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대승
주연 : 유승호, 고아라, 이경영, 조윤희, 곽도원
개봉 : 2015년 12월 30일
관람 : 2016년 3월 5일
등급 : 12세 관람가
oksusu 영화 매니아 만기 하루전
지난 몇년동안 저는 극장에서 놓친 영화들을 hoppin에서 다운로드받아 봤습니다. 하지만 hoppin이 서비스 종료를 선언하고 대신 oksusu로 이관되면서 저 역시 자연스럽게 oksusu에 가입하여 지난 한달간 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hoppin에서는 보고 싶은 영화를 미리 다운로드받아 볼 수 있었지만, oksusu에서는 바로보기 밖에 되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가 아닌 제 입장에서는 와이파이가 되는 회사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미리 다운로드받은 후 집에서 영화를 봤는데, 이젠 그럴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한 이유로 집에서 oksusu로 영화를 볼때마다 데이터가 팍팍 줄어드는 공포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데이터 요금 폭탄을 맞기 전에 oksusu 영화 매니아 가입을 중단했습니다.
지난 3월 6일이 oksusu 영화 매니아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날이 다가오니 영화 매니아에 등록된 영화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월 6일까지는 어찌되었던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데, 3월 6일이 지나면 편당 4,000원 정도를 따로 결재하고 봐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3월 5일부터 영화 매니아에 올라와 있는 영화들을 새벽까지 몰아서 봤답니다. [조선마술사], [버스 657], [나쁜놈은 죽는다]가 그 영화들입니다.
믿고 보는 김대승 감독의 영화는 어쩌다가 망했나?
[조선마술사]는 2015년의 마지막 개봉 영화였습니다. [번지 점프를 하다]로 감독 데뷔후, [혈의 누], [후궁 : 제왕의 첩]을 연출하며 사극 영화에서 연출실력을 뽐냈던 김대승 감독과 대세배우인 유승호, 고아라가 주연을 맡은 영화인만큼 흥행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개봉 첫주부터 주말 박스오피스 6위에 그치며 부진하더니 결국 최종 관객수는 62만명에 불과했습니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망해버린 것일까요?
다행히 [조선마술사]의 관람 등급이 12세 관람가였고, 구피가 유승호를 좋아해서 저희 가족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조선마술사]를 함께 관람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꽤 좋았습니다. 특히 환희(유승호)와 청명(고아라)의 캐릭터가 정교하게 구축되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랑캐라며 우습게 봤던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굴육의 패배를 당한 병자호란 이후의 배경과 청나라의 마술사 귀몰(곽도원)에게 도망친 환희와 청나라의 후궁으로 팔려가는 청명의 사정이 묘하게 맞물리며 그들의 사랑에 공감이 되었던 것입니다.
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해도 환희와 청명의 닭살돋는 사랑 이야기가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오히려 그들의 사랑이 [조선마술사]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마술사]의 흥행 실패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요?
신분은 다르지만 사정은 같았던 환희와 청명
청나라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 의누이 보음(조윤희)과 함께 목숨을 걸고 귀몰에게 겨우 도망친 환희. 하지만 조국인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환희의 사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환희는 의주의 부패한 관리인 김갑서(손병호)가 운영하는 물랑루에서 광대 노릇이나 하고, 보음은 김갑서의 노리개로 전락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환희는 공연이 끝나면 매일 술과 마약으로 삐뚤어진 나날을 보냅니다. 변해버린 보음을 탓하고, 무능한 자신을 탓하며...
사정은 청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잘것 없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집안의 입신양명을 위해 청나라의 후궁으로 팔려가는 청명. 말이 좋아 후궁이지, 환희와 비교해서 나은 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청나라에 도착하기 전, 잠시 머문 의주에서 만난 환희와의 사랑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행복이었을 것입니다.
묵묵히 청명을 지켜주는 호위모사 안동휘(이경영)와 환희를 사랑하고 환희를 지켜주고 싶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환희에게 상처만 안겨주는 보음.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감초같은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환희의 동료 기탁을 맛깔스럽게 연기한 박철민까지 [조선마술사]는 중반까지 영화적 재미를 충분히 안겨줬습니다.
복수의 칼날이 모습을 드러내다.
환희와 청명의 아슬아슬한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물랑루에서는 그들을 노리는 복수의 칼날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조선마술사]는 환희를 향한 귀몰의 복수와 안동휘를 향한 김갑서의 복수를 동시에 진행시키는데, 귀몰과 김갑서가 서로 손을 잡고 복수를 진행시킴으로써 클라이막스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됩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바로 이 순간 모든 것은 어긋납니다. 귀몰이 김갑서를 배신하는 장면에서부터 귀몰은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환희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귀몰의 복수는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칩니다. 귀몰은 단순히 환희에 대한 복수심으로 청나라의 후궁이 될 청명을 납치하는 무리수를 뒀고, 그러한 무리수는 조선은 물론 청나라마저 적으로 돌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영화의 긴장감을 위해서 보음보다는 청명이 귀몰의 인질의 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긴장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위성입니다. 귀몰의 후반 폭주는 이러한 당위성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과는 별도로 "말도 안돼."라는 푸념을 제게 안겨줬습니다.
한번 어긋난 것은 더이상 돌이킬 수가 없다.
귀몰의 과한 복수심으로 어긋난 [조선마술사]는 이후 계속 어긋나기만합니다. 왜 김갑수의 부하들은 김갑수를 배신하고 귀몰의 편에 섰을까요? 귀몰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김갑수의 부하들은 환희와 청명을 끝까지 죽이려 뒤쫓을까요? 만약 영화의 배경이 의주가 아닌 청나라였다면 어느정도 말이 되지만, 왜 조선의 군사들이 귀몰의 편에 서서 조선과 청나라를 모두 배신했는지 저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도 관객이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열린 결말이었는데, 솔직히 저는 이 영화가 열린 결말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것 외에는 해피엔딩으로 끝내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만큼 [조선마술사]의 후반은 무리수에 무리수가 더해져서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가고 만 것입니다.
귀몰이 본격적으로 복수를 하기 전까지만해도 꽤 괜찮았던 [조선마술사]는 이렇게 클라이막스에서부터 제게 실망감을 안겨줬습니다. 차라리 귀몰이라는 캐릭터를 좀 더 완성도있게 구축했더라면 나았을텐데, 그러지도 못한채 그냥 긴장감 넘치는 설정을 위해서 무리수를 두며 오히려 영화의 재미를 해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조선마술사]가 관객의 외면을 받은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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