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종필
주연 : 류승룡, 배수지, 송새벽, 김남길
개봉 : 2015년 11월 25일
관람 : 2016년 4월 6일
등급 : 12세 관람가
기분이 나쁠땐 영화를 보지 말자.
사실 저는 [도리화가]를 지난 화요일 밤에 보기 시작했습니다. 수요일에 웅이와 놀기 위해 연차휴가를 냈기에 밤 늦도록 영화를 보기에 안성맞춤이었지만, 수요일 아침에 감기몸살에 걸린 구피를 회사까지 데려다줄 생각이었기에 [도리화가]를 1시간 가량만 보고, 멈춤 버튼을 눌러야만 했습니다.
물론 제가 [도리화가] 보기를 중간에 멈춘 이유는 다음날 아침에 구피를 회사에 데려다주기 위함도 있었지만 더 솔직하게 고백한다면 영화가 그만큼 재미없기도 했습니다. 만약 [도리화가]가 재미있었다면 아무리 다음날 아침 일찍 나가야 했어도 영화보기를 멈추지 못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수요일에 웅이와 실컷 놀아주고 밤에는 [도리화가]의 뒷부분을 마저 볼 계획을 세워뒀는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퇴근하고 돌아온 구피와 한바탕 싸운 것이죠. 물론 고성 몇 마디 오고간 이후 제가 자리를 피해버려 싸움이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잔뜩 상한 상태에서 [도리화가] 뒷부분을 마저 봤습니다. 그래서인지 [도리화가]에 대한 제 감상평은 [돌연변이]와는 달리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판소리 영화의 재미는 무엇일까?
우리의 소중한 전통문화인 판소리는 사실 영화로 만들어지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판소리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으려면 판소리를 제대로 할줄아는 배우를 캐스팅해야하지만, 스타급 배우가 판소리도 잘 하는 경우는 거의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한국영화의 거장 임권택 감독은 1993년 [서편제]에서 스타급 배우의 캐스팅보다 판소리를 할줄아는 신인배우의 캐스팅을 우선시했고, 그 결과 캐스팅된 것이 인간문화재 김소희 명창의 '춘향가' 이수자인 오정해였습니다.
스타가 나오지도 않는 판소리 영화, 그렇기에 [서편제]가 개봉할 당시 이 영화의 흥행을 예상하는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서편제]는 단일 극장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100만 관객을 넘는 놀라운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관객들은 [서편제]에 담겨진 판소리의 진정한 울림에 눈물을 흘렸고, 박수를 보낸 것입니다.
[도리화가]는 조선말기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배수지)의 실화를 담은 영화입니다. [서편제]와 마찬가지로 판소리를 소재로한 영화인 셈입니다. 하지만 [도리화가]는 [서편제]와 정반대의 길을 선택합니다. 판소리를 제대로 할줄아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대신, 판소리는 못하지만 대중이 좋아할만한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완성하려했던 것입니다.
스타 배우들의 판소리는?
그래서 캐스팅된 것이 류승룡과 배수지입니다. 류승룡은 [최종병기 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이후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명량]으로 세편의 천만 영화에 출연한 연기력과 관객동원력을 골고루 갖춘 배우입니다. 배수지의 경우는 인기 걸그룹 '미쓰에이'의 멤버이고, 영화 [건축학개론]을 통해 국민 첫사랑으로 떠오른 스타 중의 스타입니다.
류승룡과 배수지를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도리화가]는 화제의 중심에 섰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서편제]와는 달리 류승룡도, 배수지도 판소리를 제대로 할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도리화가]는 판소리가 없는 판소리 영화로 완성된 기형적인 영화입니다.
그렇다면 소리를 포기하고 스타를 캐스팅한 [도리화가]는 흥행에 성공했을까요? 안타깝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가 동원한 관객은 31만명에 불과합니다. [서편제]가 23년전에 기록한 100만 관객의 1/3도 채되지 않는 완벽한 흥행실패입니다. 지난 2007년 개봉한 [서편제]의 후속편 [천년학]이 스타가 없다는 이유로 적은 상영관에서 상영했음에도 불구하고 14만 관객을 동원했음을 감안한다면, 스타를 캐스팅한 [도리화가]는 [천년학]보다도 못한 흥행성적을 올린 셈입니다.
예쁘고 귀여운 외모를 내려놓은 배수지
흥행 보증수표와도 같은 류승룡과 배수지를 캐스팅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화가]가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화요일 밤, 1시간 가량 이 영화를 본 제가 내린 첫번째 결론은 영화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은 배우를 캐스팅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회심의 흥행카드 배수지의 경우를 보죠. 그녀는 앞서 언급한대로 국민 첫사랑 이미지가 강한 가수 겸 배우입니다. 다시말해 예쁘고 귀여운 외모가 그녀의 장점이라는 것이죠. 결코 연기력이 출중한 전문 배우는 아닙니다. 그런데 [도리화가]에서는 어린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힘든 나날을 버틴 진채선을 연기시킵니다. 그리고 배수지는 진채선이 되기 위해 예쁘고 귀여운 외모를 포기합니다. 그녀의 유일한 정점을 내려놓은 것이죠.
그렇다면 외모라는 장점을 내려놓을만큼 연기력이 새로운 장점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쉽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귀여운 첫사랑 여대생을 연기했던 [건축학개론]에서는 별 문제없었던 그녀의 연기력이 사극인 [도리화가]에서는 너무 크게 드러납니다. 배수지의 진채선 연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되는데, 나중에는 멈춤 버튼에 자꾸 손이갈만큼 [도리화가]에서 배수지의 연기는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나라 관객이 아무리 코미디를 좋아한다지만...
그런데 [도리화가]의 문제는 단지 배수지의 연기력 뿐만이 아닙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코미디 요소가 있을만큼 우리나라 관객들은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도리화가] 역시 그 부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소리꾼 진채선과 그녀의 스승 신재효(류승룡)의 안타까운 사랑을 담고 있으면서도 영화의 분위기는 제법 밝습니다.
[도리화가]의 분위기가 밝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조연 배우들 덕분입니다. 코믹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송새벽, 이동휘, 안재홍이 신재효의 제자이자, 진채선의 동료로 출연하여 영화의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나갑니다. (<응답하라 1988>의 동룡과 정봉이. 지못미)
이 영화의 밝은 분위기는 여성은 판소리를 하면 안된다는 사회의 인식을 깨고 우여곡절 끝에 소리꾼이 되었지만 결국 무소불위의 권력자 흥선대원군(김남길)의 여자가 되어야 했던 진채선의 비극을 덮어버립니다. [서편제], [천년학]이 코미디없이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영화를 이끌어나간 것과는 달리, [도리화가]는 흥행을 위해 억지 웃음을 영화 속에 심어놓았지만 그러한 부자연스러운 웃음은 결코 흥행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증명한 것입니다.
판소리가 없는 클라이막스
화요일 밤에 [도리화가]의 1시간 가량을 보고 멈춤 버튼을 눌렀던 저는 수요일 밤에 나머지 부분을 봤습니다. 제가 이 영화의 초, 중반부에 크게 실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후반부를 챙겨본 이유는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도리화가]의 클라이막스는 진채선이 전국의 소리꾼들을 위한 경연 낙성연 장면입니다.
낙성연 장면은 [도리화가]의 성패가 달린 중요한 장면입니다. 이곳에서 감동어린 소리를 펼침으로써 진채선은 사회의 벽을 넘어 여성 명창으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도 감동을 안겨주는 소리가 필요합니다. 영화 초, 중반에 진채선이 소리를 하는 장면은 판소리라기 보다는 발라드 노래같았기에 후반부 클라이막스의 소리를 얼마나 잘해낼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제 마지막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진채선의 소리가 영화 가득 채워야 하건만 오히려 배경음악은 점점 커고 진채선의 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결국 영화를 가득 채운 배경음악과 함께 진채선의 소리에 감동을 받은 대중의 눈물로 클라이막스를 끝냅니다. 진채선의 소리는 음소거된채... 영화를 보며 이렇게 한심한 영화는 오랜만이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이럴 것이면 판소리 영화를 만들이 말아야죠. 판소리가 없는 판소리 영화라니... [도리화가]는 지난 가을 관객이 이 영화를 외면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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