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댄 트라첸버그
주연 :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존 굿맨, 존 갤러거 주니어
개봉 : 2016년 4월 7일
관람 : 2016년 4월 7일
등급 : 15세 관람가
영화의 상상력은 계속되어야 한다.
개봉 전부터 머리가 떨어진 자유의 여신상으로 유명세를 탄 영화가 있습니다. 2008년 1월에 개봉된 [클로버필드]입니다. 사실 [클로버필드]는 저예산 SF영화로 스타급 배우도 출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작을 맡은 J.J. 에이브럼스는 기가 막힌 마케팅으로 영화를 널리 알렸고,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클로버필드]는 북미에서 개봉 첫주 제작비를 훨씬 상회하는 4천만 달러 이상의 흥행수입을 올리며 흥행작으로 등극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개봉되고나서는 [클로버필드]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식기 시작했습니다. 정체모를 괴물이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는 기본 내용과 주인공이 들고다니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클로버필드]는 카메라의 시점을 이용해서 생생한 현장감을 주려고 했지만, 영화 내내 흔들리는 화면으로 인하여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관객들도 많았습니다.(저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개봉 전부터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서 폭발적인 개봉 첫 주 흥행을 올린 [클로버필드]는 개봉 2주차에는 70%에 육박하는 드롭율을 보였고, 개봉 3주차에도 60%가 넘는 드롭율로 북미 최종 흥행성적은 8천만 달러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저예산으로 만들어진 덕분에 이미 제작비의 7배가 수익을 낸 이후였죠. 덕분에 J.J. 에이브럼스는 낚시의 제왕, 혹은 떡밥 마케팅의 황제라는 칭찬아닌 칭찬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클로버필드]가 개봉된지 8년만에 J.J. 에이브럼스는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클로버필드]의 타이틀을 공유하는 전혀 다른 전개와 전혀 다른 캐릭터로 구성된 영화들을 계속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클로버필드]가 J.J. 에이브럼스의 천재적인 마케팅으로 흥행에서 쩝짤한 재미를 봤던 영화이지만 시리즈로 만들만큼의 파괴력을 가진 영화는 아니기에 저는 개인적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하지만 J.J. 에이브럼스의 진가는 바로 여기에서부터 발휘됩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J.J. 에이브럼스가 공언한대로 단순한 [클로버필드]의 속편이 아닌 전혀 다른 전개와 전혀 다른 주인공을 내세운 전혀 다른 영화라는 점입니다. [클로버필드]를 본 많은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괴물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는데,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또 다른 궁금증을 재생산해냅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적 상상력의 힘이겠죠. 정체모를 괴물이 도시를 공격했다라는 간단한 시놉시스에서 나올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에 J.J. 에이브럼스는 주목한 것입니다. [클로버필드]에서는 괴물의 습격 속에서도 여자친구를 구하려는 주인공 일행의 모험을 그렸고,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는 강박적인 음모론자의 지하 벙커에 갇힌 여주인공의 탈출기를 그렸습니다. 이 두 이야기는 서로 다른 이야기이면서도 정체모를 괴물의 습격이라는 같은 범주안에 있는 셈이죠.
정말 밖의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없을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 후 알 수 없는 공간에서 깨어난 미셸(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로부터 시작합니다. 미셸을 구했다고 주장하는 중년 남성 하워드(존 굿맨)는 정체모를 외계의 공격으로 지구는 오염되었고, 밖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는 미셸에게 이 곳만이 유일한 안전지대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미셸은 하워드의 말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합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 초반의 영화적 재미는 바로 이것입니다. 과연 하워드를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요? 괴물의 습격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는 미셸에게 두가지 단서가 제공됩니다. 첫번째는 미셸과 함께 하워드의 지하벙커에 있는 에밋(존 갤러거 주니어)입니다. 그는 괴물의 습격을 직접 목격하고 자발적으로 하워드의 지하벙커에 들어왔다고 미셸에게 설명합니다.
두번째 단서는 미셸이 당한 의문의 교통사고입니다. 미셸은 우연히 하워드의 자동차를 보게 되고, 하워드의 자동차가 자신의 자동차를 들이받은 자동차였음을 눈치챕니다. 다시말해 미셸이 당한 교통사고는 하워드에 의한 것이죠. 그렇다면 하워드가 미셸을 납치했다는 가설이 성립됩니다. 에밋의 말과 의문의 교통사고의 전말. 이 두가지 단서는 하워드를 믿으라고 하기도 하고, 믿지 말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제 미셸은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하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는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워드의 말이 사실임을... 이 영화가 [클로버필드]와 타이틀을 공유하는 영화가 아니라면 저 역시 하워드를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혼란스러워 했겠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클로버필드]와 타이틀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워드가 주장하는 외계의 공격이 사실임은 관객 입장에서 쉽게 눈치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약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하워드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두고 영화적 재미를 완성하려 했다면 말이죠. 하지만 제작자인 J.J. 에이브럼스가 그러한 점을 놓쳤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오염된 공기로 죽어가는 이웃집 여자의 충격적인 등장입니다. 하워드를 공격해서 지하 벙커를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획득한 미셸. 지하 벙커의 문을 열려는 순간, 죽어가는 여자가 등장해서 지하 벙커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이로써 하워드의 말이 진실임이 밝혀집니다.
애초에 [클로버필드 10번지]는 하워드가 주장하는 지구 오염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화의 제목을 [클로버필드 10번지]로 정했던 것이죠. 어떤 멍청한 감독도 스포를 제목으로 하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렇다면 [클로버필드 10번지]가 내세운 이 영화의 진짜 재미는 무엇일까요? (이후 영화의 스포가 등장합니다.)
극한의 긴장감을 유도하다.
분명 외계의 공격을 받았다는 하워드의 주장은 진실입니다. 그렇다면 [클로버필드 10번지]는 무엇으로 영화의 긴장감을 유지하려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워드의 정체입니다. 비록 하워드가 주장한 외계의 공격도 사실이고, 하워드가 강박증에 사로잡혀 구축한 지하 벙커 덕분에 미셸과 에밋이 살아남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워드를 믿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하워드의 미심쩍은 부분이 하나씩 밝혀집니다. 하워드가 그리워하는 딸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워드는 이혼한 아내가 딸을 데리고 가버렸다며 슬퍼했지만 하워드가 미셸에게 보여준 딸의 사진은 에밋을 통해 몇년전 실종된 소녀임이 밝혀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미셸은 하워드가 여성을 납치했고, 결국 죽였다는 가설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하워드에게서, 그리고 지하벙커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독면 제작에 돌입합니다.
점점 광기로 물들어가는 하워드,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 빠져 나간다고 해도 밖에서는 무엇이 기다릴지 모를 공포,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그러한 요소들을 한데 묶어 극한의 긴장감을 유도시킵니다. 특히 미셸이 유일하게 믿고 따를 수 있었던 에밋이 하워드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긴장감의 강도는 점점 더 커집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기 위해 상영관 앞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연히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보고 나온 두 커플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습니다. 여성분이 하워드의 딸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러자 남성분은 하워드가 자신의 딸을 죽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하워드가 자신의 딸을 죽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고 있는 하워드의 정체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하워드는 강박이 굉장히 강한 인물입니다. 그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털어서 지하벙커를 만든 것만봐도 그의 성격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핵전쟁이 일어나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은 맞았지만 하워드의 강박에 신물이난 그의 아내는 딸을 데리고 하워드의 곁은 떠납니다. 딸에 대해서도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가지고 있었던 하워드는 떠난 딸 대신 딸과 비슷한 또래의 소녀를 납치하고 지하벙커에 가둡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자 (아마도 탈출을 시도하다 하워드에게 살해당했을 것입니다.) 그녀를 대신할 인물을 찾은 것이죠.
미셸이 고속도로 주유소에서 주유를 할 때 그녀의 앞에 트럭 한대가 서있는 장면이 잠시 비춰지는데, 아마도 하워드는 그때 미셸을 처음 봤고, 미셸을 지하벙커에 가둘 계획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러 교통사고를 내서 미셸을 지하벙커에 데려옵니다. 그런데 그때 불청객이 끼어듭니다. 바로 에밋입니다. 에밋이 미셸과 가까워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하워드, 그는 미셸을 딸 대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워드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사이를 방해한 에밋을 살해합니다. 그러한 하워드의 행동은 미셸이 지하벙커를 탈출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됩니다.
예상 외로 친절했다.
미셸은 천신만고 끝에 지하벙커를 탈출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일까요? 설마 그럴리가요. 어쩌면 하워드의 말대로 지하벙커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워드의 광기가 폭발하면서 미셸은 지하 벙커를 탈출할 수 밖에 없었고, 지하벙커 밖에서 하워드와는 또 다른 새로운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위험은 놀랍게도 외계의 공격입니다.
제가 [클로버필드 10번지]의 후반부가 놀라웠던 것은 이 영화가 J.J. 에이브럼스가 제작한 영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친절했기 때문입니다. [클로버필드]만 보더라도 영화가 너무 불친절했습니다. 도시를 습격한 괴물의 모습은 거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잠시 보여줍니다. 그런데 괴물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으로 감췄습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어리둥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와는 달리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영화의 후반부에 모든 것을 오픈합니다. 외계의 비행선이 나오고, 외계의 괴물이 공격을 합니다. 만약 이 영화를 [클로버필드]와 연결시킨다면 [클로버필드]에서 밝혀지지 않은 괴물의 정체가 [클로버필드 10번지]에서 지구 침략을 위한 외계의 괴물이라는 정체가 밝혀진 셈입니다. 물론 J.J. 에이브럼스는 한 인터뷰에서 [클로버필드 10번지]의 괴물은 [클로버필드]의 괴물과 똑같은 괴물이 아니라고 밝혔고, [클로버필드 10번지]가 [클로버필드]와 타이틀을 공유한다고만 했지, 세계관을 공유한다고는 안했지만... 분명한 것은 [클로버필드]와는 달리 [클로버필드 10번지]는 결말이 확실한 영화라는 점입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외계의 비행선을 폭발시킨 미셸이 자동차를 몰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으로 영화의 끝을 맺습니다. 그녀는 과연 살아남은 사람들과 외계의 공격에 맞서 싸울까요? 솔직히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의 이야기는 [클로버필드 10번지]의 마지막 장면으로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J.J. 에이브럼스는 [클로버필드]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세번째 이야기가 현재 촬영 중이며 2017년 초에 미국에서 개봉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클로버필드]는 제작자인 J.J. 에이브럼스로 유명해졌지만 연출을 맡은 것은 맷 리브스 감독입니다. 그는 [클로버필드]를 연출하기 전까지는 그다지 유명한 감독이 아니었지만 [클로버필드]이후 [렛 미 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연출하며 할리우드의 스타 감독으로 발돋음했습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를 연출한 댄 트라첸버그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포털 : 노 이스케이프]라는 7분짜리 단편 SF영화를 만든 것이 이력의 전부이지만, [클로버필드 10번지]를 통해 앞으로가 기대되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2017년에 공개될 세번째 이야기는 또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심장이 쫄깃한 스릴을 안겨줄까요? 그리고 또 어떤 신예 감독을 발굴해낼까요? [클로버필드 10번지]를 본 후 집으로 향하면서 저는 [클로버필드] 프로젝트에 기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또 J.J. 에이브럼스의 낚시에 걸려든 것인가요? 뭐 낚시에 걸렸으면 어떻습니까? 영화만 재미있다면 얼마든지 J.J. 에이브럼스가 던져놓은 떡밥을 덥썩 물겠습니다.
만일 당신이 어딘가에 갇혔고, 바깥세상은 위험으로 가득하다.
문제는 갇힌 곳의 상황도 안전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연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상 가능한 위험에 안주하며 숨을 것인가?
아니면 예상이 불가능한 위험 속으로 뛰어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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