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곡성] - 우리 사회에 만연한 끔찍한 사건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쭈니-1 2016. 5. 20. 16:40

 

 

감독 : 나홍진

주연 : 곽도원, 황정민, 쿠니무라 준

개봉 : 2016년 5월 11일

관람 : 2016년 5월 19일

등급 : 15세 관람가

 

 

호기심은 영화적 취향도 무시하게 만든다.

 

오른쪽 발뒤꿈치 염증 때문에 조금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그래도 지난 수요일 [다이버전트 시리즈 : 얼리전트]를 보고 왔습니다. 사실 구피에게 [다이버전트 시리즈 : 얼리전트]를 보러가자고 조르기 위해 저는 화요일 저녁에 손수 양념장을 만든 쫄면을 뇌물로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쫄면을 맛있게 먹고 억지로 제 손에 이끌려 [다이버전트 시리즈 : 얼리전트]를 보러가던 구피는 혼잣말로 "[곡성]이 더 보고 싶은데..."라며 중얼거리더군요.

구피가 [곡성]을 보고 싶어하다니... 이건 솔직히 놀랄만한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구피는 공포,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끔찍히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잔인하기로 소문이 나있죠. 그래서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추격자]과 [황해]는 극장에서 저혼자 봐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의 영화 중에서도 잔인하다고 소문난 [곡성]을 구피가 보고 싶어한 것입니다.

[다이버전트 시리즈 : 얼리전트]를 본 다음날 저녁, 저는 "오늘 [곡성]보러 갈까?"라며 슬쩍 떠보았습니다. 그런데 구피는 덥썩 "그럴까?"라며 승낙했습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극장에서 영화를 봤기에 오늘은 집에서 편안하게 다운로드 영화를 볼 계획이었던 저는 구피의 대답을 듣고 곧바로 [곡성]을 예매했고, 이렇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구피와의 [곡성] 관람이 성사되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나홍진 감독의 영화를 모두 극장에서 봤고, 모두 한결같이 인상깊었기에 [곡성] 또한 혼자서라도 극장에서 관람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피는 저와 다릅니다. 그렇다면 왜 구피는 갑자기 [곡성]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요? 영화를 보러 가면서 저는 슬쩍 물었습니다. "왜 [곡성]이 보고 싶었어?" 구피의 대답은 첫번째 [곡성]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되었기 때문이며, 두번째 흥행에서도 성공해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과연 [곡성]을 본 이후 구피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구피는 영화가 너무 잔인해서 보는 도중에 극장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마 혼자 이 영화를 봤다면 영화 중간에 나가버린 몇몇 관객들 처럼 구피도 그랬을 것이라네요.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에는 친구들에게 [곡성]을 추천하지 못하겠다고 투덜거렸습니다. 하긴 호기심 때문에 보긴 했지만 [곡성]은 분명 구피의 취향에 맞는 영화는 아니었으니 저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구피의 그러한 반응을 예상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제 반응은 어땠을까요? 솔직히 고백한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영화의 내용이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아 극심한 혼란을 느껴야했습니다. 집에 돌아오고나서도 새벽까지 잠을 못자며 영화의 장면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봐야 했을 정도였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밤새 정리한 제 생각과 다른 분들이 포털 사이트에 남긴 해석을 읽은 후에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곡성]의 영화 이야기는 제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곡성]의 내용에 대해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영화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음을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조용한 외딴 마을의 연이은 끔찍한 살인사건

 

[곡성]은 전라남도 '곡성'을 배경으로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끔찍한 살인사건을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이 영화가 '곡성'이라는 실제 지명을 제목으로 사용했다는 문제로 말이 많았죠.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것이 왜 문제인지 몰랐는데, 영화를 보고나니 나홍진 감독이 영화 촬영지인 곡성에 대해서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설하고 영화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일본에서 정체불명의 외지인(쿠니무라 준)이 온 이후 마을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하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경찰은 야생 버섯 중독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잠정 발표를 내리지만, 마을 경찰인 종구(곽도원)는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종구의 어린 딸 효진(김환희)마저도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고, 종구는 용하다는 무당 일광(황정민)에게 굿을 의뢰합니다.

제가 [곡성]을 보면서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추적자]와 [황해]는 스릴러 장르의 영화였고, [곡성] 역시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만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오해였고, 착각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스릴러 장르의 겉모습을 가진 오컬트 영화였던 것입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끔찍한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라고 할 수 있는 외지인만 봐도 그렇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스릴러 장르로 국한시킨다면 경찰 조사 그대로 야생 버섯 중독에 의한 환각 살인사건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실제 영화에서도 야생 버섯 중독 사건을 뉴스 화면으로 노출시켰고, 종구와 가족들이 동네 건강원에서 만든 정체불명의 보약을 먹는 장면도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문제는 이 영화를 야생 버섯 중독에 의한 환각 살인으로 이해를 해버리면 너무 많은 헛점들이 영화에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우선 영화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외지인이 도저히 설명이 안됩니다. 어쩌면 그는 단순한 여행객일 수도 있고, 한국의 야생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단지 외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종구와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하기엔 그의 산속 외딴 집의 풍경이 범상치 않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의 사진을 몰래 간직하고 있었고, 방 한구석에는 주술적인 물건들이 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영화에 스릴러 장막을 벗겨버리고 오컬트 영화로 다시한번 본다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외지인은 무언가 목적을 위해 한국의 외딴 마을을 찾았고, 그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주술을 통한 미끼를 던진 것입니다. 끔찍한 살인사건의 가해자들은 외지인이 던지 미끼를 덥썩 물어버인 피해자인 셈이죠. 그러한 외지인의 정체는 일광(황정민)이 영화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며 밝혀집니다.

 

 

낚시를 할 때 무엇이 걸려 올라오는지 우리는 모른다.

 

종구는 일광에서 왜 하필 효진이냐고 묻습니다. 어린 효진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하지만 일광은 대답합니다. 낚시를 할때 미끼를 던지면 무엇이 물려 올라올지 당신은 아느냐고.... 맞습니다. 저도 바다 낚시를 자주 하는 편이지만 우럭을 잡기 위해 미끼를 던지면 실제 우럭이 아닌 다른 물고기, 혹은 다른 것들이 낚여 올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효진을 비롯한 다른 피해자들 역시 그저 운이 없게 외지인의 미끼에 걸려든 것입니다.

이후부터 [곡성]은 일광과 외지인의 대결로 펼쳐집니다. 일광은 외지인이 사람이 아닌 귀신이라면서 그를 퇴치하기 위해서는 아주 위험한 굿을 해야한다고 설명합니다. 문제는 일광의 굿 도중 효진이 너무나도 괴로워하자 종구는 일광의 굿을 멈추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제 종구는 선택을 해야합니다. 일광의 굿으로 귀신인 외지인을 죽일 수 없다면 자신이 직접 외지인을 죽이겠다고... 그는 마을 친구들을 불러 모아 무기를 들고 외지인의 집으로 향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홍진 감독은 관객에게 혼돈을 안겨줍니다. 외지인의 산속 외딴 집에서 종구 일행이 마주한 것은 외지인이 아닌 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시체로 발견된 박춘배의 좀비였던 것입니다. 오호라? 갑자기 좀비라니... 이때까지만해도 스릴러 장르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저는 극심한 혼돈에 빠집니다. 과연 좀비는 야생 버섯 중독에 의한 환각일까요? 그러기엔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게다가 이 지점에서 나홍진 감독은 외지인의 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킵니다. 어쩌면 일광을 비롯한 우리 모두 외지인을 오해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만큼...

 

실제로 일광은 종구에게 자신이 오해하고 있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외지인은 귀신이 아닌 자신과 같은 무당이고, 마을을 괴롭히는 악한 기운을 없애려 노력한 것이라고... 그때 바로 새롭게 부각되는 캐릭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을의 미친여자 무명(천우희)입니다. 그녀는 영화 초반에도 잠시 등장해서 종구에게 살인사건의 목격담을 들려줍니다. 일광은 마을 사람들을 해치고 있는 것은 외지인이 아닌 그녀라고 설명합니다.

[곡성]에서 가장 긴장감이 넘치는 장면은 효진이 사라지자 효진을 찾아나선 종구가 무명과 마추지는 장면입니다. 이미 일광을 통해 무명이 마을을 해꼬지한 귀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종구. 하지만 무명은 오히려 효진을 살리고 싶으면 닭이 세번 울때까지 집에 들어가면 안된다고 설득합니다. 과연 종구는 일광을 믿어야할까요? 아니면 무명을 믿어야할까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종구는 결국 닭이 세번 울기도 전에 집으로 향합니다.

그렇다면 왜 종구는 닭이 두번 울때까지는 참고 기다렸지만, 마지막 세번째 울기 전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것일까요? 무명은 갈등하는 종구의 소매를 잡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종구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명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다시말해 무명이 종구의 소매를 잡는 순간 종구는 그녀가 사람이 아닌 귀신임을 직감한 것이죠. 그리고 일광의 말을 믿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마을을 해꼬지한 귀신은 누구인가?

 

어떻게든 딸을 살려야하는 종구. 그렇다면 효진을 해치려하는 귀신은 외지인일까요? 아면 무명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무명이 처음 등장했던 영화의 초반 장면을 다시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살인사건 현장을 지키는 종구에게 무명은 돌을 던지며 말을 겁니다. 그리고는 사건 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가족들이 무당을 불렀기에 이러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아마도 무명이 이야기한 무당은 일광을 뜻하는 것일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마을을 해꼬지한 귀신(?)의 존재에 대한 용의자를 한명 늘려야합니다. 외지인과 무명, 그리고 일광으로... 이렇게 용의자를 늘리는 순간 한자지 제가 놓쳤던 장면이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났습니다. (새벽에 잠이 안와 뒤척이다가 생각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외지인과 일광이 비슷한 훈도시를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다말로 구피를 깨워 어쩌면 일광과 외지인이 동일인물일지도 모른다라는 말도 안되는 가설을 세웠었습니다.

물론 외지인과 일광이 동일인물이라는 가설은 말도 안되는 터무니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쪽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외지인과 일광은 같은 편이라는 가설이 가능한 것이죠. 이 가설이 성립된다면 [곡성]은 외지인과 일광의 대결이 아닌, 외지인, 일광과 무명의 대결이 됩니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누가 마을을 해꼬지한 귀신이고, 누가 마을을 지키려한 귀신인지 밝혀집니다.

 

[곡성]은 철저한 비극입니다. 효진을 살리기 위해 종구는 모든 일을 다하지만 결국 그는 효진은 물론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살리지 못합니다. 아무 죄없는 선한 사람들의 희생은 나홍진 감독의 전작인 [추적자]와 [황해]에서도 나왔던 충격적인 결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홍진 감독의 영화를 보면 항상 기분이 찝찝해집니다. 최소한 종구가 효진만큼은 구할줄 알았는데...

이 영화의 더 큰 반전은 외지인의 정체입니다. 외지인은 영화 후반부에 종구의 차에 치여 죽은 것으로 나오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악마로 부활해서 영화를 보는 저를 얼떨떨하게 만듭니다. 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초자연적인 소재를 담은 스릴러 영화일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지만 정작 악마가 나오고나니 이 영화가 스릴러 영화가 아닌 오컬트 영화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한참 동안 영화 마지막의 악마 장면은 외지인을 찾아간 사제의 야생 버섯에 의한 환상이라고 끝까지 구피에게 고집하긴 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제가 [곡성]을 너무 스릴러 영화의 틀에 가두려 했고, [곡성]을 스릴러 영화의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니 한동안 이해가 되지 않던 영화의 내용이 이제서야 술술 풀리는 군요.

 

 

왜 평범한 사람들은 끔찍한 범죄에 희생되어야 하는가?

 

나홍진 감독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기획의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피해자가 어떤 이유로 피해를 입는 것일까. 단순히 가해자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을까. 원인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범주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나홍진 감독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끔찍한 범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확장해나간 것입니다. 

[추적자]에서는 감정이라고는 느끼지 못하는 싸이코패쓰를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했습니다. 얼핏 보기엔 평범해보이는 지영민(하정우)은 자신보다 연약한 여인들을 납치해서는 끔찍하게 살인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그에겐 그 어떤 죄책감도 볼 수가 없습니다. [황해]에서는 외부에서 찾았습니다. 한국으로 돈을 벌러간 아내를 찾아, 그리고 살인청부를 위해 연변에서 한국으로 온 김구남(하정우)과 김구남에게 살인을 청부한 면가(김윤석)의 살벌한 대결을 통해 우리 사회에 폭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곡성]은? 아마 나홍진 감독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끔찍한 사건들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의 소행이라고 설명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 하긴 저도 뉴스를 보며 "어떻게 인간으로써 저럴 수가 있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나홍진 감독은 그러한 생각을 악마에 의한 조용한 동네의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형상화시킨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다음 영화에서는 우리 사회의 끔찍한 범죄에 대한 나홍진 감독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때도 저는 혼자 벌벌 떨며 극장에서 나홍진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겠죠? ^^ 

 

나홍진 감독은 [곡성]을 통해 관객에게 미끼를 던졌다.

그 미끼를 물고 [곡성]의 의미를 탐구하던가,

아니면 미끼를 물지 않고 어려운 영화라며 [곡성]을 외면하던가,

그것은 온전히 관객 스스로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