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로버트 저메키스
주연 : 조셉 고든 레빗, 벤 킹슬리, 샬롯 르 본
개봉 : 2015년 10월 28일
관람 : 2016년 2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동주]를 대신해서 [하늘을 걷는 남자]를 택하다.
웅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덕분에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간의 연휴가 생겼습니다.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일주일만에 또다시 생겨난 연휴를 저는 영화보기에 투자했습니다. 금요일 낮에는 웅이와 [주토피아]를, 밤에는 구피와 [데드풀]을 봤습니다. 그리고 일요일 낮에는 웅이와 [동주]를, 밤에는 구피와 [좋아해줘]을 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이 되자 웅이는 "오늘은 그냥 집에서 영화보면 안되요?"라고 묻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면 무조건 "OK"를 외쳤던 웅이였는데 그날은 조금 피곤했는지 집에서 뒹굴거리고 싶다고 하네요. 그래서 [동주]를 보려던 계획은 나중으로 미루고 집에서 웅이와 [하늘을 걷는 남자]를 봤습니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웅이와 저의 기대작이었습니다. 웅이와 함께 재미있게 봤던 추억의 영화 [빽 투 더 퓨처 3부작]의 감독인 로버트 저메키스가 메가폰을 잡았고, 1976년 8월 7일에 지상 412미터 높이의 세계무역센터 두 타워 사이를 한 줄의 와이어로 횡단한 펠레페 페팃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것도 제 관심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국내 흥행 실패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했던 지난 10월에 극장에서 보지 못했고, 이렇게 [동주]를 대신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을 걷는 도전에 매료된 필립의 무모한 도전
[하늘을 걷는 남자]는 자유의 여신상 꼭대기에서 필립(조셉 고든 레빗)이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는 어린 시절 동네 서커스단의 줄타기 묘기를 본 후 줄타기의 매력에 빠져 버립니다. 필립의 재능을 알아본 서커스단의 단장인 파파 루디(벤 킹슬리)는 필립에게 줄타기비법을 가르쳐주지만, 자신의 줄타기 능력을 서커스가 아닌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어하는 필립의 야망으로 인하여 필립은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됩니다.
영화는 파리의 거리에서 무명의 아티스트로써의 삶을 살던 필립이 애니(샬롯 르 본)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전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건립 소식을 신문으로 읽은 후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두 건물 사이를 줄타기로 횡당하는 것을 꿈꾸며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친구들과 무작정 뉴욕에 온 필립. 그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횡당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착수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공모자들을 구하고, 장비를 구매하고, 현장의 보안 요원들을 꼼꼼히 체크하는 등 마치 범죄 스릴러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같은 영화적 재미를 안겨줍니다.
고소공포증을 유발하는 마지막 하이라이트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필립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횡당하는 후반 40분의 장면들입니다. 필립은 온갖 악재에도 불구하고 월드 트레이드 센터 횡단을 성공하는데 놀랍게도 한번의 횡단이 아닌 경찰을 피해 두 건물 사이를 여러번 오고갑니다. 급기야 줄위에 눕기도 하고, 무릎을 꿇기도 하는 등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솔직히 저는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습니다. 심하지는 않는데 영화에서 캐릭터들이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쳐다보는 장면이 등장하는 발끝이 찌릿찌릿합니다. 그러한 제게 [하늘을 걷는 남자]의 후반 하이라이트 장면은 찌릿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건 영화이고, 분명 CG일 것이며, CG가 아니더라도 필립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 횡단에 성공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제 몸은 공소공포증의 긴장감에 반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고소공포증을 유발시키는 후반 장면의 놀라움은 마치 내 자신의 412미터 상공에서 줄 하나에 몸을 맡기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듭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동안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서지 못했을 정도입니다. 만약 이 영화를 아이맥스 3D로 봤다면 정말 아찔했을뻔 했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대한 아련함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재현하는 것입니다. 모두들 아시겠지만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2001년 9.11 테러로 인하여 이젠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늘을 걷는 남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복제한 세트장에서 촬영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대한 제 기억은 9.11 테러 뉴스 화면에서의 봤던 공포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한 남자의 불가능한 도전이 담긴 꿈의 무대가 됩니다. 필립이 선망의 눈빛으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바라보는 장면은 그렇기에 제겐 낯설면서도 아련했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필립은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무제한으로 출입할 수 있는 출입증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필립이 아무리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그러한 사실을 웅이에게 말해줬는데, 필립의 도전을 감동깊게 보던 웅이도 많이 안타까워하더군요.
그의 행위는 범죄일까? 꿈을 위한 멋진 도전일까?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저는 필립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측에 정식 허락을 얻은 후 횡단을 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보니 그는 불법적으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침입하여 두 건물 사이를 횡단한 것이더군요. 그렇기에 월드 트레이드 센터 횡단이 끝난 후 필립은 경찰에 체포됩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는 한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과연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횡단한 필립의 행위는 범죄일까요? 멋진 도전일까요?
필립 개인에게는 분명 멋진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그러한 순간을 꿈꿨으니까요. 게다가 필립의 도전으로 피해를 본 사람도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필립의 도전이 실패했다면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개장 전부터 악재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필립의 도전 덕분에 뉴욕시민들이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만약 실패했다면 그 반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뭐 결과론이지만 필립의 성공 덕분에 그의 도전은 모두가 해피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저처럼 모험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필립의 도전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자신의 꿈을 위해 한발자국씩 하늘을 걷는 필립의 모습이 전정 멋있어 보이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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