고, 그 덕분에 [아가씨]의 후반부에 펼쳐지는 기괴한 장면들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히데코가 그토록 무서워하던 지하실에 백작을 감금하고 벌이는 코우즈키의 고문 장면에서 구피는 차마 보지못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오히려 저는 "그래도 거시기는 지켰다."라며 흐뭇해하는 백작의 모습에 킬킬거리며 독특함을 즐겼습니다.

[아가씨]를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극적 반전을 포기하고 그녀들의 사랑에 집중한 다분히 박찬욱 감독다운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민희와 김태리의 파격적인 동성애 장면도 나오고, 화려한 영상미와 통쾌한 복수극도 나오지만, 이 영화는 결코 상업영화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함을 즐기지 못한다면 [아가씨]는 그저 이상한 영화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칸 국제영화제는 그러한 박찬욱 감독만의 독특한 개성 때문에 이 영화를 경쟁부문으로 초청했을 것입니다. [아가씨]는 유명 원작을 지닌 영화도 박찬욱 감독의 손을 거치며 박찬욱스럽게 바뀐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입니다.  

 

남성에게 핍박받고, 남성에게 이용당했던 히데코와 숙희.

이 두 여인의 사랑과 복수.

[아가씨]는 남성 VS 여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히려 그녀들의 사랑이 공감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