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손호
주연 : 진백림, 손예진, 신현준
개봉 : 2016년 2월 4일
관람 : 2016년 3월 6일
등급 : 15세 관람가
[안개 속에서 2분 더]라는 영화가 문득 떠올랐던...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안개 속에서 2분 더]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비오는 날의 수채화]로 스타덤에 오른 신성일과 엄앵란의 아들 강석현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홍콩과 합작영화라는 점에서 국내영화팬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저 역시도 홍콩영화에 푹 빠져 있었기에 우리나라와 홍콩 합작영화인 [안개 속에서 2분 더]를 많이 기대했었습니다.
[도신 : 정전자], [진용], [소오강호], [신조협려], [백발마녀전], [야반가성] 등의 영화에서 촬영감독을 맡아 명성을 얻은 피터 파우의 감독 데뷔작이었으며, 양가휘, 글로리아 입, 오가려, 이자웅 등 홍콩측 캐스팅도 꽤 빵빵했었습니다. 하지만 [안개 속에서 2분 더]는 당시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 영화의 뻔한 줄거리를 답습한 결과 국내영화팬들의 외면을 받고 말았습니다. 저 역시 그다지 재미있게 보지못했고요.
지난 3월 5일 토요일 밤, 웅이를 재우고 [버스 657]를 봤지만 영화를 보고난 후의 뒷맛이 개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이미 3월 6일 새벽이 되어 있었지만 한편의 영화를 더 보기로 결정했고, 제가 선택한 영화는 [나쁜놈은 죽는다]입니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합작영화인 이 영화는 솔직히 20년 전에 봤던 [안개 속에서 2분 더]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손예진이 주연을 맡은 영화인 만큼 아주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영화를 플레이시켰습니다.
왜 꼭 한중 합작영화여야 했을까?
[나쁜놈은 죽는다]는 부산에서 중국어 교사를 하고 있는 중국인 창주(진백림)가 중국 친구들을 초대하여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면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제주도 여행 도중 사고난 차량을 목격하게 되고, 운전자인 지연(손예진)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차에 태우는데 그때부터 창주와 친구들의 악몽은 시작됩니다. 지연은 깨어나자마자 경찰을 총으로 쏘고, 창주와 창주의 동생을 납치하기까지합니다. 가까스로 도망친 창주의 친구들은 창주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제주도에서 오히려 지명수배를 당하는 등 위기에 빠집니다.
이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분명 흥미진진합니다.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지만 살벌하기만한 지연에게 납치된 창주, 그리고 창주를 구하기 위해 나섰지만 낯선 타국 땅에서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 오히려 위기에 빠지게 되는 친구들의 코믹한 소동극, 그리고 지연을 뒤쫓는 정체불명의 킬러(신현준)의 섬뜩함까지... 게다가 이 영화는 중국인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에서 올로케로 찍음으로써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도 잡아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나쁜놈은 죽는다]가 왜 꼭 한중 합작영화여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한중 합작영화가 되기 위해 오히려 매력적인 스토리 전개를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냥 중국영화였다면 나았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백림의 한국어 대사는 도저히 못 봐주겠다.
제가 차라리 [나쁜놈은 죽는다]가 중국영화였으면 나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진백림의 한국어 대사 때문입니다. 진백림이 연기한 창주는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이라는 설정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한국어가 능통합니다. 하지만 설정이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진백림의 한국어 대사는 영화에 대한 긴장감을 떨어뜨릴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살벌한 여자에게 동생과 함께 납치된 창주.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그의 어눌한 한국어 대사가 튀어나오니 웃음이 빵하고 터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차라리 이 영화가 중국영화이고, 그래서 진백림이 중국어로 대사를 했다면 창주가 처한 상황에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운 생각 뿐이었습니다.
어늘한 한국어 대사를 해야 하는 진백림과는 달리 말도 통하지 않는 제주도에서 좌충우돌하는 창주의 친구들이 겪는 소동은 재미있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고, 친구는 납치되었고, 경찰은 그들을 뒤쫓고 있는 상황이니 그들이 허둥지둥대며 실수만 연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 창주도 지연과 말이 통하지 않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정이었다면 영화가 훨씬 더 재미있어지지 않았을까요?
영화의 결말도 이상하고, 캐릭터도 이해가 안된다.
만약 [나쁜놈이 죽는다]가 진백림의 한국어 대사만 문제였다면 어쩌면 참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이 되면 될수록 영화 자체가 총체적 난국에 빠집니다. 지연은 창주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함으로써 갑자기 악녀에서 가녀린 피해자로 뒤바뀝니다. 지연을 뒤쫓는 킬러는 그냥 이유불문하고 무지막지하게 총을 쏴대며 덤벼듭니다. 하지만 지연을 붙잡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총 대신 물고문을 시도하며 후환을 남깁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냥 대충 만든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그러한 느낌은 [안개 속에서 2분 더]에서도 느꼈던 것입니다. 그저 우리나라 영화사 입장에서는 중국인 스타 배우를 캐스팅하고, 중국 영화사 입장에서는 한국인 스타 배우와 중국인이 자주 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면 나머지는 대충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 듯한 느낌. [나쁜놈은 죽는다]가 딱 그러합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초, 중반의 살벌한 악녀에서 갑자기 착한 피해자의 모습을 한 지연의 모습에 짜증이 확 났습니다. [버스 657]에서도 그랬지만, [나쁜놈은 죽는다]는 범죄자에게 그럴 수 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면 범죄를 용서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웁니다. 지연은 창주와 그의 동생을 납치하는 범죄를 저질렀는데, 조카가 납치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이유만으로 모든 범죄가 사라져버립니다. 정말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런 합작영화는 이제 그만...
우리나라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서 합작영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영화 제작비는 하늘을 치솟고 그러한 제작비를 회수하려면 좁은 국내에서는 불가능합니다. 한해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가 그다지 많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세계 시장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선택입니다. 그리고 영화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합작영화라는 사실만으로 관객이 찾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아무리 해외 스타를 캐스팅한 합작영화라고해도 영화 자체가 재미없으면 그 영화는 살아남지 못합니다. 결국 합작영화도 시나리오에서부터 기획까지 치밀하게 준비해서 관객이 좋이할만한 영화를 만들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습니다.
[나쁜놈은 죽는다]는 우리나라의 흥행 거장 강제규와 중국의 펑샤오강이 제작에 참여했고, 제작비도 무려 150억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한중 합작영화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B급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합작영화는 계속될테지만, 부디 이렇게 대충 만들지는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6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이트풀 8] - 혐오스러운 여덟명의 방문자에게 정신없이 빠져들다. (0) | 2016.03.31 |
---|---|
[그날의 분위기] - 맛있지는 않지만 먹다가 뱉을만큼 최악은 아닌 음식같은 영화. (0) | 2016.03.30 |
[버스 657] - 우린 범죄자를 어떤 기준으로 용서해줘야 하는가? (0) | 2016.03.09 |
[조선마술사] - 후반부의 무리수가 영화의 재미를 해쳤다. (0) | 2016.03.08 |
[스누피 : 더 피너츠 무비] - 3D로 만들어졌지만 고전미가 느껴진다. (0) | 2016.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