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갓 오브 이집트] - 낯선 소재로 익숙한 재미를 만들어내다.

쭈니-1 2016. 3. 13. 01:35

 

 

감독 : 알렉스 프로야스

주연 : 브렌튼 스웨이츠, 니콜라이 코스터 왈도, 제라드 버틀러

개봉 : 2016년 3월 3일

관람 : 2016년 3월 6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 세상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는 어떻게 처음 생겨난 것일까요? 그리고 지구의 생명체들은 누가, 어떤 이유로 창조해낸 것은 아닐까요? 우리 인류가 아무리 뛰어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인류가 태어나기 수십억년 전의 일까지 완벽하게 밝혀낼 수는 없습니다. 결국 과학적 추론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뿐입니다.

하지만 신화의 세계는 다릅니다. 대부분의 신화는 전지전능한 신이 지구를 창조하고, 지구에 살아갈 여러 생명체와 더불어 자신과 닮은 피조물인 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렇게 신화의 세계에서는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오랜 질문들이 한꺼번에 해소됩니다. 물론 신화는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옛날 옛적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류가 믿고 있는 수 많은 종교들이 그러한 신화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신화를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지구 상의 모든 민족들은 저마다의 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단군신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신화는 단군 신화가 아닌 그리스, 로마 신화입니다. 그만큼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린이 만화에서부터 책, 영화 등 수 많은 매체로 전세계에 보급이 되어 이젠 하나의 거대한 문화 콘텐츠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좋아하기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한 영화들은 꼬박 꼬박 챙겨보는 편입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년전 [토르 : 천둥의 신]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된 북유럽 신화에서부터 [갓 오브 이집트]의 소재가 된 이집트 신화까지... 이 세상에는 정말 매력적인 신화의 세계가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만약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대형 서점에서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을 찾는다면 아마도 좌절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북유럽 신화에 대한 책은 몇권 있지도 않을 뿐더라, 그나마 국내 출판된 북유럽 신화 관련서적들은 일반인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도 웅이와 함께 대형 서점에서 북유럽 신화 관련서적을 찾다가 결국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사정은 이집트 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갓 오브 이집트]를 기대한 것도 이 영화가 국내에선 생소한 이집트 신화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토르 : 천둥의 신]을 통해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듯이, [갓 오브 이집트]를 통해 웅이가 이집트 신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저희 가족은 일요일 낮에 [갓 오브 이집트]를 관람했습니다. 

 

 

오시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하다.

 

[갓 오브 이집트]는 그리스의 작가 플루타르코스에 의해 상세하게 전해지고 있는 오시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오시리스 신화에 의하면 태양신 라는 스스로의 수정작용에 의해 게브, 슈, 테프누트, 누트를 낳았고, 이 네명은 서로 다툰 끝에 게브는 대지가 되고, 슈와 테프누트는 공기와 증기가 되었으며, 막내 누트는 하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게브와 누트는 부부가 되어 오시리스와 이시스 남매를 낳았고,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근친결혼을 하여 28년간 이집트를 통치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시리스는 동생인 세트에게 살해당하고 시체는 14초막으로 토막내어 온 나라에 뿌려집니다. 비탄에 잠긴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체를 모아 누이동생 네프티스의 도움을 받아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켰고, 생명을 되살리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시리스는 이미 이 세상에서 살 수 없게 되어 었었고, 결국 죽은 자의 나라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시리스 신화에서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부터입니다. 오시리스의 시체와 상관하여 이시스는 호루스를 낳습니다. 그리고 호루스는 세트와 싸워 이김으로써 마침내 이집트의 왕이 됩니다. 이러한 오시리스 신화는 이집트 신화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고 합니다.

 

[갓 오브 이집트]는 오시리스 신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12세 관람가 등급의 영화답게 오시리스 신화를 각색합니다. 하긴 세트가 오시리스의 시체를 14토막을 내는 장면이라던가, 이시스가 오시리스의 시체와 상관하여 호루스를 낳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영화로 만든다면 영화의 관람 등급은 흥행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시리스 신화를 12세 관람가 등급에 맞춰 조금 순화시키는 한편 [갓 오브 이집트]는 호루스(니콜라이 코스터 왈도)를 돕는 인간 벡(브렌튼 스웨이츠)을 새롭게 등장시킵니다. 그럼으로써 [갓 오브 이집트]는 그저 신과 신의 전쟁이라는 신화를 벗어나 인간인 벡과 자야(코트니 이튼)의 사랑 이야기를 추가했습니다. 사랑 이야기는 남녀노소가 모두 좋아하는 이야기인 만큼 벡과 자야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적 재미를 위한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루스가 세트와의 전쟁을 통해 이집트 왕권을 되찾는 과정은 [토르 : 천둥의 신]의 닮아 있는데, 영화 초반 아버지 오시리스에 이어 왕위를 물려받는 날 진창 술에 취해 있는 오시리스의 모습은 토르(크리스 헴스워스)와 닮았고, 호루스가 백과의 여정을 통해 진정한 왕의 면모를 갖추는 과정은 토르가 지구에서의 모험을 통해 아스가르드의 왕으로써의 면모를 갖추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결국 [갓 오브 이집트]는 제2의 [토르 : 천둥의 신]을 꿈꾼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낯선 소재, 익숙한 재미


[갓 오브 이집트]의 전략은 바로 그것입니다. 비록 이집트 신화라는 우리에겐 낯선 소재를 선택했지만 영화 자체는 어디에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전개를 선택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야를 살리기 위해 겁도 없이 세트가 보관중인 호루스의 한쪽 눈을 훔치는 벡은 전형적인 사랑을 위해서는 불구덩이에도 뛰어드는 영화 속 남자 주인공입니다.

아버지인 오시리스가 삼촌인 세트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도 세트와의 싸움에서 패배함으로써 두 눈을 잃은 호루스. 그는 세트에게 패한 후 실의에 빠져 지내지만, 결국 모든 역경을 딛고 일어서 세트와 싸워 이기며 진정한 왕의 면모를 갖춰 나갑니다. 이렇게 역경을 딛고 진정한 영웅으로 성장하는 호루스의 모험담은 굳이 [토르 : 천둥의 신]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수 많은 판타지 영화, 혹은 시대극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이야기입니다.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 도와 세트와 맞서 싸우는 벡과 호루스의 모습은 전형적인 버디 무비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고,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기위해 호루스와 벡을 돕는 지혜의 신 토트(채드윅 보스만)는 이런 영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코믹한 조연 캐릭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이쯤되면 [갓 오브 이집트]는 흥행작의 일반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춘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흥행작의 일반적인 요소들을 두루 갖춘 것이 제게는 [갓 오브 이집트]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입니다. 저는 그 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이집트 신화를 소재로한 영화인만큼 지금까지 신화 소재 영화와는 다른 색다른 재미를 기대했지만 [갓 오브 이집트]는 그러한 제 기대감을 전혀 체워주지 못한 것입니다.

이러한 실망감은 2012년에 개봉했던 아이슬란드 애니메이션 [토르 : 마법망치의 전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토르 : 마법망치의 전설]은 신들의 왕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오딘에게 인정받고 싶은 평범한 대장장이 '토르'가 우연히 신전에서 지상으로 떨어진 마법망치 크러셔를 발견하면서 점차 전사로서 성장하는 과장을 담은 어린이 애니메이션입니다. 저는 [토르 : 마법망치의 전설]이 북유럽 신화의 나라인 아이슬란드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만큼 북유럽 신화를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러한 제 기대와는 달리 [토르 : 마법망치의 전설]은 새로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익숙한 재미만 선보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갓 오브 이집트]는 오시리스 신화를 바탕으로하여 태양의 신 호루스, 어둠의 신 세트, 지혜의 신 토트, 사랑의 신 하토르 등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시키긴 했지만 너무 안전한 선택만을 했습니다. 기왕 이집트 신화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면 기존의 신화 소재 영화와는 전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도 좋았을텐데 말입니다.



그냥 할리우드의 거대한 물량공세에 만족하자.


그렇다고해서 [갓 오브 이집트]가 전혀 재미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기대했던 것을 채워준 영화는 아니었지만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만큼 오락영화로써의 재미는 충분한 영화임에는 분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 영화의 재미는 앞서 언급한 익숙한 재미들이 잘 버무러져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순수 제작비만 무려 1억4천만 달러가 투입된 물량공세입니다. 가끔은 그 많은 제작비는 도대체 어디에 썼는지 이해할 수 없는 블록버스터 영화도 있지만, [갓 오브 이집트]는 현란한 특수효과로 최소한 제작비값은 충분히 하는 영화입니다. 호루스와 세트의 대결은 물론 스핑크스를 비롯하여 영화 속에 등장하는 특수효과로 창조된 각종 괴물들은 [갓 오브 이집트]를 지루하지 않은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세트를 물리치는 호루스의 마지막 활약이 조금 뜬금없었고, 자야가 되살아남으로써 너무 준비된 해피엔딩만 선보였다는 점이 실망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이 다스리는 백성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호루스가 깨닫는 과정만큼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폭군, 독재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한채 권력에만 집착하기에 마지막 호루스의 깨달음은 왕이 갖춰야할 진정한 자격일 것입니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저희 가족은 정신없이 [갓 오브 이집트]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재미있네.'라는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갓 오브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우지도 않았고, 대형 서점으로 달려가 이집트 신화와 관련된 서적을 찾아 헤매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영화를 볼 당시의 재미가 [갓 오브 이집트]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갓 오브 이집트]는 오락영화이기에 영화를 볼 당시의 재미만 갖췄다면 그 자체로 실망스러운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갓 오브 이집트]에 대한 제 기대감이 너무 컸기에 저는 영화를 볼 당시의 재미만으로는 절대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이 영활르 연출한 감독이 알렉스 프로야스이기에 더욱더...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은 1994년 [크로우]로 감독 데뷔한 이후 [다크 시티], [아이, 로봇], [노잉]을 연출했습니다. 특히 1998년 개봉한 [다크 시티]의 경우는 독특한 분위기의 저예산 SF 영화였습니다. 제게는 [다크 시티]의 강렬함이 너무 깊이 각인되어 [갓 오브 이집트]도 [다크 시티]와 같은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일 것이라 기대했던 것입니다. 비록 [갓 오브 이집트]는 그러한 제 기대감을 채워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오락영화의 재미만큼은 충실했던 영화였음습니다.


[토르 : 마법망치의 전설]을 보며 북유럽 신화의 개성을 잃은채

디즈니 스타일만 뒤쫓는 영화의 전개에 실망했었다.

 [갓 오브 이집트]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오락영화로는 손색이 없는 영화였지만

이집트 신화의 개성을 잃어버린 것이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