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정래
주연 : 강하나, 서미지, 최리, 손숙, 황화순
개봉 : 2016년 2월 24일
관람 : 2016년 3월 15일
등급 : 15세 관람가
가장 힘든 순간, 나는 이 영화를 선택했다.
3월은 제게 악몽의 연속입니다. 오랫동안 저와 손발을 맞추었던 지점의 여직원이 결혼 후 임신으로 퇴사를 하며 제 악몽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렵게 새로운 여직원을 뽑았지만, 회사 경험이 전무한 그 여직원은 어이없는 실수만 연발하다가 결국 대형사고를 터트렸고, 제게 퇴사하겠다는 문자메시지만 하나 보낸 후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렇지않아도 본점 회계결산으로 바쁜데 도망간 여직원이 저지른 대형사고를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니다보니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버렸습니다. 얼마나 바빴으면 제 스스로 한동안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까지 했을까요? 3월 6일 [갓 오브 이집트]를 마지막으로 저는 바쁜 회사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극장은 물론 다운로드로도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야근 후 집에 들어가면 맥주 한캔 마시고 픽 하고 침대에 쓰러 잠을 잤으니 영화를 볼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너무 바빠 정신이 없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회사일 관련 소송 때문에 법원에 가야하는 상황까지 닥쳤습니다. 짜증이나서 소리라도 버럭지르고 싶었지만 힘없는 샐러리맨은 찍소리못하고 회사가 시키는대로 해야죠. 결국 스트레스 때문인지 겨울내 걸리지 않았던 감기기운까지 있어서 그야말로 제 상황은 최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만 내고 있으면 오히려 일이 더 안되는 법입니다. 바쁠수록 돌아간다는 속담이 있듯이 해야할 일은 많았지만 저는 조금이라도 여유를 되찾기로 했습니다. 외근을 나가면 맨날 편의점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웠지만 그날은 좋은 재료로 만들었다는 착한 김밥집에서 천천히 점심 식사를 마쳤고, 버스를 타고 차창밖 풍경을 구경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법원에 갔습니다.
법원에서 약간 남는 시간에는 커피 한잔 들고 법원 근처 거리를 거닐며 이젠 따스해진 햇살을 만끽하기도 했습니다. [갓 오브 이집트]이후 9일만에 영화를 보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그날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엄청 때려 부수는 액션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제 마음을 잡아 땡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화를 담은 아픈 영화 [귀향]이었습니다.
왜 일까요? 왜 하필 [귀향]이었을까요? 솔직히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저는 회사 일이 힘들다고 마음 속으로 징징거리며 제 자신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귀향]을 보며 어린 나이에 영문도 모른채 일본군에 끌려가 지옥과도 같은 일을 겪어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보고나니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사치스러운 것인지 깨달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마음 속으로 한참을 울고나니 위안부 피해자들에 비하면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천국처럼 느껴졌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끌려가야 했던 어린 소녀들
[귀향]은 일제강점기가 막바지로 치닫던 194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네 말괄량이 소녀 정민(강하나)은 어느날 영문도 모른채 일본군 손에 이끌려 가족의 품을 떠납니다. 겁에 질린 상황에서 자신과 함께 끌려온 또래 소녀들과 기차에 실려 알수 없는 곳으로 향한 정민. 그때까지만해고 소녀들은 군수공장에 가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설마 생각하기도 힘든 그런 끔찍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죠.
영화는 1943년 정민의 이야기와 1991년 은경(최리)의 이야기로 나눠 진행됩니다. 은경은 감옥에서 출소한 범죄자에게 강간 당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강간범과 맞서 싸우다가 살해당했습니다. 은경은 그날의 충격으로 말수가 줄어들었는데 그러한 은경을 무속인 송희(황화순)가 보살펴줍니다. 그런데 1943년 정민의 이야기와 1991년 은경의 이야기는 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무속인이 된 은경이 이젠 할머니가된 위안부 피해자 영옥(손숙)과 만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은경을 강간한 범죄자와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끌고간 일본군이 하나도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온갖 변명을 늘어 놓으며 그들이 저지른 추악한 범죄를 외면하려 하지만 결국 그들의 행위는 어린 소녀를 강제로 범한 강간범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지속적으로 강간을 해왔고,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살인까지 감행했으니 강간범보다 더 추악한 범죄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영화가 1991년으로 넘어가면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1991년 장면은 은경이 겪어야 했던 참혹했던 그날의 사건보다는 은경이 송희와 만나 조금씩 상처를 회복해가는 과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는 달리 1943년의 장면은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점점 끔찍해져갑니다.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은 성폭행은 물론 끔찍한 육체적 폭행도 당하며 하루 하루를 힘겹게 버텨갔기 때문입니다.
정민의 주도로 몇몇 소녀들이 탈출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녀들을 마음 속으로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동료를 버리고 자신들만 살겠다고 도망치기엔 정민과 그녀의 단짝 영희(서미지)는 너무 착했습니다. 그녀들이 다시 위안부 숙소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제 가느다란 희망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그녀들이 조금만 더 영악했다면, 조금만 더 이기적이었다면 어쩌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텐데... 그녀들은 지옥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기엔 너무 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마지막 장면,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범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시키기 위해 위안부 소녀들을 살해하려는 일본군의 만행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저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일까요? 전체주의의 망상에 빠진 당시의 일본군은 인간이길 포기한 광기에 빠진 짐승과도 같은 존재였고, 지금도 그들은 그러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더욱 경악스럽습니다.
왜 영화는 정민의 시선으로 진행되는가?
[귀향]의 1943년 장면은 열네살 소녀 정민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사실 저는 1991년의 영옥이 정민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민과 영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영희는 자신이 열일곱이라고 소개하는 것과는 달리 정민은 열네살이라고 말해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1991년 장면에서 영욱은 자신이 열일곱에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옥이 정민이 아닌 영희라는 사실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야 눈치챘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주인공을 영희가 아닌 정민으로 설정한 이유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영옥이 함께 돌아오지 못한 정민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왔듯이 [귀향]은 우리가 지키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죄송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물씬 풍기는 영화입니다. 영화 초반부터 정민의 캐릭터를 세세하게 잡았기에 영화 후반에 안타깝게 희생되는 정민의 모습은 영화를 보는 제게 큰 울림을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살아서 조국으로 돌아온 영희가 순탄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성범죄가 무서운 점은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보다 오히려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한 것은 영희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비록 살아서 돌아왔지만 영희는 고향에 가지 못하다가 영화 후반부에 백발의 노인이 되어 은경과 함께 뒤늦게 고향땅을 밟습니다. 자신에 대한 고향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환향녀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살아서 돌아온 여인을 환향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녀들은 국력이 약한 나라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남의 나라에 강제로 끌려갔고, 온갖 죽을 고비를 넘기며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정절을 잃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을 받았다고 합니다.
오죽했으면 나라에서 냇물에 몸을 씻으면 정절을 회복시켜준다고 선언까지 했을까요? 그녀들은 분명 억울한 피해자이지만, 우리나라의 남성들의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에게 외면당하고 평생을 수치심에 살아야 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기록을 보면 환향녀들은 결국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스스로 청나라로 가거나 창부가 되어 연명했다고하니 참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위안부 피해자들도 비슷한 처지속에서 지금까지 살았던 것입니다.
위안부 피해 신고를 위해 동네 동사무소를 찾은 영옥은 동사무소 직원의 말에 울분을 터트립니다. 그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창피해서 피해 신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창피해야 하는 것일까요? 국력이 약한 나라에서 살았던 것을 창피해야 하나요? 아니면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창피해야 하나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귀향]의 그 장면이 진정 창피했습니다.
만약 실화가 아니었다면 후반부 장면이 너무 가식적이라 이야기했을 것이다.
영화가 후반부로 진행되면 될수록 정민과 영희의 상황은 더욱 위태로워집니다. 패전 위기에 빠진 일본군은 자신들의 만행을 뒤덮어버리기 위해 위안부 여성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정민과 영희에게 도망치라고 외쳤지만, 일본군이 저지를 만행을 알리가 없는 그녀들은 일본군의 손에 이끌려 죽음의 위기에 처합니다.
바로 그 순간 총격전이 펼쳐지고 정민과 영희는 가까스로 도망칩니다. 솔직히 저는 이 후반부 장면들이 너무 극적이라 오히려 가식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건 마치 시한폭탄이 터지기 1초 전에 시한폭탄을 해체시키는 액션영화의 한장면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의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정민과 영희를 공격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공포영화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악당이 벌떡 일어나 주인공을 공격하는 장면과 비슷합니다. 만약 이 영화가 실화가 아니었다면 그러한 후반부 장면들은 너무 과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을 지옥과 같은 일들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살아 남은 극적인 순간들 역시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결국 죽을뻔한 바로 그 순간에 총격전에 펼쳐지는 장면이라던가, 죽은줄 알았던 일본군이 끝까지 살아남아 주인공을 공격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가 실화이기에 힘을 얻습니다.
[귀향]의 피날레는 영옥을 달래는 은경의 씻김굿입니다. 정민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았던 영옥. 하지만 은경의 씻김굿은 그러한 영옥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줍니다.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결국 [귀향]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상을 관객에게 알림과 동시에 생존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조정래 감독의 본심이 영화를 보는 제게도 전해질 정도였으니까요.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집에 돌아와 엄마, 아빠 품에 안기는 정민의 모습이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평화로운 시절에 태어났다면, 국력이 강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엄마, 아빠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살았을 정민. 그런 정민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안쓰러웠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정민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소지으며 "밥 먹자."라고 쓰다듬어주던 정민의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그렇게 해주지 못했는지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귀향]이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300만명이 훌쩍 넘는 누적관객을 기록한 이유도 이 영화를 본 많은 분들이 저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 영화는 즐기는 영화가 아닌, 관객에게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그런 영화입니다. 우리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보낸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이런 영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상수 감독의 2002년작 [생활의 발견]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당시 전체주의의 광기에 빠진 일본은 스스로 사람이 아닌 괴물이기를 자처했다.
그러한 괴물에게 희생된 아픈 과거를 갖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 그들과 같은 괴물이 아닌 사람이 될 수있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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