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권오광
주연 : 이광수, 이천희, 박보영, 장광, 이병준
개봉 : 2015년 10월 22일
관람 : 2016년 4월 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웅이, 볼거리에 걸리다.
지난주 토요일 웅이는 병원에서 볼거리 진단을 받았습니다. 웅이의 오른쪽 볼이 조금 붓더니 나중에는 입을 벌리거나 음식을 먹을 때 아프다고해서 설마했는데, 병원에서 볼거리가 의심된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볼거리는 증세가 심하지 않아도 법정 전염병이기에 학교에 가면 안된다고 합니다. 결국 웅이는 뜻하지 않은 일주일간의 방학(?)을 맞이했습니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학원에도 가지 못하고, 일주일동안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웅이를 위해 저는 제 소중한 연차휴가를 하루 썼습니다. 원래는 4월 중순 쯤에 하루종일 밀린 영화를 보기 위해 쓰려고 아껴뒀던 연차휴가였지만, 제겐 영화보다 웅이가 더 소중하기에 미련없이 회사에 연차휴가계를 제출했습니다.
구피는 웅이가 일주일 동안이나 학교에 가지 못해서 수업에 뒤쳐질까봐 걱정했지만, 저는 그보다는 웅이가 일주일 동안이나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것이 더 걱정이었습니다. 볼거리 때문에 웅이가 친구들과 만나 신나게 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하루만이라도 제가 웅이의 친구가 되어 신나게 놀아주겠다는 것이 그날의 제 계획이었습니다.
게임하기, 치킨먹기, 영화보기, 프라모델 만들기, 그리고 구피와 싸우기
감기몸살에 걸렸지만 회사에 빠질 수 없는 구피를 회사까지 에스코트하는 것으로 그날의 제 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구피가 회사에 출근한 이후에는 저와 웅이만의 시간이 펼쳐졌는데, 일단 한시간 동안 웅이가 스마트폰 게임을 하도록 내버려뒀고, 점심식사는 웅이가 가장 좋아하는 후라이드 치킨으로 떼웠으며, 그동안 웅이와 함께 보고 싶었던 영화 [돌연변이]와 요즘 웅이가 푹 빠져있는 프라모델 만들기로 하루를 마감했습니다.
물론 웅이가 신나게 놀기만한 것은 아닙니다. 저와 하루종일 놀기 위해서 구피가 내준 숙제를 전날 미리 끝내 놓았고, 저와 신나게 놀다가도 영어 화상 수업을 위해 놀기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아서 하는 웅이의 모습이 정말 기특했던 하루였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퇴근한 구피는 잔소리를 시작했습니다. 왜 인스턴트 식품인 후라이드 치킨을 사줬느냐? 왜 프라모델을 사줬느냐? 에서부터 시작해서 집에서 하루 쉬면서 반찬은 왜 안만들어 놓았느냐?며 끝도 없이 시작된 구피의 짜증섞인 잔소리 때문에 하루종일 웅이와 기분좋은 하루를 보낸 제 기분도 잡치고 말았습니다. 물론 웅이를 위해 악역을 도맡아 해야하는 구피의 심정도 이해가 되었지만, 웅이 앞에서 저를 윽박지르는 구피의 잔소리에 저도 그만 대응을 하고 말았고, 결국 오랜만에 저희 부부는 냉랭한 분위기를 맞이했습니다. (한동안 이 분위기는 계속될 전망입니다. 저도 이번에는 져주고 싶지 않거든요.)
생선 변장 이광수와 사회 부조리에 대한 블랙 코미디
구피의 잔소리만 아니었다면 정말 유쾌한 하루가 되었을뻔 했던 그날 저는 웅이와 [돌연변이]를 봤습니다. 사실 [돌연변이]는 12세 관람가이고, 제약회사의 생체실험으로 생선인간이 된 박구(이광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비꼬는 블랙 코미디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웅이가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웅이가 일요일 저녁이면 꼭 챙겨보는 TV 예능 <런닝맨>의 이광수가 주연을 맡은 영화이기에 호기심이 생겨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전주 <런닝맨>에서 유재석이 이광수를 놀리기 위해 [돌연변이]를 언급하는 장면은 저와 웅이의 호기심에 불을 붙였습니다.)
영화는 제 예상대로 블랙 코미디의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그래서 [돌연변이]가 끝나고나서 웅이가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했는데, 다행히도 웅이는 그저 이광수의 생선 변장 위주로 영화를 봣더군요. 그러면서 "의외로 이광수의 생선 변장이 잘 어울렸어요."라는 짧은 한줄 평을 남겼습니다. 과연 웅이다운...
저는 그런 웅이에게 이 영화 속에 담겨진 사회 부조리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고, 웅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글쎄요, 웅이가 제 이야기를 이해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하긴 이제 고작 열네살에 불과한 웅이에게 사회 부조리를 이해하라는 것도 제 과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속의 사회 부조리.
저는 이 영화가 담아낸 사회 부조리에 많은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습니다. [돌연변이]는 제약회사의 임상실험에 참가한 박구가 실험의 부작용으로 생선인간이 되면서 시작됩니다. 만약 이러한 사건이 현실에서 일어난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큰 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실험을 했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박구를 가둬두기까지한 제약회사는 여론의 몰매를 맞을 것이 분명합니다.
[돌연변이]에서도 그러합니다. 그런데 박구에 대한 동정 여론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거대한 자본력을 가진 제약회사가 여론을 조작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병원 사람들을 매수해서 박구가 임상실험 도중 병원 간호사를 성추행했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 정보를 흘리고, 변박사(이병준)의 연구는 전세계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실험이었다며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돌려세웁니다. 그러자 언론도 고작 한 명의 인권때문에 이 위대한 실험이 가로막혀서는 안된다는 논리를 폅니다. (지긋지긋한 대를 위한 소의 희생)
그런데 이러한 영화 속의 상황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은 안듭니다. 정말 그럴 것만 같습니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의 인권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으로서의 권리, 즉 인권인데,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의 인권은 짓밟아도 된다는 논리. 결국 박구는 그러한 부조리한 사람들의 생각에 짓밟히고 상처받습니다.
인간이 아닌 생선이 더 행복하다.
[돌연변이]는 참 많은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박구를 통해서 청년실업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정규 기자가 되기 위해 신분을 속이고 박구에게 접근하는 상원(이천희)을 통해 우리나라의 학력문제와 언론의 진정성을 꼬집습니다. 박구의 전 여친인 주진(박보영)을 통해서는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니, 박구의 강압적인 아버지(장광)를 통해서는 젊은 세대의 꿈을 무시하는 기성세대의 강압적인 모습을 풍자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자인 박구는 점점 궁지에 몰립니다. 게다가 박구를 도와주는 사람들 모두 각자의 욕심을 위한 계산적인 도움 뿐이니, 결국 박구는 변박사에게 돌아가는 것을 선택합니다. 그러한 박구의 모습이 저는 굉장히 서글펐습니다. 그저 영화적 상황이라고 하기엔 우리 사회에 대한 너무 통렬한 풍자가 있었기에 영화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영화에서 박구의 아버지는 박구와 주진에게 공무원 시험이나 보라며 윽박지릅니다. 공무원이 적성에 맞지 않다는 항변에 대해서는 적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웅이에게 조용히 이야기해줬습니다. "나는 돈보다 네 적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네가 하고 싶은 일, 행복한 일을 했으면 좋겠어." 하고 싶은 일, 행복한 일로 돈도 많이 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을테지만, 돈을 조금 덜 벌더라도 웅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웅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엔 영화와 같은 사회 부조리가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당연하지만, 실현불가능해 보이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6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레스메이커] - 위선을 해학으로 표현한 블랙코미디 (0) | 2016.04.14 |
---|---|
[도리화가] - 판소리는 없고, 스타만 있다. (0) | 2016.04.07 |
[헤이트풀 8] - 혐오스러운 여덟명의 방문자에게 정신없이 빠져들다. (0) | 2016.03.31 |
[그날의 분위기] - 맛있지는 않지만 먹다가 뱉을만큼 최악은 아닌 음식같은 영화. (0) | 2016.03.30 |
[나쁜놈은 죽는다] - 재미없는 영화는 살아남지 못한다. (0) | 2016.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