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6년 영화이야기

[데드풀] - 슈퍼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다.

쭈니-1 2016. 2. 23. 13:38



감독 : 팀 밀러

주연 : 라이언 레이놀즈, 모레나 바카린, 에드 스크레인, 브리아나 힐데브란드

개봉 : 2016년 2월 17일

관람 : 2016년 2월 19일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이제 어른들의 시간이다.


웅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웅이와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를 보며 웅이의 초딩 이별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제 웅이가 중학생이 되면 지금처럼 저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함께 봐줄런지... 세상에서 가장 무시무시하다는 중2병이 1년 앞으로 다가왔는데 말입니다. 암튼 웅이와 [주토피아]를 보며 동심을 마음 가득이 충전한 저는 그날 밤에는 똘끼를 충전하기 위해 구피와 함께 극장으로 나섰습니다.

그날 구피와 제가 보기로한 영화는 [데드풀]입니다. 마블의 슈퍼 히어로중 하나인 [데드풀]을 보러 간다는 말에 저보다 더 마블 광팬인 웅이는 "저도 데려가세요."라고 울부짖었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관람등급이 15세 관람가라면 모를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웅이와 함께 볼 수는 없죠. 결국 웅이에게 "내가 영화를 보고나서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줄께."라고 약속을 한 후 겨우 떼어냈습니다.

낮에는 웅이와 [주토피아]를, 밤에는 구피와 [데드풀]을 보고나니 굉장히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주토피아]와 [데드풀]은 전체 관람가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만큼이나 서로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영화를 보는 관객을 유쾌하게 웃길줄 안다는 점입니다. 물론 웃기는 방법은 서로 180도 달랐지만...


문제는 [데드풀]을 보고난 다음이었습니다. [데드풀]을 너무나도 보고 싶어했지만 관람등급 때문에 아쉽게 포기해야 했던 웅이는 제가 [데드풀]을 보고나서 영화의 내용을 상세하게 해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해줄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영화이 러닝타임은 1시간 45분으로 보통 길이였지만, 영화의 내용은 단 몇 줄로 요약이 가능할 정도로 너무 단순했기 때문입니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 용병 웨이드 윌슨(라이언 레이놀즈)은 사랑하는 여인 바네사 칼리슨(모레나 바카린)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됩니다. 암 치료를 위해 웨이드는 비밀 실험에 참여하지만 암을 완치하는 대신 실험의 부작용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집니다. 자신의 흉측한 얼굴때문에 바네사 앞에 나서지 못하던 웨이드는 얼굴을 가면으로 감추고 '데드풀'이라는 이름으로 비밀 실험의 감독관 프란시스(에드 스크레인)을 찾아나섭니다. 하지만 프란시스는 오히려 바네사를 인질로 잡아 웨이드를 위협하고, 결국 웨이드는 '엑스맨'의 일원인 콜로서스와 네가소닉 틴에이지 워헤드(브리아나 힐데브란드)의 도움을 받아 프란시스를 무찌르고 바네사의 사랑도 되찾습니다. 끝!

제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웅이는 "벌써 끝났어요?"라고 묻습니다. 그리고는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데드풀]은 정확히 그런 영화입니다. 스토리 라인으로는 영화의 매력이 전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직접 눈으로 '데드풀'의 19금 유머와 괴상망측한 몸개그를 확인해야합니다. 아마 제 영화 이야기도 [데드풀]의 매력을 10%도 채 담아내지 못할 것 같네요.



시작부터 똘끼가 충만하다.

 

[데드풀]은 영화의 시작부터 똘끼를 관객앞에 선보입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스탭과 출연진을 소개하는 자막이 이름대신 '신이 만든 완벽한 돌아이', '뜨거운 그녀', '영국인 악당' 등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팀 밀러 감독을 소개하는 자막이 웃겼는데 '돈을 다소 과하게 받은 얼간이 연출가'입니다. 이쯤되면 시작부터 "난 결코 평범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데드풀'이 프란시스 일당과 한바탕 싸우는 장면으로 넘어갑니다. 프란시스 일당을 혼자 맞서야 하는 '데드풀'. 그런데 이 긴장된 상황에서 '데드풀'은 여유롭게 19금 유머를 쏟아내며 관객에게 말을 겁니다. 급기야 '데드풀'은 자비에 교수에게 같이 가자는 콜로서스의 설득에 "자비에? 맥어보이? 아니면 스튜어트? 미안, 시대 설정이 헷갈려서..."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맥어보이는 [엑스맨 : 퍼스트 클레스]와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에서 찰스 자비에를 연기한 제임스 맥어보이를 의미하고, 스튜어트는 [엑스맨], [엑스맨 2], [엑스맨 : 최후의 전쟁]에서 찰스 자비에를 연기한 패트릭 스튜어트를 의미합니다. '데드풀'은 영화 속의 캐릭터를 넘어서 현실의 배우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란시스 일당과 한타방 싸우면서 '데드풀'은 자신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관객에게 설명하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과거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것은 웨이드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 바네사와의 행복한 나날들입니다. 대개 이러한 장면에서 웨이드와 바네사의 사랑이 최대한 아름답게 꾸며져야 하는데, 둘의 사랑은 오히려 엽기적이기만 합니다. '해피 여성인권의 날!'를 외치며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뀐채 섹스를 하는 장면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제게도 상상이상이었습니다. 

 

이렇게 웨이드와 바네사의 사랑이 엽기적으로 그려지다보니 웨이드가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는 장면에서 슬픔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만약 멜로 영화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져야할 장면인데 웨이드와 바네사의 엽기적인 사랑 때문에 그냥 장난처럼 느껴집니다. 웨이드가 자신의 병으로 바네사 마저도 불행에 빠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바네사 몰래 비밀 실험에 지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이드가 비밀 실험에 지원하는 [엑스맨 탄생 : 울버린]에서 로건(휴 잭맨)이 비밀 실험을 통해 '울버린'으로 거듭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엑스맨 탄생 : 울버린]은 이 장면을 굉장히 비장하게 그린데 반에, [데드풀]은 장난스럽게 그려냈습니다. 웨이드는 프란시스에 의해 극한의 고통을 느끼고 있지만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프란시스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대개 영화가 이렇게 언밸런스하면 어색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데드풀]은 오히려 언밸러스가 영화의 재미로 이어집니다. 긴장감 넘치는 액션과 19금 유머의 만남, 애절한 사랑이야기와 엽기적인 섹스 행각의 결합, 웨이드가 '데드풀'이 되는 과정에서 비장함을 대신하여 코믹한 말장난까지... 이러한 영화 초, 중반이 지나고나니 이 영화를 보기전 '데드풀'을 전혀 접해보지 못한 저도 '데드풀'의 진짜 매력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반가운 콜로서스

 

하지만 1시간 40분을 이끌고 가기엔 '데드풀' 하나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이 워낙 단순하기 때문에 '데드풀'이 제 아무리 원맨쇼를 한다고 해도 영화 전체를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바로 '엑스맨'의 일원인 콜로서스와 네가소닉 틴에이저 워헤드입니다.

그중 콜로서스는 의외로 '데드풀'과 찰떡 궁합을 선보였습니다. 정의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악동 이미지의 '데드풀'과는 달리 완벽하게 모범식 이미지인 콜로서스는 영화의 초반부터 서로 티격태격합니다. 콜로서스가 프란시스를 잡겠다고 도로 한가운데에서 난리법석을 떠는 '데드풀'을 말리며 "넌 나쁜 놈이 아냐. 이제 그만 엑스맨에 들어가자."라고 설득하고, '데드풀'은 콜로서스 때문에 프란시스를 놓쳤다며 투덜거립니다. 제 아무리 못말리는 악동이지만 콜로서스에게만큼은 꼼짝하지 못하는 '데드풀'. 둘의 관계는 마치 말썽꾸러기 초딩과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담임 선생님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콜로서스의 활약은 영화 후반부 프란시스와의 최후 결전에서도 이어지는데,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데드풀'과 콜로서스, 그리고 네가소닉 틴에이저 워헤드가 힘을 합쳐 프란시스 일당과 한바탕 결전을 벌이는 장면은 [데드풀]의 스펙타클을 한층 업그레이드시켰습니다. 이 영화의 제작비가 슈퍼 히어로 영화답지않게 5천8백만 달러로 저렴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콜로서스의 등장은 최대의 효과를 올린 셈입니다.

 

물론 아쉬움도 있습니다. '데드풀'과 콜로서스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콜로서스는 영화 초반 TV 뉴스에서 데드풀이 도로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장면을 보고 "저 녀석이 또..."라며 주저하지 않고 출동합니다. 그렇다면 '데드풀'과 콜로서스는 이전에도 몇번 마주친 사이라는 뜻인데 [데드풀]은 그러한 장면을 통째로 건너뜁니다.

[데드풀]에서 콜로서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크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최소한 10분 정도 더 투자해서 '데드풀'과 콜로서스의 첫만남이라도 보여줬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데드풀'과 콜로서스의 관계에 의한 재미가 더욱 잘 살아났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데드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데드풀]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만약 이 영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때리고 부수는 재미만 있었다면 오히려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데드풀]은 처음부터 끝까지 때리고 부수는 스펙타클보다는 19금 히어로 영화이라는 컨셉에 맞게 새롭고 신선했으며, 정의감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똘끼 충만한 '데드풀'의 개성도 잘 살려냈습니다. 이쯤되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속편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엑스맨'의 부활인가?

 

[데드풀]은 지난 2월 12일 북미에서 개봉해서 개봉 첫주 1억3천2백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리는 등 현재까지 북미에서만 2억3천6백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월드와이드로는 4억9천3백만 달러로 제작비가 5천8백만 달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대박 중에서도 초대박입니다. 이로써 제작사인 20세기 폭스는 함박웃음을 지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20세기 폭스는 마블의 슈퍼 히어로 중에서 '엑스맨'과 '판타스틱 4'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알짜배기 슈퍼 히어로 캐릭터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이미 '판타스틱 4'는 2015년에 리메이크했지만 망작 판정을 받으며 다시 리부트할 것인지 아니면 판권을 마블에 돌려줄 것인지 고민해야할 처지가 되었고, '엑스맨'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연출한 1, 2편만 성공했을 뿐, 3편인 [엑스맨 : 최후의 전쟁]은 흥행과 비평면에서 쓴전을 들이켜야 했습니다. [엑스맨]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울버린'을 내세워 [엑스맨 탄생 : 울버린]과  [더 울버린]을 제작했지만 역시 흥행 성적은 기대이하였습니다.

그마나 최근들어서 매튜 본 감독 덕분에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시작으로 '엑스맨'이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엑스맨'에서부터 파생된 수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엑스맨' 시리즈 하나만으로 만족하기엔 아쉬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스핀오프 제작이 절실한데 '울버린'이 주춤한 사이 '데드풀'이 가능성을 보여준 것입니다.

 

[데드풀]의 흥행 성공에 고무된 20세기 폭스는 휴 잭맨의 마지막 '울버린' 단독영화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만들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슈퍼 히어로 영화라고 한다면 어린 관객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최소한 15세 관람가 등급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데드풀]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슈퍼 히어로 영화도 충분히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인 셈입니다.

제가 [데드풀]의 흥행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마블과 DC가 서로 앞다퉈 슈퍼 히어로 영화들을 양산하는 가운데 지금까지의 슈퍼 히어로 영화는 이미 두편이 선보인 [어벤져스]와 2017년 첫 선을 보일 [저스티스 리그]처럼 슈퍼 히어로가 단체로 나와 활약하는 영화들에 포커스를 맞춰 왔었습니다. 하지만 [데드풀]은 그러한 상황에서 또 다른 페러다임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렇게 슈퍼 히어로 영화가 다양해진다는 것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입장에서는 반가울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아직 나이가 어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를 볼 수 없는 웅이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데드풀]을 보며 슈퍼 히어로 영화가 이렇게 야하고, 잔인하고, 단순해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재미를 안겨준 것만으로도 [데드풀]은 제게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언젠가 성인이 된 웅이와 [데드풀]을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을 위해 나는 19금 슈퍼 히어로 [데드풀]을 웅이와 함께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 하지는 않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