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박현진
주연 : 이미연, 유아인, 최지우, 김주혁, 강하늘, 이솜
개봉 : 2016년 2월 17일
관람 : 2016년 2월 21일
등급 : 12세 관람가
2016년 두번째 로맨스 영화
지난 일요일에 웅이와 집에서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구피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나 쇼핑도 하고 외식을 하며 수다도 실컷 떨고 왔습니다. 느즈막히 집에 돌아온 구피는 제게 미안했는지 피곤함을 무릅쓰고 저와 함께 기꺼이 영화를 보러 가줬습니다. 그날 구피가 제게 선심쓰듯 함께 봐준 영화는 [좋아해줘]입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에 이은 2016년 구피와 저의 두번째 로맨스 영화인 셈입니다.
사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로맨스 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영화였습니다. 분명 석원(정우성)과 진영(김하늘)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주요 내용이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달콤하다기 보다는 씁쓸했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해피엔딩이 아니었기에 영화를 보고나서 깊은 여운은 남았지만 가슴 따뜻해지는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엔 많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아해줘]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완벽한 로맨스 영화입니다. 그것도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여러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시킴으로써 2007년에 개봉했던 [내 사랑]과 2011년에 개봉했던 [커플즈], 2013년에 개봉했던 [결혼전야]와 함께, 여러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가슴 따뜻하게 보여줬던 로맨스 영화의 레전드 [러브 액츄얼리]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영화입니다.
[좋아해줘]에는 세 커플이 등장합니다. 첫번째 커플은 잘 나가지만 깐깐하기로 소문한 노처녀 드라마 작가 조경아(이미연)와 한류스타 배우 노진우(유아인)입니다. 군대 제대후 연예계에 복귀한 진우는 무명 시절 자신을 캐스팅해준 경아에게 아버지가 없는 아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군대 가기전 경아와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낸 진우. 그는 경아의 아들이 자기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류스타로써의 길과 한 아이의 아버지로써의 길을 고민하게 됩니다.
두번째 커플은 노총각 세입자 정성찬(김주혁)과 노처녀 집주인 함주란(최지우)입니다. 회사를 관두고 사업을 하려고 계획하던 주란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사기당하고, 자신이 성찬에게 세놓은 집에 얹혀 살아야하는 끔찍한 상황에 놓입니다.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성찬과 주란은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점점 서로에게 끌리고 있음을 느끼게됩니다.
마지막 세번째 커플은 연애가 처음엔 순진한 작곡가 이수호(강하늘)와 밀당의 고수인 드라마 제작 PD 장나연(이솜)입니다. 나연에게 첫눈에 반한 수호. 나연도 수호의 순진한 매력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수호는 어린시절 당한 교통사고로 청력을 잃었고, 그러한 자신의 장애때문에 나연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고 망설입니다.
SNS가 엮어준 사랑
이렇게 세 커플의 사랑 이야기는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SNS입니다. 귀가 안들리는 수호는 나연과 연애를 시작하지만 전화 통화는 하지 못하고 SNS를 통해 서로 연락을 주고 받습니다. 성찬과 주란의 사랑도 SNS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처음에 SNS는 주란과 강민호(하석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민호에게 보여주기위해 SNS에 올릴 사진을 주란과 성찬이 함께 찍으러 다니며 두 사람은 가까워질 수 있었습니다.
진우와 경아의 사랑은 다른 커플에 비해 SNS에 대한의존도가 약한 편입니다. 하지만 진우가 해외로 떠나려는 경아를 잡기 위해 인천공항에서 그녀를 찾아헤매는 장면에서 SNS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SNS가 수호와 나연, 성찬과 주란의 사랑에 대해서는 진행을 도왔다면, 진우와 경아의 사랑에는 끝맺음을 해준 셈입니다.
사실 저는 SNS를 잘하지 않습니다. 물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자동으로 링크글이 올라가도록 설정하긴 했지만 그것 외에는 SNS를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긴 글을 오랜 시간동안 고민하며 한줄 한줄 써내려가는 것을 좋아하는 제게 사진과 짧은 코멘트를 즉흥적으로 남기는 것이 대부분인 SNS는 처음부터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SNS를 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해줘]는 재미있게 볼 수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SNS를 잘 모르더라도 사랑이라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단 [좋아해줘]는 선남선녀 배우들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훈훈해지는 배우들을 보는 재미, 그것은 로맨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로맨스 영화는 대개 관객에게 사랑에 대한 환상과 대리만족을 안겨주며 영화적 재미를 선사합니다. 그렇기에 남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기위해 잘생긴 남자 배우와 예쁜 여자 배우의 존재는 필수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좋아해줘]는 한때 여신이었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한 미모와 매력을 자랑하는 이미연, 최지우를 비롯하여, 현재 가장 잘 나가는 젊은 배우중 한명인 유아인 그리고 라이징 스타인 강하늘과 이솜, 핸섬하면서도 푸근한 매력을 지닌 김주혁을 캐스팅함으로써 로맨스 영화로써는 최고의 배우진을 갖추었습니다. 저와 구피가 [좋아해줘]를 보기 위해 일요일 밤에 극장을 찾은 이유도 바로 이렇게 매력적인 배우들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학창 시절 이미연을 좋아했던 저는 (제 또래 남자중 이미연을 안좋아했던 사람은 없을 듯) 영화에서 오랜만에 주연을 맡은 이미연을 보기 위해 [좋아해줘]를 기대했고, 유아인이 좋아 [베테랑]을 챙겨봤던 구피는 악당 유아인이 아닌, 달콤한 사랑꾼 유아인의 모습을 기대하며 [좋아해줘]를 보러 나선겁니다. 이렇게 배우의 매력만으로 극장을 찾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좋아해줘]는 로맨스영화로는 일단 합격점을 줄만합니다.
익숙한 배우의 매력이 느껴진다.
출연 배우에 대한 기대감으로 극장을 찾았다면 그 다음 단계는 그들 배우의 매력이 영화에서 맘껏 표현되는 것입니다. 기껏 매력적인 배우들을 캐스팅하고도 그들의 매력을 영화 속에 이끌어내지 못한 실망스러운 로맨스 영화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아해줘]는 여섯 배우들의 매력을 잘 표현해내는데, 신인 여성감독인 박현진은 배우들의 익숙한 매력을 영화에 뽑아내는 안전한 선택을 합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는 유아인. 어디에서 많이 본 설정같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유아인을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려 놓았고, 한때 TV 코미디 프로인 <개그 콘서트>에서도 패러디되었던 TV 드라마 <밀회>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입니다. <밀회>는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운 예술재단 기획실장 오혜원(김희애)과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살아온 천재 피아니스트 이선재(유아인)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드라마로 실제 김희애와 유아인의 나이차는 무려 열아홉살입니다. 이미연과 유아인의 실제 나이차도 열다섯이라고 하니, 이쯤되면 유아인은 누나들의 선망의 대상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좋아해줘]는 누나들의 선망의 대상으로써 유아인의 매력을 뽑아냄과 동시에 [완득이], [깡철이], [사도]에서 보여줬던 반항아적인 매력과 [베테랑]의 조태오를 연상하게 만드는 나쁜 남자의 모습도 함께 보여줍니다. 이러한 유아인의 매력은 [좋아해줘]가 얼마나 배우들의 매력을 잘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주혁과 최지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든지 척척 해내는 오지랖꾼 성찬은 2004년에 개봉했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라는 아주 긴 제목의 영화에서 김주혁이 연기했던 홍두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홍두식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동네 일을 모두 맡아 척척 해내는 만능재능꾼의 면모를 과시하는데, 도시에서 쫓겨나 시골에 내려와 치과병원을 개업한 까칠한 노처녀 윤혜진(엄정화)과 티격태격하며 사랑을 만들어나갑니다.
최지우가 연기한 주란은 케이블 드라마로 높은 시청률을 자랑했던 <두번째 스무살>의 하노라와 비슷합니다. 꽃다운 열아홉에 애엄마가 되어 20년째 엄마와 아내로써의 인생을 산 하노라가 새인생을 위해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인 <두번째 스무살>은 최지우의 맹하면서도 귀여운 매력이 돋보였던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안보는 저도 참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러한 하노라의 매력이 [좋아해줘]의 주란에게도 보였던 것입니다. 특히 노래방 템버린이 머리에 낀 장면은 [좋아해줘]의 최고 명장면입니다.
인텔리하고 깐깐한 노처녀의 전형을 보여준 이미연과 아직 출연작이 많지 않아 대표할만한 매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SNS를 이용한 신세대의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해낸 강하늘과 이솜 커플도 영화의 재미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킵니다.
'좋아요'를 마구 눌러주고 싶다.
사실 [좋아해줘]는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세 커플의 사랑은 뻔하게 흘러갑니다. 로맨스 영화이기 때문에 진우는 당연히 한류스타로써의 길보다는 사랑을 택하고, 주란이 민호가 아닌 성찬을 선택하는 것 역시 당연한 수순입니다. 수호와 나연 역시 수호의 장애를 뛰어 넘어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그러한 뻔한 스토리 라인은 [좋아해줘]의 가장 큰 단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뻔함이 좋았습니다. [나를 잊지 말아요]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사랑에 의한 행복을 [좋아해줘]에서 느끼려면 해피엔딩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로맨스 영화를 표방한 [내 연애의 기억]과 같은 예상 밖의 전개는 오히려 로맨스 영화의 장르적 재미를 해치는 악영향을 끼칠 뿐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을 원한다면 뻔한 내용은 감수해야합니다.
[좋아해줘]는 분명 뻔합니다. 영화가 끝나기 전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훤히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나서 훈훈한 배우들의 훈훈한 결말에 의한 훈훈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좋아해줘]는 영화를 보고나서 '좋아요' 버튼을 마구 눌러주고 싶은 예쁜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수치로 정확하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한다.
SNS에서 '좋아요'의 횟수와 블로그에서 '공감'과 댓글, 조회수의 횟수를 신경쓰는 동안
우리가 SNS를 하는, 블로그를 하는 진정한 이유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수치로 드러난 허상의 '좋아요'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진짜 '좋아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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