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그날의 분위기] - 맛있지는 않지만 먹다가 뱉을만큼 최악은 아닌 음식같은 영화.

쭈니-1 2016. 3. 30. 11:17

 

 

감독 : 조규장

주연 : 유연석, 문채원

개봉 : 2016년 1월 14일

관람 : 2016년 3월 29일

등급 : 15세 관람가

 

 

바쁜 일이 마무리되니 이제 영화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3월 한달동안 회사일이 바쁘다고 징징거렸는데, 3월의 마지막 주가 되니 바쁜 일들이 얼추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달동안 감기에 걸려 콜록거리면서도 회사일에 매달리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는데 이렇게 바쁜 일들이 차질없이 마무리되고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지난 한달동안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일을 끝마치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퇴근을 한 날, 저는 오랜만에 가벼운 영화로 기분전환을 계획했습니다. 

3월의 시작과 동시에 영화 다운로드 어플인 oksusu의 자동결재를 해지했던 저는 바쁜 일들을 끝마친 3월의 마지막주 화요일에 다시금 oksusu 자동결재를 실행했습니다. 이제 극장에서 놓친 영화들을 예전처럼 oksusu에서 다운로드 받아 봐야겠습니다.

그 첫번째 영화가 [그날의 분위기]입니다. [그날의 분위기]는 유연석과 문채원을 앞세운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로 바쁜 회사일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기분전환을 하려는 제 의도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훈남, 훈녀 캐스팅은 성공적.

 

저는 로맨틱 코미디가 관객이 꿈꾸는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영화적 재미를 얻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날의 분위기]는 과연 제게 사랑에 대한 환상을 제공해줬을까요? 일단 주연 배우는 합격점을 주고 싶습니다. 아무리 사랑이라는 것이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고 떠들어도, 사람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외모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로맨틱 코미디는 훈남, 훈녀 배우를 캐스팅합니다. 

[그날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연을 맡은 문채원과 유연석은 로맨틱 코미디에서 충분히 통할만한 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유연석의 경우 영화에서는 아직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했지만 드라마에서 <응답하라 1994>와 <맨도롱 또똣>을 통해 로맨틱한 매력을 충분히 발산했고, 문채원은 1년전 개봉했던 [오늘의 연애]를 통해 이승기와 함께 톡톡 튀는 로맨틱 코미디 여왕으로써의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렇게 유연석과 문채원은 부산행 KTX에서 우연히 만나 티격태격하며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재현(유연석)과 수정(문채원)이 되어 사랑에 대한 제 환상을 채워나갑니다. 저 역시도 젊은 시절에는 우연히 고속버스나 기차에서 제 옆자리에 앉은 아름다운 여성과 특별한 사랑에 빠지는 환상을 자주했었거든요. (하지만 현실은 아주머니, 아니면 아저씨)

 

 

 

저,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구요.

 

자! 기본 재료는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 유연석과 문채원이라는 좋은 재료라면 로맨틱 코미디라는 요리는 분명 맛있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요리사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어도 요리사의 솜씨가 부족하다면 요리가 맛있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날의 분위기]가 그러합니다.

부산행 KTX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된 수정과 재현. 그런데 수정을 향한 재현의 작업멘트가 심상치 않습니다. "저, 오늘 웬만하면 그쪽이랑 자려구요." 오 마이 갓! 이건 같은 남자인 제가 봐도 명백한 성희롱입니다. 물론 젊은 시절 여자 앞에선 항상 소심했던 저는 재현처럼 저돌적인 작업을 꿈꾸기는 했지만 그래도 초면부터 성희롱이라니... 이건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의 청혼에 대한 우스갯소리인 "내 아를 낳아도"와 무엇이 다른 것인지...

좋은 재료를 가진 요리사가 재료 손질부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이러한 실수는 초보자나 하는 것인데, 아니나 다를까 조규장 감독은 [그날의 분위기]가 장편영화 데뷔작인 신인감독입니다. 신인감독이기 때문일까요? 그는 너무 자극적인 작업멘트를 통해 관객의 주목을 받으려합니다. 문제는 그누구도 성희롱으로 시작하는 사랑을 꿈꾸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패한 재료 손질이 맛난 음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날의 분위기]는 처음부터 재료 손질에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요리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조규장 감독은 이후 재현의 매력을 부각시키며 이 남자가 성희롱이나 일삼는 뻔질남이 아닌, 알고보면 매력적인 남자라는 사실을 어필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어서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재현 역시 처음부터 망쳐버린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수정은 그러한 재현의 매력에 넘어갑니다. 단 하루만에 재현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고 그가 원하는대로 '원 나잇 스탠드'에 기꺼이 응해주려고 합니다. 저는 그러한 수정의 태도 변화도 이해가 안되었지만, 막상 수정과 함께 호텔에 들어간 재현이 수정과의 '원 나잇 스탠드'를 거부하는 장면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재료 손질에 실패한 요리가 맛난 요리가 되기 위해서는 각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날의 분위기]가 처음부터 재료 손질만 잘 되었다면 중반부터는 재현과 수정의 달달한 밀당 사랑으로 영화적 재미를 얻을 수 있었을텐데, 재료 손질부터 실패하고나니 평범한 장면들로는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영화적 재미를 얻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단 하루동안 두 사람의 30년 인생이 바뀌었다.

 

그래도 후반부에 가면 갈수록 [그날의 분위기]는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재미를 조금씩 되찾아갑니다. 뻔뻔한 작업남 재현은 하루만에 사랑에 대해 진지해진 순정남이 되고, 철벽녀 수정은 하루만에 쿨한 여자가 됩니다. 이렇게 단 하루만에 두 사람의 인생이, 그리고 성격이 바뀐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지만, 로맨틱 코미디가 굳이 관객을 이해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주인공의 사랑을 예쁘게 포장하면 기본적인 재미는 획득할 수 있으니까요.

[그날의 분위기]는 처음엔 성희롱에 의한 막장으로 시작했고, 중반부엔 초반의 실수를 덮으려 전전긍긍하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겨우 기본적인 재미를 획득해나갑니다. 이럴바엔 처음부터 재현과 수정의 사랑을 에쁘게 포장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던지, 아니면 기왕 막장으로 시작했으니 마지막까지 막장으로 밀어붙이던지...

신인 감독 조규장의 요리 솜씨는 분명 불만족스러웠지만, 그래도 재현과 수정이 결국 연결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훈훈한 기분으로 영화의 멈춤 버튼을 누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날의 분위기]는 비록 맛있지는 않지만 워낙 재료가 좋아서 먹다가 뱉을만큼 최악은 아니었던 음식과 같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