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던칸 존스
주연 : 트래비스 핌멜, 벤 포스터, 폴라 패튼, 도미닉 쿠퍼, 토비 켑벨
개봉 : 2016년 6월 9일
관람 : 2016년 6월 12일
등급 : 12세 관람가
[정글북] VS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매주 웅이와 행복한 극장 데이트를 즐기는 제게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것은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볼 영화가 많은 것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웅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는 몇편이라도 모두 극장에서 보고 싶지만, 구피가 허락을 안해주네요. 그래서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볼 영화가 많으면 저는 어쩔 수 없이 그 중 한편을 선택을 해야만합니다
[정글북]과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이 동시에 개봉했던 지난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두 영화는 모두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로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보기에 딱 안성맞춤인 영화입니다. [정글북]의 원작은 1894년 영국의 소설가 J. 러디어드 키플링이 쓴 동화로 1967년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며 큰 인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늑대의 손에 키워진 인간아이 모글리의 모험 이야기이며 [아이언맨]의 존 파브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북미 박스오피스에서 대박 흥행을 이끌어낸 영화입니다.
그와 달리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미국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1994년 개발한 컴퓨터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를 영화화한 것으로, 서로 다른 차원에 살고 있던 인간과 오크가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벌인다는 내용입니다. [더 문], [소스 코드]의 던칸 존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고, 북미 흥행은 미지근했지만, 최대 영화 시장중 하나인 중국에서 대박 흥행을 이끌어내며 화제가 되었던 영화입니다.
[정글북]과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 두 편을 모두 보고 싶었지만, 구피 때문에 그럴 수 없는 상황. 결국 저는 선택권을 웅이에게 넘겼습니다. 솔직히 저는 웅이와 [정글북]을 보고싶었습니다. 벌써 중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제겐 귀여운 꼬마에 불과한 웅이에게는 동화를 바탕으로한 디즈니의 어드벤처 영화 [정글북]이 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웅이의 선택은 [정글북]이 아닌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이었습니다.
웅이가 [정글북]이 아닌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을 선택한 이유도 명확했습니다. [정글북]의 내용은 전부 알고 있지만,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내용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정글북]보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이 더 궁금하다고 하네요. 비록 선택권은 웅이에게 줬지만 내심 웅이가 [정글북]을 선택하길 바랬던 저는 웅이의 명확한 이유를 듣고나니 수긍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금요일 제사에 이어, 토요일 우럭낚시까지 다녀온 저는 온 몸이 쑤시고 아팠지만 웅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요일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을 보고 왔습니다. 연이틀 무리한 탓에 또다시 오른쪽 발뒤꿈치에 통증이 밀려 왔지만, 그래도 웅이와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을 꽤 재미있게 보고 왔답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어서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을 재미있게 보고나니 [정글북]도 보고 싶다는 생각뿐입니다.
우리가 아는 오크가 아니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오크의 전쟁을 담고 있는 판타지 영화입니다. 이러한 인간과 오크의 전쟁이라는 소재만 놓고본다면 판타지 영화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오크는 <반지의 제왕>의 저자인 J.R.R. 톨킨이 창조한 몬스터라고 하네요. 하지만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오크는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오크와는 전혀 다릅니다.
우선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오크는 인간 이상의 지능을 가지고 있고, 가족과 자신의 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그들은 단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이 사는 행성이 황폐해지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인간이 살고 있는 행성으로 넘어온 것입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오크는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몰아내고 인간의 행성을 차지해야만합니다.
[반지의 제왕 3부작]에서 오크는 절대악인 사우론의 소모품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오크는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이러한 오크의 변화는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입니다. 이 영화가 오크 종족 중의 하나인 서리늑대족의 젊은 족장 듀로탄(토비 켑벨)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입니다.
듀로탄은 자신의 부족과 임신을 한 아내를 지켜야만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는 어쩔수없이 오크 종족의 주술사인 굴단의 흑마법에 의지해서 인간을 공격하지만 포로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굴단의 흑마법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그리고 흑마법이 오크의 행성을 황폐화시켰듯이 인간의 행성도 황폐화시킬 것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결국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인간 종족의 레인 왕(도미닉 쿠퍼)에게 공존을 제안합니다.
이렇게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오크 종족인 듀로탄 위주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인간 종족의 영웅인 안두인 로서(트래비스 핌멜)의 등장은 듀로탄의 캐릭터가 어느정도 구축이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이러한 '先오크 後인간' 진행은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이 다른 판타지 영화와 차별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중반부는 오크의 공격에 반격을 준비하는 안두인에게 중심추가 잠시 옮겨지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후반부에는 다시 듀로탄의 영웅적 희생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저 인간과 오크의 전쟁이라는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 구도를 떠올렸는데, 막상 영화를 보다보니 인간의 편에 설 수도, 오크의 편에 설 수도 없는 묘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인간 영웅의 전형적 모습, 안두인 로서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영화의 초반과 후반을 통해 듀로탄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오크에 대한 선입견을 깨부수는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합니다. 그러면서 영화의 중반에는 영화의 또다른 축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종족의 영웅 안두인을 담아냅니다. 레인 왕의 친구이자, 충실한 부하이며 왕비인 타리아(루스 네가)의 오빠이기도한 안두인. 그는 전형적인 인간 영웅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판타지 영화의 일반적인 오크의 캐릭터를 철저하게 깨부순 듀로탄과는 달리 안두인은 판타지 영화의 인간 영웅의 전형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냅니다. 외모에서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아라곤(비고 모텐슨)을 연상시키는 안두인은 혼혈 오크인 가로나(폴라 패튼), 그리고 초보 마법사 카드가(벤 슈네처)와 팀을 이루기도 합니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의 해리(다니엘 래드클리프), 헤르미온느(엠마 왓슨), 론(루퍼트 그린트)을 연상시키는 조합이죠.
안두인의 캐릭터의 전형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영화 중반, 안두인의 하나뿐인 아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안두인에게 상처를 안겨주기도 하고, 가로나와 묘한 러브 라인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듀로탄에 비해 안두인의 캐릭터 구축이 미비하다보니 아들을 잃은 안두인의 슬픔과 가로나에 대한 사랑을 공감시키기엔 조금 부족했습니다.
아마 던칸 존스 감독은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에서 오크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렇기에 듀로탄의 캐릭터는 굉장히 세세하게 잡아냈습니다. 부족을 이끌어야 하는 족장으로써의 의무와 아내에 대한 사랑, 그러면서 굴단의 흑마법으로부터 오크와 인간 모두를 구하겠다는 정의감까지... 그러한 듀로탄 덕분에 인간과 오크의 균형을 맞출 수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듀로탄의 캐릭터가 세세하게 구축되는 동안 안두인의 캐릭터 구축은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로인하여 안두인은 굳이 캐릭터 구축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도 전형적인 인간 영웅의 모습을 갖출 수 밖에 없게된 것입니다. 만약 안두인의 캐릭터 구축을 위해 아들을 낳다 죽은 아내에 대한 슬픔과 아들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좀 더 세세하게 잡아냈다면, 아들이 전사하는 순간 안두인의 절규와 가로나와의 사랑이 좀 더 애틋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물론 캐릭터 구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안두인 뿐만은 아닙니다. 인간 종족의 수호자인 메디브(벤 포스터)는 물론 안두인과 팀을 이루는 초보 마법사 카드가까지... 한마디로 인간 종족에 대한 캐릭터 구축은 전무하다시피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인간 종족을 위한 영화가 아닌 오크 종족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오크 영웅의 시작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워크래프트>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워크래프트>는 오크를 기존의 악당의 하수인 혹은 무시무시한 몬스터에서 영웅으로 탈바꿈시킨 첫번째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선봉에는 스랄이라는 캐릭터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워크래프트>에서 스랄은 서리늑대족의 족장인 듀로탄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오크 종족간의 불화로 부모가 살해당하고 버려지게 됩니다. 그런 그를 블랙무어라는 인간 장교가 발견하게 되고, 블랙무어는 어린 오크에게 스랄(노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어 검투사로 훈련을 시킵니다. 하지만 검투사로 성장한 스랄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탈출하여 수 많은 오크를 해방시키고 마침내 오크의 왕국를 건설함으로써 오크의 영웅이 된다고 합니다.
<워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에서도 듀로탄이 인간과의 공존을 꾀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굴단이 서리종족을 몰살할 때 듀로탄의 아내는 갖난 아들 고엘을 안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더이상 도망칠 수 없음을 깨닫고 고엘을 강물에 흘러 보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강물에서 고엘을 발견하는 어느 인간 남자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고엘의 모습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킨 지도자 모세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 역시 이스라엘의 갖난 아기는 모두 죽이라는 이집트 왕의 명령을 피해 나일 강에 버려졌고, 후에 이집트 왕의 딸에게 발견되고 궁정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이스라엘 국민을 노예 생활에서 해방시킵니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기에 의미심장합니다. 아직 2편 제작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만약 2편이 만들어진다면 듀로탄에 이어 고엘의 영웅적인 대서사시가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오크의 영웅 고엘을 위한 시작에 불과한 셈입니다. 레인 왕의 죽음과 안두인의 분노 등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은 2편을 위한 떡밥을 이미 투척한 상황입니다. 이제 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서 2편이 만들어지는 것만 남은 셈이죠.
영화를 보고나서 웅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빠, 이 영화는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처럼 1편으로 끝나지는 않겠죠?"라고 묻습니다. [존 카터 : 바숨 전쟁의 서막]은 [황금 나침반]과 더불어 시리즈로 기획되었지만 1편의 흥행 부진으로 2편이 제작되지 않은 대표적인 판타지 영화입니다. 저는 웅이에게 "중국에서는 흥행 대박이 났다고 하니 잘하면 2편이 제작될거야."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워크래프트 : 전쟁의 서막]을 보고나니 지금껏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오크 영웅을 보기 위해서라도 2편이 꼭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영웅이 아닌 오크 영웅은 어떤 모습일까?
지금까지 끔찍한 괴물로만 생각되었던 오크가
이렇게 나를 기대하게 만들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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