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33] - 그들이 69일을 버틸 수 있었던 힘

쭈니-1 2016. 4. 12. 11:31

 

 

감독 : 패트리시아 리건

주연 : 안토니오 반데라스,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로드리고 산토로, 줄리엣 비노쉬

개봉 : 2016년 4월 7일

관람 : 2016년 4월 9일

등급 : 12세 관람가

 

 

그들이 69일을 버틸 수 있었던 힘

 

2010년 8월 5일 칠레 코피아포 인근에 있는 산호세 광산에서 구리를 채굴하던 중 33명의 광부가 지하에 매몰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33명의 광부들은 모두 땅 속에서 69일 동안 생존해있다가 2010년 10월 13일 바깥으로 구출되었는데, 첫 구조자는 2010년 10월 13일 0시 10분에 구조 캡슐에 실린 채 구조되었고, 최종 구조자는 21시 55분에 구조되었습니다.

[33]은 산호세 광산 붕괴 사건의 실화를 소재로한 영화입니다. 산호세 광산 붕괴 사건이 놀라운 이유는 단 한명의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섭씨 32도, 습도 95%의 700m 지하에 매몰된 33인의 광부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고작 4일치의 식량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무려 69일 동안 서로가 서로를 의존하며 살아남았고, 결국 모두가 무사히 구조되는 기적을 연출했습니다.

지난 토요일, 저는 웅이와 [33]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웅이와는 SF, 판타지, 애니메이션과 같은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력을 자극하는 영화들을 주로 봤기에 웅이가 [33]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중학생이 된 웅이에게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보여 주고 싶었고, [33]과 같은 실화 영화의 경우는 교육적으로도 웅이에게 좋을 것 같아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죠.

 

그리고 다행히도 웅이는 [33]을 재미있게 봐줬습니다. 33명의 광부들이 극한의 상황 속에서 서로 의지하며 69일이나 버티는 과정이 웅이도 감동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하긴 어렸을 적부터 어린이 만화인 '...에서 살아남기 시리즈'를 좋아했던 웅이이기에 [33]은 '무너진 광산에서 살아남기'라는 소재로 흥미를 안겨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33]을 보며 33명의 광부들이 69일이나 버틸 수 있게끔 이끌어준 가족의 힘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광부의 가족들은 산호세 광산 붕괴 현장에서 희망을 이어나가며 버텼습니다. 그러한 광부의 가족들이 있었기에 언론도 관심을 가져줬고, 정부도 광부 구출 작전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가족들이 먼저 희망을 잃었다면 정부는 추모비 세우기로 생색만 낸 후 광산 회사에 책임 추궁이나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33]을 보고나니 며칠 전 말다툼 이후 대화조차 없는 구피가 생각났습니다. 33명의 광부들처럼 제가 극한 상황에 빠지면 결국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가족 뿐인데, 별것 아닌 일로 말다툼이나 하고 속 좁게 삐쳐 있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구피에게 점심 사줄테니 나오라는 화해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밥먹었음'이라는 짧은 문자로 구피는 제 화해의 문자를 거절, 결국 저는 다시 삐치고 말았습니다.  (아! 속 좁은 쭈니 ^^;)

 

 

그날도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33]은 광부들의 흥겨운 파티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퇴직을 며칠 앞둔 마리오 고메즈를 위한 흥겨운 파티에서 마리오 세풀베다(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십장인 돈 루초(루 다이아몬드 필립스)에게 다음날 비번이지만 돈이 필요하니 일을 하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광부들은 버스에 올라타 평소와 같은 출근길에 오릅니다. 이웃집에 서는 아내와 정부의 다툼으로 괴로워하는 요니 바리오스를 놀리면서...

그날이 평소와 달랐던 것은 볼리비아에서 온 카를로스 마마니가 처음 일을 시작했다는 점 뿐입니다. 칠레와 볼리비아는 국토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볼리바이는 태평양 전쟁(1879년~1883년)에서 패배 이후 유일한 해양통로인 아티카마 지역을 칠레에 빼앗겨 내륙국으로 전락했고, 이후 칠레와 해양 진출권을 놓고 여러차례 합의했지만 결국 무산되자 1962년 칠레 단교를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칠레와 볼리비아의 분쟁은 [33]에서도 잘 표현되는데 광부 중 엘비스의 열혈팬인 에디슨 페냐는 '볼리비아인은 모두 도둑놈들이다.'라며 카를로스를 멸시하고,  카를로스는 '오히려 칠레가 볼리비아 땅을 훔쳐가지 않았냐?'라며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평범해 보이던 하루는 단 한순간 지옥으로 변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언제나 그렇듯 비용절감과 이익극대화만 원하는 광산 회사의 안전불감증입니다.  산호세 광산은 불안정하여 예전에도 한 명이 사망한 사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초반 광산의 입구에 사망한 광부의 사진이 놓여 있습니다.) 광산 회사는 안전검사는 물론 그 어떤 안전조치도 취하지 않고 위험 신호를 오히려 외면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산호세 광산은 붕괴됩니다. 

33명의 광부들은 비상 대피소로 피신하면서 기적적으로 모두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이후입니다. 만약 그들이 이기주의에 빠져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였다면 모두가 위험해졌을 것입니다. 실제 하나 뿐인 가족인 누나인 마리아 세고비아(줄리엣 비노쉬)에게 버려졌다는 생각에 알코올 중독자가 된 다리오는 4일치 밖에 되지 않는 식량을 혼자 먹겠다고 덤비며 비상 대피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뛰어난 리더쉽을 가진 마리오를 중심으로 똘똘 뭉칩니다. 실질적인 리더인 십장 돈이 희망을 포기한 상황에서 마리오는 오히려 동료들을 다독이며 희망을 잃지 않게끔 독려합니다. 그의 그러한 리더쉽은 유일한 볼리비아인인 카를로스까지 포용합니다.

 

 

뛰어난 리더도 가끔 흔들리기도 한다.

 

매몰된 광산 안에서는 마리오의 지휘아래 4일치 밖에 안되는 식량을 최대한 아껴서 동료들과 나눠 먹으며 버티고, 매몰된 광산 밖에서는 광부들의 가족들이 힘겨운 투쟁을 벌입니다. 그들은 매몰된 광부들이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으며 정부에서 파견된 광업부 장관 로렌스 골고르네(로드리고 산토로)에게 적극적인 구조 활동을 요구합니다.

저는 어쩌면 남편이, 아버지가, 그리고 남동생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속에서도 가느다란 희망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가족의 모습에서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처음으로 33명의 광부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장면에서 그들과 함께 저 역시도 기쁨의 눈물이 주루륵 흘러 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족의 힘이겠죠.

이제 신속한 구조작업만 남은 상황. 그런데 오히려 대피소에 갇힌 33명의 광부들은 두번째 위기를 맞이합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의 위기는 뛰어난 리더쉽을 지닌 마리오 덕분에 잘 넘겼지만, 구조된 후 누리게될 부와 명성에 대한 욕심은 마리오 마저 흔들리게 만들었고, 그동안 든든한 리더였던 마리오가 흔들리자 다른 광부들도 욕심에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죠.

 

사실 저는 마리오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습니다. 매몰된 광산에게 무사히 구출된다고 해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호세 광산이 붕괴되면서 광부들은 일자리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가족의 품에 돌아가도 그 이후가 그들에겐 진짜 위기인 셈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한 출판사에서 뛰어난 리더쉽을 발휘해서 동료들을 살린 마리오에게 거액의 돈을 제시했고, 마리오는 당연히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마리오가 동료들을 팔아 거액의 돈을 챙기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동료들은 마리오를 비난하고, 마리오는 누구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냐며 항변합니다.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적인 불신이 33명의 광부들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33명의 광부들은 그들에게 찾아온 두번째 위기도 슬기롭게 해쳐나갑니다.

실제 무사히 구조된 33명의 광부들은 구출 후 그들이 겪은 사고로 얻게될 수입은 똑같이 나누기로 '피의 맹세'를 했다고 합니다. 영화, 책, 인터뷰, 다큐멘터리 등의 로열티 수입을 관리할 재단도 만들어 함께 운영했다고하니 그들이 욕심에 의한 두번째 위기를 얼마나 슬기롭게 해결해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세월호가 생각났다.

 

[33]은 실제 33명의 광부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를 끝냅니다. 어찌되었건 그들은 살아서 가족의 폼으로 돌아갔으니 이 영화는 해피엔딩인 셈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습니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잃지 않고 버텼던 가족들의 울부짖음이 제 귀에 들리는 듯했습니다. 

칠레가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이라고 생각했는데, 사고를 당한 국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구출하는 [33]의 장면들을 보니 오히려 우리나라가 칠레보다 후진국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가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인데, 가끔 우리나라 정부는 그러한 당연한 의무를 소홀히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세월호 참사도 산호세 광산 붕괴사건처럼 모두가 무사히 구출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33]을 보며 33명의 광부들이 기적적으로 살아서 구출된 장면에 감동을 하고, 우리나라는 왜 세월호 참사때 그러지 못했는지 생각하며 씁쓸했습니다. 실화를 소재로한 영화의 힘이 바로 이것입니다. 비록 영화의 재미는 상상력 가득한 영화들과 비교해서 부족할지 모르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과 여운은 이렇게 진솔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한 영화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땐 [33]과 같은 희망이 가득한 영화가 아닌

슬픔과 원망, 그리고 그리움이 가득한 슬픈 영화가 될 것이다.

우리는 왜 참사를 희망으로 바꾸지 못했을까?

아마도 오랫동안 그에 대한 후회가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