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6년 아짧평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 - 늑대의 도시에서 법과 원칙이란?

쭈니-1 2016. 2. 17. 15:22

 

 

감독 : 드니 빌뇌드

주연 : 에밀리 블런트, 베니치오 델 토로, 조슈 브롤린

개봉 : 2015년 12월 3일

관람 : 2016년 2월 16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북미에서 2015년 9월 18일에 개봉한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6개의 제한된 상영관에서 공개되었지만 극장당 6만달러 이상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뜻밖의 흥행에 고무된 배급사는 상영관을 소폭 늘렸는데, 놀랍게도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단 59개의 상영관만으로 북미 박스오피스 1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개봉 3주차에 상영관이 2,620개로 대폭 늘어났고, 박스오피스 순위도 3위로 껑충 뛰어 올랐습니다. 북미 최종 흥행성적은 4천6백만 달러.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우리나라에서 2015년 12월 3일에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자들]의 폭발적인 흥행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채 누적관객 15만명이라는 아쉬운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극장 상영을 마감했습니다. 북미와는 달리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의 흥행 반전은 일어나지 않은 셈입니다.

그러나 극장 상영이 끝난 후에도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에 대한 입소문은 꾸준했습니다. 국내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 연기력 하나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품 배우들인 에밀리 블런트, 베니치오 델 토로, 그리고 조슈 브롤린의 놀라운 연기와 더불어 마약 조직과의 전쟁이라는 평범한 소재 위에 선과 악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펼쳐 놓음으로써 단 한시도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수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최악의 마약 조직과의 전쟁을 위해 모인 그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FBI요원인 케이트(에밀리 블런트)와 그녀의 팀이 마약 조직원의 집을 급습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순조롭게 마약 조직원을 제압하는 FBI. 하지만 놀랍게도 그 집의 벽 안에서는 암살당한 수십구의 시체들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집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하면서 케이트는 팀원을 잃습니다.   

이렇게 잔인한 짓을 서슴치않는 멕시코에 뿌리를 둔 최악의 마약 조직의 소탕을 위해 미국 정부는 팀을 결성하는데 FBI요원인 케이트와 CIA요원 맷(조슈 브롤린). 그리고 작전의 컨설턴트로 투입된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가 그들입니다. 마약 조직을 잡겠다는 강한 의지로 팀에 참여한 케이트. 하지만 그녀는 맷과 알레한드로가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의 진정한 재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마약 조직과 경찰의 전쟁을 다룬 영화는 흔했습니다. 그러한 영화들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했고, 결말도 어느정도 예상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마약 조직 소탕이라는 동일한 작전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목표을 가진 세명의 요원을 통해 영화의 결말을 예측불허로 만듭니다. 게다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가서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그 경계가 모호해지기까지 합니다. (이후 영화의 결말 부분이 언급됩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악을 처단할 수 없다면?

 

케이트는 끊임없이 맷에게 "내게 감추고 있는 것이 무엇이죠?"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맷은 최소한의 대답만 해줍니다. 국내 사건에 CIA가 개입하기 위해서는 FBI요원이 작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맷은 어쩔 수 없이 케이트를 끼워줬을 뿐, 그녀가 이 작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케이트는 맷의 팀이 자행하는 불법적인 일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차량이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총격전을 벌이고, 멕시코 교도소에서 빼낸 마약 조직원에게 무자비한 고문을 가해서 정보를 얻어내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케이트를 미끼로 이용해서 마약 조직의 뒷돈을 받은 미국 경찰을 솎아내기까지 합니다. 맷은 말합니다.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를 원한다면 잔말말고 모르는 척하라고...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는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악을 제압하기 위해 법과 원칙을 어긴다면 이를 타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처음에 저는 맷의 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처음부터 마약 조직이 벌인 처참한 범죄를 제게 보여주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과 원칙만을 따지는 케이트가 조금은 답답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나면 제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됩니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악과 손을 잡다.

 

케이트는 마약 조직 소탕을 하는데 있어서 법과 원칙을 지키려합니다. 하지만 맷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과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맷은 마약 조직 소탕이라는 결과에 점점 다가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맷의 진짜 계획은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CIA가 통제할 수 없는 멕시코 마약 조직을 소탕하고, 그 대신 통제 가능한 콜롬비아 마약조직에게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죠. 맷은 케이트에게 "세계인구의 20%의 사람들을 설득해서 마약을 끊게 할 수 없다면 질서가 최선이다."라고 말합니다. .

맷이 미국내 마약조직을 CIA의 통제 아래 두기를 원하고 있다면 알레한드로는 개인적인 복수를 위해 이 작전에 참여한 것입니다. 멕시코의 마약조직에 의해 아내와 딸이 처참하게 살해당한 알레드한드로. 콜롬비아의 검사였던 그는 정의를 집어 던지고 복수를 위해 콜롬비아 마약 조직과 손을 잡은 것입니다. 

영화의 후반, 멕시코 마약 조직 보스의 초호화 저택에 침입하여 그가 보는 앞에서 그의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망설임없이 죽여버리는 알레한드로. 과연 우리는 악의 처단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또 다른 악과 손을 잡은 맷과 개인적 복수로인하여 스스로 악이 된 알레한드로를 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늑대의 도시에서 법과 원칙은 없다.

 

멕시코의 평범해보이는 경찰 실비오. 영화의 중반까지만해도 저는 왜 그를 자꾸 보여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아버지를 잃은 그의 가족들의 모습에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는 멕시코 마약 조직의 운반책으로 일하는 부패한 경찰이었지만, 그가 사는 동네에서는 그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린 아들에겐 믿음직한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실비오를 이용하고 주저없이 죽입니다. 아내와 딸의 복수를 위해 한 여자의 남편과 한 아이의 아버지를 죽인 알레한드로. 그는 과연 자신이 복수하려는 대상인 멕시코 마약 조직의 보스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법과 원칙이 사라지고, 결과를 위해 과정이 무시된다면 실비오와 그의 가족처럼 또다른 피해자만 속출할 것입니다.

이 모든 불법적인 행위를 목격한 케이트 앞에 알레한드로는 자신들의 작전이 합법적인 절차로 이뤄졌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라며 총을 겨눕니다. 그리고는 케이트에게 늑대의 도시를 떠나 아직 법과 원칙이 통하는 작은 소도시로 전출가라며 충고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리 늑대의 도시라고해도 법과 원칙은 필요한 법입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하게 무시된다면 그곳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라는 멕시코의 후아레즈와 같은 곳이 될 것입니다. 

 

 

 

우리 드니 빌뇌브 감독을 주목해보자.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를 연출한 감독은 드니 빌뇌브입니다. 우리에겐 조금 낯선 감독인데,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니 2013년 국내에 개봉한 [프리즈너스]가 눈에 띄었습니다. [프리즈너스]는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국내 흥행은 시원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리즈너스]를 보고 한참동안 반전의 충격과 여운에 사로잡혀야 했습니다.

[프리즈너스]는 납치당한 딸을 찾아나선 도버(휴 잭맨)와 납치 사건의 진실을 캐내는 경찰 로키(제이크 질렌할)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릴러 영화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납치사건을 다룬 평범한 스릴러 영화가 아닙니다. 맹목적인 믿음으로 무너지는 도버와 납치의 충격으로 내면에 갇힌 피해자들의 모습을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동안 꼼꼼하게 펼쳐 놓았던 영화입니다.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보기엔 마약 조직을 소탕하려는 경찰의 활약을 담은 액션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법과 원칙이 무너진 선이 과연 진짜 선인지 관객에게 진지하게 묻는 영화입니다. [프리즈너스]에 이어 [시카리오 : 암살자들의 도시]까지 인상깊게 보고나니 드니 빌뇌브 감독을 주목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차기작은 에이미 아담스와 제레미 레너를 캐스팅한 SF영화 [스토리 오브 유어 라이프]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