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바이론 하워드, 리치 무어
더빙 : 지니퍼 굿윈, 제이슨 베이트먼, 이드리스 엘바, J.K. 시몬스
개봉 : 2016년 2월 17일
관람 : 2016년 2월 19일
등급 : 전체 관람가
웅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2016년 2월 19일... 그날은 웅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습니다. 저는 물론이고, 좀처럼 회사에 휴가를 낼 수 없는 구피도 연차 휴가를 냈으며, 저희 집과는 서울 반대편에 사시는 어머니께서도 하나뿐인 친손자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보시겠다며 이모님과 함께 오셨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졸업식은 1시간이 조금 지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웅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을 보다보니 제 초등학교 졸업식이 생각났습니다. 그땐 학교 운동장에 모여서 추운 바람을 맞으며 했었는데, 이젠 따뜻한 강당 건물 내에서 편안하게 앉아 졸업식을 하네요. 달라진 것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초등학교 졸업을 할 때만 해도 수백명이 함께 졸업을 해서 학교 운동장이 북적였었는데, 웅이 졸업식의 졸업생은 고작 80여명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졸업생 한명 한명을 일일히 호명해서 졸업장을 나눠줘도 시간이 몇십분밖에 소요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조촐한 졸업식이 끝나고 저는 웅이의 초딩으로써의 마지막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영화를 한편 보기로 했습니다. 먼훗날 웅이가 초등학교 졸업식의 추억과 함께 자연스럽게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영화, 바로 [주토피아]입니다. 왜 하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냐고요? 어린이로써의 마지막 날,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조금 특별하게 추억되지 않을까요?
[주토피아]의 제목은 동물원을 뜻하는 'ZOO'와 낙원을 뜻하는 'UTOPIA'의 합성어입니다. 제목 그대로 동물의 낙원에서 의인화된 동물들의 소동극이 영화의 주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재만으로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어린이 눈높이에 딱 맞춰진 영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디즈니라는 브랜드의 힘을 믿었습니다. 디즈니는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어른이 봐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하는 마법에 능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주토피아]는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임이 분명하지만 어른인 제가 봐도 웃으며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귀여운 토끼 경찰과 얄미운 여우 사기꾼이 짝을 이뤄 육식동물 연쇄실종사건을 수사한다는 내용은 어린이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른 관객이 좋아할만한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주토피아]에는 동물 사회를 빗대어 우리가 사는 인간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교훈도 갖추고 있습니다.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라는 동물 사회의 계급과 그로 인한 편견에 맞서 싸우는 주디 홉스(지니퍼 굿윈)와 닉 와일드(제이슨 베이트먼)의 활약은 인종, 종교, 성별 등과 관련된 우리 인간 사회의 각종 편견을 적절하게 풍자하고 있습니다.
편견을 뛰어 넘어야할 최초의 토끼 경찰 주디 홉스
[주토피아]는 토끼인 주디가 경찰을 꿈꾸며 시작합니다. '주토피아'가 아무리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라고해도 흉악한 범죄를 처단하는 경찰의 일은 덩치가 크고 힘이 쎈 동물이 해왔던 일입니다. 그런데 작고 힘없는 토끼인 주디가 커서 경찰이 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물론 주위사람들은 그런 주디를 비웃거나 말립니다.
영화 초반은 주디가 '토끼는 경찰이 될 수 없다'라는 주위의 편견을 깨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주디는 경찰 학교에 들어가서 처음엔 체력 테스트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고전하지만 결국 피땀나는 노력 끝에 수석 졸업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주토피아'의 경찰관이 되지만 그곳에서도 편견의 산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주디를 못마땅하게 생각한 보고(이드리스 엘바) 경찰서장이 주디에게 육식동물 실종사건 수사 대신 주차단속을 맡긴 것입니다.
결국 주디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편견을 넘어야 합니다. 주디에게 주어진 단 한번의 기회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비버 부인의 남편 실종 사건. 보고 서장은 주디에게 48시간 이내에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경찰복을 벗고 떠나라는 제안을 하고 주디는 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주디가 보고 서장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주토피아]는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갖춰 나가기 시작합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치밀함입니다.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닌 철저하게 단서와 증거에 의해야 스릴러 영화로써의 재미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이 애니메이션인 [주토피아]는 주디가 비버 실종 사건을 맡게 되면서 스릴러 영화로써의 치밀함을 보여줍니다.
주디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단서는 거리의 CCTV에 찍힌 비버의 마지막 모습. 주디는 CCTV에 여우 사기꾼 닉의 모습이 찍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닉과 함께 협동수사를 제안합니다. 이제 막 '주토피아'의 경찰이 된 주디와는 달리 '주토피아'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는 닉은 주디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파트너였던 것입니다. 닉의 도움으로 주디는 비버가 자주 다녔던 곳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비버가 실종되던 날 타고간 리무진의 번호를 알게 되고, 그 번호를 통해 비버의 실종이 흉악한 마피아 두목 미스터 빅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이렇게 주디가 비버 실종 사건의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가는 과정은 단서와 단서의 연결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토끼인 주디와 토끼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여우인 닉의 환상적인 파트너쉽을 통해 버디무비로써의 재미도 갖춰나갑니다.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스릴러, 그리고 버디 무비의 조합이라니... [주토피아]가 어른관객인 저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편견의 희생자인 교활한 여우 사기꾼 닉
만약 [주토피아]가 최초의 토끼 경찰관인 주디가 주위의 편견을 이겨내고 영웅이 되는 이야기라면 분명 영화의 전개 자체가 너무 단순해졌을 것입니다. 모든 포커스는 주디에게 맞춰졌을 것이고, 다른 캐릭터는 주디의 영웅 등극을 위한 들러리에 불과했을테니까요. 하지만 [주토피아]는 주디의 편견 극복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것도 여우 사기꾼 닉을 통해서 말입니다.
영화의 초반, 어린 주디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어린 초식동물들을 괴롭히는 악동 여우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주디가 '주토피아'의 경찰관이 되어 집을 떠날때 걱정이 많은 주디의 아버지는 여우 퇴치기를 주면서 절대 여우를 믿지 말라고 충고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주디가 닉과 처음 만나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의 장면을 통해 주디의 믿음과는 달리 닉은 사기꾼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그러면서 [주토피아]는 관객에게 '여우는 교활한 사기꾼 악당'이라는 편견을 자연스럽게 안겨줍니다.
하지만 닉 또한 주디와 마찬가지로 편견의 희생자입니다. '여우는 교활하다'라는 편견 때문에 초식동물에게도, 육식동물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던 닉은 자신의 꿈을 버리고 주변의 편견에 맞춰 사기꾼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닉을 교활한 사기꾼으로 만든 것은 동물사회의 편견인 셈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닉에 대한 편견은 주디도 갖고 있습니다. 닉과 함께 비버 실종사건을 해결하고, 사건을 은폐하려했던 라이언하트(J.K. 시몬스) 시장의 음모를 밝혀내면서 '주토피아'의 영웅이 된 주디. 하지만 주디도 육식동물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힌 초식동물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한 주디의 모습에 닉은 실망을 하게 됩니다.
[주토피아]는 비버 실종사건을 해결하고 '주토피아'의 영웅이 된 주디의 모습에서 영화를 끝내지 않고 주디의 활약상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처음엔 편견의 희생자처럼 보였던 주디 또한 여우에 대한 그리고 육식동물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편견이라는 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이라도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편견이라는것은 나쁜 사람들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닌, 평범한 우리들 역시 갖고 있는 것임을 [주토피아]는 주디를 통해 보여줍니다.
결국 [주토피아]는 편견의 희생자였던 주디가 '토끼는 경찰관이 될 수 없다'라는 주위의 편견을 극복하고, 그와 더불어 여우에 대한, 육식동물에 대한 자신의 편견을 깨뜨림으로써 진정한 '주토피아'의 영웅이 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주디가 자신 또한 편견에 휩싸여 있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저 역시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편견없는 세상을 위하여...
제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어른과 어린 아이가 함께 봐도 재미있습니다. 귀여운 동물들을 의인화함으로써 어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고, 그 위에 스릴러 영화의 치밀함과 버디 무비의 재미를 곁들이면서 어른 관객인 제게도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게끔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비록 저는 웅이의 초등학교 졸업을 기념하기 위해 [주토피아]의 관람을 선택했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저와 웅이는 함께 [주토피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주토피아' 최고의 가수인 가젤(샤키라)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저와 웅이는 함께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이렇게 어른과 어린 아이가 함께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디즈니가 지금까지 최고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어의 명예를 이어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게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교훈도 있습니다. 물론 어린이를 상대로하는 대부분의 영화에는 착한 결말을 통한 교훈이 언제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교훈은 다른 어린이 영화의 교훈처럼 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른인 제가 봐도 뭔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교훈은 감동적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는 웅이와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웅이네 학교에는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꽤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 웅이는 과연 그러한 아이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요? 다행히도 웅이는 아직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에게 대한 어떠한 편견도 없었습니다. 그냥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대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되면 웅이는 주디처럼 편견과 맞서 싸워야할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주위의 편견, 그리고 주위에 대한 자신의 편견. 이러한 편견은 웅이가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서 더욱 커져갈 것입니다.
'주토피아'가 진정한 동물들의 낙원이 되기 위해서는 육식동물에 대한, 그리고 초식동물에 대한 모든 편견이 사라져야 하듯이, 우리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편견의 벽에 부딪히고, 편견의 시선으로 남을 쳐다볼 때 우리의 사회는 점점 병들어 갈 것입니다. [주토피아]는 비록 어린이 애니메이션이지만 어린 아이들보다 편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함으로써 한단계 더 성장해야할 웅이를 위한 최적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웅이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곳은 그 어떤 편견도 없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어떠한 형식으로든 편견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주디처럼 편견을 깨기 위해, 그리고 편견을 갖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이야기 > 2016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아해줘] - SNS를 몰라도 '좋아요'를 꾹 눌러주고 싶은 영화 (0) | 2016.02.25 |
---|---|
[데드풀] - 슈퍼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다. (0) | 2016.02.23 |
[검사외전] - 검사보다 사기꾼이 매력적인 이유 (0) | 2016.02.15 |
[로봇, 소리] - 나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좋은 보호를 원한다. (0) | 2016.02.10 |
[쿵푸팬더 3] - 이 즐거움이 영원히 계속되길... (0) | 2016.02.02 |