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오 마이 그랜파] - 내겐 이런 할아버지가 없어서 다행이다.

쭈니-1 2016. 4. 25. 11:07



감독 : 댄 마저

주연 : 로버트 드 니로, 잭 애프론, 조이 도이치

개봉 : 2016년 3월 17일

관람 : 2016년 4월 21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비록 극장가기 계획은 무산되었지만...


지난 목요일, 저는 회사일이 일찍 끝난 덕분에 남는 시간은 극장으로 달려가 [해어화]와 [시간이탈자] 중 한편을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회사일이 일찍 끝난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구피도 회사일이 일찍 끝난 것이죠. 저는 가끔 외근을 나갔다가 일이 일찍 끝나면 회사로 복귀하지 않고 일찍 퇴근하는 날라리 사원이지만, 구피는 일이 일찍 끝나도 회사로 복귀해서 퇴근시간까지 회사에서 버티는 원칙주의자이기에 정말 의외의 일이었죠. 결국 평일 낮, 저희 부부가 집에 단 둘이 있는 흔치 않는 광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저는 당연히 구피에게 영화보러 가자고 졸랐지만, 구피는 낮잠이나 자고 싶다며 제 무릎을 덥썩 베고 쇼파에 누워 버렸습니다. 이 황금같은 보너스 시간에 낮잠이라니... 하지만 어느새 새근새근 잠들어버린 구피를 집에 내버려두고 저 혼자 극장에 갈 수는 없겠더군요. 결국 저는 또 다시 극장 가기 계획을 취소하고 다운로드 영화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다운로드 영화를 보기 시작한 덕분에 그날은 지난 3월 17일에 나란히 개봉했던 [오 마이 그랜파]와 [스푹스 : MI5]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푹 자고 일어난 구피와는 오는 일요일 밤에 함께 [시간이탈자]를 보러 가기로 했으니 이만하면 극장가기 계획을 포기한 것치고는 결코 나쁘지 않은 결과물입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여행,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오 마이 그랜파]는 한때는 절친이었지만 이젠 관계가 서먹해진 할아버지 딕(로버트 드 니로)과 손자 제이슨(잭 에프론)이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코미디 영화입니다. 일반적으로 할아버지와 손자의 여행이라면 훈훈한 가족 드라마를 연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 마이 그랜파]는 가족 드라마가 아닌 섹스 코미디를 지향합니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의 여행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길래 영화의 장르가 섹스 코미디가 되어버린 것일까요?

사건의 시작은 딕의 아내이자 제이슨의 할머니 장례식장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아내의 죽음. 하지만 딕은 슬픔보다는 제이슨에 대한 걱정이 앞섭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적에는 세계일주를 하겠다던 당찬 녀석이 어른이 되자 아빠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르는 지루한 녀석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제이슨의 약혼녀인 메러디스(줄리안 허프)는 아무리봐도 왕싸가지이니, 제이슨이 메러디스와 결혼하면 그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결국 딕은 운전면허 취소를 핑계로 자신의 플로리다 여행에 제이슨을 끌어들입니다. 아들인 데이비드(더모트 덜로니)에게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아버지 노릇을 손자인 제이슨에게만큼은 제대로 해줘야 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이렇게해서 시작된 딕과 제이슨의 여행. 여기에 제이슨의 학창시절 동기였던 샤디아(조이 도이치)와 그녀의 친구들이 끼어들며 이들의 여행은 섹시한 여행이 되어버린 것이죠.

 

 

 

우리와는 다른 문화의 차이?

 

솔직히 저는 제이슨에게 할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겠다는 딕의 방식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내의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여대생과 섹스를 해야겠다며 샤디아의 친구인 르노어(오브리 플라자)에게 껄떡대고, 제이슨에게는 샤디아와 잘해보라며 부추깁니다. 샤디아가 어떤 여자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말이죠.

게다가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제이슨에게 술을 억지로 마시게하고, 심지어 마약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마약이 심각한 범죄인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그저 재미있는 일탈에 불과한가봅니다. 마약에 취해 온갖 추태를 부리는 제이슨을 보며 딕을 킬킬 웃어대기만합니다. 결국 제이슨이 유치장에 갇혔어도 딕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듯 행동합니다.

제이슨에 대한 딕의 행동은 제가 보기엔 분명 도가 지나쳤습니다. 딕에게 욕을 하며 모진 말을 거침없이 하는 제이슨이 이해가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딕은 어버지를 따라 변호사라는 따분한 직업을 선택하고 안전하지만 지루하게 사는 것을 선택한 제이슨을 위한 행동이라고 항변합니다. 결국엔 제이슨과 메러디스의 결혼까지 망치면서 "이렇게하지 않으면 네가 샤디아를 놓칠 것 같아 그랬다."며 인자한 표정을 짓습니다. 자! 이쯤되면 딕의 행동들이 우리와는 너무 다른 문화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내겐 이런 할아버지가 없어서 다행이다.

 

어쩌면 제이슨은 딕 덕분에 진정한 행복을 찾았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봐도 메러디스는 왕재수였거든요. 그리고 변호사라는 번듯한 직업보다는 샤디아와 전 세계를 돌며 환경운동을 하고 사진을 찍는 것이딕에겐 훨씬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에 대한 개인의 차이입니다. 누군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져다주는 안정된 수입에서 행복을 얻고, 누군 보수는 작지만 자유로운 삶에서 행복을 얻으니까요. 문제는 그것이 진정 제이슨이 원했던 삶인가라는 점입니다.

딕은 제이슨이 아버지의 성공 공식을 무작정 따라한다고 걱정합니다. 직업도 그렇고, 결혼할 여자도 아버지가 골라준 여자와 하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딕 역시 제이슨에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행복을 무작정 따르라고 강요하고, 샤디아를 무조건 잡으라고 부추깁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행복이라는 것은 개인의 차이가 큽니다. 무엇이 자신을 위한 행복일지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해야합니다.

그런데 딕과 제이슨의 여행에서 제이슨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딕이 하자는대로 제이슨이 억지로 끌려다니는 모양새입니다. 물론 영화의 결말에서는 딕 덕분에 제이슨이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로 끝나지만, 과연 현실에서도 그럴까요? 영화를 보며 저를 난처하게 만드는 딕과 같은 할아버지가 제겐 안계셔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오 마이 그랜파]는 영화를 보며 저도 낄낄대고 웃을 수는 있지만, 영화에 대한 공감은 할 수가 없었던 그런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