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모홍진
주연 : 심은경, 윤제문, 김성오
개봉 : 2016년 3월 10일
관람 : 2016년 4월 18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심은경의 연기변신을 기대하다.
배우에게 있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깨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특히 아역출신 배우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래서 귀여운 이미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역배우들이 성인이 되고나서는 안타깝게 잊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아역출신의 배우들은 귀여운 이미지를 깨기 위해 파격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는데 [노랑머리]로 노출연기를 선보였던 이재은의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널 기다리며]가 처음 영화팬들에게 관심을 받은 이유도 심은경의 파격적인 연기변신 때문입니다. 아역배우 출신인 심은경은 [써니]에서 유호정의 젊은 시절을 연기하며 주목받은 이후 [수상한 그녀]에서 능청스러운 연기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20대에 접어든 그녀의 입장에서는 언제까지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만 연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런 그녀이기에 아빠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를 하기위해 15년을 기다리는 [널 기다리며]의 희주는 안성맞춤인 캐릭터였을 것입니다.
제가 갑자기 불어닥친 비와 강풍 때문에 [해어화]의 예매를 취소하고 다운로드 영화로 [널 기다리며]를 선택한 이유 역시 심은경의 연기변신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녀는 귀여운 아역배우의 이미지를 벗고 [널 기다리며]를 통해 성인배우로써 한걸음 도약할 수 있을까요?
심은경의 연기변신은 성공
먼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가 보기에 심은경의 연기변신은 분명 성공적이었습니다.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선언한 배우들은 대부분 너무 급격한 변신을 선택하며 오히려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심은경은 [널 기다리며]에서 자신의 귀여운 이미지를 최대한 이용한 후, 단계적으로 천천히 연기변신을 시도합니다.
희주는 거액의 도박빚을 지고 집을 나간 어머니와 연쇄살인마에게 살해당한 경찰 아버지를 둔 불운한 소녀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동료 경찰들의 도움으로 한편으로는 약간은 모자란 바보같기도 하지만 밝은 표정을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순진한 표정 뒤에는 아빠를 죽인 범인 기범(김성오)이 출소하기만을 기다리며 복수를 꿈꾸는 섬뜩함이 감춰져 있습니다.
이러한 희주의 이중적인 모습이 심은경의 연기변신과 딱 맞아 떨어진 것입니다. 희주의 순진하고 밝은 모습은 [널 기다리며] 이전의 심은경 이미지이고, 기범의 출소 후 복수를 위해 돌변하는 희주의 모습은 [널 기다리며]를 통해 연기변신을 하려는 심은경이 바라는 이미지인 것입니다. 결국 [널 기다리며]는 심은경의 연기변신 전과 후를 모두 담아내고 있으며, 이는 심은경에게도, [널 기다리며]에게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스릴러 영화로써의 완성도이다.
하지만 [널 기다리며]를 심은경의 연기변신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심은경의 연기변신 성공 여부와는 별도로 영화의 재미와 완성도로 영화를 평가해야함이 옳습니다. 그렇다면 [널 기다리며]의 영화적 완성도는 어떨까요? 아쉽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결코 합격점을 줄 수가 없겠네요. 스릴러 영화로써의 완성도가 너무 헐겁기 때문입니다. (이후 영화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생각해봐야할 것은 '왜 희주의 아빠는 굳이 희주 앞에서 죽었어야만 했나?' 라는 점입니다. 어린 딸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하던 그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기범이 찌른 칼에 치명상을 입게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손에는 핸드폰이 있었다는 점이죠. 그렇다면 그가 다음으로 선택할 행동은 동료 경찰에게 연락을 하거나 응급차를 불러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피를 철철 흘리며 희주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해 굳이 어린 딸 앞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물론 죽기 전에 딸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수도 있고, 희주가 걱정이 되어 이성을 잃고 집으로 달려간 것일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선택은 어린 딸에게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주고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죽은 아빠의 시신을 안고 있는 어린 희주의 충격적인 모습은 이후 희주가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되기에 영화에서는 꼭 필요한 장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 억지설정이었습니다.
기범을 향한 희주의 이상한 복수
[널 기다리며]의 스릴러 영화로써의 헐거운 완성도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기범이 출소를 하자 희주는 기범이 정당한 죄의 댓가를 받게 하려합니다. (기범은 7명을 죽였지만 법원에서 그의 죄가 인정된 것은 1명에 대한 살인죄였습니다.) 그러기위해서 그녀는 기범의 주위 사람들을 죽임으로써 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합니다. 문제는 그녀가 가녀린 20대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그러한 점을 이용해서 의심을 받지 않고 살인을 할 수 있었겠지만, 이후 처리에는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희주의 첫번째 살인인 집나간 엄마와 함께 사는 폭력남편(지대한)입니다. 희주는 그를 죽인 후에 기범의 산책로로 옮겨 놓습니다. 그런데 거구인 그를 가녀린 희주가 어떻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옮긴 것일까요? 두번째 살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주는 기범의 친구이자, 15년전 함께 살인을 벌였던 민수(오태경)을 죽이고 기범의 모텔방 침대에 옮겨놓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텔 직원의 눈에 띄지 않고 민수의 시체를 기범의 침대로 옮긴 것일까요?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 모홍진 감독의 입장에서 무시하고 넘어가도 되는 사소한 문제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소한 문제들이 모여 스릴러 영화로써의 짜임새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희주의 복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다른 짜임새를 포기하고 무시한 [널 기다리며]는 그렇기에 잘 만든 스릴러 영화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괴물로 사느니 천사로 죽겠다.
모홍진 감독은 [널 기다리며]의 마지막 반전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의 마지막 반전은 꽤 의외였습니다. 기범에 대한 희주의 복수는 기범을 죽이는 것이 아닌, 그가 죄의 댓가를 받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영화의 마지막에 그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하는 이유가 됩니다.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소녀. 그녀는 괴물로 사느니 천사로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이죠. 하지만 짜임새없는 전개를 갖고 있기에 [널 기다리며]의 마지막 반전은 빛을 바랩니다. 그것은 모홍진 감독이 차기작 연출에서 다시한번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널 기다리며]는 그래도 스릴러 영화로써의 짜임새를 포기하고 영화를 본다면 최소한 1시간 40분여분의 러닝타임이 길게 느껴지는 영화는 아닙니다. 심은경의 연기변신과 김성오의 섬뜩한 연기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차형사(안재홍)처럼 불필요해보이는 캐릭터도 존재했지만, 그래도 심은경과 김성오의 대결만으로도 돈과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희주가 괴물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운이 남네요. 괴물을 잡기 위해 스스로 괴물이 된 소녀. 하지만 사람들에게만큼은 괴물이된 자신의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소녀. 만약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갖고 있는 밝은 소녀로 자랐을텐데, 사회의 끔찍한 범죄는 결국 이 밝은 소녀를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널 기다리며]는 스릴러 영화로써의 완성도는 아쉽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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